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총과 헌신(단1:1-21)  

기독교 서적 가운데 <신앙 전기를 읽으면 하나님의 일하심이 보인다>는 제목을 가진 책이 있습니다. 저는 동문교회에서 청년들을 지도하면서 우리 청년들에게 신앙의 모델로 제시할 만한 성경적인 인물들이 누구일까 고심을 많이 했습니다. 그런 중에 발견한 구약의 세 인물이 요셉, 다윗, 그리고 다니엘이었습니다. 이 세 사람은 어린 시절부터 청년기와 장년기를 거쳐서 노년에 이르기까지 하나님을 믿는 신앙의 길에 일관되게 매진하였다는 특징을 가지고 있습니다. 청년 신앙의 모델로 제시하면서 장년기나 노년기에 하나님을 만나게 된 사람을 제시하는 것은 이치에 맞지 않습니다. 그리고 이 세 사람은 오늘날 흔히 구분하는 대로 하자면 교회의 울타리 안에서 전임사역하는 바 성직자 혹은 교역자 그룹에 속한 자가 아니라, 일상적인 삶을 살아야 하는 일반 신자들이라는 것이 청년 신앙의 모델이 될 만한 또 하나의 조건이라고 생각을 합니다. 그리고 이 세 사람의 신앙 행적에 대한 기록이 풍성하게 남아있기 때문에 우리는 해당 본문들을 읽고 묵상하면서 많은 감화와 도전을 받을 수 있는 이점이 있습니다. 
  다니엘은 지금으로부터 2,600년 전에서 2,500년전 어간에 지금의 이라크 지역인 바벨론 지역에서 주로 활동한 사람입니다. 구약의 예언서 중 하나인 다니엘서는 그의 삶과 활동에 대해서 그리고 그가 받은 바 이상에 대해서 기록을 하고 있습니다. 분량이 꽤 많고 그 내용이 어려운 부분들이 많이 있기 때문에 단시간에 다니엘서에 대해서 다 말씀드릴 수는 없습니다. 이 시간에는 다만 다니엘의 생애의 특징을 요약적으로 살펴 보면서 신앙의 교훈을 얻고자 하는 것입니다. 저는 이 시간에 다니엘의 삶의 특징으로 네 가지를 말씀드리고자 합니다. 1. 역경과 환난을 통과한 인생, 2. 크게 은총을 받은 인생, 3. 축복의 통로가 된 인생, 4. 뜻을 정한 인생이 그것입니다.      
   

1. 다니엘의 생애는 온갖 역경과 환난을 통과한 인생입니다. 

  한 사람의 생애나 신앙은 진공이나 허공 속에서 생기는 것이 아니고, 그가 처한 여러 환경적인 조건들 속에서 형성되고 성장하게 됩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한 사람의 생애나 신앙을 제대로 이해하기 위해서는 그가 몸 담고 살았던 시대나 나라나 문화 그리고 정신 사조등을 고려해야만 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한 사람을 이해한다는 것은 실로 그 사람의 처지나 입장에 서 보는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분명히 아는 것은 사람이 처한 환경이 유복하고 아쉬울 것 없이 넉넉했다고 해서 좋은 신앙 인격을 가지는 것도 아니고, 처한 환경이 불우하고 비참했다고 해서 그 사람의 신앙이나 인격이 저질이 되는 것도 아니다는 것입니다. 환경에 의해서 지배를 받아서 결정되어지는 자는 있지만, 그가 처한 환경을 극복하고 이겨내는 자들도 있기 때문입니다. 그런 점에서 젊은 시절부터 깨뜨려야만 하는 착각과 망상이 무엇인가 하면 이런 저런 탓을 하는 것이요, 자신의 생에 대하여 운명론적으로 결정론적으로 생각하는 것입니다. 
