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애굽이라는 과정을 통하여 이루어진 시내산언약


- 출애굽기의 신학에 대한 연구&nbsp1&nbsp-

(목회와 신학&nbsp1996년&nbsp7월호)

송제근

1. 창세기와의 관련 속에서의 출애굽기 : 하나님나라 역사 진행의 패턴의 변화

창세기는 하나님 나라를 위한 중요한 기초가 아브라함부터 마련된 것을 보고한다. 족장시대의 하나님 나라는 원시역사시대처럼 죄 의 감염에서 보호되는 정도로 소극적으로 진행되지도 않았다. 또 하나님은 그 전처럼 죄에 대해서 구체적인 심판 (창&nbsp6-8,&nbsp11)을 행하시는 정도로 부정적인 진행을 시키지도 않았다. 새롭게 열려진 족장시대에 는 태어나는 자녀마다 모두 하나님 나라 구성원이 되는 능동적인 역사 진행이 이루어졌고, 죄에 대한 심판보다도 구원이 적극적으로 성 취되는 방향으로 이루어졌다.

그러나 그 역사의 진행은 그렇게 순조롭지 못하였다. 하나님 나라의 두 요소인 땅과 씨에 대한 하나님의 언약은 세대를 이어가 며 자연적인 혹은 역사적인 도전에 늘 직면하였다. 약속된 땅이지만 죽은 자를 묻을 곳이 없어서 돈을 주고 장지를 사야 했고 기근 과 같은 자연적인 재해가 족장들을 항상 도전하였다. 또 여자들은 세대를 이어가며 불임과 씨름하여야 했고 남자들도 이것 때문에 문제 의 소용돌이 속에서 같이 어려움을 겪어야 했다.

그러나 이런 과정을 다 통과하여 창세기가 끝날 즈음에 땅과 씨에 대한 약속은 아주 희미하게나마 성취되어 가는 것 같이 보인 다. 애굽에 내려가서 하나님 나라의 다음 차원의 전개를 기다릴 씨가 적어도&nbsp70명이 마련된 셈이기 때문이 다 (창&nbsp46:27). 그러나 땅에 대한 약속은 아직도 하나도 성취되지 않고 단지 요셉의 유언의 형태 (창&nbsp50:25)로 약속으로만 남아 있을 뿐이다. 또 그 약속의 땅에 대한 인간적인 노력으로서 돈으로 사서 소유하 게 된 가나안의 막벨라 굴이라는 아주 작은 영지에 세 번째 족장이었던 야곱을 장사하였다. 그럼으로서 장차 그 곳의 모든 백성들 이 그 관영한 죄악으로 심판받아서 그 땅의 소유권을 상실할 때에 법적으로 그 땅의 소유권을 주장할 수 있는 유일한 백성은 그 곳 에 작지만 장지를 남겨놓았던 이스라엘이 될 것을 확인하고 창세기는 마감한다 (창&nbsp49:30).

그러나 특이하게도 네 번째 족장 요셉은 가나안에 장사하라고 명해지지 않았다. 세 번째 족장의 뼈와 네 번째 족장의 해골 이 같은 장소에서 합쳐지기까지 (창&nbsp50, 수&nbsp24:32) 엄청난 역사의 간격이 필요하나 이 간격동 안 하나님 나라가 씨에 있서나 땅에 있어서나 완성을 볼 것이다. 그래서 요셉의 해골은 그가 살았을 때처럼, 아니 그때보다 휠 씬 더 긴 기간을 통하여 또 한 번의 긴 인내의 세월을 보내어야 했다. 이 뼈들은 단순히 개인적인 역사의 성취를 말하는 것이 아니 라 하나님이 계획하셨던 당신의 나라 역사가 드디어는 완성될 것에 대한 증거물이다.

이제 출애굽기에는 땅에 대한 약속의 차원은 이스라엘이 모압 땅에 와서 약속의 땅을 바라보며 언약을 갱신할 때까지 잠시 관심 밖으로 물러나 있고 오직 씨에 대한 약속이 관심의 대상이다. 그래서 창세기에서 족장시대의 하나님 나라 사람의 마지막 숫자 (창&nbsp46:27)였던&nbsp70인이 출애굽기의 초반에 한 번 더 확인되었 다 (출&nbsp1:5). 오직 이&nbsp70명으로 마감된 족장을 통한 하나님 나라의 역사는 이제 새로운 전기 를 마련하게 될 것이다. 이제는 개인으로서가 아니라 민족으로서의 하나님 나라의 역사가 시작되게 되었다. 이것은 이미 민족을 이루 고 왕국까지 이룬 다른 민족들에 비하여 엄청나게 늦은 출발이지만 하나님은 당신의 작정을 이루심에 서두르심이 없었다.

2. 입(入)애굽은 출(出)애굽을 전제로 !

이스라엘이 애굽에 내려갈 때부터 애굽은 그들이 영구히 정착할 땅은 아니었다. 잠시 나그네로 있을 목적으로 그 곳에 내려 간 것 뿐이다. 이미 애굽은 족장 아브라함이 약속의 땅 가나안의 기근을 피하여 인간적인 계획을 따라서 내려가 본 그러나 실패를 경 험한 곳이기도 하다. 그렇기 때문에 이스라엘이 그 땅을 자신의 것으로 생각하지 않아야 했다.

그리고 그 땅의 백성들도 역시 이스라엘을 자신의 백성으로 받아주지 않았고 오직 종으로서만 간주할 뿐이었다. 아무리 그 속에 서 언어를 배우고 문화와 관습을 익혀도 애굽이라는 세상과 동화될 수 없는 것이 이스라엘이었다. 이제 족장 요셉이 애굽을 풍요롭 게 만들어 준 것을 알지 못하는 왕조가 왕조변화가 무쌍한 애굽에 일어났다. 번창일로에 서서 완전한 민족이 되어가는 설명이 불가 한 이상한 백성 이스라엘을 이 왕조의 왕들은 경계하고 억누르게 되었다.

