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사에 따라 일할 것인가, 필요에 따라 일할 것인가?
 
빛과 소금& 2003년6월15일 호 블레인 스미스 칼럼 

 ‘하나님의 뜻을 구할 때, 그리스도가 어떻게 나를 빚으셨는지 생각하고 나의 은사와 기호(嗜好)와 관심사에 가장 잘 맞 는 것을 우선 고려해야 하는가, 아니면 인간에게 가장 필요한 일이 무엇인지 살펴보고 그 분야에서 최선을 다해야 하는가? 또 자신 의 내면을 보아야 하는가, 아니면 바깥 세상을 보아야 하는가? 

일전에 친구의 아들 크리스가 진로 문제로 고민한다는 얘기를 들은 적이 있다. 현재 의학부 예과&nbsp3년 생인 크 리스는 초등학교 시절부터 의료 선교사가 되는 것이 꿈이었고 그의 소명처럼 굳어져 있었다. 그러나 의학에 필수적인 자연 과학 과목들 의 성적이 좋지 않았다. 반면에 인문 과목 특히 예술과 드라마에서 뛰어난 가능성을 보였다. 그는 연기에 탁월한 재능이 있던 터 라, 교내 연극에서 몇 차례 주역을 맡기도 했다. 크리스는 연기에 재능과 열정이 있어서 현재 연기자가 되는 것을 심각하게 고려하 고 있다. 하지만 연기자를 직업으로 가진다면, 사람들을 섬기고 그리스도의 일을 하는 데 의료 선교만큼 공헌하지 못할 것이라는 염려 가 마음 한 켠에 자리하고 있다. 

여러 해 동안 간직해 온 인생의 목표를 그리 쉽게 포기해야 하는가? 아니면 과학 과목들을 더 열심히 공부해 의학을 계속해 야 하는가? 세상을 보면, 어떤 희생을 치르더라도 의료 선교사가 되는 것이 그리스도를 위해 세상에 좋은 영향을 미칠 수 있는 것처 럼 보인다. 반면에 자신의 내면을 들여다보면 연기자가 되는 것이 훨씬 더 적합한 것 같기도 하다. 자신의 재능과 은사에 대한 발견 은 하나님의 인도하심 인가, 아니면 하나님의 최선에서 떠나게 되는 사탄의 유혹인가? 

내면보기&nbspvs 바깥보기의 갈등 
많은 사람들이 여러 상황에서 이와 유사한 갈등을 자주 느낀다. 한편에는 사람을 돕고 사역할 수 있는 황금의 기회가 있는 반 면 다른 한편에는 천부적인 은사나 기호와 더 잘 어울리는 어떤 기회가 있다. 이 둘 사이의 거리는 절망적일 정도로 멀어 보이기 도 한다. 

우리는 직업의 선택뿐 아니라, 다른 많은 분야에서도 이런 내면보기&nbspvs 바깥보기의 이슈에 부딪힌다. 교회 를 섬길 때도 도움의 필요성이 지대한 분야와 자신의 은사 및 기질에 더 잘 맞지만 상대적으로 도움의 필요성이 덜 한 분야 사이에 서 갈등을 느낄 수 있다. 

우리는 하나님의 뜻을 발견하는 데 자신의 내면보다 바깥을 보는 편이 훨씬 더 중요하다는 충고를 기독교 범주에서 흔히 듣는 다. ‘하나님께서 당신의 능력(ability)을 원하는 것이 아니라, 당신의 도움(availability: 언제든지 곁에서 도와 줄 수 있는 상태)을 원하신다’는 말도 자주 듣는다. 이것은 어떤 면에서 귀중한 충고가 되겠지만, 우리의 능력이 하나님께 중요하 지 않다는 뜻은 아니다. 

심지어 어떤 크리스천들은 자신의 은사가 결여된 한 분야에서 책무를 떠맡게 되었을 때, 하나님의 뜻을 가장 잘 이행할 수 있 다고 생각한다. 그렇게 함으로써 그리스도를 신뢰하지 않을 수 없고, 따라서 주님의 도우심을 받아 믿음으로 최선의 수완을 발휘 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이것은 분명히 존중할 만한 선의의 시각이다. 하지만 하나님의 인도하심에 대한 성경의 가르침과 조화를 이루는 가? 성경은 하나님의 뜻을 찾는 데 내면보기와 바깥보기 중 어느 쪽에 강조점을 두고 있는가? 

내면 은사와 세상 요망의 균형 잡기 
두 가지 사안은 결코 상호 배타적인 것이 아니다. 우리는 언제나 자신의 내면과 바깥 세상을 동시에 보아야 한다. 성경은 우 리에게 다른 사람들의 짐에 관심을 가지라고 끊임없이 촉구하고 있다. 우리는 사람들의 필요에 부응하기 위해 주님의 부르심을 받았 다. 바울은 로마서&nbsp12장&nbsp1절에서 우리의 삶을 ‘산 제물’로 드릴 것을 말한다. 하지만 곧바 로 ‘산 제물’로서 자신의 삶을 잘 이해하고 있어야 한다고 강조하고 있다. “여러분 자신의 역량을 사려 깊게 평가하십시오” (롬&nbsp12:3 필립스 역). 우리는 가능한 현실적인 차원에서 자신의 이해를 발전시켜야 한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 신 독특한 은사와 특질들을 잘 감별해, 선한 청지기로서 이를 활용해야 한다. 

