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사는 하나님의 뜻
(데살로니가전서 5:18)

흔히 기독교인들은 삶의 목적을 물을 때 “하나님께 영광 돌리는 것”이라고 합니다. 그럼 하나님께 영광 돌리는 게 뭐냐고 물으면 대답을 못합니다. 그러나 하나님께 영광 돌리는 모습은 여러 가지입니다. 세상에서 빛의 사명인 착한 행실을 하면 하나님께 영광 돌릴 수 있습니다(마5:16). 주님의 능력을 보고 주님께 찬양하는 게 영광 돌리는 것입니다(눅5:26). 하나님께 감사함으로 영광을 돌립니다(고후4:15). 넉넉한 마음으로 헌금을 드리는 것도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것입니다(고후9:13). 

외에도 즐겁게 사는 것이나 주님을 섬긴다는 이유로 고난을 받을 때 부끄러워하지 않는 것도 다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삶입니다. 이런 모든 내용들은 다 하나님의 뜻을 이루는 일들입니다. 그러니까 하나님께 영광 돌리는 것은 하나님의 뜻을 이루는 것과 다르지 않은 말입니다. 하나님의 뜻과 생각이 무엇인지 헤아리고 사는 게 바로 하나님께 영광 돌리는 삶입니다. 오늘은 추수감사절을 맞아 감사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것에 대하여 상고하며 주님의 음성을 듣고자 합니다. 

감사는 순종의 문제입니다 

감사라는 주제로 볼 때 세상에는 두 종류의 사람이 있습니다. 감사하는 사람과 감사할 줄 모르는 사람입니다. 여러분은 어디에 속하십니까? 감사할 줄 모르는 사람도 감사하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는 점에서는 같습니다. 감사할 줄 모르는 것은 감사를 순종의 문제가 아니라, 능력의 문제라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감사는 능력의 문제가 아닙니다. 감사는 순종의 문제입니다. 

“범사에 감사하라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를 향하신 하나님의 뜻이니라” 하나님은 감사를 명령하십니다. 하나님의 명령은 순종하느냐 불순종하느냐 하는 것만 인간이 할 수 있는 것입니다. [고후1:19]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는 예 하고 아니라 함이 되지 아니하였으니 저에게는 예만 되었느니라” 그리스도인은 하나님의 명령에 예수님처럼 ‘예’라고 대답하는 사람입니다. 주님이 감사하라고 하신다면 감사하면 됩니다. 

내 능력으로 할 수 없는 것은 능력의 문제입니다. 그러나 내 능력으로 할 수 있는 것은 순종의 문제입니다. ‘모든 성도는 1억 원씩 헌금하라’고 한다면, 이는 능력의 문제입니다. 능력이 있는 사람은 할 수 있고, 능력이 없는 사람은 못할 것입니다. 능력이 없는데 이런 요청을 받았다면 기도하시기 바랍니다. 기도는 내가 할 수 없는 문제를 하나님께 아뢰는 것입니다. 내 능력이 아닌데 억지로 하면 평안과 행복이 아니라 다툼과 불행이 찾아옵니다. 

‘모든 성도는 범사에 감사하라’고 한다면, 이는 순종의 문제입니다. 감사는 어느 누구든 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능력의 문제는 기도해야 하고, 순종의 문제는 그냥 그대로 하면 됩니다. 감사는 순종하면 됩니다. 감사할 능력이 없어 못한다고 하는 것은 변명입니다. 능력과 순종의 문제를 구별하지 못하면 남을 지배하고 통제하려고 합니다. 아내의 성격을 고치려고 하는 남편이 있다고 합시다. 아내는 남편의 능력 밖의 영역입니다. 그것은 기도해야 합니다. 그런데 자꾸 지적하고 잔소리를 한다면 불행한 가정을 만들 수밖에 없습니다. 

감사하는 것은 사람의 능력 밖의 문제가 아니기에 ‘감사하게 해주세요’라는 기도는 근본적으로 틀린 것입니다. 그냥 감사하면 됩니다. 십일조는 순종의 문제입니다. 이 세상에 십일조가 없는 사람은 없습니다. 감사도 마찬가지입니다. 순종의 문제를 하지 않는 것은 불신앙이요 거역입니다. 하나님은 자기를 거역하는 것을 싫어하십니다. 주님은 이 아침 여러분에게 명령합니다. “범사에 감사하라”고. 

감사는 습관의 문제입니다 

‘범사에 감사하라’는 것이 하나님의 뜻이며 성도라면 당연히 그래야 한다는 점을 말씀드렸습니다. 이제 여러분은 모두 감사하라는 명령에 순종해야 한다고 생각하실 것입니다. 그렇다면 이 시간 이후에 모든 성도들이 다 감사하는 생활을 할까요? 아닙니다. 왜 감사하는 것이 하나님의 뜻을 이루는 것이요, 하나님의 명령이며,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것이란 걸 아는데도 안 될까요? 

