떠남보다 아름다운 머묾
창성교회담임 이진우 목사

얼마 전, 자신이 목회하던 교회를&nbsp10년 만에 홀연히 떠난 목회자의 얘기가 널리 회자되었다. 누가 봐도 ‘누 릴 수’ 있는 자리를 마다하고 자리를 비켜 난 그 용기는 우리 한국 교회에 신선한 한줄기 바람 같은 것이었다. 누구나 할 수 있 는 일은 아니지 않은가!
그러나 한 가지 조심할 점이 있다. 한 가지 경우를 모든 상황에 만능의 잣대같이 들이대는 우를 범해서는 안 된다는 점이 다. 교회 재정의&nbsp50%를 밖으로 내어놓는 교회는 좋은 교회이고 홀연히 떠나는 목회자는 좋은 목회자라는 생각은 한계 가 있다는 것이다. 우리는 한국 교회의&nbsp87%가 교인 수&nbsp1백 명 미만의 교회라는 차가운 현실을 직시 할 필요가 있다. 
내가 요즘 얻은 생각이 있다. 그 ‘떠남’보다 더 아름다운 ‘머묾’이 있다는 사실이다. 떠남이 두 주먹을 쥐는 용기를 필요 로 한다면 머묾은 신음 같은 고통의 결정체일 수 있다는 것이다. 타오르는 열정으로 신학교 문을 나서는 수많은 사역자들, 저들에게 는 한결 같이 목회와 목양에 대한 열망과 비전과 계획이 있다. 그러나 그것을 펼쳐 볼 기회를 얻는 자는 결코 많지 않다. 저들 이 신학교를 나와 부딪치는 현장의 상황은 전혀 다르기 때문이다. 
서울 인근 도시에서&nbsp13년째 목회하는 친구의 깊은 고백을 들었다. 부임한 교회는 나름대로의 고집스런 전통 을 가지고 있었다. 교인들은 감동이 없었고 움직이지 않았다. 수년간의 눈물과 헌신의 열매는 보이지 않고, 전임 사역자로 인한 불신 과 무관심으로 일관했다. 그들 부부는 처절한 갈등의 날들을 보내기 시작했다. 장벽 같은 한계를 느끼면서 몸부림했다. “떠나야 지, 아니야, 견뎌야지, 내년에는 떠나야지.” 그 절망감을 접는 데&nbsp9년이 걸렸다. 이제 서야 그 교회는 온전한 상 처로부터 회복을 누리기 시작했다. 그들 부부의 ‘견디기’는 교회의 일치를 일궈냈다.
그 경우는 그래도 괜찮다. 지금&nbsp22년째 개척교회를 목회하고 있는&nbspY목사. 그의 진리에 대 한 고집스러움과 몇몇 책을 저술할 만큼의 지적인 탁월함, 철야기도를 두려워하지 않는 열심에도 불구하고 그의 교회는 현상 유지 에 숨 가쁘다. 참으로 수수께끼 같은 일이다. 그의 소박한 탄식은 이것이다. “욕심은 없어. 그러나 내 생에서 목회다운 목회를 한 번만 해봤으면….” 새해를 맞는다지만 목회계획을 세우지 않는다. 계획대로 될 수 있는 것은 하나도 없기 때문이다. 그래도 개척 당 시의 아이들이 이제 신앙의 청장년으로 서 가는 것을 보는 것, 그게 그의 낙이다. 
화천의 골짜기에서&nbsp15명의 노인들을 바라보며 목회하는&nbspC목사. 어느 교인도 교회 회계일은 기피한다. 어차피 살림이 전혀 되지 않으니까. 그게 다&nbspC목사의 몫이다.
오늘도 미처 펼칠 수 없는 꿈을 그대로 가슴에 안은 채 고뇌하는 이들, 자신의 무능함을 탄식하며 가족의 고통을 바라봐야 하 는 이들, 심지어는 자신의 목회소명 자체를 회의 하면서도 차마 그 현장을 떠나지 못하는 종들을 우리는 생각해야 한다. 그들이야말 로 ‘떠남’보다 아름다운 ‘머묾’을 온 몸으로 감당하고 있는 이들이기 때문이다.

기윤실 발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