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교회는 왜 쇠퇴하는가? 

  오늘날 한국 교회의 현실을 두고 불안한 마음을 감출 수 없다고 평가하는 이가 적지 않다. 질적인 면은 접어두고 라도 양 적으로 한 때 급격하게 부흥하였다고 자랑하던 한국 교회는 작금에 와서 성장을 멈추고 쇠퇴의 길로 들어서고 있는 조짐이 나타나고 있 다. 이러한 교회의 원인이 무엇일까? 혹자는 급격한 시대변화에 따른 사회변동 때문이라고 말한다. 사회가 농업사회에서 산업사회의 이 전이후 급격하게 변화된 사회발전을 인하여 생활 패턴의 다양성과 변화, 주거지역의 잦은 이동현상으로 교회 퇴보의 원인이라고 한 다. 그 시대의 패러다임의 주류가 되는 사상의 영향을 그 원인이 있다고 보는 이도 있다. 서구 교회가 프랑스 혁명이후에 등장한 자 유주의 사상의 영향으로 퇴보했다고 주장한 것처럼 이 자유주의 사상이 우리의 사회활동 구조를 개인주의 성향으로 만들었고 근자에 와 서 포스트모더니즘의 반기독교 이념이 사회 전체에 지대한 영향을 주어서 기독교를 표방하는 전통적인 가치관이 무너지게 되었다고 한 다. 이러한 주장들은 오늘날 무너져 가는 교회에 대한 바른 평가라고 보기엔 부족하다. 교회의 자체의 활동 영역에서 원인을 찾는 이 들도 있다. 이들은 이러한 문제를 교회의 운영 구조에서 찾는다. 새로운 시대 변화에 따른 교육방법의 부재, 교인의 참여 부 족 등 개혁되지 않는 교회의 구조나 운영 프로그램과 교권, 교파주의에서 오는 교회 간의 갈등과 분열, 무분별한 신학교육의 체제에 서 오는 부실한 교회 지도자의 양산 등에 있다고 보았다. 이러한 지적에는 귀담아 들을 필요가 있다. 
그러나 교회 침체의 근본적인 문제는 그 무엇보다도 교회의 생명력인 하나님 말씀의 부재가 근본 원인이다. 여기서 하나님 말씀 의 부재란 하나님의 말씀이 우리에게 존재하지 않는다는 뜻이 아니라 엄연히 우리의 삶 가운데 존재하고 살아있는 하나님의 말씀이 신자 의 삶과 아무 상관없이 그대로 있다는 말이다. 한 때 세간에는 사오정시리즈라고 하는 말장난이 유행한 적이 있었다. 사오정시리즈 은 동문서답에서 오는 말의 뉘앙스로 웃음을 얻고자 하는 유우머 한 패턴이다. 그 시대의 풍자적 언어는 시대의 유산물인 이러한 유행 은 그 세태를 잘 반영하는 사회 현상의 한 조작이다. 다른 이로부터 말을 전해 들으면 그 말을 귀담아 잘 듣고 그것에 맞는 응답 을 해야 하는 것이 사회생활 속에서 삶의 기본 패턴인데 이러한 사회규범과 질서를 거부하는 사회적 표현의 하나이다. 지금 교회도 마 찬가지로 사오정시리즈를 하고 있는 것이다. 강단에서 선포되는 하나님의 말씀을 신자들이 하나님의 말씀으로 제대로 받지 않는다. 하나 님의 말씀 제대로 받지 않으니 신자가 안으로 바르게 자랄 수가 없고 이로써 그가 밖으로는 한 그리스도인으로서 아무것도 할 수 없 는 그리스도인 유아로 살아간다. 이름만 그리스도인이다. 
여기에는 말씀을 전하는 설교자의 책임도 부인할 수 없다. 세상과 구별되는 교회의 정체성을 규정하는 본질은 하나님의 말씀 이 그곳에 있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교회의 생명력은 바른 말씀의 선포에 있다. 강단에서 전하는 하나님의 말씀이 우선 바르게 선포되 는 것이 늪에 빠져가는 교회를 건져 낼 수 있는 시작인 동시에 정도(正道)이다. 교회를 되 살릴 수 있는 가장 중요하고도 우선되어 야 할 과제는 강단에서 말씀을 선포하는 설교자가 진리의 말씀을 순수하고도 바르게 전하는 데 있다. 하나님에 관한 말씀을 전하는 것 이 아니라 하나님 말씀 그 자체를 전하여야 한다. 곧, 복음에 관한 주변 이야기가 아니라 구원을 가져 다 주는 복음 그 자체를 전 해 주어야 한다. 말씀 그 자체 외에 그 무엇 덧붙이는 행위야 말로 말씀 가운데 역사 하시는 성령의 사역을 훼방하는 일이다. 그런 데 많은 설교자들이 요리사 인양 이것 저것으로 양념을 친다. 철학이나 윤리적 명언으로, 유머스러운 예화나 정치적 사회 이슈들을 들 어서 보탠다. 그것이 부족한지 설교자 자기 신세나 간증으로 일관한다. 설교자는 여기에서 하루 빨리 탈피해야 한다. 