출애굽은 이스라엘의 시작이 아니었으며 이스라엘의 입(入)애굽은 출(出)애굽을 전제로 하고 있었다. 입(入)애굽의 목적은 하 나님 나라의 씨가 가나안의 기근을 피하여서 살다가 편만하게 되는 것을 예비하는 것일 뿐이다. 그러므로 애굽에서 그 나라 백성으로 서 편안한 삶을 살고자 하는 이스라엘 속에 있는 세상성(世上性) 때문에 이스라엘은 하나님의 진노의 대상이 되었다. 그런 이스라엘 을 잡아서 종으로 부리려는 애굽도 역시 하나님의 심판의 대상이었다. 애굽이라는 세상과 연결된 강인한 끈을 끊기 위하여 하나님의 심 판과 재앙이 한 둘 정도 필요한 것이 아니라 열가지나 필요하였다. 그러나 이스라엘 속에 있는 애굽과 연결된 그 세상성의 끈은 애굽 이 가진 것보다 더 강인했다. 이것을 끊어버리는 데는 그 많은 심판과 이적과 기사를 체험한 것으로도 부족하였다. 출애굽한 장정 모 두가 사막에서 엎드려지고 심지어 그 위대한 영도자 모세조차 이스라엘이 가진 세상성의 끈 때문에 약속의 땅에 들어가지 못하고 오 직 두 사람만이 가나안에 들어가는 처참한 역사를 기록했다. 그러므로 출애굽은 애굽이라는 외적인 세상성으로부터의 탈출임과 동시 에 이 세상의 삶을 사랑하는 이스라엘 안에 있는 내적인 세상성으로부터의 탈출이다.

우리는 이제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이 세상성으로서 부터 탈출시키기 위하여 어떻게 세 대상을 다루셨는가를 보고자 한다. 먼저 는 하나님 나라의 일을 할 지도자이고, 두 번째는 하나님 나라의 백성이고, 세 번째는 하나님 나라의 대적이다.

3. 첫 번째 대상 : 지도자 모세

이스라엘의 애굽 생활은 한편으로 이스라엘이 민족으로 형성되어서 하나님 나라 역사를 이어가는데 필요한 과정이지만 이 세상성 을 끊어버리는 고통이 따라야 하는 것이었다. 이 역사를 이루기 위하여 하나님은 지도자를 일찍부터 역사의 과정속에 준비시키시고 때 가 되매 세우셨다. 민족으로 형성된 이스라엘을 종으로 부리며 자신 속에 묶어두려고 실시하는 바로의 치밀하고 엄중한 계획 한가운데에 서 하나님은 당신의 지도자를 준비시키는 특이한 한 방법을 택하셨다. 그것은 적의 심장부인 바로의 궁중안에서 이 지도자가 길러지도 록 한 것이다. 그러나 이것도 지도자를 마련하는 한 과정일 뿐 정작 그가 원숙한 지도자가 되기 위하여 여러 단계를 통과하여야 했 다.

먼저 애굽이 자신은 강해지면서 동시에 이스라엘은 약하게 만드는 전략을 구사하였다. 즉 국고성 비돔과 라암셋을 짖는 고역 을 이스라엘 백성이 하도록 하였다 (1:11). 그러나 하나님의 은혜의 손이 머물러 있는 이스라엘은 고역을 하면 할수록 이전보 다 더욱 번식하고 창성하게 되어 그런 계획을 만든 애굽 사람들이 근심할 지경이었다 (1:12). 그래서 더욱 엄격한 조건가운데 노 동을 하게 하고 남자 아이들은 태어나면 산파들이 다 죽이도록 하였다. 그러나 하나님의 은혜는 다시 이런 이스라엘 위에 머물러 있어 서 산파들이 하나님을 두려워하여 이런 일을 할 수 없게 되었다 (1:17-21). 그래서 바로는 세 번째 조처로서 이스라엘을 더 욱 조였다. 남자 아이가 나면 다 나일강에 던지라고 명한 것이다. 그러나 오히려 이 어려운 상황속에 세 여인들의 활동을 통하여 물 에서 건져낸 자 모세라는 지도자를 적진의 한가운데서 키우시는 하나님의 계획이 성취되었다 : 준엄한 왕명을 거역하고 과감히 아들 을 숨겨 키운 한 레위 여자의 믿음과 용기, 바로의 딸의 불쌍히 여김, 그리고 이 불쌍히 여기는 감정을 파악하고 히브리 여인중 의 한 사람인 이 아들의 어머니를 아들을 키울 사람으로 바로의 딸에게 과감히 소개하는 기지에 찬 누이.

그러나 하나님 나라의 역사는 비록 지도자로 지정받은 사람이라도 자신의 때에 자신의 방법으로 이루어가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 의 때에 하나님의 방법으로 이루어지는 것임을 출애굽기는 보여준다. 모세는 애굽의 왕자로 키워지면서 아마도 육신의 어머니를 통하 여 자신이 이스라엘 사람이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을 것이고 백성의 구원을 위한 생각들을 키워나갔을 것이다. 그러나 이스라엘 사람 들 앞에서 자신을 드러내는 첫 번째 행동이 실패로 돌아가는 경험을 하였고 (2:11-15), 자신의 청춘을 다 보내고 자신의 모 든 꿈을 사막의 모래에 묻는&nbsp40년의 시간이 필요하였다 (2:16-25). 자신의 꿈 뿐 아니라 심지어 하나님 나라 의 약속조차 자신의 시대에 이루어지지 않을 수도 있다는 것을 깨닫는데 이 시간이 필요하였을 것이다.

그러나 모세가 가졌던 절망감과 포기하는 마음이 너무 깊었기 때문에 정작 하나님의 때에 하나님의 방법으로 일할 때가 되어 하 나님의 부르심으로 역사앞에 나서야 함에도 불구하고 나서기를 끈질기게 거부하였다. 하나님의 때는 육신적으로 한 사람의 가능성이 가 장 많은&nbsp40대가 아니라 늙은&nbsp80대라는 특이한 사실을 모세는 받아들일 수가 없었을 것이다. 또 하나 님의 방법은 자신이 바로의 왕자로 있을 때에 그 권력의 자리를 이용하여서 하는 것이 아니라 목자라는 일개 촌부가 되어서 당시의 막 강한 권력자 앞에 서는 것이라는 점을 그는 아마 용납할 수가 없었을 것이다. 그래서 그는 다섯 번이나 하나님의 소명에 대하여 소극 적 혹은 적극적으로 거부하였고 (3:11,13,&nbsp4:1,10,13), 또 하나님은 인간적인 자신감은 이제 완전히 없 어진 이런 지도자의 모든 질문에 답하며 끈질기게 설득하였다.

