개혁주의 악용하지 말라   


무엇이 개혁주의인가? (1)

개혁파교회(改革派敎會&nbspReformed&nbspChurch)는 칼빈을 신봉하거나 그의 학설을 교리로 하 는 것이 아니다. 다만 칼빈이 누구보다도 성경을 올바로 보고 올바로 해석하려고 애썼다는 것을 인정하고 그의 학설을 참고로 하는 것 뿐이지 그의 학설을 성경 위에다 놓을 수는 없다. 이것이 개혁주의 사상이다. 다시 말하면 칼빈이 해석한 성경이라도 잘못되었으면 잘 못을 지적하여 고치는 것이 진정한 칼빈주의요 개혁주의라는 것이다.

그러므로 칼빈의 학설만 열심히 주장하는 자를 개혁주의하지 않고 성경을 성경으로 해석하며 하나님의 말씀에 따라 개혁된 교회 를 개혁파 교회라고 말한다. 그리하여 개혁파 교회는 하나님의 주권(主權)을 강조하고 있다. 그래서 개혁주의 교리는 성도들이 천국열 차를 타고 달리는 방향을 제시하고 있는 것이다. 즉 교리는 구원의 방향을 예수 그리스도를 중심하여 그의 구속사적인 성경을 체계적으 로 논리적으로 조직적으로 정리하였을 뿐이다. 그래서 교리도 성경을 벗어날 수는 없는 것이다. 성경을 성경으로 해석하는 것이 개혁주 의 근본사상이다.

기독교는 냉소한 가슴속에 불을 지르는 종교인 동시에 냉철한 이성 속에 방향을 제시하는 종교이기도 하다 그리하여 신앙생활 은 기차가 목적지를 향하여 달리는 것과 같다. 기차가 달리려면 먼저 열이 있어야 하고 달릴 수 있는 철로가 있어야 한다. 만약 에 열이 없다면 이는 달리 수 없고 열만 있고 철로가 없다면 이 또한 달릴 수 없는 것이다. 그런데 오늘의 기독교는 어떠한가? 예 수님에게로 가는 길을 잃어버리고 방황하는 것 같은 느낌을 가진다.

왜 성경은 가지고 있으나 성경대로 살기보다는 자기의 생각대로 살아가고 있고 주님의 교훈은 엄격하지만 그 교훈 앞에 겸손 히 무릎꿇고 순종하기보다는 거역하는 사람들이 이방인이 아니고 기성교인들이라는 점에서 놀라지 아니할 수 없다. 그러나 신학교에서 학 문을 연구하여 글이나 쓰고 이론적이고 변증론적(辨證論的)인 필체로 기독교를 옹호한다하여 진정한 개혁주의라고 착각하는 자들이 많 아 기독교와 하나님의 이름이 이방인들에게 모독을 받는 일들이 비일비재(非一非再)하다는데 문제의 심각성이 있다는 것이다 (롬&nbsp2:19-24).

그리하여 개혁주의 학자 또는 개혁주의 변증론자로서는 어느 정도 인정을 받으나 개혁주의 신앙인으로서는 낙제점수를 면치 못하 는 자들이 교계지도라는 허울을 쓰고 판을 치고 있으니 종교개혁 이전으로 다시 돌아가는 느낌을 받지 아니할 수 없고 기독교의 위기의 식을 더하지 아니할 수 없다는 것이다. 과연 개혁주의가 신앙양심도 없단 말인가? 그렇다면 개혁주의란 말은 입밖에도 내지 말라 개혁 주의 신자라면 아니 지도자라면 제일 먼저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신전의식을 중요시하며 그 의식을 중심해서 신앙생활이 시작되는 것이 다. 그런데 작금의 개혁주의 자라고 자칭하면서 교계의 주도권을 가지고 제동장치가 고장난 자동차처럼 위험하게 질주하는 것을 지켜보 는 신앙양심이 살아 있는 보행자들이 그들을 바라볼 때는 무면허 운전자가 차를 모는 것 같은 느낌을 지워버릴 수 없고 술에 만취 된 음주운전자와도 같은 느낌을 지워버릴 수 없는 것도 숨길 수 없는 솔직한 심정이다.

그래서 개혁주의를 따르는 뜻 있는 성도들이나 지도자들은 매우 걱정을 하고 있으며 어떻게 개혁주의와는 관계도 없는 자들에 게 교계를 맡겨서 이끌어 가라고 하겠느냐는 우려의 소리가 날로 드높아가고 있음도 사실이다. 그러므로 성경 밖으로 이탈한 개혁주의 는 개혁주의가 아니고 개혁주의적인 포장일 뿐이다(고전&nbsp4:6). 철로를 이탈한 기차는 달릴 수 없다. 선로부터 보 수 작업하고 그 다음에 기차가 달리는 것이 순서인 것과 같이 개혁주의를 자처하며 술 취하여 방향감각을 잃은 음주운전기사 같은 자들 은 개혁주의란 대형차를 운전할 실력과 자격이 없으므로 그들에게 개혁교단이라는 대형차를 맡길 수 없는 것이다.

그런데 이상한 것은 음주운전자들에게 법규위반 사실을 지적하면 음주운전자는 단속에 걸려도 한번도 솔직하게 시인하고 처벌을 받 아 거듭나겠다고 말하는 자들을 볼 수 없고 한결같이 자기 변명과 음주 측정을 완강하게 거부하는 모습을 종종 볼 수 있는데 무엇 을 믿고 그렇게 하는가? 이는 무법천지에서나 볼 수 있는 기이한 현상일 뿐 정상적인 사람의 태도는 아니라는 것이다. 정상인이라 면 양심이라도 있어 솔직히 위법을 인정하고 다시는 그와 같은 위법은 하지 않겠으니 용서해달라는 모습은 동정심과 정상참작이라도 해 줄 수 있지 않겠는가?

그런데 양심 없는 음주운전자들은 단속하는 경찰관을 차에 매달고 질주하는 도저히 정상을 참작할 수 없는 양심에 화인 맞은 자 들도 있다는 것은 정상적인 인간이라면 상상이나 할 수 있는 일인가? 그렇다 개혁주의자라고 자처하는 자들이 정상적인 사람들이 볼 때 는 상상도 할 수 없는 괴기한 일을 하고 있으니 어디 말이나 될법한가? 진정으로 개혁주의 사상을 가지고 교계를 바로 지도하겠다 고 하는 자들이 있다면 먼저 지도자 이전에 주께서 인정하시는 신자부터 되라 그리고 그 다음에 지도자로서 자격증을 획득하여 교계 를 이끌어가야 할 것이다.

성경에 소경이 소경을 인도하면 둘 다 구덩이에 빠진다고 한 것과(마&nbsp15:14)같이 자신도 망하고 교계도 망 쳐놓을 것이다. 개혁주의 포장만 가지고 속이 다른 양심으로 주의 일이라는 그럴듯한 가면이설(假面異說)로 진정한 개혁주의를 파괴하 지 말아야 할 것이다


의성교회   이윤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