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막의 낙타처럼 홀로 가게 하라 

2003년11월11일 국민일보 [이지현 기자의 미션 클릭] 

주부&nbspJ씨는 지난&nbsp3년 동안&nbsp30분 단위로 치밀하게 짜여진 스케줄 수첩을 갖 고 다녔다. 아들의 수능 뒷바라지를 위해서 였다.&nbsp3년 동안 수학 영어 전문과외와 학원과외를 병행했고 논술 과학 컴 퓨터를 따로 배우게 했다. 아이가 힘들까 봐 그녀가 운전을 해 데려다 주고 데려온 것은 말할 나위도 없다. 그렇다고 아들이 원하 는 대학에 간 것은 아니었다.&nbspJ씨는 내심 아들이 재수해주길 바랐지만 아들은 ‘더 이상 엄마의 인생을 살고 싶지 않 다’며&nbsp2지망에 합격한 대학교에 들어가버렸다. 

그것은 시작에 불과했다. 아들과 마주 앉아 식사를 해본 기억이 까마득할 정도로 소원해졌다. 친구들과 어울리다 매일 새 벽&nbsp2∼3시쯤에 귀가하는 아들을 만나기 위해서는 낮잠을 자둬야 할 정도였다. 고분고분했던 아들이 옷을 골라주는 그녀 에게 “이것까지 엄마 맘대로 하려고 하세요?”라고 말할 땐 배신감마저 느껴졌다. 고3 뒷바라지할 때보다 지금이 더 견디기 어렵다 고 말하는 그녀는 누굴 위해서 그런 시간을 보냈는지 서럽기만 하다고 눈물을 글썽거렸다. 

올해 대학에 입학한 아들을 둔 가까운 이웃의 이야기이다. 이 경우 부모 자녀 관계가 어디서부터 어긋난 것일까. 사실 한국 에 이런 가정이 한두 가정이 아닐 것이다. 보통 우리나라 어른들은 자녀가 부모를 가장 필요로 할 때인 영·유아기에는 자녀가 독립적 이길 기대하며 허용적이다. 반면 자녀가 독립적이고 싶어하는 청소년기가 되면 오히려 가까이 있고 싶어 해 부모 자녀 관계가 원만하 기 힘들다. 

심리학자들은 영·유아기에 수직적이던 부모 자녀 관계는 자녀가 청소년기에 들어서면 ‘수평적인 관계’로 변해야 한다고 말한 다. 수평적인 부모 자녀 관계란 자녀를 독립된 인격체로 인정하는 것이다. 사람은 누구나 하나님의 신성으로 지어진 고귀한 존재이 기 때문에 그 사실을 인정 받고 싶어 한다. 내면에 소유하고 있는 고귀한 사실을 그대로 인정 받을 때 사람은 변화되고 새로워진다 는 것이다. 

아이들을 배웅할 때 손을 잡고 걸으면서 등을 만져주고 학교 이야기를 물으며 “네가 얼마나 소중한 존재인지 모른다. 너는 참 으로 가치 있는 존재란다. 엄마는 참으로 너를 사랑한단다”라고 말하고 아이가 보이지 않을 때까지 바라보고 있다면 이런 말은 엄청 난 에너지를 갖게 된다. 

공부를 못해서 매를 맞아 빨갛게 부어 오른 아인슈타인의 손에 입을 맞추며 “사랑하는 아들아,너에게는 다른 사람이 가지지 못 한 특별한 재능이 있다. 너는 반드시 훌륭한 일을 하게 될 것이다”고 끊임없이 말하며 잠재력을 깨워서 천재로 만든 것은 그의 어머 니였다. 

‘지식’을 가르치는 부모가 되길 원하는가,‘지혜’를 가르치는 부모가 되길 원하는가? 우리는 자녀에게 지혜를 심어주기보다 지 식을 전하는 교육에 치중해온 것은 아닐까. 물론 이 사회는 우등생이 성공할 기회가 많다. 그러나 자신의 생각 없이 공부를 잘하 는 아이보다 성적이 떨어지더라도 생각이 분명한 아이가 생존력은 훨씬 강하다. 

성적이 떨어졌을 때 질책하지 말고 “최선을 다했으면 괜찮아”하고 격려해주는 부모, 자녀가 책 옷 여행지 등을 선택할 때 강 요하지 않고 스스로 선택하도록 하는 부모가 필요하다. 이런 과정을 통해 자녀들은 ‘정신의 지문’으로 영토를 만들어갈 것이다. 사막 의 모래바람 속을 꿋꿋하게 걸어가는 낙타처럼 홀로 떠날 기회를 만들어 주자. 

자녀들은 갓 태어나서 세 살에 이르면 부모에게 할 효도가 끝났다고 말하며 그 다음 부터는 그를 양육할 책임만 부모에게 남겨져 있다고 이야기 합니다. 

건강하고 올 곧게 자라 하나님과 사람에게 사랑 받는 인재로 양육의 책임이 있을 뿐, 자녀에 대하여 치나친 기대나 행여 자신이 이루지 못한 꿈을 대신 만족 시키려는 생각은 꿈도 꾸지 말아야 할 것입니다. 

자녀들에게 무엇을 강요하기 보다는 삶을 통해 본을 보여주는 부모가 됩시다. 

자녀들은 가르친대로 행동하기 보다는 본대로 따라하기 때문이지요. 

직장 사역에서 하나님 중심의 가정과 자녀 양육은 사역의 기초 입니다. 
가정을 개방하여 사람들을 초대하여 교제를 나눌 때 하나님 중심의 가정을 자연스럽게 보여 줄 수 있기 때문이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