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앙과 삶이 일치하려면 

한국유체무역 대표/ 인터넷 직장선교회 운영자 대표 김 건수 

- 본 글은 퓨처 테크 이상원 형제님의 요청을 받아 예능교회 격월간지에 수록할 목적으로 쓴글임. 이중 전반부만을 게제키로하여 전체 내용을 본 칼럼에 게재함.-- 


신앙과 삶을 일치시키는 길을 필자는 알고 있지 못하나 시행착오를 많이 겪은 지난 삶을 통해 '신앙과 삶을 일치시키지 못하는 이유들’을 살펴보고 이를 뒷받침 해 주는 하나님 말씀을 소개함으로 요청에 답해 보려 한다. 

여기서 ‘신앙과 삶을 일치시킨다’는 의미는 ‘예수님을 하나님의 유일하신 메시야로 믿고 그 분의 말씀대로 이 세상에서 사 는 것’을 의미 할 것이다. 더 실질적으로 말한다면 ‘주일에 교회 생활은 그런대로 괜찮은 것 같은데 월요일부터 토요일까지의 세상에 서의 생활은 왜 엉망인가?’에 대한 대답을 듣고 싶은 것이 아닐까 생각한다. 

1. 그리스도 인의 신분 의식 즉 정체성 결여에서 찾을 수 있다. 
그리스도 인 이란 ‘예수 그리스도를 하나님의 아들 되시는 메시야로 믿고 받아 드림을 통해 값 없이 은혜로 거듭 태어난 새로운 신분’이다. 

“너희가 그 은혜를 인하여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얻었나니 이것이 너희에게서 난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선물이라 행위에서 난 것이 아니니 이는 누구든지 자랑치 못하게 함이니라” (엡2:8-9) 
구원은 나의 노력과 행위와 관련 없이 하나님께서 일방적으로 베푸시는 은혜의 선물이다. 즉 대가 지불이 필요 없는 공짜라 는 것이다. 우리나라 사람들은 공짜를 좋아하지만 공짜로 얻은 것을 하찮게 여기는 습성이 있다. 그래서 값 없이 얻은 구원마저 하찮 게 여기는 경향이 있지 않나 생각한다. 하나님의 선물로 받은 구원이 백화점에서 특별 행사 기간에 비매품으로 주는 그런 값싼 것인 가? 결코 아니다. 그와 정 반대이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선물로 주신 '영생'이라는 구원은 개인적으로 이 세상과도 바꿀 수 없 는 엄청난 가치가 있는 소중한 것이다. 어쩌면 이 구원의 선물 하나로 일평생 그 은혜를 감사 감격하며 살아 갈 수 있는 아주 소중 하고 값진 것이다. 

또 그 신분은 어떠한가? 하나님을 감히 아버지라 부를 수 있는 엄청난 신분 변화가 일어난 것이다. 그런데 그것을 인식하 고 있지 못하거나 그렇게 여기지 않고 있는 것이다. 창조 주 되시고 전능하신 하나님의 자녀라는 신분이 임기&nbsp5년 에 불과한 대통령의 아들에 비길 수 있겠는가? 하나님의 자녀라는 그리스도 인의 신분 의식 즉 정체성 결여가 이 세상에서 당당하 고 떳떳하게 살아 가지 못하게 한다. 

2.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을 전폭적으로 신뢰하지 않고 섭취하지 않기 때문이다. 

“하나님의 말씀은 살았고 운동력이 있어 좌우에 날선 검보다 예리하여 혼과 영과 및 관절과 골수를 찔러 쪼개기까지 하며 또 마음의 생각과 뜻을 감찰하나니” (히4:12) 

성경은 오늘 이 시간에도 하나님께서 나에게 개인적으로 들려 주시는 살아 있는 메시지 이다. 성경을 살아계신 하나님 말씀으 로 받아 드리고 성경에 최고의 권위를 부여 한다면 그 말씀을 사랑하게 되고 섭취하게 되며 그 말씀에 순종 할 수 밖에 없을 것이 다. 성경을 단지 훌륭한 양서 중의 하나로, 그리고 삶 가운데 참고 할 만한 책 중의 하나로, 그것도 자신의 입맛에 맞는 내용 만 취사 선택하는 한, 성경의 권위를 인정 할 수 없게 되고 사랑 할 수도 없게 된다. 

신구약&nbsp66권 전부가 모두 하나님의 살아 있는 메시지이며 바로 하나님께서 나 개인에게 주신 '사랑의 편지'라 고 인식하고 섭취 할 때 그 말씀은 나의 삶에서 살아 역사하는 능력의 말씀이 되는 것이다. 성경 말씀은 내 안에 내주하시는 성령님 의 양식이기 때문에 내가 내 몸을 위해 음식을 섭취하듯 꾸준히 말씀을 듣고,읽고,공부하고,암송을 통해 섭취하여 말씀이 충만 되 어 지도록 해야 한다. 