모세의 네가지 질문은 합리적인 것이었고 이 질문에 대한 하나님의 대답도 만족할만한 것이었다.

첫 번째 질문은 모세 자신이 과연 지도자로 세워졌는가 하는 것이었다 (3:11). 이 질문에 대해 하나님은 당신이 모세 와 함께 할 것이며 이스라엘 역사에서 가장 중요한 사건인 이 산에서의 '섬김' 즉 하나님과의 언약을 세울 모든 준비를 하게 할 것 이라고 응답하신다 (3:12).

두 번째 모세의 질문은 자신을 보낸 하나님을 누구라고 백성에게 알려야 할 것인가 하는 것이다 (3:13). 이 질문에 대해 서 하나님은 백성들이 이미 알고 있는 족장들의 하나님으로 자신을 나타내실 뿐 아니라 (3:6), 이제 새로운 시대에 새로운 하나님 의 자계시를 주심으로 응답하셨다 (3:14-15). 이 자계시는 사도 바울의 서신들에서 아주 잘 나타나듯이 성경이 현실의 문제 를 다루는 특징이 잘 나타나는 것이다. 즉 현실의 구체적인 문제에 대하여 그 현상 자체만을 해결하는 것이 아니라 그런 종류에 속하 는 모든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근본적인 답변을 줌으로서 문제를 철저히 해결해 버리는 것이다. 한글 개역이 영어의 흠정역(KJV) 을 따라서 사용하고 있는 '여호와'로 알고 잘못 발음하고 있는, 아직도 완전한 해석이 어려운 특이한 하나님의 이름이 새 시대의 하 나님 나라에게 주어졌다 (3:14). 이 현재와 미래의 역사를 위한 하나님의 이름인 '여호와'는 이제 과거의 하나님의 이름인 '아 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의 하나님'과 결합이 되었고 이 결합된 이름이 이스라엘에 영원히 기억될 이름인 것으로 선포되었 다 (3:15). 이렇게 하나님의 자계시의 완전성이 보여짐으로서 시간세계속에서 하나님 나라의 역사가 완성될 근본적인 준비가 마련되 었다. 또 하나님은 모세의 질문에 대답하면서 동시에 구체적인 출애굽의 과정도 설명하신다 (3:16-22).

세 번째 모세의 질문은 그런 지도자를 그런 하나님이 보내는 증거가 무엇인가 하는 것이다 (4:1). 이 질문에 대하여 하나 님은 철저하게 대답하셨다. 즉 하나의 증거만을 보이신 것이 아니라 세가지씩이나 표징과 이적을 제시하셨다 : 뱀이 된 지팡이, 문둥 병이 걸린 손, 나일강물이 피가 되는 것 (4:2-9). 이 대답도 하나님은 단계를 높여가면서 하셨다 : "그 처음 표징을 받 지 아니하여도 둘째 이적의 표징은 믿으리라...,&nbsp... 그들이 이 두 이적을 믿지 아니하며 네 말을 듣지 아니하거 든..." (4:8-9). 인간의 필요에 자상하고 주의깊게 맞추어 오신 하나님의 응답이었다.

모세의 네 번째 의문은 지도자의 중요한 자질인 말하는 능력이 없는 자신에게 있었다 (4:10). 여기에 대한 하나님의 대답 도 철저하고 근본적인 것이었다. 입을 창조하고 만드신 이가 바로 하나님이시고 그 하나님이 모세의 입과 함께 있을 것이다는 대답 을 주셨다 (4:11-12). 창조와 구속은 이렇게 같은 동전의 양면과 같은 것이다. 하나님은 이것이 너무나 당연한 사실임을 되받 아 질문하는 형태로 답변하심으로 나타내셨다.

그러나 이런 모든 하나님의 대답에도 불구하고 모세의 심중에는 근본적인 불순종과 완고함이 있었고 이것들은 하나님의 진노하심으 로야 부숴질 수 있는 것이었다 (4:14). 그러나 하나님은 진노 속에서라도 모세와 아론이라는 이원적인 지도체제를 마련하심으로 모 세의 요구에 응답하셨다. 모세는 형 아론에게 하나님과 같이 될 것이요 아론이 모세를 대신하여 백성에게 말할 것이었 다 (4:15-17,&nbsp6:28-7:7). 이런 이원지도체제는 모세의 현실적인 요구에 응답으로서 주어진 것이지만 바 로 이 지도체제가 훗날 하나님이 원래 의도하셨던 모세를 통한 단일지도체제의 목적 그 자체를 위협하는 요인이 되기도 하였다 (미리암 과 아론의 도전, 민&nbsp12).

