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과 존재의 불완전성    

지금의 지구와 흡사한 모습이 형성된 것은 신생대 초기로부터 중기 쯤이다. 지중해를 중심으로 넓게 형성되었던 테티스 바다가 들어나서 육지화됨으로 히말라야산맥과 알프스산맥을 형성했다. 이로써 쥐라기 시대로부터 계속되어 온 알프스 조산운동이 종료되는데 제3기 당시의 생물계가 현재의 동ㆍ식물계와 대단히 유사하다고 보고 있다. 그렇다면 그때가 지구가 생명체들이 살아가기에 가장 완벽한 생명의 공간이었을 것으로 생각할 수 있겠다.  

이 시기가 하나님께서 “보시기에 좋았다”는 인간의 삶터를 만드신, 창조사역을 완성한 시기라고 추측하는 것이 가능하다면, 그 이후에 지구상에서 일어나는 자연의 작용에 의한 사건들은 창조사역의 지속이 아닌 다른 의미로 받아들여야만 한다. 그러한 맥락에서 이번 지진 현상에 의한 대재앙의 의미를 바라보고 싶다. 

자연의 작용이나 인위적 활동으로 인간의 생활환경이 피해를 입는 현상을 재해라고 한다. 재해는 자연현상에 의해 인간생활이 피해를 입는 자연재해와 그렇지 않은 인위적 재해로 구분하고 있다. 자연재해는 지진과 화산과 해일, 그리고 비, 바람, 눈에 의한 기상현상 등으로 일어나는 피해를 말하고, 인위적 재해는 개발 행위, 환경오염 등 인간 활동의 결과로 나타나는 것이다. 그런데 최근에 일어나는 홍수, 폭우, 폭설, 이상 저온과 고온, 가뭄 등 기상현상에 의한 자연재해는 그 원인이 인간의 환경오염에 의한 대기권의 불안정에서 기인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자연재해라고 말하기가 곤란하다. 결론적으로 지진, 화산, 해일에 의한 재해는 인간의 간섭범위 밖에 있는 것이다. 

이번 남아시아의 지진과 해일에 의한 자연 대재앙은 세 가지 측면에서 인위적 재해와 큰 차이점을 가지고 있다. 첫째, 예측이 불가능하다는 점이다. 예측이 가능하다면 사전에 대비할 수 있지만 우리의 문명은 그 정도로 과학적이지 못하다. 둘째, 통제가 불가능하다는 점이다. 위력이 대단하여 인간이 자랑하는 기술로는 맞대응할 수 없이 속수무책이다. 셋째, 규모를 가늠하기가 불가능하다는 점이다. 다만 거대하고 엄청나다라는 점만을 알고 있을 뿐이다. 처음 지진해일이 발생했을 때 사망자수를 수천명으로 추측했지만 이윽고 그 수는 1만명, 다시 수만명, 그리고 수십만명으로 점점 수정되어 왔으며 그 끝이 어디인지 모른다. 

이러한 대자연의 위험 속에서도 우리들은 나의 삶이 늘 안전하다라는 착각 속에 살아가고 있다. 에덴동산을 쫓겨난 이후 ‘불안정한 존재’로 타락했음에도 우리는 삶 속에서 자신이 늘 안전한 존재라고 과신하고 있는 것이다. 우리의 존재가 불안전하다는 것은 첫째, 지금 우리가 겪고 있는 바와 같이, 우리의 삶터 지구 자체가 불안정하기 때문이다. 둘째, 우리의 삶 자체가 불안전하기 때문이다. 생존하기 위해 생리적 욕구를 충족시켜야 하고, 매일매일 경쟁 속에 ‘살아가야만’ 하는 삶은 전쟁이나 다름없지 않은가. 그러함 속에서 죽음을 맞이해야 하는 슬픔과 고통이 있는 불안한 삶을 살아가는 것이다. 셋째, 우리의 정신 자체가 불안정하기 때문이다. 생존의 당위성 이외에도 오욕칠정에 시달려야 하고 도덕과 윤리에 얽매여야 하며, 심지어 인간의 존재가치에 대해서도 부정과 긍정을 일삼고 있지 않은가. 

이번 지진 해일에 의한 대참사를 지켜보면서, 우리의 삶이 얼마나 덧없고 부질없는 것이며 생명의 존재가 불완전하다는 사실을 깨닫는 한편, 자신의 삶을 과신하고 있는 것에 대한 경종과 함께 반성의 계기로 삼아야 하겠다. 더 나아가서 부지불식간에 십자가로부터 점점 멀어져간 내 삶의 자세를 추슬러 보는 계기가 되었으면 한다.   

김기원 교수 / 기독신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