  그런 점에서 보자면 다니엘은 우리가 겪고 있는 어떤 어려움 보다 더 더 큰 역경과 환난 속에서 자라고 활동했던 사람입니다. 그는 자신이 조국 유다가 신생 바벨론 제국의 강력한 군주 느부갓네살에 의해서 철저하게 멸망하고 파괴되는 것을 소년 시절과 청년 시절에 듣고 목도했습니다. 다니엘의 삶의 이야기는 "유다 왕 여호야김이 위에 있은지 삼 년에 바벨론 왕 느부갓네살이 예루살렘에 이르러 그것을 에워쌌더니"(1:1)에서부터 시작이 되고 있습니다. 구약 역사를 보면 느부갓네살은 3차에 걸쳐 예루살렘을 침략하였으며 결국은 예루살렘 성을 함락시키고 유다 왕국을 멸망시키고 말았습니다. 1차 포로에 끌려간 사람들 중에 한 사람이 바로 다니엘이라는 소년 이었습니다. 
  다니엘이 포로되어 갈 때의 나이는 소년의 때라고 하는 것으로 보아서 10대 였음에 틀림이 없습니다. 다니엘은 어린 나이에 잔인무도한 바벨론 사람들의 포로가 되어서 멀고도 먼 갈대아 땅으로 포로되어 갔고, 그곳에서 70여 년의 나머지 생애를 다 보내었습니다. 소위 그는 유대인 가운데 최초의 디아스포라가 된 셈입니다. 나라 잃은 슬픔, 포로민이 겪는 억울함을 말로 표현할 수가 있겠습니까마는 유대인들에게는 바벨론 포로(babylon captivity)라고 하는 것이 또 다른 차원에서의 엄청난 충격이 되었습니다. 유다는 하나님이 사랑하시는 다윗의 나라입니다. 하나님께서 다윗을 봐서라도 결코 버리지 않겠다고 한 것이 바로 유다나라였습니다. 그런데 그 유다도 바벨론의 침략의 발굽아래 짓밟혀서 땅은 초토화되고 수 많은 사람들이 죽거나 포로가 되었으니 그들이 겪었을 영적인 충격은 이루 헤아릴 수 없는 것이었습니다. 정말 하나님이 그의 택하신 백성들을 버리셨다는 말인가 하는 것이 그들이 괴로워해야 했던 이유였던 것입니다. 다니엘은 바로 그와 같은 국난의 시초부터 끝까지 함께 동참한 유일무이한 인물인 셈입니다.   
  다니엘은 그러한 환경 속에서 자랐고 바벨론 궁정의 관리가 되었고 후에는 메데 바사의 고위 관리가 되었습니다. 그는 오랫동안 공직 생활에 있으면서 탁월한 공을 세웠으면서도 그는 마치 재일 교포들이 조센징 소리 들으면서 멸시의 대상이 되듯이 다니엘도 끊임없이 질투와 시기의 대상, 그리고 경멸의 대상이 되었습니다. 사로잡혀 온 유다 자손 중에 그 다니엘(6:13)이라는 표현은 다니엘의 생애 만년까지 따라 다녔던 경멸의 표현이었습니다. 이처럼 다니엘의 생애는 시작부터 끝까지 결코 무풍지대나 안전지대에서의 편안한 삶이 아니었고, 오히려 역경과 환난의 바람이 변화무쌍하게 불어닥치는 광야에서의 삶이었다는 점을 먼저 우리는 기억했으면 합니다.


2. 다니엘은 은총을 크게 받은 사람입니다. 

  다니엘의 생애를 일컬어서 우리는 크게 은총을 받은 사람이라고 표현할 수 있습니다. 이러한 표현은 제가 지은 말도 아니고 그렇다고 다니엘이 스스로 한 표현도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그의 천사 가브리엘을 통해서 하신 말씀인 것입니다. 9:23에  보면 가브리엘이 다니엘에게 날아 와서 "너는 크게 은총을 받은 자라"고 하였으며, 10장에서도 두 번 "은총을 크게 받은 사람(a man greatly beloved)"이라는 천사의 말을 들었습니다(11,19절). 우리는 다니엘의 생애를 하나님의 은총, 혹은 은혜라는 실마리를 가지고서 이해하는 것이 올바를 것입니다. 다니엘이라는 사람이 어떤 사람인가, 다니엘이라는 사람이 얼마나 훌륭했는가, 다니엘이라는 사람이 얼마나 큰 일들을 했는가 하는 것을 살펴 보기 이전에 그 모든 것이 하나님의 은혜라는 샘에서 흘러나온 것이라는 점을 기억할 필요가 있다는 말입니다. 사도 바울은 고전10:15에서 "그러나 나의 나된 것은 하나님의 은혜로 된 것이니 내게 주신 그의 은혜가 헛되지 아니하여 내가 모든 사도 보다 더 많이 수고하였으나 내가 아니요 오직 나와 함께 하신 하나님의 은혜로라"고 고백하였다 시피, 참된 그리스도인은 오로지 하나님의 은총의 능력과 승리를 믿는 사람입니다. 그런 점에서 다니엘의 생애도 그가 받은 바 하나님의 은총이 가능하게 한 것이라는 것입니다. "은총은 영광의 출발점이고, 영광이란 완성된 은총이다"(조나단 에드워즈). 
