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명의 확신이 있는냐?   

수리남=안석렬 선교사 

몇 주일 전, 차를 고치러 나갔다가 정비공장에서 번띠(Bunty)형제를 만났다. 번띠는 우리와

오랫동안 교제해 온 원주민으로, 캐나다 선교사가 목회하는 교회의 장로이며, 앞으로 사역자가 되기 위해 신학을 공부하고 있 다. 전 주간에 번띠네 교회에서 실시했던 강의가 좋았었는지 물었더니, 자기는 더 이상 그 교회에 나가지 않는다고 대답했다. 나 는 정말 많이 놀랐으나, 서로가 바쁜 시간이어서 자세한 이야기는 듣지 못하고 돌아왔다. 

그 선교부에서, 번띠를 연결시켜 지난 여름에 캐나다까지 가서 공부하고 왔으며, 또 공부에만 몰두할 수 있도록, 집세는 물 론 생활비와 의료보험까지 해결해주는 등 여러 면에서 지원을 했었다. 번띠 역시 그에 못지않게, 성실함으로 교회 일을 감당하고 있었 다. 때문에 번띠의 말은 계속 의문으로 남았다.

며칠 전, 번띠 형제를 만나 한 가지 궁금한 점을 물었다. 

“하나님께서 사역자로 택하셨다는 소명의 확신이 있느냐?” 그의 대답은 뜻밖에도 “아니요, 없습니다. 지금까지 나의 일들은 소명에 의한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만….”

자세한 설명을 듣는 중에, 그가 그 교회를 떠난 이유는 다른데 있음을 알 수 있었다. 그러나 그 자신이 무엇보다도 소명 의 문제를 짚어 결정하였기에, 모든 좋은 혜택들을 포기하고 자동차 정비소의 견습생이 되어 있었던 것이었다. 하나님의 소명을 분명 히 깨닫게 된다면, 그는 다시 기름묻은 정비복을 벗고, 사역자로 강단에 돌아올 수 있을 것이다. 이런 면에서 볼 때, 번띠는 정 말 용기있는 형제라고 생각되었다.

목회자로서의 소명이 있다면, 또한 선교사로서의 소명도 있다. 그 많은 하나님의 일꾼들중에 특별히 선교사로 부르신 그 소명감 이, 오늘도 선교사들로 하여금, 선교지에서의 모든 역경을 이기며 살아나가게 하는 원동력이 되는 것이다. 소명이 없어도 선교지에 머 물 수 있을까?

언젠가 선교지에서&nbsp45세가 되기를 기다리고 있는 선교사를 만난 적이 있었다. 그 분의 말 은&nbsp45세가 된 후, 한국 교회로부터 청빙을 받아, 담임목사로 시무하고 싶기 때문이라고, 기다리는 이유를 말했 다. 그가 선교지에 머무는 것은 단지 담임목사로 한국에 부임하기 위한 대기단계로 잠시 떠나 있는 것으로 보여 씁쓸한 기분이 들었 고, 결국 그는 선교지를 떠났다.

“아골 골짝 빈 들에도…이름없이 빛도 없이…”, “십자가를 제가 지고…” 이런 찬송들을 자신있게 부를 수 있는 삶은 결 코 쉬운 일이 아니다. 선교사역은 시작부터 마지막까지 끊임없는 영적인 전쟁으로, 끝까지 남는 자라야 승리자라 할 수 있다.

선교지에 들어가면서, 영원히 이곳에서 빠져나올 수 없을 것 같은 긴박감을 느끼면서도, 선교사로 불러주신 하나님의 사랑을 감 사하는 선교사들의 절절한 고백과, 자신들의 삶은 그렇다치더라도 자녀들의 학업과 삶의 문제로 고통 당하면서도, 맡겨주신 사역에 충성 하는 선교사들의 비통한 눈물은, 하나님이 주신 소명에 대한 그들의 충성과 겸손, 주신 은혜에 만족하려는 진한 감사의 표시라 아니 할 수 없다. 주님 외에 누가 그 눈물을 씻기시겠는가? 

미국에서 만난 어느 선교사는, 아프리카에서 사역하다가 자신과 딸 하나가 말라리아에 걸려, 눈에 치명적인 병을 얻어 철수해야 만 했다고 말했다. 아직도 몇 차례의 수술을 받아야 함에도, 이제는 다시 선교지로 돌아갈 수 없음을 안타까워하는 모습을 보면 서, 하나님을 향한 그의 사랑을 읽을 수 있었다.

소명을 확신할 수 없어서 정비기술을 배우고 있는 번띠 형제가 그래서 더 용기있어 보이고 정직해 보인다. 누구도 이해 할 길 없는 상황에서도 주님을 사랑하는 마음으로 묵묵히 소명을 따라, 끝까지 말씀을 전하는 선교사들을 위한 격려의 기도가 그치 지 않기를 바라며, 주님의 돌보심과 따뜻한 위로가 항상 함께 하시기를 기도드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