그러나 지도자의 마음속에 지도자 의식이 한 순간에 완성될 수는 없었다. 이 의식은 조심스럽게 시작되었고 역사가 진행이 될수 록 자라났으며 절망과 회복을 반복적으로 경험하면서 완전을 향해서 나갔다. 최초로 백성을 설득하여 출애굽의 동기를 부여하는 일은 성 공적으로 하였으나 (4:31) 대적은 본격적인 도전으로 나왔다. 바로는 자신의 간역자들과 이스라엘 패장을 통하여 이스라엘 백성들 이 자유정신을 가지지 못하게 하기 위하여 한가한 시간이 없애는 전략을 구사하였다. 즉 벽돌 만드는 사역을 더 어렵게 하여 육체적 인 고통때문에 자유에 대해서 생각할 여유가 없도록 하는 전통적인 지배자의 악한 전략을 구사하였다 (5:1-18). 그 결과는 바로 가 목적한대로 백성들의 절망감으로 나타났고 이것은 모세와 아론에 대한 그들의 도전으로 이어졌다 (5:21). 백성들의 도전은 우 선 하나님을 향한 것이 아니라 지도자에 대한 것이었다 : "여호와께서 너희를 감찰하시고 판단하시기를 원하노라." 그러나 이것은 모 세의 지도자 의식이 한 단계 발전할 계기가 되었다. 모세는 하나님께 질문식으로 항의하였다 (5:22-24). 이에 대해 하나님 은 약속의 말씀과 함께 바로에게 할 말과 지팡이를 뱀이 되게 함으로 하나님의 능력을 보여줄 것을 명하셨 다 (출&nbsp6-7). 하나님의 계시의 특이성은 이런 이적을 말씀하심과 동시에 그 이적을 보는 바로의 마음이 강팍하 게 되어서 그가 하나님의 뜻을 따르지 않을 것을 미리 말씀하신다는 것이다. 세상은 이적이 일어날 때 그 이적의 힘은 느끼지 만 그 이적의 원인자를 두려워하지 않을 것이고 그 결과 세상의 멸망이 자초될 것이다. 이 사실을 아는 것이 이스라엘의 지도자에 게 중요한 것이었다.

이제 모든 이적을 하나님의 명령을 따라 행하는 동안 모세의 지도자 의식은 명확하게 성장하였다. 이스라엘이 애굽을 떠난 후 에 그 동안 받았던 재앙으로 애굽이 망한 사실을 바로는 알지 못하고 자신의 마지막 힘을 모아서 이스라엘을 뒤에서 ㅉ아오며 위협하였 다. 이에 대해 이스라엘 백성이 절망에 빠져 모세를 원망할 때 (14:10-12) 모세는 하나님의 능력에 대해 힘있고 확신 에 찬 태도를 취하였다 (14:13-14). 모세는 어떻게 이 난관을 헤쳐 나갈 것인가에 대한 계시를 하나님께로부터 아직 받지 못 하였기 때문에 이러한 모세의 태도는 그의 영적 지도력의 발전을 말해주는 중요한 증거라고 할 수 있다. 영적 지도력의 실체는 지도 자 자신의 영적 능력의 성장에 달린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창조와 구속을 주관하신다는 사실을 지도자가 어떻게 실제적으로 믿느냐 에 달린 것이기 때문이다. 모세는 이러한 확신에 찬 말을 선포하고 나서 하나님께 간구한 것 같고, 이 간구에 대하여 하나님은 질문 형의 답변을 주신다 (14:15-18). 이 답변과 함께 하나님께서는 최대의 현시적인 능력을 행하셨고 이에 대하여 이스라엘이 벅 찬 감격에 넘쳐서 부른 감사의 찬양(출&nbsp15)은 이스라엘 역사를 관통하여서 하나님께서 능력으로 자기 백성을 인도하심 을 계속적으로 찬양하고 간구하는 중요한 기초가 되었다. 출애굽에 보이셨던 하나님의 능력은 시편과 선지서에서 가장 많이 인용되는 주 제의 하나가 되었다.

이런 엄청난 경험을 한 이스라엘의 이후의 역사는 믿음의 역사로 진행될 것을 기대할 것이었으나 현실은 정반대였다. 애굽을 뒤 로 하고 시내산을 목적으로 하고 행진을 계속할 때에 삼일동안 물이 없는 삶의 현실적인 고통속에서 이스라엘은 다시 모세를 원망하 게 되었다 (15:24). 이 예기치 못한 문제에 봉착하고 나서 모세는 새로운 역사진행의 페턴을 학습한다. 자신이 미리 예상하여 서 하나님께 그 대책을 간구하거나 하나님이 미리 알려주시던 역사 진행이 아니라 어떤 상황에서나 하나님의 능력을 절대적으로 신뢰하면 서 그 상황에 능동적으로 대처하는 새로운 지도자가 되어가야 하는 것이다. 그래서 그는 여호와께 부르짖었고 이 새로운 발전을 미 리 예비하신 하나님은 그 문제에 대한 대답을 주실 뿐 아니라 이스라엘과 하나님 사이에 있어야 할 행동원리인 법으로 이스라엘을 훈련 하기 시작하신다 (15:25-26).

이적과 함께 법이 주어지는 새로운 차원의 경험을 하고 나서도 이스라엘은 계속해서 직면하는 현실적인 어려움에 대하여 믿음으 로 인내하지 못하고 불평한다. 그들은 모세와 아론을 원망할 뿐 아니라 하나님도 자조적으로 원망하는 타락에 이른다 : "우리 가&nbsp... 여호와의 손에 죽었더면" (16:3). 여기서 모세는 지도자 의식의 새로운 차원을 배우게 된다. 즉 백성 들의 타락의 근본원인이 자신의 지도력의 부족에 있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에 대한 범죄에 있다는 것을 지적할 수 있었다 : "너희 의 원망은 우리를 향하여 함이 아니요 여호와를 향하여 함이로다" (16:8). 이어서 만나와 메추라기로 이스라엘의 육적인 양식 의 문제를 해결하고 나서도 안식일의 계명을 이스라엘이 어겼을 때 모세는 정당한 노를 발할 수 있게 되었 다 (16:19-20). 또 하나의 생존의 문제인 물부족으로 이스라엘이 모세를 원망할 때에 그 원망과 시험이 자신을 향한 것이라기 보다 여호와를 향한 것임을 예리하게 지적할 수 있었다 (17:2). 여기서 모세는 백성들의 잘못을 지적하며 고칠 수 있는 지도자로 서 서게 되었다. 이런 성장 이후에 모세는 시내산에서 하나님과 이스라엘 사이의 언약의 수립을 중재할 수 있게 되었다.

