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리에는 생명을, 그 외에는 양보를   
심욱섭 목사(해운대제일교회) 

옛날에 이름난 스승이 있었다. 그 스승 밑에는 언제나 많은 제자들이 모여서 가르침을 받고자 귀를 기울였다. 그러던 어 느 날 버드나무 가지가 바람에 흔들리는 것을 보고 한 제자가 말하기를 “저것 봐, 나뭇가지가 움직이고 있군” 옆에 있던 다른 제자 가 말하기를 “어허, 무슨 소린가, 저건 나뭇가지가 움직이는 게 아니고 바람이 움직이고 있는 거야” 두 사람이 서로 자기가 옳다 고 입씨름을 하자 다른 제자들도 한마디씩 참견하기 시작했다. “나뭇가지가 움직이는 것이다. 바람이 움직이는 것이다” 급기야 격렬 한 논쟁을 벌이게 되었다. 그때에 그 모든 것을 보고 있던 스승이 다음과 같이 말했다고 한다. “그것은 나뭇가지도 아니고 바람 도 아니라네 지금 움직이고 있는 것은 서로 자기가 옳다고 주장하는 자네들의 마음일세” 조금도 양보하지 못하는 독선적이고 이기적 인 마음, 그것이 인간관계를 깨뜨리고, 가정을 파괴하고, 교회를 분열시키고, 나아가 나라와 민족을 혼란케 만드는 것이다. 

사도행전&nbsp6장에 보면, 예루살렘 교회는 구제 문제로 인하여 분열될 위기를 맞았다. 그런데 그 결과는 분열 이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이 점점 왕성하여지고 제자의 수가 더 심히 많아졌다. 나아가 허다한 제사장의 무리도 복음에 복종하는 역사 가 일어나게 되었다. 분열의 위기가 오히려 놀라운 부흥의 역사로 바뀐 이유가 무엇인가? 헬라파 유대인들의 불평에 대한 해결로 사도 들이 일곱 집사를 세웠는데, 그들 모두 헬라식 이름을 가진 자들이었다. 분배하는 일을 전부 헬라파 유대인들에게 맡긴 것이다. 다 시 말하면 히브리파 유대인들이 자신들이 가지고 있는 기득권을 양보한 것이다. 이렇게 자신의 권리를 양보할 때에 문제는 해결되고 교 회가 하나된 것이다. 

요즈음 주변에서 계속하여 분열과 다툼의 소식이 들려오고 있다. 그 모든 일의 중심에 서있는 자들에게 묻고 싶다. 도대체 무 엇을 위하여, 그리고 누구를 위하여 그렇게 하는 것인가? 혹 자신의 이권을 위한 것이라면 그리스도 예수의 종이라 할 수 없다. 하 나님께서 내게 직분을 주신 것은 교회를 세우라는 것이요, 약한 자들의 약점을 담당하라는 것이다. 그러므로 교회가 하나되고, 세상 에 강력한 영향력을 끼치려면 소위 기득권을 가진 사람들이 먼저 양보할 수 있어야 한다. 물론 진리는 양보할 수 없다. 진리를 위하 여는 생명을 걸어야 한다. 그러나 진리가 아니라면 양보할 수 있어야 한다. 

“진리에는 생명을 그러나 그 외에는 양보를” 이것이 모든 교회의 슬로건이 되었으면 좋겠다.  

기독신문 발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