  그렇다면 다니엘이 하나님께 받은 바 은총이 무엇입니까? 다니엘이 크게 은총을 받은 자라고 불리우는 까닭이 무엇입니까? 먼저는 그가 그 어렵고 힘든 시절에 하나님의 선민으로 태어나서 하나님을 믿는 사람이었다는 것을 빠트릴 수 없을 것입니다. 믿음은 그 시초에 있어서든 성장 과정에 있어서든 하나님의 선물입니다. 여러분들 가운데는 부모님 덕분에 어릴 때부터 교회 다닌 사람들이 있을 것입니다. 사실 젊을 때에는 부모님 덕분에 어릴 때부터 교회를 다니게 되었다는 감사한 생각 보다는 왜 교회 다니는 집에 태어나서 뜻도 모르면서 교회당을 출입하게 되었는가 불평하는 경우들이 많이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여러분들도 언젠가 때가 되면 도리어 어릴 때부터 교회를 다니고 하나님의 말씀을 듣게 된 것에 대해서 감사하게 될 것입니다.
  그리고 다니엘이 받은 바 은총을 세부적으로 오늘 본문 17절에 보면 잘 말해지고 있습니다. "하나님이 이 네 소년에게 지식을 얻게 하시며 모든 학문과 재주에 명철하게 하신 외에 다니엘은 또 모든 이상과 몽조를 깨달아 알았더라". 다니엘과 그의 세 친구가 3년 간의 로얄 아카데미 교육을 다 마치고 느부갓네살 앞에 서서 오디션을 받을 때에 그의 지혜와 총명이 바벨론의 현자들이요 왕의 자문역을 맡은 박사와 술객들 보다 십 배나 나았다고 성경은 말하고 있습니다. 십 배나 낳았다는 말은 양적으로 측정할 수 있는 의미에서가 아니고 도무지 비교 불가능할 정도로 탁월했다는 뜻입니다. 하나님은 다니엘에게 바벨론의 모든 학문과 재주를 통달하게 하셨을 뿐 아니라, 그와 같이 축적된 지혜 보다도 더 큰 지혜를 품부해 주셨습니다. 그리고 다니엘이 받은 바 지혜와 지식은 구체적인 현실에 적용되는 능력이었습니다. 
  뿐 만 아니라 하나님께서는 다니엘에게 이상과 몽조를 깨닫는 은사를 주셨습니다. 다니엘서에는 두 번이나 느부갓네살의 꿈을 해석 해 주는 내용이 기록되어 있고, 후반부 6장은 하나님의 백성들의 미래사에 대한 하나님의 이상이 기록이 되어 있습니다. 이로서 다니엘은 70여년을 바벨론과 메데바사 지역에서 살고 활동했으면서도 눈에 보이는 동시대사에 함몰되지 않습니다. 시공에 제한된 현실사를 넘어서는 하나님의 구원 역사를 볼 수 있었기 때문에 그는 현실 속에서 타협하지 아니하고 소망의 불을 태우면서 살 수가 있었습니다. 인생의 단면만 보는 것이 아니라 원대한 하나님의 구원 역사를 보았기 때문입니다. 


3. 다니엘의 생애는 축복의 통로가 된 인생을 살았습니다.

