절망에 빠진 백성들에게 찾아오신 하나님

Behold your coming King : Jerusalem reclaimed.

글·존 스토트 / 일러스트·장인숙

2003년 6월1일호 빛과 소금 [존 스토트 칼럼]

‘2003년 5월 4일 영국 All Souls Church에서 “Behold Your Coming King: Jerusalem Reclaimed”라는 제목으로 행한 설교다(본문: 슥 1:1∼21).

기원전 587년 예루살렘은 바빌론 군대에 의해 멸망했다. 솔로몬이 건축한 예루살렘 성전은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하나님 임재의 상징이고 종교와 정치의 중심이며, 무엇보다 그들을 향하신 하나님의 언약이 머무는 곳이었다. 폐허가 된 예루살렘을 뒤로하고 적국의 포로가 된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나님께서 결국 자신들을 버리신 게 아닌가 하는 깊은 절망감에 빠지게 되었다.
“슬프다 이 성이여 본래는 거민이 많더니 이제는 어찌 그리 적막히 앉았는고 본래는 열국 중에 크던 자가 이제는 과부 같고 본래는 열방 중에 공주 되었던 자가 이제는 조공 드리는 자가 되었도다 밤새도록 애곡하니 눈물이 뺨에 흐름이여 사랑하던 자 중에 위로하는 자가 없고 친구도 다 배반하여 원수가 되었도다 … ”(애 1:1∼12).

그로부터 약 70년 후 기원전 520년, 바샤 제국 다리오 왕의 통치 2년째다. 스가랴 선지자는 절망 가운데 있는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예루살렘의 재건에 대한 하나님의 말씀을 대언하기 시작한다. 학개 선지자와 더불어 영적 리더십을 발휘해 성전이 재건되고 하나님의 언약이 재개되는 이스라엘 민족의 희망에 대해 그 이유를 말하고 있다. 이제 스가랴서 1장 말씀을 놓고 절망에 빠져 있던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찾아오신 하나님의 메시지를 들어보자.

회개하는 자에게 주시는 회복과 환상
스가랴서 1장의 핵심은 14절과 15절 말씀에서 “예루살렘을 위하며 시온을 위하여 크게 질투”하시고 “안일한 열국을 심히 진노”하시는 하나님의 마음을 이해하는 데 있다. 질투하시고 진노하시는 하나님께서 실의에 빠져 있던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세 가지 메시지를 주신다.

첫 번째 메시지는 1∼6절 말씀으로 주시고, 두 번째와 세 번째 메시지는 나머지 구절에서 환상으로 보여주신다. 이는 약속의 메시지들이며 이스라엘의 희망에 대해 직·간접으로 말씀하고 있다.

첫 번째 메시지는 회개이다.
하나님께로 돌아가면, 하나님께서도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돌아가시겠다는 것이다. 하나님의 말씀에 귀 기울이지 않은 열조들을 본받지 말고 악한 행실에서 돌이켜 하나님께로 돌아오라는 것이다. 하나님의 언약을 회복하는 데 진정한 회개가 필요하다고 말씀하신다. 예루살렘의 재건은 철저한 회개의 기초 위에서 가능했던 것이다.

두 번째 메시지는 7∼17절 말씀의 회복에 대한 약속이다.
11절 말씀에 말을 탄 인물들이 화석류나무 사이에 선 여호와의 사자에게 “온 땅이 평안하여 정온하다”고 보고하는 장면이 나온다. 사실 이 말씀에 대한 의미를 놓고 많은 해석들이 분분하다. 이스라엘에 대한 바샤의 압제가 계속되고 있는 실정인데, 평안하고 정온하다(at rest and in peace)니 과연 좋은 소식인지 나쁜 소식인지 쉽게 이해가지 않는다.