사람을 변화시키고 구원에로 인도하는 유일한 것은 예수그리스도의 복음 뿐이다. 그런데 왜 복음을 전하지 않고 청중의 마음 에 들도록 비위를 맞추고 있는가? 설교 듣는 이들의 감정에 맞게 하려고 한다면 차라리 감동이 넘치는 드라마 걸작을 한 편 보여 주 는 것이 더 낫을 것이다. 하나님 계시인 말씀을 생명인 말씀 그 자체가 되는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전하는 것으로 되돌아 서야 한 다. 천국의 열쇠를 얻고자 온 청중에게 천국의 대문을 열 수 있는 열쇠인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쥐어 주지 않고 지푸라기 같은 잡 다한 이야기를 들려 준다면 하늘로부터 오는 하나님의 진노를 누가 면할 수 있겠는가? 오늘날 교회의 회복은 강단에서 언어의 유희 로 춤추는 설교자들이 오직 복음 만을 전하는 것으로 회복이기도 하다. 

또 하나 교회의 회복의 과제는 말씀을 듣는 이들의 문제와 관련되어 있다. 말씀을 들을 때 사람의 말로 받지 않고 하나님 의 말씀으로 받는 것이 그 무엇보다도 중요하다. 하나님의 말씀은 그 말씀을 하나님의 말씀으로 믿는 자에게 그 안에서 역사하신 다. 하나님의 말씀은 곧 하나님의 능력인데 왜 우리들은 말씀을 받는 데 능력을 나타내지 못하는가? 그것은 하나님의 말씀을 하나님 이 나에게 주시는 그 분의 말씀으로 받지 못하기 때문이다. 기독교 역사적으로 번성했던 시대는 분명히 그 분의 자녀 가운데 말씀 과 함께 성령의 역사가 왕성했던 때였다. 
교회가 하나님의 거룩한 백성들의 무리라고 할 때 이는 성령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아 예수 그리스도의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이 요 영생의 주님으로 고백하는 신자들의 무리인 것이다. 그러한 무리들이 사랑의 공동체를 이루는 곳이며 영적인 공동체가 교회이 다. 이 교회의 교회됨의 모습은 한 사람 한 사람이 말씀 가운데 바로 서 있는 것이다. 교회의 지표의 핵심은 진리의 말씀을 바르 게 전파하는 것이다. 성례를 정당하게 집행하는 것이 교회의 지표의 하나인 것은 복음인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와 부활의 사건을 표상 이기 때문이다. 권징을 신실하게 시행하는 것이 교회의 지표의 하나인 것은 거룩성을 유지하기 위한 말씀의 사역이기 때문이다. 교회 가 권징을 시행하는 것은 잊은 지 이미 오래 되었고 성례의 집행은 아쉬운 대로 유지되고 있다. 말씀의 선포 마저 흔들리고 있 다. 이쯤이면 교회로서 문제는 심각하다고 해야 할 것이다. 오늘날 많은 교회는 교회의 지표인 이런 중한 일에 그 의무를 다하지 못 하고 있음으로 인하여 결국 한 사람, 한 사람에게서 그리스도인의 진면목을 찾을 수 없는 것이다. 여기에서는 교회의 진정한 부흥 을 기대할 수 없거니와 도리어 쇠퇴하기까지 하는 것이다. 거듭 강조하거니와 교회의 성장은 사람을 끌어들여 수를 채우는 것이 아니 라 한 사람을 진정한 그리스도인으로 세우는 일로 출발한다. 그것은 한 사람의 그리스도인이 자기 안에 역사하는 말씀의 부재를 비스므 레한 다른 복음이나 왜곡된 진리로 채워 주는 것이 아니라 역사하는 구원의 바른 복음을 심어주는데 있다. 이제 교회가 오직 복음으 로 세워가는 데로 빨리 돌아와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