그러면 우리의 인생을 어디에 투자할 것인가에 관한 지각 있는 결정은, 자신에 관해 잘 알고 있는 사실들과 다른 사람들의 필요 및 봉사의 기회에 관해 알고 있는 사실들을 상호 적절히 배합시킬 때 이뤄질 수 있다. 

나아가 우리의 자기 이해는 단지 내면을 볼 때만 획득되는 것이 아니라 타인들과의 어울림을 통해 부상한다. 만일 나의 은사 가 무엇인지 확실하게 알 때까지 그리스도를 위해 아무 일도 하지 않겠다고 결심한다면, 아마 평생을 기다려야 할 것이다. 주변 사람 들의 요망 사항을 이해하고 그에 부응하고자 최선을 다해야 한다. 자신이 어느 분야에서 가장 유능한지 측정하기 위해 최선을 다 할 때, 시간이 지나면서 비로소 자신의 은사를 발견할 수 있고 강점과 약점을 두루 확인할 수 있다. 그러기 위해서 어느 정도 대담 한 실험도 필요하다. 

필자는 예수를 믿은 지 얼마 되지 않았을 때, 스스로 남을 가르칠 수 있다고 전혀 생각지 못했다. 어느 토요일 밤에 목사님 에게서 전화가 걸려 왔다. 다음 날 오전에 주일학교의 대학부 시간을 목사님 대신 맡아 달라는 내용이었다. 마음이 내키지 않았지 만, 한번 해보겠다고 대답했다. 아마 죽을 쑬 것이라고 염려하면서 말이다. 하지만 성경 공부가 끝난 후 많은 약점에도 불구하 고, 주님께서 나를 사용하셨음을 감지할 수 있었다. 커뮤니케이션이 일어난 것이다. 그 경험은 스스로 놀랄 정도로 매우 즐거운 것이 었다. 

인생에서 실험의 필요성은 언제나 있는 것이다. 자신의 은사를 완벽하게 이해했다거나 창조적 지평을 모두 답사했다고 확신하지 는 못할 것이다. 하나님은 참으로 놀라운 분이시다. 간혹 우리의 능력 밖이라고 생각해 오던 일들을 근사하게 수행해 낼 때가 있 기 때문이다. 인생의 어느 지점에서든 심지어 노령에 들어서도,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이런 수완이 있음을 보여 주실 수 있다 (시&nbsp92:12∼14). 

필자가 아는 어느 부인은 중년의 가정 주부로서 심한 편두통을 앓고 있었다. 그녀에게서 워싱턴&nbspDC의 빈민 가 아이들을 대상으로 하는 사역에 도움을 달라는 부탁이 들어왔다. 교외에 거주하는 중산층 여성에게 없는 편두통도 생길 법한 업무였 다. 그녀는 사회 사업이나 다른 문화권 사역에 전혀 경험이 없었지만, 일단 하기로 동의했다. 그런데 놀랍게도 그녀는 대단히 유능하 게 사역을 수행했을 뿐 아니라, 편두통도 말끔히 사라져 버렸다. 때로 용기 있는 실험이 우리의 잠재 능력에 놀라운 빛을 비 춰 줄 수 있다는 사실을, 그녀의 경험을 통해 극적으로 보여 주고 있다. 
 
은사에 따라 일하라 
우리는 하나님의 인도를 받아 현실에서 기독교적 삶의 순례 여행을 여러 차례 실시하면서 자신의 잠재 능력을 더욱 완벽하게 발 견해 나간다. 하지만 하나님의 인도하심 중에 때로 우리는 자기 이해의 높은 고지로 올라가, 자신에게 특정한 재능이 있음을 발견하 고 이를 사용하고 싶어할 수도 있다. 이때 우리는 지금까지 자신의 삶이 이런 은사와 동기 부여 받기의 패턴을 충분히 드러내지 못하 고 있었음을 깨닫기도 한다. 이 경우에, 우리는 하나님께서 주신 잠재력과 잘 일치하도록 삶에 모종의 변화를 줘야 한다고 생각 할 수 있다. 

내면보기와 바깥보기 간의 갈등이 특별히 심각해지는 때가 바로 이런 경우다. 자신의 은사가 관심이 큰 분야에서 가장 탁월하 게 일을 수행한다는 느낌이 들 수도 있고, 자신의 잠재력을 간신히 열어줄 만한 기타 어떤 일이나 타인들의 요망 사항을 충족시켜 주 지 못할 것이라는 느낌이 들 수도 있다. 

