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동원 목사의 관상기도 오류
 글쓴이 : 박동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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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동원 목사의 관상기도 세미나 



  이동원 목사(지구촌교회)가 관상기도를 통해 계속해서 한국 교회를 오염시키고 있다. 처음 그가 관상기도를 한국 교회에 소개했을 때 관상기도의 위험성을 간파한 이들이 반론의 글들을 썼고, 이목사는 이에 잠시 주춤하는 듯했다. 그러나 다시 관상기도를 열심히 전파하기 시작했고, 이제는 너무도 유유자적하게 전하고 있다. 
  국민일보의 ‘로뎀나무’ 코너에서 ‘침묵의 영성’이라는 글을 게재한 그는 「태초에 말씀이 있었다. 그러나 태초 이전에는 무엇이 있었을까. 성서는 창조주께서 말씀을 시작하면서 이뤄가는 거대한 창조의 파노라마를 펼쳐 보인다. 그러나 말씀이 시작되기 전 영원의 커튼 속에서 그는 실로 매우 오랜 세월을 침묵하고 계셨음을 잊지 말아야 한다. 그 오랜 침묵의 지성소에서 흘러나온 말씀이어서 그토록 위대한 창조가 가능한 것은 아니었을까. 빛이 있기 전 영원한 어둠이 먼저 있었던 것이다.」라고 했다. 태초 이전에 주님께서 침묵하셨다는 것은 순전히 이목사의 상상이다. 그런 것은 성경에 없다. 목사는 상상이 아닌 진리를 전하는 사람이어야 한다. 
  이목사는 그 침묵의 기간이라는 것을 ‘영원한 어둠’의 기간으로 묘사했다. 이것은 이목사가 창세기 1:1의 원래의 창조와 1:2의 재창조 사이에 있었던 사탄의 반란과 그에 대한 심판, 그로써 있게 된 우주적인 어두움에 관해 무지함을 보여준다. 
  성경은 창세기 1:1과 1:2 사이에 이 우주에 어떤 ‘대격변’이 일어났음을 말씀한다. 창 1:2의『땅은 형체가 없고』에서 “형체가 없고”는 히브리어로 “토후 바보후”이다, 이는 지구가 창세기 1:2 이전에 이미 큰 재앙으로 본래의 모습을 잃어버리고 일그러져 있음을 나타내는 것으로, 창세기 1:1의 땅이 1:2 이전 어느 시점에 큰 재앙을 당했음을 보여주고 있다. 이것은 지구를 포함한 “우주적인 대홍수 심판”이며, 『...땅도 물에서 나왔고 물 안에 있었다는 것이니 이로써 이전에 있던 세상은 물이 범람해서 멸망하였느니라.』베드로후서 3:5,6의 말씀이 바로 그 심판을 말씀하고 있다. 『하나님의 영은 물들의 표면에 거니시더라.』는 창 1:2의 ‘물들’은 바로 이 우주적인 대홍수의 심판으로 우주를 덮고 있던 물들이었다. 
  이 심판의 직접적인 원인은 하나님의 보좌를 덮고 있던 다섯째 그룹, 곧 루시퍼가 하나님의 보좌를 탐내어 반역을 일으킨 데서 기인한다(사 14:12-15). 창세기 1:2에서 마치 영원 전부터 영원히 있었던 것처럼 이목사에게 비친 그 어두움은 사탄의 반역과 관련이 있다. 사탄도 창조된 피조물이며, 어두움은 그의 반역으로 인해 있게 된 것이다. 어두움도 주님께서 지으신 것이다. 『주께서 어두움을 지으시니...』(시 104:20). 
  또한 창세기 1:28에서 주님께서 최초의 인간에게 “땅을 다시 채우라(replenish)”[한글킹제임스성경]고 하셨음을 볼 때, 재창조 이전에 누군가가 땅에 거주했었음을 알 수 있다. 이것은 창세기 1:1의 원래의 창조와 1:2의 재창조 사이의 시간적 간격과, 이전 세상에서의 대반역으로 인한 심판과 멸망을 분명하게 보여준다. 
  하나님께서 섭리로 보존하신 바른 성경으로만 진리의 지식을 알 수 있다. 이목사가 보는 변개된 성서로는 이와 같은 것들에 대해 조금도 성령의 조명을 얻을 수 없다. 그런 성서를 보기 때문에 ‘그 오랜 침묵의 지성소에서 흘러나온 말씀이어서 그토록 위대한 창조가 가능한 것은 아니었을까.’라며 하나님의 능력을 제한시키는 헛소리를 하게 되는 것이다. 하나님께서 오랫동안 침묵하지 않으셨다면 이 우주를 위대하게 창조하실 수 없었다는 말인가? 침묵 수행으로 혼적 달관을 이룬 듯한 그런 무능력한 하나님은 성경의 전지전능하신 하나님이 아니다. 그런 신은 인도에 가면 수도 없이 찾아볼 수 있다. 


