즐거움으로 참예하는 고난주간   

요즘 우리는 어려운 시대를 보내고 있다. 이해할 수 없기에 말로 표현할 수도 없는 고난으로 많은 이들이 시름하며 고통을 당 하고 있다. “오직 너희가 그리스도의 고난에 참예하는 것으로 즐거워하라”(벧전&nbsp4:13)는 베드로의 권면이 절실 히 필요할 때이다. 다음 주 시작되는 고난주간(Passion&nbspweek)은 사순절의 마지막 주간으로 예수님께서 예루살 렘 입성하신 때부터 십자가에 달려 죽으시기까지 겪으신 고난을 생각하며 지내는 주간이다. ‘성 고난주간’ (Holy&nbsppassion&nbspweek), ‘대주간’(Great&nbspweek)으로 불리우기도 한 다. 공식적인 절기로 공개적으로 지켜진 것은&nbspA.D.&nbsp313년 콘스탄티누스 황제의 신앙 자유령이 선언 된 이후부터이다. 동로마 교회의 기록인 “에게리아”(Egeria) 순례집에 절기로 지켰음을 알 수 있다.

단순히 예수님의 고난을 기념하는 것이 아니라, 그 고난에 참예해야 한다. 그렇다면, 어떻게 고난에 참예함으로 즐거워 할 수 있는 것일까? 그것은 예수님께서 당하신 고통이 무슨 결과를 가져왔는지를 알고, 그것을 위해 기꺼이 참예할 수 있을 때이다.

본래 고난은 저주이다. 우리 스스로 선택한 죄의 결과이다. 이 고난의 결국은 죽음으로 끝나지 않는 점을 알아야 한다. 우 리 영혼을 파멸시키는 고통이다. 더 나아가 영원한 죽음으로 가게 하는 고통인 것이다. 예수님의 고통은 하나님에게까지 버림받은 영육 간의 처절한 고난이었다. 이것을 통해 예수님은 세상을 향해 용서를 선포하였고, 화해하고자 하였다. 하나님께서 세상을 용서하시고 화 해하시도록 우리를 대신하여 죄 값을 지불하는 고통을 당하셨다. 또한 우리 서로가 대립과 갈등에서 벗어나 이웃을 자기 몸처럼 사랑하 며 살아가도록 고통을 당하셨다. 예수님은 가장 처절한 사형수단이었던 십자가(The&nbspCross)위에서 제2위 성자 하 나님으로서 영광과 주권을 버리고 처절한 수난을 당하셨다. 이처럼 그리스도는 대속 희생으로서 고난을 겪으셨다. 이는 하나님의 주권 에 대한 순종과 사랑의 실천의 열매를 맺게 하였다. 

이런 예수님의 고난의 열매를 통하여 하나님은 당신의 의롭고도 사랑스런 품성으로 우리의 고통을 기쁨과 즐거움으로 바꾸셨 다. 의로우신 하나님은 우리의 고통을 감해주시지 않으신다. 우리가 당할 고난을 덜어주시지 않는다. 대신에 하나님은 그의 사랑으 로 우리의 고난에 우리와 함께 하신다. 그 고통 속에서 우리와 함께 아파하신다. 그러기에 우리는 고난을 이길 수 있고, 고난을 즐 거움으로 극복할 수 있게 된다. “그리스도의 고난이 우리에게 넘친 것같이 우리의 위로도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넘치는도다.”(고 후&nbsp1:5) 분명한 것은 우리에게 고난과 환난의 바람이 아주 매섭게 불어온다. 하지만 하나님은 그의 크신 사랑으 로 위로의 큰 방패로 막아주시어 위대한 삶을 이루게 하신다.

따라서 고난주간을 다른 날보다 더 경건하고 절제하여 구제와 사랑의 실천 현장으로 나가는 것이 필요하다. 이 현장에서 기억해 야 할 것은 고난을 객관적으로 바라보지 말고, 자신의 고통으로 수용하는 점이다. 이웃의 고난을 함께 아파할 수 있고, 괴로워 할 수 있을 때 비로소 이웃을 용서하며 화해할 수 있게 된다. 여기에서 행복을 느끼고 고난을 즐거워할 수 있다. 우리는 단지 세 상 사람처럼 고난을 미래를 위한 현재의 쓴 약처럼 여겨서는 안된다. 

현대의 많은 그리스도인은 자기에게 당한 고난을 이해하려고 하기 보다는 불평하고 원망을 쉽게 한다. 예수님께서 골고다의 길 을 십자가 지며 가실 때에 조롱하였다. 왜 지금의 고통을 당하고만 있느냐고! 남을 구원하는 자가 자기도 구원하지 못한다고 희롱하였 다. 우리는 기억해야 한다. “생각건대 현재의 고난은 장차 우리에게 나타날 영광과 족히 비교할 수 없도다.” (롬&nbsp8:18) 현재 당하는 우리 고통이 무언지 몰라도 그 고난이 주는 열매가 무엇인지 바라볼 수 있는 믿음을 가진 다면 기쁨을 얻게 되는 고난이 될 것이다.

그리스도의 고난은 하나님을 아는 고귀한 지식을 얻게 해주었다. 하나님의 은혜 깊은 속으로 들어가게 하였다. 비록 하나님의 자녀인 우리가 고난의 길을 걷기는 하지만 예수님께서 이미 먼저 지나가셨음을 기억하고 위로받자. 

이 고난에 참여함으로 주님의 임재와 긍휼을, 우리를 지원하는 은혜를 누리는 자임을 알자. 고난 속에서 우리를 부르시는 그 예수님을 바라보며 사는 거룩하고 위대한 고난주간이 되기를 바란다. 

정삼지 목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