성령 충만이란 곧 말씀 충만을 의미 한다. 그리스도 인이라면 성경을&nbsp1년에 한 번 정도는 통독해야 하지 않을 까 생각한다. 최소한 자기 나이 만큼 성경을 통독 할 수 있는 수준이라면 아주 건강한 그리스도 인이라고 할 수 있다. 

3. 생활 속에서 그리스도가 주님 되심을 인정하지 않기 때문이다. 

우리는 예수님을 구원의 주님으로 인정하면서도 내 생활의 주님(Lordship)으로 인정하지 않는다. 예수님이 가정의 주인이 되시고 일터와 사업장에서 그리고 사회 생활 속에서도 여전히 주님이 되셔야 함을 잘 인정하지 않고 있다. 

특히 오늘날과 같이 전문가들이 일하는 분야에서는 예수님을 비전문가로 간주하여 예수님께서 관여 하실 여지를 남겨 놓지 않 는 잘못을 저지르고 있다. 고기 잡는 어부로 잔뼈가 굵은 베드로가 밤이 맞도록 수고하고 고기를 잡지 못한 게네사렛 호수와 디베 랴 바닷가에서 예수님이 두 번씩이나 고기를 많이 잡은 솜씨는 내가 최고라 자부하는 전문직에서도 여전히 주님 되실 능력과 자격이 있 으신 분임을 입증하기에 충분한 것이다. 

내가 인정하든 인정하지 않든 예수님은 나의 가정에서도, 일터에서도, 나의 사회 생활 속에서도 여전히 주님 되시는 분이시 다. 예수님은 주일에 교회에만 계신 것이 아니다. 내 가정에서 주인으로, 내 일터와 사업장에서도 주님으로 여전히 나와 함께 일하시 기를 바라는 분이시다. 

4. 두 번째 구원인 성화(聖化)를 위해 자기 훈련을 기피하기 때문이다. 

죄인 된 나를 예수님의 피로 말미암아 의롭다고 인정해준 칭의의 구원(Justification)은 내가 아무것도 하지 않 은 은혜의 구원 이였다. 그러나 예수님의 성품과 모습으로 변화되어 가는 성화의 구원(Sanctification)은 내주하시는 성령 님과 나 자신이 의지를 함께 드려 평생동안 성장해 가는 과정이다. 

우리는 이 과정에서 주님께서 하셔야 할 일을 내가 빼앗아 하거나 내가 해야 할 역활이나 책임을 기피하고 소흘이 하기 때문 에 영적 성장이 지연되고 있는 것이다. 하나님은 나를 통해 일하시기 원하시고 나는 하나님과 함께 일해야 한다. 신앙 성장의 지 름 길은 존재하지 않는다. 그리스도 중심의 생활,말씀 섭취,기도,교제,증거, 말씀에 순종하는 생활 등 그리스도 인의 기본적인 삶 을 꾸준하게 훈련하고 개발해 나가지 않기 때문이다. 

5. 이원론의 사고에 깊숙이 빠져 있고 머리로만 믿기 때문이다. 

우리는 지나치게 교회 중심의 이원론 사고에 깊숙이 빠져 있다. 교회와 관련된 것은 무조건 영적인 것이고 세상과 관련된 것 은 무조건 속된 것으로 보는 사고가 있다. 교회에서 목사님이 하시는 사역이나 직업인이 자신의 일터에서 일하는 것이나 하나님께서 는 동일한 가치를 부여 하신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무슨 일을 하든지 마음을 다하여 주께 하듯 해야 하는 것이다. 

“무슨 일을 하든지 마음을 다하여 주께 하듯 하고 사람에게 하듯 하지 말라.이는 유업의 상을 주께 받을 줄 앎이니 너희는 주 그리스도를 섬기느니라” (골3:23-24) 

일한 품삯은 일을 시킨 사람으로부터 받겠지만 설혹 그것이 만족되지 못한다 해도 그리스도 인들은 주님께 유업의 상을 받을 것을 기대해야 한다. 

“그러므로 형제들아 내가 하나님의 모든 자비 하심으로 너희를 권하노니 너희 몸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거룩한 산 제사로 드리라 이는 너희 드릴 영적 예배니라.” (롬12:1) 

제사는 유대인이나 우리 나라에서 매우 중요하게 여기는 전통적 행사이다. 오늘날 교회에서 드리는 예배가 바로 제사이다. 교회 에서는 예배를 가장 중요하게 여긴다. 그것은 하나님께 드리는 것이기 때문에 중요한 것이 사실이다. 그런데 바울은 로마 인들을 향하 여 몸으로 드리는 거룩한 산 제사가 바로 영적 예배라고 강조하고 있다. 

주일에 우리가 교회에서 드리는 예배가 있다면 월요일부터 토요일까지 가정과 일터에서 삶으로 드리는 영적 예배가 있다는 것이 다. 우리가 주일 예배를 지키려고 주일 성수를 강조하듯 월요일부터 토요일 까지 평일 성수도 강조해야 하는 것이다. 삶으로 드리 는 예배란 바로 말씀에 순종하는 생활을 의미한다. 