  또 이목사는 같은 글에서 ‘여호와는 모세의 출애굽 드라마를 시작하시기 전 40년 동안 미디안 사막의 침묵을 요구하셨다. 그는 또한 홍해 앞에서 절망하고 당황해하는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가만히 서서 여호와의 구원하심을 보라"고 말씀하셨다. 여호와는 모세의 승계자 여호수아가 여리고성 정복을 위해 그 성을 도는 엿새 동안 침묵으로 행진할 것을 요구하셨다. 예수님도 공생애의 사역을 시작하시기 전 광야에 들어가 40일 침묵의 시간을 보내셨다.’고 했다. 이목사의 논리는 모세가 미디안 땅에서 관상기도를 했고, 홍해 앞의 이스라엘이 관상기도를 했으며, 이스라엘이 여리코 성 주변을 돌며 관상기도를 했고, 예수님께서도 광야에서의 40일 금식기간 동안 관상기도를 하셨다는 식이다. 그는 성경에서 조금이라도 ‘침묵’의 단서가 발견되면 죄다 관상기도에 접목시키려는 그릇된 성경 해석 습성을 보인다. 아, 이것이 ‘한국 교회 최고의 강해 설교자’라는 이의 성경 해석인 것인가? 붉은 색 안경을 쓰면 세상이 붉게 보이고, 파란색 안경을 쓰면 파랗게 보인다. 관상기도 안경을 쓰니 이목사는 성경에서 관상기도만 보고 있는 것이다. 성경을 가르치려거든 그 색안경을 벗고 『안약을 네 눈에 발라 보게 하라』(계 3:18). 


  관상기도라는 것은 거듭나지 않은 광야의 이교도 수도자들이 조용히 눈을 감고 자신의 상상으로 신을 찾아 떠나는 행위였다. 그들은 관상기도를 통해 미지의 신과 주파수를 맞추어 그 신의 음성을 들으려 했다. 이것은 이교도 카톨릭 수도원들에서 행해지는 기도임에도, 이동원 목사는 그것에 매료되어 마치 그것이 성경적인 기도인 양 가르치며 다니고 있는 것이다. 바른 성경이 없어 진리의 지식이 부재한 한국 교회는 그의 꾸준하며, 지속적이고, 또 무척 관상적인 글들을 통해 서서히, 깊숙이 오염되어 가고 있다. 관상기도는 성도의 기도를 도우시는 성령의 역사를 차단시키는 영적 독극물이다. 마치 하나님이 귀가 안 들리시는 것처럼 통성기도로 고래고래 소리를 질러대던 한국 교회가, 이제는 그것이 너무 시끄럽다며 관상기도로 돌아서고 있다. 성경은 『모든 일을 시험하여 보고 선한 것을 붙잡으라』(살전 5:21)고 말씀한다. 이동원 목사의 관상기도를 시험하여 보았는가? 하나님의 말씀으로 시험해 보았더니 거짓임이 드러났다. 거짓 앞에서 침묵하고 있기에 관상기도의 ‘침묵’에 당하고 있는 것이다. 거짓 앞에 침묵하지 않으려면 바른 성경으로 진리의 지식을 갖추어야 한다. 그래야만 속지 않게 되는 것이다. BP 



한승용 / 킹제임스성경신학대학 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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