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이 감당못할 사람   


이런 사람은 세상이 감당치 못하니라 

히브리서 저자는 말하기를 "이런 사람은 세상이 감당치 못하느니라"(히&nbsp11:38)하였는데 이는 믿음의 사람들 에게는 핍박과 환난이 문제시 될 수 없었으며 세상적인 부귀와 영화가 그들의 마음을 돌려놓을 수 없었다는 것이다. 그 이유는 그들에 게는 오직 하나님만이 유일한 소망이기 때문이다. 저자는 이러한 인용을 통해서 하나님을 의뢰하는 믿음이 있다고 하여 반드시 이 땅에 서 안락함과 평안을 누리는 것은 아니라고 강조한다. 그리스도인들의 보상은 세상에서 이루어지지 않으며 영원한 하늘나라에서 받게 된다 는 것을 말하고 있다. 

어떤 젊은이가&nbspDL. 무디를 찾아와서 하는 말이 "선생님 저는 그리스도인이 되고 싶습니다. 그리스도인이 되려 면 세상을 포기해야 합니까?"하고 질문을 하니 무디 선생은 말하기를 "젊은이가 철저한 그리스도인의 삶을 살면 세상이 젊은이를 포기 할 걸세"하였다. 그렇다. 배가 물과 파도가 싫다고 육지로 올라간다면 이는 배는 아니고 그렇다고 파도와 물이 겁난다고 물 속으 로 들어가도 그 배는 쓸모가 없게 된다. 그러므로 배 구실을 제대로 하려고 하면 파도와 싸우며 물위에 떠 있어서 파도가 배를 침몰 할 수 없게 하는 것이다. 

같은 맥락에서 성도들이 세상을 포기하고 나약한 모습으로 은둔 내지 도피생활 하는 것은 바람직한 일이 못된다. 바울사도는 말 하기를 "믿음의 선한 싸움을 싸우라 영생을 취하라"하였다(딤전&nbsp6:12). 믿음이 있고 주님이 그 가운데 거하는 사 람은 마귀들도 어찌할 수 없다는 것이다. 욥은 하나님을 그의 전부로 알고 살기 때문에 사단이 그를 감당할 수 없었다. 물질을 빼앗 을 수 있었으나 그의 믿음은 빼앗을 수 없었고 그의 자녀들은 빼앗을 수 있었으나 그의 믿음은 빼앗을 수 없으며 그의 건강은 빼앗 을 수 있었으나 그의 믿음은 빼앗을 수 없었다. 

그 이유는 욥은 자녀와 부귀와 영화도 다 주의 것이고 주께서 주신 것이기 때문에 주신 이가 다시 거두어 가시는 것으로 생각 한 이상 그 입에서 원망이나 불평 같은 것은 나오지 아니하고 찬송과 기도가 있을 뿐이었다. 그리하여 마귀는 욥의 아내를 도구로 삼 아 남편에게 하나님을 욕하고 죽으라고 치명타를 가했지만 그 정도 타격에는 욥의 신앙은 흔들리지 아니하였고 오히려 더욱 강해졌음 을 볼 수 있다. 그래서 세상이 이런 사람은 감당할 수 없다고 말하는 것이다. 

아벳느고 사드락 메삭 이 세 청년은 신앙의 정조를 지키려고 하는 이들에게 생명의 위험을 느끼게 하여 공포의 분위기를 조성 한 가운데서 그들을 협박했으나 주님이 함께 계시는 그들은 한치의 물러남도 타협함도 없었다. 그리하여 그들은 다른 사람들을 죽이 는 불의 뜨거운 열보다 칠 배나 더 뜨겁게 하여 그 속에 집어넣었으나 불의 강력한 열도 그들을 태우지는 못하였다. 그래서 신앙 이 돈독한 이런 사람들은 세상이 감당치 못한다는 말씀이 설득력이 있는 것이다. 

세상의 음욕이 아무리 불일 듯 강해도 하나님께서 함께 하시는 요셉을 타락시키지 못하였다. 왜 요셉은 사람이 없는 곳에서 도 신전의식의 생활이 있기 때문에 보디발의 아내의 강력한 유혹도 그의 성결한 도덕성에 흠집을 내지 못하게 된 것이다. 그리고 부귀 와 영화도 예수 그리스도의 의지는 꺾지 못하여 패배하고 말았다. 그래서 성령이 충만하고 주님이 함께 계시는 사람은 세상부귀와 영화 도 위대한 믿음을 손상시키지는 못하는 것이다. 

우리는 세상을 등지고는 살 수 없다. 그렇다고 세속에 물들어서도 아니 된다. 다만 세상이 감당치 못할 신앙을 소유한 하나님 의 사람들이 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렇게 살기 위해서는 세상이 유혹할 수 없도록 근본 원인부터 제거해야 한다. 야고서 저자는 기 록하기를 "사람이 시험을 받는 것은 자기 욕심에 이끌림이라"하였다(약&nbsp1:14-15). 욕심만 버리면 이런 사람 은 세상이 감당 할 수 없는 위대한 하나님의 사람이 되는 것이다. 

욕심이 생기니 그 욕심을 채울 방법을 모색하게 되고 방법을 찾는 이들에게 사단은 방법을 제공하여 그들의 종노릇을 하게 되 는 것이다. 요한복음 저자는 기록하기를 "마귀가 벌써 시몬의 아들 가룟 유다의 마음에 예수를 팔려는 생각을 넣었더니"하였다 (요&nbsp13:2). 결국은 세상에게 가룟 유다는 패배하고 말았다. 그러나 사무엘과 같은 선지자는 물질에 현혹되지 아니 하고 능히 물질을 초월하여 물질 가지고는 그를 감당할 수 없었다. 발람, 아간 및 가룟유다 같은 이들은 물질에 굴복하여 그것에 지 배를 받았지만 예수님과 그의 성령 충만한 제자들과 바울사도 같은 이들은 물질을 지배했지 물질이 그들을 지배하지는 못하였다. 
그러므로 우리들도 주님의 재림과 죽음을 앞에 둔 상태에서 세상이 감당할 수 없는 사람들이 되어야 하겠다. 즉 세상을 포기하겠다는 마음은 버리고 세상이 성도들을 포기할 수 있게 만들자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