4. 두 번째 대상 : 백성 이스라엘

하나님이 당신의 나라로 이루시는 준비는 백성의 숫자가 다 마련되었다고 끝난 것은 아니었다. 가장 중요한 관건은 백성의 마 음 속에 있어야 할 하나님의 백성이 되기 위해 출애굽이 필요하다고 생각하는 의식과 출애굽의 가능성에 대한 확신이었다. 백성들이 숫 자상으로 바로가 위협을 느낄만큼 준비되었고 또 그들이 바로로 부터 받는 박해가 엄청남에도 불구하고 이스라엘 속에는 그 박해에 도전 하여 하나님의 족장에게 주신 약속을 이루기를 원하는 의식과 믿음이 아직 준비되지 않았다. 하나님의 나라에는 이스라엘이 혈통적으 로 허다한 무리가 되는 외적인 조건이 갖추어진 것으로만 되는 것이 아니었다. 오히려 그런 이스라엘 개개인의 내면속에 하나님 나라 의 백성됨과, 단체로서의 의식속에 하나님 나라의 공동체 의식이 성장하는 것이 더 중요한 관건이었다. 인간의 눈에는 하나님이 능력 을 확실히 보이시며 이적을 행하는 가운데 이루어진 외적인 출애굽이 중요하게 보일 수 있다. 그러나 하나님의 입장에서는 이스라엘 의 내면속에 이루어져야 할 하나님 나라의 백성으로서의 개인의식과 공동체 의식의 형성이 더 중요한 것이었다. 이것이 시내산에서 언약 을 수립한 이후에라도 온전히 형성되지 않았으므로 드디어는&nbsp20세 이상의 출애굽한 장정들은 단 두 사람을 제외하고 는 사막에서 엎드려지는 비극이 일어난 것이었다 (민&nbsp14). 그러므로 외적인 출애굽과 함께 내적인 출애굽이 명확 히 성취되어야 한다. 이런 내적인 출애굽은 때로는 혁명적으로, 때로는 점차적으로 성취되어 갔고 이것을 위하여 하나님은 때로는 심판 과 질타(예: 출&nbsp32)로, 때로는 세밀한 여행계획(예: 출&nbsp11:17)과 법을 교훈하심 (예: 출&nbsp15:26)으로 저들을 인도해 나가셨다. 이 점에서 우리는 오히려 내적인 출애굽을 위하여 외적인 출애굽 의 복잡한 과정을 의도적으로 만드신 하나님을 더 많이 생각하게 된다. 그렇지 않고서는 대적 바로의 마음을 출애굽이 끝날 때까지 계 속해서 강팍하게 하시는 하나님의 의도를 완전히 이해할 수 없을 것이다.

이스라엘은 혈통적으로 숫자가 많아지는 과정은 하나님께서 보호하심으로 이루어졌다 (출&nbsp1). 하나님의 나라 를 위하여 하나님은 초자연적인 섭리를 자연적인 출산과정 속에 보이셨다. 분만속에 나타나는 초자연적인 하나님의 섭리를 따르는 두 산 파는 하나님을 경외하는 사람이었다.

이제 이스라엘에게는 과거의 위대한 족장들의 역사가 있었지만 그것이 어떻게 이루어질 지를 알 수가 없었고 다만 하나의 전설 과 같이 자신들의 의식세계속에 남아 있을 가능성마저도 있었다. 이런 중에 무엇보다도 그 역사의 핵심인 하나님이 족장들과 맺으신 언 약을 기억하는 것은 인간이 아니라 하나님이었다 (2:24). 하나님이 출애굽의 때를 작정하신 것은 이스라엘이 받는 학정과 고 통 그 자체 때문이라기보다는 그 고통을 통해서 장차 놀라운 하나님 나라의 역사를 이룰 것을 위하여 족장들과 세우신 언약을 기억하셨 기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출애굽 자체가 목적이 아니라 그 언약을 이제 이루는 것이 목적이다. 출(出)애굽은 입(入)애굽의 당연 한 결과였고 입(入)애굽의 목적은 하나님의 나라가 이제 민족으로 형성되는 준비를 하는 것이다. 그 목적은 모세를 부르시는 첫 장면 에서 더 구체적으로 나타났다. 이제 이스라엘을 애굽에서 불러내어서 "이 산에서 하나님을 섬길" 근본 목적을 제시하셨 다 (3:12). 이 '섬김'은 하나님의 언약 백성으로서 이스라엘이 여호와만을 하나님으로 섬기기로 작정한 것을 나타낸다. 반면 에 하나님은 이 산에서 이스라엘만을 세상의 모든 민족중에서 자신의 백성으로 삼으실 것을 언약하실 것이다.

이런 이스라엘에 대하여 하나님은 "내 아들, 내 장자라" (4:22,23), "내 군대, 내 백성"이라고 (7:4) 애굽 을 향하여 선언하신다. 그러나 이스라엘은 자신들의 족장들이 언약을 맺은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의 하나님"과 관계를 할 뿐 아니 라 새로이 자계시를 주신 "여호와 하나님"과 현재와 미래의 역사를 이어나갈 것이라는 하나님 나라의 역사의식을 가진 특수한 민족으 로 알고 행동하기까지 많은 역사속에서의 실패와 성공의 경험이 필요하였다.

그들의 기억속에 희미하게 남아있는 과거의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이 섬기던 하나님"에서 더 나가서 현재와 미래의 "여호 와 하나님"과의 첫대면은 아론과 함께 나타난 모세가 보인 이적과 기사를 통해서였다 : "여호와께서 이스라엘 자손을 돌아보시 고 그 고난을 감찰하셨다함을 듣고 머리숙여 경배하였더라" (4:31). 그러나 이 기본적인 믿음은 곧 시련에 봉착한다. 바로가 모 세와 처음 만나고 난 뒤 백성들의 의식속에 새로운 개혁이 시작되는 것을 막기 위하여 자신의 간역자들과 이스라엘의 패장을 통하여 이 스라엘에게 더 가혹한 조처를 취하였다 (5:7-18). 이것은 백성들 속에 족장들의 하나님이 형성하기로 약속한 하나님의 백성으로서 의 의식이 미성숙된 것을 드러내는 계기가 되었다. 그들은 이런 고난을 모세와 아론이 가져왔다고 판단하여 그들을 원망하였 다 (5:21). 출애굽이 애굽사람들의 환상적인 환호를 받으면서 출발하는 것이 아니라 아주 현실적이고 냉혹한 도전을 극복하고서 야 이루어지는 것이라는 점을 이스라엘은 전혀 예상하지 못하였다. 여기에 대해 하나님은 모세를 통하여&nbsp10가지 재앙 을 바로에게 행하게 하심으로 하나님의 능력을 현시적으로 나타내셨으며 백성들의 믿음의 차원을 높이 끌어 올리시려 하였다.