  하나님께서 신자들에게 허락하신 생은 자기 혼자 간신히 구원 받는데서 그치는 인생이 아니라, 타인을 구원에로 이끌며 타인을 복되고 형통하게 하는 데에 도구로 쓰시기를 원하신다는 것입니다. 믿음의 조상이라고 불리우는 아브라함을 부르실 때에도 하나님은 너는 복의 근원이 될지라고 하셨고, 이스라엘을 시내산에서 하나님의 백성으로 세우실 때에도 제사장 나라가 되리라는 분명한 뜻의 계시가 있었습니다. 다니엘의 생애도 마찬가지입니다. 다니엘은 하나님께 많은 은혜를 받고 은사를 받았으며, 인생의 형통함을 누린 사람입니다. 세상 말로 출세하고 성공한 사람이며, 그리고 고위 공직자와 권력자의 삶을 살았습니다. 그러나 다니엘은 자신의 인생에게 베풀어 주신 하나님의 그 큰 은혜와 분복들을 자신 안에 가두어 두지 아니하고 다른 사람들을 복되게 하고 형통하게 하는 데에 도구로 사용하였습니다. 많이 받는 것 보다도 어떻게 사용하는가가 더욱 더 중요한 것입니다.
  다니엘은 자신이 받은 지혜와 총명, 그리고 이상과 몽조를 깨닫고 해석할 수 있는 은사들을 바벨론 궁정과 메데와 바사의 궁정에서 활용하였습니다. 그는 왕의 자문역이나 총리역을 맡아서 훌륭한 공직자의 표본이 되었습니다. 그는 탁월한 능력을 소유한 자였지만 게으르거나 권세를 부리지 아니하고 성실하고 정직하게 봉사를 했습니다. 다니엘은 나이 80이 넘어서 메데 다리오의 시절에 총리를 하면서도 얼마나 훌륭하게 공직 생활을 하는지 모함하는 자들이 아무 틈이나 허물을 찾을 수가 없었습니다. 그리고 다니엘은 자신이 받은 바 은혜와 은사들을 이방 왕들과 이방인들을 섬기는 데에 사용하였습니다. 세상 사람들은 전문적인 능력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의 말에 귀를 기울입니다. 예수 믿으라고 외치면서 전도하는 사람들도 있어야 하지만 자신의 분야에서 탁월한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능력있는 사람이 겸손하고 온유하게 섬기고 그리고 성실하고 정직하게 섬길 때에 이방인들에게도 복음을 들을 기회를 제공하는 것입니다. 다니엘은 느부갓네살에게 꿈 해몽을 해 주면서도 -그의 답답한 문제를 해결해 주면서-하늘의 하나님, 지극히 높으신 하나님을 분명하게 증거하는 기회로 삼습니다. 그리할 때에 느부갓네살도 하나님을 인정하게 되었습니다. 다리오 왕은 간신배들의 모략에 휘말려서 어쩔수 없이 다니엘을 사자굴에 던져 넣으면서 "너의 항상 섬기는 네 하나님이 너를 구원하시리라"고 말을 했습니다(6:16). 
  다니엘은 이와 같이 이방의 땅에서 잔악하고 포악한 군주들을 섬기면서도 자신의 신앙을 굳게 지켰고, 하나님을 증거하는 증인의 삶을 살았습니다. 그는 단지 유대인들만 유익하게 한 것이 아닙니다. 자신이 살고 있는 이방 세상 속에서 빛과 소금의 역할을 감당한 것입니다. 그래서 이라크, 이란지역에서는 아직까지도 다니엘이라는 이름을 남자의 이름으로 붙여주고 있습니다. 제가 암스테르담에 살고 있을 때에 저희 윗집에 이란에서 온 가족이 살고 있었습니다. 딸 아이의 이름은 시골이었고, 아들의 이름은 다니엘이었습니다. 그 가족의 종교는 이슬람교(=마호메트교)였는데 아들의 이름이 다니엘인 것을 보고 이상해서 물어보았습니다. 그랬더니 과거 역사를 보면 다니엘이 현자로서 그리고 고위 관료로서 자기들의 나라에 살았었으며 존경을 받는 인물중의 하나라고 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수사라는 곳에 다니엘의 무덤이 아직 남아있다는 것입니다. 