그리스도인의 삶은 요일 구분 없이 언제나 말씀에 순종하여 삶으로 드리는 예배가 되어야 한다. 그렇기 때문에 하루 중 첫 시 간을 하나님과 개인적으로 교제하는 경건의 시간이나 새벽 기도가 중요한 것이다. 평일에도 삶의 가장 중요한 우선 순위에 주님과 만 나 생명력 넘치는 교제에 두어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는 것이다. 

미국 새들백 교회 슬로건에는 “당신은 당신이 행하는 부분에 대해서만 믿고 있는 것이다”라는 말이 있다. 

6. 성령 충만을 의지하기 보다는 자신의 능력과 의지로 살려고 하기 때문이다. 

성령 충만 즉 말씀 충만 없이 이 세상에서 능력 있는 삶을 살기란 거의 불가능하다. 이 세상과 이 세상 가치관에 압도 당하 기 때문이다. 죽은 고기는 강물이 흘러가는 대로 떠 내려 가지만 살아 있는 물고기는 격류를 거슬려 올라 간다. 건강하고 성령 충만 한 그리스도 인은 자신이 속한 사회를 개혁하고 변혁 시킨다. 영향을 받는 자가 아니라 영향을 끼치는 자가 된다. 자신의 능력과 의 지로 살아가는 것이 아니라 내주 하시는 성령의 은혜와 은사와 능력으로 이 세상을 능히 이겨 나가는 것이다. 

7. 우선 순위의 삶과 균형 잡힌 삶에 훈련되어 있지 못하기 때문이다. 

하나님은 모든 사람에게 하루&nbsp24시간을 공평하게 주셨다. 누구도 더 사용하거나 덜 사용 할 수 없다. 그런 데 어떤 사람은 많은 일을 하고도 여유가 있는 반면 어떤 사람은 별로 한 일도 없는데 시간에 쫓겨 사는 것을 보게 된다. 

그리스도 인들은 누구나 삶의 분명한 목표와 의미를 알고 있어야 하며 이 목표를 중심으로 삶을 단순하고 균형 있게 살아야 한 다. 내 목표와 상관 없는 제의에 대하여 지혜롭게&nbspNO를 할 줄도 알아야 한다. 그리스도 인의 매일의 삶은 우선 순 위가 분명해야 하며 또 삶의 균형을 유지해야 한다.삶의 분명한 목표가 있을 때 이것이 가능하다. 

매일의 삶에 있어 
첫 번째 우선 순위는 하나님과의 관계 증진이다. 
두 번째는 하나님 중심의 화목한 가정을 이루는 것이다. 
세 번째는 자신의 직업(학업)에 충실하는 것이다 
네 번째는 사역(선교)의 주체가 되는 것이다 
다섯 번째는 안식과 자기 계발 및 취미 생활을 하는 것이다. 

8. 침투하는 삶을 살지 못하고 분리 또는 동화되는 삶을 택하기 때문이다. 

교회를 떠나 가정이나 일터에서 비 그리스도인과 만나 생활 할 때 두 극단적인 관계를 만나게 되는데 이들 모두 바람직하지 않다. 

첫째는 분리 또는 격리하는 태도 이다. 믿지 않는 세상 사람들과 가급적 만나거나 상대하려 하지 않는 태도이다. 그러나 이러 한 관계가 지속 될 경우 복음을 전하기는 커녕 조직 가운데 '왕 따'를 당하기 쉬우며 믿지 않는 윗 분을 모신다면 인정 받기 어렵 다. 

두 번째는 세상 사람들에 동화되어 그가 그리스도 인인지 전혀 구별이 되지 않는 사람이다. 

이 같은 분리나 동화는 그리스도인이 살아야 할 길이 아니다. 그리스도인의 삶은 이 그 같은 삶이 아니라 침투하는 삶을 살아 야 한다. 배추에 적은 소금을 뿌렸을 때 소금의 짠 맛이 온 배추에 침투 되듯 세상 사람들의 가치관과 삶 속에 ‘하나님의 나라 와 공의’를 침투시키는 것이다. 세상 사람들은 자신들이 스스로 그런 삶을 살지는 못해도 그리스도 인들이 그러한 삶을 살 것을 기대 하고 보고 싶어 한다. 

거창한 이적이나 성공이 아닌 시간 약속 같은 작은 실천, 다른 사람을 배려하는 작은 섬김, 고난을 잘 견뎌내는 인내, 환경 을 통해 배우려는 성실한 삶 등을 통해 하늘 문화와 하나님의 아름다움을 접하게 되는 것이다. 하나님은 우리가 어디서 무슨 일을 하 느냐에 관심을 가진 것이 아니라 당신의 자녀가 어떠한 목적을 갖고 어떠한 태도로 일하는가에 더 많은 관심을 갖고 계시다. 일터 를 삶의 훈련장으로 인식하고 평생 배우려는 성실함을 보일 때 하나님은 더 많은 것을 배우도록 인도하시고 성장하도록 이끄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