속지 말아야 합니다.  

우리는 속지 말아야 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종종 마귀에게 속임을 당합니다. 우리가 어떤 것에 속임을 당합니까? 

첫째는 서지도 못했음에도 불구하고 선 줄로 생각하는 것입니다.(고전 10:12)  

둘째는 바로 알지도 못했음에도 불구하고 많이 알고 있는 것처럼 생각하는 것입니다.  

셋째는 올바로 행하지도 못함에도 불구하고 바로 사는 것처럼 생각하는 것입니다.  

넷째로 올바른 기도를 하지 못함에도 불구하고 올바른 기도를 하는 것처럼 생각하는 것입니다.  

다섯째로 심지도 않고 거둘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우리가 왜 이처럼 마귀에게 속임을 당합니까? 그것은 우리에게 분별의 은혜가 없기 때문입니다. 분별의 은혜가 없으면 교만하게 됩니다.  

우리가 하나님께서 주시는 분별의 은헤를 받지 못하면 진정한 찬송, 진정한 기도, 진정한 행함이 있을 수 없습니다. 오히려 교만한 가운데 결국 죄를 짓는 쪽으로 계속해서 나갈 수 밖에 없다는 사실을 알아야 합니다.  

그렇다면 우리가 마귀에서 속지 않고 분별의 은혜를 받으려면 어떻게 해야 합니까? 주님의 권고처럼 항상 깨어서 기도해야 합니다. 그러나 중요한 아무리 쉬지 않고 기도한다고 할지라도 하나님의 말씀에 서지 않는 기도는 결국 자기의 뜻을 구하는 기도가 될 수 밖에 없습니다. 그러기에 우리의 기도는 하나님의 말씀을 근거로 한 기도가 기도가 되어야 합니다.  

그런데 우리는 얼마나 속고 살아왔습니까? 
베드로는 주님과 함께 겟세마네 동산에 가서 기도할 수 있는 기회를 가졌습니다. 그러나 베드로는 기도하지 않고 잠만 잤습니다. 물론 베드로가 육신이 곤한고로 잘 수 밖에 없었습니다. 그러나 베드로는 깨어서 기도하지 않으면 시험에 든다는 사실을 알지 못했습니다. 그러기에 베드로는 결국 실패할 수 밖에 없습니다.  

우리가 깨어서 기도하지 않으면 베드로처럼 기도없이도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고 속습니다. 베드로는 예수님을 잡으려고 온 대제사장의 종 말고의 귀를 칼로 쳐서 잘라 버렸습니다. 이는 베드로의 혈기에서 나온 모습이기도 하지만 검을 가지고 모든 것을 해결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베드로의 착각이었습니다. 그러기에 주님께서는 베드로를 향하여 "검을 의지하는 사람은 결국 검으로 망한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우리는 주님과 같이 고난의 잔을 마시겠다는 심령을 가지고 문제를 해결해야 합니다. 이는 문제 해결을 기도로 해결하려는 자세입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방법입니다.  

또한 베드로는 자기 자신은 누구보다도 예수님을 가장 사랑한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주님께서 끌려가시는 곳까지 따라 갔습니다. 그러나 베드로는 서지 말아야 할 곳에 그만 서게 되었습니다. 그러기에 계집 종의 말에도, 사람들의 말에도 "나는 예수님을 모른다."라고 부인할 뿐만 아니라 저주까지 하면서 세번씩 예수님을 부인하는 자리에 서게 되었던 것입니다.  

베드로는 결국 '네가 닭 울기 전에 나를 세번 부인하리라"는 말씀이 그가 실패한 후에야 비로소 알았다는 것입니다. 물론 늦게지만 주님의 말씀이 생각이 나서 심히 통곡하여 회개한 것은 복된 일입니다. 그러나 문제는 베드로는 세번씩 주님을 부인할 때까지 자기가 무슨 일을 하고 있는지 조차도 몰랐던 것입니다.  

그렇다면 베드로가 왜 마귀에서 속임을 당했습니까? 
그 원인이 무엇입니까? 자기 자신을 지나치게 믿고 깨어서 기도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베드로는 자기의 연약함을 깨닫지 못하고 기도로 마음 준비를 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이처럼 깨어 기도하지 않으면 자신도 모르게 사단의 시험에 들기 됩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마귀에게 속지 않으려면 항상 깨어서 기도하되 하나님의 말씀을 의지하여 기도해야 하고, 그리함으로 하나님께서 주시는 분별의 은혜를 가지고 영육간에 승리할 수 있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결코 속지 맙시다. 나에게 분별의 은혜를 달라고 기도합시다. 기도하되 오직 겸손하게 기도하고 오직 겸손하게 행동하고, 오직 겸손하게 하나님을 찬양할 수 있는 여러분이 되시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