바로 이런 경우에 필자는 은사에 강조점을 둬야 한다고 자신 있게 말할 수 있다. 우리는 은사의 지휘에 따라야 할 자유와 동 시에 의무가 있다. 바울이 주장한 로마서&nbsp12장에서도 단서를 찾을 수 있다. 자신의 삶을 제물로 드리는 것이 무 슨 의미인지 설명하면서, 자신이 소유하고 있다고 확신하는 은사들을 사용할 것을 권면하고 있다. “우리에게 주신 은혜대로 받은 은사 가 각각 다르니 혹 예언이면 믿음의 분수대로, 혹 섬기는 일이면 섬기는 일로, 혹 가르치는 자면 가르치는 일로, 혹 권위하는 자 면 권위하는 일로…”(롬&nbsp12:6∼8). 

하나님께서 어떤 분야에서 은사를 주셨는지 깨달았다면, 우리는 그 분야에 삶을 투자할 책임이 있다. 우리가 각자 받은 대 로 은사에 집중한다는 것은, 능히 수행할 수 있는 기타 가치 있는 일들에서 손을 떼야 한다는 의미다. 우리의 시간과 재능을 하나 에 집중시킬 수 있는 자유는, 그리스도의 한 지체로서 누릴 수 있는 놀라운 혜택 가운데 하나이다. 우리가 할 수 없는 일은, 하나 님께서 다른 사람들을 시켜 수행하게 하실 것이다. 

자기 이해의 우선이 평생 원칙 
또 자신 있게 말할 수 있는 것은, 큰 결정을 내릴 때 다른 사람들의 요망 사항이라는 비교적 추상적인 문제보다 자기 이해 에 더 비중을 둬야 한다. 이를 평생 동안 일반적인 원칙으로 삼아야 한다. 하지만 필자는 이런 생각을 신중하게 표현하고 싶다. 자 신의 일에 마음을 쏟다 보면, 남들의 요망 사항에 대해 마음을 강퍅하게 할 우려가 있기 때문이다. 하나님께서 우리가 다른 사람들 을 돕기 위해 유연한 자세를 가지고 기꺼이 자신의 일에 한계를 뛰어넘기를 기대하신다. 

그러나 청지기 직을 수행하기 위해 할 말을 해야 한다. 우리가 자신에 관해 알 수 있는 것들 예컨대 은사, 재능, 성격 적 특징, 에너지 수준 등은 세상을 살아가면서 중요한 선택을 내릴 때 분명하고 확실한 근거가 된다는 사실이다. 비록 이것들이 언제 나 잠정적 이해 차원에 있다고 해도 말이다. 이런 정보는, 하나님께서 우리의 삶을 어디에 어떻게 투자하기 원하시는지 나타내는 아 주 중대한 표식이다. 이를 알려 주는 성경의 가르침은 풍부하다. 
또한 우리는 바깥 세상을 봄으로써 스스로 이해할 수 있는 것들이 극히 제한적이라는 사실을 겸손하게 인정해야 한다. 우리 의 마음은 하나님께서 세상에서 행하고 계시는 모든 일들 중에 아주 작은 한 부분밖에 파악하지 못할 정도로 대단히 작다. 우리의 일 에 대한 결과가 어떠한지 판단하는 데도 빙산의 일각밖에 보지 못한다. 우리가 그리스도를 위해 가장 유용하게 쓰임 받을 수 있는 곳 이 어디인지 객관적으로 판단하기 위해 바깥만 본다면 전체 그림을 충분하게 볼 수 없게 된다. 자신의 은사와 창조적 기호를 이해하 는 것이 가장 중요한 단서를 제공한다. 

필자는 크리스를 향한 하나님의 뜻이 무엇인지 안다고 감히 단언할 수 없다. 이후 그는 오랜 세월 동안 자신의 잠재 능력 에 대해 새로운 통찰을 많이 얻을 수 있을 것이다. 이것은 그의 직업적 삶의 방향에 새로운 빛을 던져 주게 된다. 그러나 만일 크 리스의 가장 큰 재능과 흥미가 연기임을 계속 의식하게 된다면, 하나님께서 그에게 의미 깊은 사역을 주실 것으로 믿고 편안한 마음으 로 그 방향을 향해 나아가야 한다. 그리고 이런 선택은 더 낮은 소명을 위해 고상한 소명을 희생시키는 것으로 여기지 말아야 한 다. 크리스가 하나님께서 자신의 삶을 어떻게 설계하셨는지 알고 인생을 영위하고 있다면, 자신을 향한 주님의 최고 소명을 이행하 는 것으로 확신해도 좋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개별적으로 어떤 은사와 에너지를 주셨는지도 중대한 문제이다. 우리는 그 점에 관해 충분한 이해가 있 을 때, 세상의 요망 사항을 위해 인생을 어떻게 투자할 것인지 아주 분명하게 헤아릴 수 있다. 궁극적으로 우리가 하나님께서 창조하 신 대로 한 인간이 될 때 남들에게 가장 큰 유익을 줄 수 있다. 

블레인 스미스 느헤미야 미니스트리 대표로 크리스천들의 재능과 잠재력을 일깨우고 실현하는 데 도움을 주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