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탄 의미의 재인식   

“성탄절이 세계적 명절이 되었다”는 것은 가슴 뿌듯한 일이다.&nbsp12월에 들어서면서 밤이 되면 성탄트리의 오색 찬란한 전등 빛이 보기 좋게 수 놓은 것을 보니 더더욱 그러하다. 그러면서도 한편 마음이 착찹함을 금할 수 없다. 그것은 알맹 이 없는 장식, 곧 본질을 잃어버린 축제가 되고 있기 때문이다. 

어느 성탄 때 교회당에서는&nbsp6m의 대형 전나무로 오색찬란한 트리를 장식하여 교회당 밖에 세웠을 뿐만 아니 라 교회당 넒은 정원에 있는 각각의 나무마다 안개등을 총총히 달아서&nbsp12월&nbsp24일 저녁을 밝혔다. 

온 교인들이 좋아하고 주위 동네사람들도 구경하느라고 야단법석이었다. 이날 성탄축하식이 절정에 이르렀을 때 다리를 저는 불쌍 한 사람이 새끼 양 한 마리를 안고 찾아와서 구경을 하려 하였다. 말쑥하게 차려 입은 신사 한분이 그 사람을 냉정하게 교회당 안으 로 들어오지 못하게 하였다. 

주위의 교인들도 둘러 서 있었지만 어느 누구도 불쌍한 사람을 동정하는 자가 없었다. 결국 불쌍한 사람은 새끼양과 함께 쫓겨 나야 했다. 그런데 그 시간부터 교회당 종탑 맨 꼭대기에 장식한 별 등의 불이 꺼진 것이다. 아무리 살펴보아도 이유 없이 그 성 탄 별등에서는 끝내 성탄절이 지나갈 때까지 불빛을 볼 수 없었다는 것이 다. (James&nbspC.&nbspHefley의 성탄의 이야기에서)

고대 신학자 어거스틴(Augustine)은 크리스마스의 의의를 논리있게 증거 할 때 “크리스마스 축하는 그리스도의 오심 과 종말적 재림과의 관계된 지속적인 시행의 의미가 있고, 이 땅에 영적 구원의 평화를 위해서도 지속적인 시행의 의미가 있다”고 하 였다.

성탄절의 본질적 의미는 구주 예수 그리스도의 초림(눅2:11)과 그로 말미암아 구원의 성취, 그리고 그의 재림을 내다보 는 것이며, 그리스도의 구원의 세계에서 일어날 영적 평화(눅2:14)와 하나님 나라에서의 영원한 평화를 내다보는 것이다. 그런 데 이런 본질적인 것이 퇴색된 오늘의 성탄축제는 사실상 속화된 것이 아닐 수 없다.

롤스(J.&nbspRawls)는 “사회의 기본골격” (Basic&nbspSocial&nbspStructure)이라는 주제강의에서 “구원을 확신하는 기독교는 원수의 사랑 과 평화의 건설을 위해 오신 예수 그리스도의 업적을 계승하는데 있다. 그러나 기독교 문명은 모순을 가져왔다. 적대관계와 전쟁의 수 단, 그리고 현실적 축제와 속화의 길로 치닫고 있다.”고 하였다. 

사실 성탄은 횡적으로 윤리적인 의미가 함축된 사랑과 평화의 실현에 있는 것이며, 종적으로는 하나님이 인간이 되신 그분으 로 통해서만이 얻을 수 있는 구원의 길의 실현인 것이다. 독일 쾨니히스베르크에 있는 유리우스 룹프스(19C초의 윤리학자)의 묘비 에 “자신이 고백하는 진리에 따라 살지 않는 자는 진리를 거역하는 가장 위험스런 원수이다”라고 새겨져 있는데 이것은 바리새인과 같 은 외식과 위선적인 기독교 지도자들에 대한 역정을 들어낸 것이라고 한다.

1981년&nbsp12월에 독일 학생들이 나토(NATO)군의 핵무기 반입과 그 배치 문제를 둘러싸고 격렬한 반핵 시 위운동을 하였는데 이 시위운동의 주동자들은 주로 기독교학생들이었다. 특히 그해&nbsp12월&nbsp25일 성탄절 을 전후한 시위였기에 그리스도의 탄생과 이 땅의 평화를 위한 운동이라고 하여 독일교회들은 훌륭한 청년으로 보았다. 그러나 얼마 있 지 않아 시위의 내막이 밝혀졌는데 이는 동독공산당의 지하조직에 의해 조종되고 있었다는 것이다. 크리스마스와 평화라는 위장으로 바르 샤바군의 핵무기에 대해서는 비판하지 않고 나토군에 대항하는 이데올로기적 운동이었다는 점이다.

이렇게 위장되고 외식화 된 성탄절에 나타나는 소위 기독교의 사회적운동이 때로는 위험적일 수 있고 진정한 성탄의 의미를 상실시킬 수 있다는 사실이다. 

최근 총회 교육부가 중심이 돼 성탄문화 재정립 움직임이 활발하다고 한다. 이른바 산타문화에 젖어있는 성탄의 정서를 아기예수 와 동방박사로 재조명하고 흥청망청 먹고 마시는 분위기를 조용하고 경건하게 보내도록 선도해 나간다는 것이다. 좀더 일찍 했으면 하 는 아쉬움이 없지 않지만 아울러 요즘 성탄에는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이 없다. 그저 드러나는 것은 형식과 의례적인 껍데기들만 남아있 다. 사랑이 없으며 알맹이 없는 성탄이다.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을 회복하는 것이 참다운 성탄의 의미를 회복하는 것이라고 믿는다. 

임해식 목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