  다니엘은 또한 나라 잃고 비참하게 살아가고 있는 동료 유대인들에게도 축복의 통로가 되었습니다. 앞에서도 언급했듯이 바벨론 제국에 포로되어 온 유대백성들에게는 단지 나라잃은 슬픔만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그의 선민을 버리셨다는 소위 하나님께 버림받았다는 절망감이 지배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다니엘을 통하여 분명하게 대답을 해 주셨습니다. 소위 다니엘서 7장-12장에 기록된 4개의 이상을 통하여서 그 대답을 주시었습니다. 다니엘을 통해서 계시해 주신 이상과 묵시는 해석하기에 많은 어려움이 있습니다만, 핵심적인 내용은 다음과 같습니다. '하나님은 결단코 자기 백성을 버리지 않으셨다. 그러나 주의 백성에게는 큰 환난과 박해가 있을 것이다. 그 환난에서 믿음을 지키는 자는 영생의 부활에 참여하게 될 것이다. 바벨론이 있고, 메데 바사가 이을 것이요, 헬라와 로마가 세계를 제패하겠으나, 결국은 하나님께서 자신의 영원한 나라(=메시야 왕국)를 정한 때에 세우실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메시야를 통해 완성될 구속에 참여하는 자마다 그 영원한 나라에 속하게 될 것이다'. 
  너무나 비극적인 현실 속에 소망을 잃고 체념하면서 살아가는 백성들에게 역사의 의미를 분명하게 밝혀 주고 앞으로 하나님의 그의 백성들을 어떻게 다루어 가실 것인가 하는 다니엘의 메시지는 백성들의 영혼을 소생케 하고 소망의 불길을 당기는 도구가 되었습니다. 환난에 대한 말씀은 무시 무시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믿고 인내하면 마침내 하나님의 왕국이 완성되고 하나님의 백성들이 그 다스림에 동참하게 된다는 것은 소망의 빛이 되어 주었습니다. 사실 역사를 읽어보면 유대인들 만큼 생존(survival)의 대가들이 없습니다. 그들이 그처럼 많은 민족 말살의 대학살극을 당하면서도 끝끝내 살아남을 수 있었던 이유가 바로 그들의 정신력 때문이었습니다. 니이체는 말하기를 "살아가야 할 이유가 있는 사람은 어떤 방식에도 견딜 수 있다"고 했습니다. 그리고 나치의 죽음의 수용소에서 간신히 살아남은 오스트리아의 정신의학자 빅터 프랭클은 <죽음의 수용소>라는 책에서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습니다. "어떤 죄수들은 본능적으로 그들 자신이 가지고 있는 목표를 찾으려고 하였다. 미래에 대한 기대가 없으면 살 수 없는 것이 바로 사람의 특성이다. 그리고 이것은 가장 고통스러운 순간에서 자신을 구원하는 수단이 된다". 다니엘의 메시지는 단지 유대인들에게만 소망을 심어주고 위로가 된 것이 아니라, 교회사 속에서 특히 우리 선조들이 일제하에 핍박을 당하고 있을 때에도 소망의 빛이요 위로의 근원이 되어주었습니다. 그래서 일정이 교회에서 계시록이나 다니엘서를 설교하지 못하도록 금지시킨 것입니다. 


4. 다니엘의 인생은 뜻을 정한 인생입니다.       
  
  이제 우리는 다니엘의 생애의 특징 네 가지 중 세 가지를 살펴 보았고, 이제 마지막 특징인 뜻을 정한 인생에 대해서 살펴 보기로 하겠습니다. 다니엘의 생애는 어떻게 보면 화려한 스타의 생애입니다. 모든 것을 누려 본 생애라고 할 수 있습니다. 왕들이 바뀌고 제국이 바뀌어도 다니엘은 최고의 권력과 지위를 누렸습니다. 그러나 다니엘의 생애의 중심은 동일했습니다. 그것은 바로 하나님의 사람으로서의 삶인 것입니다. 다니엘은 이방 땅에 살았지만 폐허가 된 예루살렘 성에 늘 마음이 가있었고, 예루살렘 성전의 회복과 백성들의 귀환을 위해서 기도한 사람입니다(9장). 그는 세상에서 살고 있지만 세상에 속한 자가 아니요 거룩한 하나님 나라의 백성으로 살았던 것입니다. 