처음에는 재앙들이 애굽의 전역에 내렸으나 파리 재앙부터는 이스라엘이 사는 고센 땅을 제외한 다른 애굽지역에만 내림으로 하나 님이 이스라엘을 자신의 재앙의 범위밖에 두시고 구원하심을 애굽과 이스라엘에게 동시에 보이셨다 (8:22). 이로서 하나님이 재앙중 에라도 이스라엘을 자기 백성으로 특별한 관심을 가지고 계신 것을 알게 되었고 이스라엘은 그런 하나님을 더욱 신뢰할 수 있게 되었 다.

바로와 그 신하들이 마음을 강팍하게 된 것이 결국에는 하나님의 의도에 의해서 된 것임을 밝힌다. 이 의도의 가장 중요한 목 적은 이스라엘을 세상인 애굽과 점차적으로, 결국에는 완전히 단절시키면서 반면에 여호와 하나님과는 더 깊고 완전한 관계를 이루어 가 는 것이다. 특히 애굽을 향한 마지막 재앙인 애굽의 장자의 죽음은 동시에 이스라엘의 구원을 의미한다는 데서 하나님의 행동의 양면성 을 드러낸다 (출&nbsp12-13). 애굽과 세상의 심판은 동시에 이스라엘과 하나님 나라의 구원을 의미한다. 이 마지 막 재앙의 날은 이스라엘이 구원을 받아 애굽에서 떠나는 날이기도 하다. 이것으로 이스라엘은 애굽으로부터 완전히 단절하게 되었 다. 적어도 외적인 세상성과의 단절에서는 그러하다. 그러나 이것이 완전한 단절이 되기 위해서는 장차 내적인 세상성과의 단절의 아픔 을 경험해야 했다.

또 하나님은 애굽에 내린 마지막 재앙이 또 한편에서는 이스라엘에게 영원한 구원의 예식인 유월절이 되도록 하셨 다 (출&nbsp12-13). 이것은 이스라엘이 백성을 이루고서 하나님과 최초로 법적으로 만난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것으 로 이스라엘은 하나님과의 만남에서 한 차원 더 깊이 들어가게 되었다. 그리고 유월절 예식 때 중요한 것은 이스라엘의 부모들이 자녀 들을 향하여 해야할 요리문답식의 교육이었다 (12:26-27,&nbsp13:14-16). 이 교육을 통하여 이스라엘 속 에 구속사를 통한 하나님 나라의 역사의식이 명확하게 전수되게 하셨다.

하나님이 이스라엘을 세심히 배려하셔서 진로를 잡을 때에 흔히 애굽과 팔레스타인간에 택하는 직선통로를 사용하지 않으셨 다. 잘 쓰이는 그 통로는 전쟁이 늘 있는 곳이고, 또 이스라엘이 전쟁을 볼 때에 하나님의 군대로 아직 성장하지 못였기 때문에 애 굽으로 돌아가려고 할 가능성이 많기 때문이었다 (13:17).

출애굽의 시련이 끝났는가 싶었는데 바로의 군대가 마치 끈질긴 우리의 세상적인 습관과 같이 약속을 어기고 우리를 얽어매듯 이 이스라엘을 뒤에서 ㅉ아왔다 (출&nbsp14). 이것이 또 하나의 이스라엘 속에 생겨야 할 하나님의 백성으로서의 의식 에 대한 시련임을 이스라엘은 알지 못하였다. 그들은 출애굽의 근본 이유까지 망각하고 노예적이고 세상적인 삶이 구차히 연장되는 것 이 더 낫다고 모세에게 항의한다 : "우리를 버려두라. 우리가 애굽 사람을 섬길 것이라 하지 아니 하더뇨 ? 애굽 사람을 섬기 는 것이 광야에서 죽는 것보다 낫겠노라" (14:12). 이것은 족장들을 입애굽시킨 것과 이제 그 후손들을 출애굽시키려는 하나님 에 대한 근본적인 반역이다. 이스라엘 속에 하나님의 백성으로서의 의식이 완전히 땅에 떨어진 것이다. 이 태도는 모세조차도 예상 치 못했던 것이기에 그는 하나님께 부르짖었다. 그 때 하나님은 전혀 예상하지 못한 해결책을 제시하셨다. 홍해가 갈라지는 사건으 로 이스라엘은 다시금 하나님에 대한 자신들의 불신앙에 대해서 명확하게 인식하며 하나님의 능력을 신뢰할 수 있는 기회를 가졌다. 그 래서 이 때에 비로소 이스라엘 백성속에 하나님을 경외하는 의식이 생겼고 한 걸음 더 나가서 그 종 모세를 믿게 되었 다 (14:31).

이것은 물론 놀라운 결과이지만 이제 애굽의 위협이 없어진 상황에 새로운 도전이 눈앞에 기다리고 있었다. 그것은 물 그리 고 빵과 고기를 어떻게 먹을 수 있는가 하는 문제였다. 물문제는 장소의 이동에 따라 언제든지 생길 수 있는 것이었고 이스라엘은 시 내산에 이르기 전까지 물문제로 두 번이나 하나님을 시험하고 지도자에게 도전하였 다 (15:22-26,&nbsp17:1-7). 첫 번째 물문제에 대하여 하나님은 물문제를 해결하실 뿐 아니라 출애굽 이 후 두 번째로 법을 주시는 은혜를 베푸셨다 (15:26). 이것으로 이스라엘은 더욱 하나님과 관계를 공적으로 할 수 있는 기회 를 얻었다. 그러나 두 번째의 물사건을 일으킨 이스라엘에 대하여 모세는 그들이 모세와 다투었을 뿐 아니라 궁극적으로 하나님과 다투 었다고 선언한다 (17:2). 이들이 얼마나 하나님과의 관계를 피상적으로 맺고 있나를 드러내는 것이었다.

