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승의 날에 즈음하여  

내일이면 스승의 날입니다. 그러나 스승의 날을 맞이하여 과연 새벽기도회를 마친 후에 조용히 기도하면서 나는 본을 보이고 있는 목회자인가를 생각해 보았다.  

참으로 많은 부분 속에 부끄러움을 간직한채 떨리는 가슴으로 하나님의 도우심을 구할 수 밖에 없었다. 그러면서도 왠지 모르게 오늘날 이 시대의 문제가 참된 스승이 없기에 교회마다 문제가 일어나는 것인가를 생각해 볼 때에 왠지 모르게 억울하다는 생각을 떨칠 수 밖에 없는 이유는 왜 그렇까? 

지금 교회마다 탄식의 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그 이유인즉 참 목자와 같은 목회자가 없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정말 좋은 목자와 같은 목회자가 없는 것일까? 이런 소리를 들을 때마다 참으로 마음이 아프다. 그리고 이것을 인정할 수 없는 현실 속에 살고 있다.  
얼마전에 안 사실이자만 어떤 교회의 담임 목사가 성도들님 몰래 술과 담배를 피워오다가 결국 그것이 드러남으로 밀미암아 그 교회를 사임하고 다른 교회로 갔지만 정말 생각만해도 가슴이 아픈 일이 아닐 수 없다.  

또 얼마전에 텔레비전의 뉴스를 들으면서 경악을 금치 못하는 충격스런 일을 들었습니다. 그 내용인즉 어떤 교회 담임 목사가 섬기는 교회 여장로를 성추행하려다가 어느날 담임 목사가 여장로에게 추근거리다가 여장로가 칼로 목사의 가슴을 찔러서 담임 목사는 중태가 빠졌고, 여장로는 구속이 되었다는 것이다.  

정말 생각하기 조차도 싫고 목사인 제 자신이 부끄럽기만 하다.  

물론 이와 같은 모습은 극단적인 실례인지는 모르겠지만 목회자로서 소양과 자질을 갖추지 못한 일부 목사들 때문에 정말 일선하는 이름없이 빛없이 수고하시고, 참 목자의 모습으로 사명을 감당하는 목사님들에게 피해를 주고 있는 것도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그러나 여기에 덧붙여 한 가지고 생각할 것은 양들은 목자의 음성을 듣고 그 음성에 순종하는 양들의 본래적인 자세이거늘 오늘날 교회에서 양들의 소리가 높아지는 것은 어떻게 해석해야 하는가? 

건강한 교회를 지양하는 건강한 목장이라면 양들의 소리보다도 선한 목자되신 주님의 소리가 높아져야 하고, 그 음성을 듣기를 기뻐하고 즐거워해야 할 것이다. 그리고 주님께서 목장지기로 맡겨주신 목회자들의 영적 권위가 존중되고 그 영적 권위를 발휘할 수 있도록 순복하는 것이 양들의 본래적인 자세이거늘, 오늘날은 목자의 음성을 듣기를 거부하고, 자기 마음대로 살려는 자들이 교회의 영적 질서를 어지럽게 하고 있다. 

그렇다면 우리가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 
구약에서 하나님과 인생들의 관계를 목자와 양으로 비유했습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목자시요 우리는 그의 기르시는 양입니다(시100:3). 팔레스틴에서 목자와 양의 관계는 단순히 재산상의 소유 관계가 아니라 가족과 같이 생명이 결탁된 관계입니다. 하나님은 우리 인간을 지으시고 하나님께 절대적으로 순종할 수 있는 주인과 종의 관계로 삼지 않으시고 목자와 양의 관계로 삼으셨습니다. 목자와 양의 관계는 인격적인 관계요 사랑과 신뢰의 관계입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목자가 되시고 우리는 그의 기르시는 양이기 때문에 우리를 지극히 사랑하시고 아끼시고 귀히 여기십니다. 그러므로 목자들은 양들을 사랑하고 아끼고 귀히 여겨야 할 것이다.   

목자는 양들의 형편대로 각각 불러내어서 그들을 푸른 초장으로, 쉴만한 물가로 인도하는 일을 힘써야 한다. 뿐만 아니라 목자는 양들보다 앞서 가면서 양들에게 바른 방향성을 제시하고, 양들을 도적과 강도로부터, 그리고 이리와 늑대로부터 보호하고, 푸른 초장으로 인도해야 할 책임이 있습니다.  

그러나 양들은 목자의 음성에 순종하면서 그 음성 듣기를 기뻐해야 할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양들은 목자의 음성을 듣기를 싫어하면서 좋은 목자가 없다고 탄식하는 것은 왠지 앞뒤가 맞지 않는다. (요 10:1-6) 

따라서 스승의 날을 즈음하여 우리가 생각할 것은 목자의 사명을 감당하는 목회자들은 목자의 본래적인 역할과 사명은 감당하지도 못하면서도 삯만 구해서는 안된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좋은 목자가 없다고 단정짓고 무조건 목회자들의 말이라면 트집부터 잡고, 자기 마음대로 판단하고 생각하고 행동하는 양의 정체성을 깨닫지 못하는 성도들 또한 큰 문제가 아닐 수 없다.  

바로 지금이 목자의 정체성과 양들의 정체성에 대해서 분명하게 생각할 때라고 생각하는 바이다.  
바라기는 좋은 목회자, 좋은 성도들이 많이 나오는 한국교회가 되기를 소망하고, 본인도 좋은 목회자가 되기를 몸부림치기를 원한다. 그리고 좋은 성도님들을 붙여 달라고 기도하며 또 기도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