순종이나 불순종은 습관의 문제입니다. [렘22:21]에 이런 말씀이 있습니다. “네가 평안할 때에 내가 네게 말하였으나 네 말이 나는 듣지 아니하리라 하였나니 네가 어려서부터 내 목소리를 청종치 아니함이 네 습관이라” 하나님은 이스라엘이 하나님을 듣지 않는 게 어려서부터 습관이라고 하십니다. 즉, 불순종이 습관이 되었다는 말입니다. 감사하라는 명령에 불순종의 습관이 있는 사람은 감사치 않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감사하는 생활을 하려면 감사를 습관화하여야 합니다. 

감사가 순종의 문제라는 말은 다른 말로 감사가 습관의 문제라는 말입니다. 습관이 든 사람은 될 것이고 그렇지 않은 사람은 안 될 것입니다. 감사는 지식의 문제가 아니라 습관의 문제입니다. 인사하는 것은 습관입니다. 후영이처럼 인사를 할 때 90도 각도로 인사하는 것은 습관입니다. 감사는 하나님께 하는 인사입니다. 습관이 들면 하고 습관이 안 들면 천하없어도 안 합니다. 하나님께 순종하는 것과 불순종하는 것은 모두 습관입니다. 여러분, 습관처럼 감사하시기 바랍니다. 

사람들이 기도가 나쁜 것이라고 생각하기에 기도하지 않는 게 아닙니다. 기도하는 습관이 안 붙었기 때문입니다. 감사도 마찬가지입니다. 하나님은 믿는 이들 중에 감사치 않는 사람을 미련하고 허망한 자라고 나무라십니다. [롬1:21] “하나님을 알되 하나님으로 영화롭게도 아니하며 감사치도 아니하고 오히려 그 생각이 허망하여지며 미련한 마음이 어두워졌나니” 크리스천인데 감사할 거리가 없다는 식으로 말하면 안 됩니다. 이미 구원받았음 보다 더 큰 은혜는 없기 때문입니다. 생각이 감사를 만들고 감사는 습관화 되어야 할 수 있습니다. 

감사는 훈련의 문제입니다 

감사하라는 명령이 주님의 뜻이라면, 감사하지 않는 것은 주님을 거역하는 죄입니다. 죄가 무엇입니까? 주님의 뜻과 반대로 사는 게 죄입니다. 생각이 허망하고 미련한 마음 때문에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지 못하고 감사하지 않는다고 했습니다. 안 믿는 사람의 마음이나 생각이야 구원을 모르니 감사할 수 없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을 믿는 사람이 감사하지 않는 것은 마귀에게 마음을 빼앗겼기 때문입니다. 허망한 생각과 미련한 마음은 다 마귀가 주는 마음입니다. 

마귀는 구원받은 것을 의심하게 만듭니다. 또, 구원 받았음에도 구원 받은 것이 감사하지 않도록 마음에서 감사를 빼앗습니다. 의심이든 감사한 마음이 없는 것이든 다 마귀가 심어준 마음입니다. 성도가 감사할 줄 모르는 것은 이미 그 마음과 생각을 마귀가 빼앗았기 때문임을 심각하게 깨달아야 합니다. 마음의 생각은 습관을 만듭니다. 운동이 꼭 필요하다고 생각하면 어려워도 힘들어도 운동을 합니다. 그러나 필요 없다고 생각하면 운동하지 않습니다. 

생각을 바꾸는 것은 훈련으로 가능합니다. 감사할 생각, 그리고 그 생각을 옮기는 일 모두 훈련이 있어야 합니다. [딤전4:7] “망령되고 허탄한 신화를 버리고 오직 경건에 이르기를 연습하라” 믿음은 훈련입니다. 감사도 훈련입니다. 훈련은 잘못된 습관을 버리는 것이요, 좋은 새로운 습관을 들이는 것입니다. 구원 받기 전의 습관인 감사 없는 삶을 버리고, 구원받은 후의 습관인 감사하는 삶으로 바꾸기 위해서는 부단한 자기 훈련이 필요합니다. 훈련은 억지로 하는 것으로 시작합니다. 처음에는 싫어도, 이해되지 않아도, 힘들어도 해야 합니다. 그러다 습관이 붙고 그 다음에는 즐거움으로 할 수 있습니다. 억지로 시작한 훈련이 사람을 행복하게 합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감사는 능력의 문제가 아니라 순종의 문제입니다. 모든 성도는 감사하는 생활을 해야 합니다. 하나님의 명령은 순종하지 않으면 죄가 됩니다. 감사를 생활화하기 위하여 감사의 습관을 들이시기 바랍니다. 똑 같은 일도 어떤 이는 감사하고, 어떤 이는 불평합니다. 그것은 감사에 대하여 습관이 든 사람과 그렇지 못한 사람의 차이입니다. 감사도 훈련이 필요합니다. 여러분의 신앙생활에 감사라고 하는 좋은 습관을 들이기 위해 부단히 자신을 훈련하십시오. 감사는 하나님의 뜻이요, 하나님께 영광 돌리는 것입니다. 감사로 하나님께 영광 돌리는 성도들이 되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