물문제와 함께 빵과 고기를 먹는 문제는 이스라엘의 존재하는 이유에 대해서 근본적으로 생각하게 만드는 것이다. 그들은 아 주 생생하게 사실적인 표현을 사용하였다 : "우리가 애굽 땅에서 고기가마 곁에 앉았던 때와 떡을 배불리 먹던 때 에" (16:3). 여기에 하나님을 모독하는 자학적인 말이 덧붙여졌다 : "....여호와의 손에 죽었더면 좋았을 것을 너희 가 이 광야로 인도하여&nbsp... 주려 죽게 하는도다" (16:3). 이런 역사를 통하여 이스라엘이 궁극적으로 시인 할 수 밖에 없는 것은 이스라엘이 하나님께 정함이 없으며 하나님을 불신하며 그 약속에 대한 인내가 부족하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 런 것보다 더 중요한 사실은 이스라엘 속에 진정한 구속역사에 대한 이해가 없었다는 것이다. 그래서 구속역사 전체가 무의미하게 되 는 것 같은 위기감이&nbsp19장에서 시내산에 이르기까지 늘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시내산에 이르기까지 모든 역사에 소망이 있는 유일한 이유는 하나님은 이런 준비안된 백성들을 데리시고라도 당신의 역사를 이루려고 끝까지 인내하시기 때문이다.

5. 세 번째 대상 : 대적 바로왕

하나님 나라의 구성원으로는 하나님과 중보자 혹은 지도자와 백성이 있다. 그러나 이 하나님 나라가 역동적으로 움직이는데는 의 외로 하나님 나라의 대적이 중요한 역할을 하기도 한다. 그것은 대적이 자신의 욕심을 이루려고 하는 행동 자체가 역사적인 의미를 가 지기 때문이 아니라 그것이 하나님 나라를 이루는데 궁극적으로는 중요한 기여를 한 셈이 되기 때문이다. 이제 민족으로 이루어질 이스 라엘에서 이런 기능을 하는 사람이 애굽의 바로왕이다.

출애굽 역사에서 가장 특이한 현상가운데 하나는 하나님이 이스라엘을 단순히 구원하시는 것이 아니라 그 대적까지 간섭하셔서 그 들의 마음을 강팍하게 하여 하나님의 구속사역을 받아들이지 않도록 한 것이라는 점이다. 이렇게 성경이 그들을 보는 시각은 후대에 북 조 이스라엘과 남조 유다를 징계할 때에 사용하셨던 앗수르를 '막대기'로 보았던 하나님의 시각과 동일하 다 (사&nbsp10:5). 그러나 여기서 하나님이 이렇게 의도하셨던 더 중요한 이유는 하나님이 이스라엘에 대해 지극한 관 심을 가지고 계시기 때문이다. 애굽도 역시 하나님 나라 형성의 도구가 되는 것이다. 그러나 이 애굽의 도구성은 이 도구의 의지 를 하나님이 조장함으로 나타나는 것이 아니라 바로의 마음 속에 있는 타락하고 완악한 상태를 하나님의 은혜로 억제하지 않으시고 버려 두심으로 나타난다.

바로는 이스라엘이 민족을 이룰 초기부터 대적이었다. 이스라엘이라는 하나의 민족으로서의 하나님 나라를 이루기 위하여 하나님 의 초자연적인 섭리가 출산이라는 자연현상 속에 있는 것을 바로는 이해하지 못하고 방해하고자 한다 (출&nbsp1). 바로 는 이스라엘이 하나의 민족으로 성장하는 것이 자신에게 정치적인 위협이 되므로 이것을 방지하려고 한 것이었다. 하나님 나라의 역사 가 세상 나라 정치역사적인 관점에서 해석되어서 적극적인 견제를 받게 되었다. 그러나 그가 원하는 결과를 얻을 수는 없었다.

애굽인을 살인하고 도망한 이스라엘인 출신의 애굽왕자 모세가 오랜 세월 후에 다시 와서 이스라엘 백성을 나가게 하라는 요청 을 할 때부터 바로의 이스라엘 박해는 본격적으로 시작되었다 (출&nbsp5). 바로는 세상적인 기지를 집요하게 사용하여 서 의도적으로 이스라엘이 노예의 자리에서 사상적으로 동요하지 못하도록 벽돌을 더 어려운 조건하에서 만들게 하였 다 (5:10-21). 이스라엘 백성들의 사기를 초반부터 꺽어 놓고 백성과 지도자 모세 사이에 불신을 조장하여서 하나님 나라의 역 사가 성사되지 못하도록 한 행동이었다 (5:21). 그러나 이런 백성들의 부정적인 반응을 예상하지 못한 모세는 하나님께 부르짖었 다. 그러나 이것 때문에 오히려&nbsp10재앙으로 이어지는 하나님의 구속 역사가 본격적으로 시작되는 계기가 되었다.

출&nbsp5-14장까지의 복합적인 사건에서 바로는 점차적으로 하나님의 능력과 힘의 실제를 더 많이 알게 되었 다. 재앙의 숫자가 늘어갈수록 처음에 모세를 만났을 때에 보였던 바로의 기고만장함은 점차 꺽이고 이스라엘의 출애굽을 당연한 사실 로 인정하여 갔다. 심지어 우박 재앙 후에 자신의 죄에 대한 고백까지 한다 : "이번은 내가 범죄하였노라. 여호와는 의로우시고 나 와 나의 백성은 악하도다" (9:27). 그러나 그 모든 재앙에도 불구하고 바로는 계속적으로 거짓을 하고 약속을 깨었고 드디어 는 애굽의 모든 장자가 죽는 재난에까지 이르게 되었다. 이것이 바로 애굽의 멸망이라는 사실을 애굽사람들이 시인하였다 : "우리 가 다 죽은 자가 되도다" (12:33). 그럼에도 불구하고 마지막으로 바로가 남은 병거로 이스라엘을 홍해까지 추적하였고 애굽 의 파국을 경험하게 되었다. 이 때에 애굽이 결국 시인할 수 밖에 없는 것은 자신들이 이스라엘과 싸우는 것이 아니라 그동안 계속해 서 보아왔던 그 능력의 여호와와 싸운다는 것이다 : "여호와가 그들을 위하여 싸워 애굽사람들을 치는도다" (14:25). 위대 한 거짓의 역사에 위대한 파멸이었다. 이 모든 바로의 거짓은 이스라엘을 속이는 것에서 나가서 자신을 속이는 것이고 이것은 거짓 의 아비된 사탄이 철저히 자신을 속이는 속성을 따르는 것이다 (요&nbsp8:44, 딤후&nbsp3:13). 이것 은 또 하나님께서 당신의 나라를 구원하시고 건설하시는 것은 세상 나라를 파멸에 이르도록 버려두시는 것과 같은 사실임을 나타낸다.