  우리는 흔히 어떤 사람이 성공하고 출세하거나 탁월성을 가지고 있으면 부러워는 하면서 그렇게 된 과정에 대해서는 관심을 기울이지 않습니다. 꿈과 이상은 높지만 이루기 위해서 대가는 지불하지 않을려고 하는 것입니다. 특별히 젊을 때에는 뭐든지 할 수 있을 것 처럼 오만과 착각을 가지기 쉽니다. 그러나 하나님이 은혜와 은사를 풍성히 받는 자라고 할지라도 인간적인 측면에서 보자면 엄청난 대가를 지불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다니엘의 경우에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우리가 오늘 함께 읽은 다니엘서 1장에는 그와 같은 다니엘의 모습들을 잘 보여주고 있습니다.

  8절에 보면 다니엘은 뜻을 정하여 왕의 진미와 그의 마시는 포도주로 자기를 더럽히지 아니하라하고 자기를 더럽히지 않게 하기를 환관장(=궁내대신)에게 구하였다고 했습니다. 다니엘은 로얄 아카데미에서 3년 간 교육을 받는 동안에 왕이 제공하는 진수성찬을 먹기를 시초부터 거부하기로 마음을 정하였습니다. 왕이 제공하는 음식이나 포도주는 느부갓네살의 우상들에게 바쳐지고서 나오는 것들이었기 때문입니다. 다니엘은 그와 같은 부정한 음식을 먹음으로서 하나님의 거룩한 백성으로서의 순수성을 깨지 않기로 하였습니다. 이와 같은 결정은 확고부동한 것이었지만, 목숨이 달아날 수도 있는 그러한 결정이었습니다. 그러나 이처럼 분명히 뜻을 세우고 나아갔을 때에 하나님의 은혜로 다니엘은 물과 채식만으로도 다른 생도들 보다도 더욱 더 윤택하고 건강한 사람이 되었습니다. 
  여러분들은 다니엘 처럼 젊을 때에 뜻을 정한 인생이 되기를 바랍니다. 이 세상의 추하고 더러운 문화와 정신과 오락에 빠져서 자신을 더럽히고 신앙의 정체성을 위협하는 일을 하지 않겠다고 결심하는 여러분들이 되십시오. 오늘날 인터넷은 정보의 바다이기도 하지만, 영혼과 육체를 망하게 만드는 중금속 보다도 더 위험한 오염된 바다이기도 합니다. 여러분의 영혼을 그와 같은 추하고 더러운 것들에게서 지키십시오. 컴퓨터나 인터넷을 사용하지 말라는 것이 아니라, 음란하고 방탕하게 하고 여러분의 영혼을 오염시키고 파괴적이게 하는 포르노그라피나 과도한 오락에 빠지지 말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신자로서 여러분의 오감과 행실을 더럽힐 만한 장소에는 가지 않기로 결심을 하십시오. 

  또한 다니엘은 하나님의 은혜만 믿고서 배우고 익히는 일에 게을리한 것이 아닙니다. 그는 3년간의 교육과정 동안에 갈대아 언어와 갈대아 학문들(점성술, 박물학, 수학, 농업, 우상숭배)을 배우고 익히는 데에 피땀을 흘렸습니다. 사실 다니엘이 배운 갈대아 학문이라고 하는 것들 중에는 갈대아의 우상 숭배에 대한 것들이나 점성술과 같은 미신적인 것들도 있었습니다. 다니엘은 그와 같은 미신적이고 거짓된 요소들에 미혹됨이 없이 학문과 재주에 명철케 되도록 힘쓰고 애썼습니다. 하나님이 품부하시는 지혜와 명철은 그와 같은 인간의 땀흘려 수고하고 노력함을 결코 배제하지 아니하고, 사모하면서 그와 같은 배전의 노력을 기울일 때에 부어주시는 것입니다.   