그러나 이어지는 구절의 맥락을 살펴보면 부정적인 의미로 보는 게 맞다. 이스라엘에게 베푸실 긍휼을 유보하신 70년의 세월을 하나님께 고하자, 하나님께서 선하고 위로의 말씀으로 대답하셨다고 적고 있다. 위로는 구원 또는 구속과 동의어다. 이스라엘이 고통 받은 그 평안과 정온의 세월에 대해 이사야서 40장 1절에서 말씀하시는 위로가 임하시는 것이다. 이는 16∼17절 말씀에서 주시는 회복의 약속으로 이어진다. 첫째는 하나님께서 예루살렘으로 돌아오시고, 둘째는 하나님의 집이 그 가운데 건축되며, 셋째는 예루살렘의 재건을 위한 측량이 이뤄지고, 넷째는 하나님의 도시들이 넘치도록 풍족해지며, 다섯째는 하나님께서 시온을 위로하시고 예루살렘을 택하신다고 선포하고 있다. 이스라엘을 속국으로 삼고 있는 강력한 제국이 존재하는데 어떻게 이런 일이 가능하다고 말씀하시는 것인가?

세 번째 메시지로 18∼21절에서 네 뿔과 네 명의 공장에 대한 환상을 보여 주신다.
이스라엘과 예루살렘을 헤치고 그 백성들을 흩어버리고 머리를 들지 못하게 한 열국의 뿔들을 공장(craftsmen) 네 명이 와서 두렵게 하고 물리친다는 내용이다.
위의 세 가지 메시지를 종합해 보자. 이스라엘이 회개하면 하나님께서 그들을 다시 받아들이시고 도시와 성전의 재건을 허락하시며, 그들을 헤친 악한 열방들을 무너뜨리시겠다는 약속을 주신 것이다.

언약의 백성을 위해 진노하시고 질투하시는 하나님
왜 이런 약속을 주셨을까? 그 해답은 하나님 언약의 신실함에서 찾아야 하며, 앞서 강조한 14∼15절 말씀이 관건이다. 예루살렘과 시온을 위해 크게 질투하시는 하나님 그리고 열방에 대해 심히 진노하시는 하나님의 마음을 알아야 한다.

사실 질투와 진노 또는 분노는 크리스천으로서 경계하고 지양해야 하는 심리 상태로 알고 있다. 그런데 질투와 분노가 하나님의 성품이라니, 어떻게 보면 당황스러울 수도 있다. 그러나 분노와 질투에는 두 가지 종류가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먼저 의로운 분노와 의롭지 못한 분노가 있다. 우리의 분노에는 원한, 악의, 상처받은 자존심 또는 앙갚음이 배어 있음을 부정할 수 없다. 그러나 하나님의 진노에는 이런 것들이 전혀 없고 오직 죄에 대한 거룩한 분노이며 죄에 대한 완전한 거부인 것이다.마찬가지로 정당한 질투와 부당한 질투가 있다. 질투는 라이벌에 대해 견디지 못하는 심리 상태라고 할 수 있다. 교회에서 누가 나보다 사역에서 훨씬 뛰어나고 지혜롭다면 시기하는 마음이 생길 수 있다. 이것은 옳지 못하고 부당한 질투다.

그러나 결혼 관계에서 당사자와 배우자의 사이에 제3자가 끼어 든다면, 이때 발생하는 질투는 정당한 것이다. 하나님과 그분의 백성들은 언약으로 묶인 결혼과 같은 배타적인 관계를 갖는다. 하나님은 백성들이 올려드리는 영광을 제3자와 나눠 가지시는 분이 아니다. 백성들이 하나님 외의 다른 관계로 하나님의 영광을 가린다면, 하나님의 정당한 질투가 불 같이 발하게 된다. 하나님은 이스라엘을 흩어버린 열방의 죄에 대해 의로운 분노를 발하시는 분이시다. 스가랴서 2장에서 “시온을 범하는 자는 나의 눈동자를 범하는 자”(8절)라고 말씀하신다.

그러면 이스라엘을 통해 역사적인 맥락에서 본 하나님의 의로운 분노와 정당한 질투를 오늘의 현실에서 어떻게 이해할 수 있는가? 아직도 많은 곳에서 크리스천들이 박해를 받고 있다. 그들은 하나님께 자신들을 버리셨느냐며 외치고 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말씀하신다. ‘내가 너를 잊어버리고 있을 것이라고 생각할지 모르지만 절대 그렇지 않다’. 하나님께서 항상 그 백성과 교회를 위해 크게 질투하시며 박해자에게 심히 진노하시고 계신다. 우리는 이를 절대 잊지 말아야 한다.


iCCM.net 운영자 대표 김건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