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력에 대해

김정우

목회의 길로 들어선 사람들 중 한번쯤 영력에 대해 생각해 보지 않은 사람이 없을 것이다. 한국교회는 특히 영력에 대해 깊 은 관심을 갖고 있는 것 같다. 목회자들은 자신의 영력을 키우기 위해 새벽기도, 철야기도, 산기도, 금식기도, 특 히&nbsp40일 금식기도까지 도전(?)한다. 영력을 받은 목사는 갑자기 목소리도 바뀌고, 때로는 소위 "거룩한 음성" (holy&nbspvoice)을 사용하며, 할렐루야-아멘도 꺼리낌 없이 말하며 또 그 주문을 교인들에게 가르치기도 하 고, 은사도 받아서 병도 고치고, 예언도 하며, 어떤 교단에서는 방언도 하는 것으로 생각하고 있다. 목회의 도전이 너무나 크기 때 문에 모든 문제해결의 열쇠가 된다고 믿는 영력을 키우기 위해 다들 뼈를 깍는 노력을 하고 있는 것 같다.

나 역시 나의 사역의 현장 속에서 영력을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 인간에게 육체의 힘이 있고, 감정의 힘이 있고, 지성 의 힘이 있고, 정신의 힘이 있다면, 영적인 힘도 실재하는 것으로 생각하는 것은 당연한 논리적 귀결일 것이다. 사실 주위에 계 신 훌륭한 목사님들을 보면 영력이 실재한다는 생각을 부인할 수가 없다. 지금으로부터&nbsp20년도 더 지난 어느 수요 일 부산에 있는 삼일 교회 저녁 예배에서 한상동 목사님이 설교를 하시는데 설교단에서 거룩한 힘이 나를 압도하며 사로 잡는 것을 느 낀 적이 있다. 내가 존경하는 한국교회의 몇몇 목사님들을 생각하면 그들의 설교에는 뜨거운 열정이 있고, 거룩한 감동이 있음을 체험 하게 되므로 나는 영력이란 존재하는 힘이라고 믿는다.

영력이 있다면, 분명히 "영력의 본질이 무엇인가?"라는 질문을 던져야겠지만 현대인들은 그것 보다는 "어떻게 영력을 키 울 수 있느냐?"(how&nbspto)는 질문을 먼저 던진다. 이것은 신학적인 문제 보다 방법론적인 문제로 부각이 된 다. 목회자들은 각자 자신의 영적인 사역의 한계 앞에 서서 영력의 도전을 받고, 어떻게 영력을 키울 수 있는가? 하는 문제를 심각 하게 던지게 된다. 우리 주위에 있는 영계의 거성들과 수천 수만의 교인들을 거느리고 있는 영적인 수퍼맨들을 보면서 우리도 그런 힘 을 갖기를 흠모하게 된다.

많은 사람들은 영력을 키우는 비결을 기도와 금식에 있다고 생각하는 것 같다. 따라서 영력의 도전을 받을 때 기도원을 가 는 것이 가장 일반적인 것 현상이다. 마치 우리의 육체미를 다듬기 위해 스테로이드를 먹으면서, 체육관에서 열심히 땀을 흘릴 때 분 명히 육체미가 드러나는 것을 보듯이, 기도원에서의 영적인 훈련이 영력을 키우는 비결로 믿어지고 있다.

그러나 체육관에서 인위적으로 만든 근육을 가지고는 농사를 할 수는 없을 것이다. 농사를 하는 사람들은 육체미는 없지만 현장 에서 갈고 닦인 근육을 갖고 있다. 그들은 뼈 속에 힘을 갖고 일한다. 가정에서 일하는 주부들은 온갖 잡일들과 사소한 일들을 하 는 특별한 근육을 갖고 있다. 목회자들이 현장에서 필요한 근육은 체육관에서 만든 것이 아니라, 현장에서 살면서 만들어지는 것이 아 닐까?

한 걸음 더 나아가 어떤 목회자는 힘이 있고, 어떤 이는 없는 것은 궁극적으로 그의 마음 속에서 나오는 사랑에 있는 것 이 아닐까? 단순한 고용인이나 삯군이 아니라, 한 양을 낳고 기른 아버지요, 목자라면 그 마음 속에서 우러나는 사랑이 영적인 힘으 로 나오는 것이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