  여러분의 나이에는 다니엘 처럼 열심히 배우고 익힐 나이입니다. 사실 20대는 배울 나이이지 가르칠 나이는 아닙니다. 물론 가르치면서 배우는 경우들이 있기는 할 것입니다. 그러나 아직은 여러분들은 세상, 역사, 인생, 신앙에 대해서 충분한 지식을 가지지 않았습니다. 인생 고민한다면서 헛되이 시간을 허비하지 마십시오. 책을 읽으시고, 견문을 쌓으시고, 언어들을 익히시고, 삶에 필요한 기술들을 익히십시오. 누군가 말하기를 20대는 액체를 흘릴 시절이라고 했습니다. 눈물과 땀과 피를 흘려 가면서 장래를 준비해야 할 시기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지혜와 총명을 간절히 구하면서 여러분이 해야 할 몫을 게을리하지 마십시오.

  우리가 다니엘서 전체를 읽어 보면 다니엘의 생애에 있어서 확고부동한 또 하나의 특징이 있는데, 그것은 바로 경건의 훈련에 힘쓰고 숙달한 사람이었다는 것입니다. 다니엘은 자기 민족을 위하여서 하루에 세 번씩 감사함으로 기도드리는 훈련이 되어 있습니다(6:10). 어려운 일들이 있을 때에 동료 친구들과 더불어서 합심해서 기도하는 것에도 훈련이 되어 있습니다(2:17,18). 그리고 하나님의 말씀을 깨닫기 위해서 하나님 앞에 금식함을 통해서 스스로 겸비케 하기를 결심하는 일들도 익숙한 사람이었습니다(10:12). 그리고 다니엘은 이전에 모세와 선지자들을 통해서 주셨던 계시의 말씀들을 읽고 묵상하며 적용하는 일에도 힘쓰고 애썼다는 것을 9장 1,2절에서 확인할 수 있습니다. 간추리면 매일 매일 성경을 읽고 기도하는 일에 다니엘은 힘쓰고 애쓴 인물이라는 것입니다. 이러한 훈련을 통하여서 그는 하나님의 은혜를 늘 받았고, 나아가서 공직에 성실하게 임할 뿐 아니라 하나님의 증인으로서 살 수가 있었던 것입니다. 
  오늘날 현대인들은 가히 헬스 종교인이라고 할 정도로 몸매관리나 건강관리에 혈안이 되어 있습니다. 그러나 바울은 말합니다. 경건의 헬스, 경건의 훈련에 더 힘써야 한다고 말입니다. 그렇게 하면 금생과 내생에 유익이 있다고 말입니다. 여러분! 아무 것도 안하면서 될 대로 되겠지, 하나님이 알아서 하시겠지 하면 아무 것도 되는 것이 없습니다. 그것은 신앙이 좋은 것이 아니라, 한심한 것입니다. 교회내에는 소위 거룩한 백수, 거룩한 백조들이 없어야 합니다. 개인적으로 공동체적으로 기도하고 말씀을 묵상하는 일에 힘쓰고 애쓰는 영적인 헬스장이 되어야만 합니다. 그와 같은 은혜의 수단을 붙잡을 때에 체질화 시킬때에 우리는 하나님의 거룩한 백성으로서 자신의 정체성을 지키면서 이 세상 속에서 하나님의 증인의 삶을 살 수가 있는 것입니다. 
  성도 여러분! 청년 여러분! 오늘 우리는 짧은 시간에 다니엘이라는 사람의 생애의 특징들을 되새겨 보았습니다. 오늘 제목과 같이 다니엘의 생애는 은총과 헌신 두 단어로 요약이 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여러분이 잘 할 수 있다고 믿지 마십시오. 하나님의 은총에 여러분의 생애를 거십시오. 하나님이 여러분을 복주시고 은혜 베푸셔야만 되는 인생인 줄 아시고 뜻을 정한 인생이 되시어 거룩한 길을 걸어가십시오. 여러분이 무엇이 되느냐가 중요하지 않습니다. 무엇을 하건 간에 하나님의 은혜를 받은 자로 여러분이 처한 곳에서 축복의 통로가 되십시오. 하나님의 살아계심을 불신 세상에 증언하는 증인의 삶을 살아가십시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