6. 언약이 있기 전에 주어진 법과 제도

약속과 언약은 명백히 차이가 난다. 약속은 한 당사자가 다른 당사자에게 어떤 것을 하겠다는 일반적인 행동이다. 그러나 언약 ('브리트')은 그 약속에 대한 법적이고 공적인 보장이자 더 나가서 두 당사자 간의 관계를 근본적으로 규정하는 것이다. 이제 하나 님과 이스라엘 사이에 이 언약은 하나님 나라가 민족으로 형성된 이스라엘이라는 새로운 차원 가운데서 진행되는 것을 목적으로 한 다. 입(入)애굽과 출(出)애굽은 그 자체가 아니라 이 언약을 이루는 것을 최종의 목적으로 한다. 그리고 이 언약은 하나님이 모세 에게 약속하신대로 "이 산에서" (시내산) 이루어져야 하는 것이다 (3:12). 이 언약 속에서 이스라엘은 하나님의 백성으로서 의 삶의 내용, 즉 하나님의 법을 배우고 이행하여야 했다. 즉 언약이 있은 후에 법이 역할을 하며 기능을 하는 것이다.

이스라엘이 가지고 있던 법정신과 법철학은 고대 근동의 다른 백성들이 가졌던 것들과 근본적으로 차이가 난다. 고대 근동에서 는 왕들이 신들로부터 법제정 권리를 부여받아서 백성에게 공포하면 효력을 발휘하며 백성은 거기에 순종하여야 한다. 법은 그 자체 로 최종 목적이 되는 셈이다. 그러나 이스라엘이 가진 법은 그 자체로 최종 목적과 권위를 가지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과 이스라엘 사 이에 하나님은 이스라엘을 자신의 백성으로 삼고 이스라엘은 하나님을 자신의 하나님으로 섬기는 언약에 근거한다. 그러므로 법은 언약 의 하위개념이요 종속개념이다.

이제 출애굽기&nbsp19장 이전까지 이스라엘은 출애굽은 했지만 아직 시내산에 이르지 못했기 때문에 그 언약을 하나 님과 맺지는 못했다. 그러나 이 산에 이르기 전이라도 이스라엘을 하나님의 백성으로서의 삶을 연습하고 또 살아야 했다. 즉 언약 이 맺기 전의 짧은 기간이라도 이스라엘은 법적인 삶을 살아야 하는 것이다. 이 삶을 위하여 하나님은 필요한 때에 필요한 법 (ad&nbsphoc)을 주셨다.

우선 이 삶의 출발은 출애굽하는 그 밤을 기점으로 하였다 (12:40-42). 바로 이 날 밤에 이스라엘은 자신의 구 원 즉 생명을 얻는 예식을 행해야 했고 그 예식을 위한 법도를 배워야 했다. 이것은 매년마다 돌아오는 같은 날짜에 이 예식을 행해 야 하고 이 예식의 의미를 되새기며 새로운 세대에게 전수해야 하는 것을 의미한다.

또한 마라에서도 하나님은 이스라엘에게 "법도와 율례"를 정하시고 이스라엘을 단련하셨다 (15:25). 이 "법도와 율례" 란 표현은 보통 포괄적인 법을 가리킬 때는 복수로 사용되나 여기서는 구체적인 사항들에 대한 것을 의미하는 단수로 표현되었다. 아 마 마라라는 상황속에서 주어진 구체적인 몇가지 법을 나타내는 것 같다. 이렇게 하나님은 구체적인 상황속에서 구체적인 법을 계속해 서 주셨다.

백성들은 만나와 메추라기를 볼 때에 자신들의 소원하던 떡과 고기가 생긴 것에만 관심을 가졌으나 하나님은 이 백성이 하나님 의 구체적인 법도, 즉 안식일 법을 이 상황가운데 배우고 지키는 데에 관심을 더 기울였다. 안식의 원리적인 면은 창조시에 이미 주 어졌고 그것이 백성들에게 구전되었을 것이다. 그리고 안식일 법의 구체적인 내용은 앞으로 주어질 것이다. 그러나 지금 당장 백성들 이 출애굽 이후에 안식일을 지켜야 하는 상황이 생겼다. 안식일에도 음식을 준비하는 일을 해야 하느냐는 문제인 것이다. 이것 때문 에 이제 안식일 법을 주셨고 또 이스라엘이 그것을 지키기를 원하셨다 (16:21-30). 그러나 백성중에는 이것을 이해하지 못하 고 안식일에도 만나와 메추라기를 거두러 나가는 연약함을 보이는 사람이 생기기도 하였다.

또한 시내산에 이르기 전에라도 기본적인 법제도는 있어야 했다. 모세가 하루 종일 백성들의 모든 법적인 시비를 혼자서 다 처 리하였기 때문이다. 방문한 장인의 충고를 따라 지도력을 효율적으로 분산하여 이스라엘을 통치할 법과 행정질서의 근간을 만들게 된 다 (18:13-27). 이것은 시내산에 이르기 전에라도 필요한 법, 행정제도를 필요에 따라 만드는 것이 당연한 것이기 때문이다.

이렇게 준비하신 지도자를 따라서 충만한 숫자의 출애굽한 백성이 준비되었고 또 그 백성의 삶을 위해 당분간 필요한 법들과 행 정제도들이 마련되었다. 이제 필요한 것은 이 모든 것에 궁극적인 의미를 부여해 줄 하나님과 이스라엘 사이에 공식적인 언약관계가 시 내산에서 형성되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