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드온의 300명 용사처럼/삿7:1-8
 
 

고대 수리 철학자로 불리워지든 피타고라스는 이런 말을 남겼습니다. 앞으로 오는 시대의 지배적인 신은 숫자의 신이 될 것이다. 이런 말을 남겼습니다. 더 많은 숫자의 군대, 더 많은 숫자의 무기, 또 더 많은 숫자의 황금을 준비한 나라만이 세계의 패자가 될 것이다 라고 예언 했습니다. 오늘날의 세상 현실에서 볼 때 이것은 지극히 상식적이고 또 보편적인 예언 이였다라고 할 수가 있습니다.그러나 이런 상식적인 관점에서 오늘의 성경본문을 들여다 본다면 성경의 하나님 오늘도 본문 속에 나타난 하나님은 지극히 비 상식적인 신이라고 할 수밖에 없습니다. 

도대체 오늘 본문에 어떤 사건이 일어났습니까? 잘 아시는 대로 사사 기드온이 살고 있었든 시대 이스라엘 백성들이 미디안의 침략을 받았습니다. 절대적으로 나라를 잃어버릴 수 있는 이런 위기의 상황 속에서 기드온은 일종의 의병을 일으킨 것입니다.그래서 군사를 모집했는대 3만이천 명이 자원하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기드온에게 말씀하시기를 숫자가 너무 많다 좀 돌려보내라 이렇게 말씀하신 거에요. 사실 미디언과 싸우기 위해서는 3만 2천명도 오히려 부족한 숫자인데 하나님께서 너무 많다고 돌려보내라고 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정말 준비 안된 사람 그리고 참으로 마음속에 죽음을 두려워 하는 사람 좀 가라고, 아~그래서 그 중에서 2만 2천명을 돌려 보냈습니다. 만 명이 남았습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또 말씀하시기를 야! 만 명도 아직도 너무 많다 좀 돌려 보내라 그래서 또 돌려 보냈어요.그래서 마지막에 남은 사람이 얼마입니까? 
300명입니다 300명, 일종의 어떤 테스트 과정을 거쳐서 최후 까지 남게 된 사람이 바로300명인데 바로 이 300명을 쓰셔서 이스라엘 나라를 구출하시고 또 하나님의 나라를 세워가는 놀라운 일을 하신 것 입니다. 도대체 이 300명은 어떤 사람들이 였을까요? 궁금하지 않으십니까? 

오늘은 청지기 주일입니다. 우리 교회에 가장 중요한 봉사의 직분에 있는 분들, 목자로 수고하시는 분들 교사로 집사로 성가대원으로 수고하시는 모든 분들, 사실 우리교회 이러한 청지기를 볼 때 보는 이의 각도에 따라서 관점에 따라서 숫자가 어떤 분들은 좀 적다 이렇게 생각하시는 분도 있고, 이렇게 또 뭐 제직이 집사가 많은가? 이렇게 생각 하시는 분들도 없지않아 있을 거에요. 
사실 우리교회 모든 제직을 카운터 해보니까 약 한 1200명 가량 되는데 그래서 한국 교회 일반적인 경향에 비교하면 적은 숫자입니다. 대부분 교회가 한 3분의일 4분의 일이 제직들이더라구요.우리교회의 경우에는 7분의1정도, 6분의1 정도 밖에 되지 않습니다.그러나 또 보는 이의 각도와 관점에 따라서는 그것도 숫자가 많다 이렇게 생각하시는 분들이 계시겠죠? 그러나 저는 중요한 잇슈는 뭐 봉사자가 숫자가 많으냐? 적으냐? 그것이 잇슈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그것이 초점이 아닙니다.중요한 것은 그들이 누구이냐 라는 사실입니다. 그들이 또 누가 되어야 하느냐? 어떤 사람이 되어가느냐 하는 것이 참으로 하나님 앞에서 중요한 질문이라고 생각을 합니다. 

자, 그래서 오늘 이 본문의 가장 중요한 렛슨을 통해서, 하나님께서 테스트를 통해 마지막에 남겨두시고 쓰신 이 300명, 기도온의 300명의 용사를 통해서 우리는 현제 누구이며 또 우리는 누가 되어야 하느냐 그래서 어떻게 우리가 쓰임을 받을 수 있는 사람이 되어야 하겠는가를 같이 말씀을 통해서 살펴보고자 합니다. 
자, 기드온의 300명 용사들 그들은 누구였을까요? 첫째로 우리가 보면 그들은 자긍하지 않는 사람들이 였습니다. 그들은 첫째로 자긍하지 않는 사람들이 였습니다. 본문의 2절 말씀을 우리 같이 한번 읽겠습니다.사사기 7장2절입니다. 같이 읽겠습니다.시작, '여호와께서 기드온에게 이르시되 너를 좇는 백성이 너무 많은즉 내가 그들의 손에 미디안 사람을 붙이지 아니하리니 이는 이스라엘이 나를 거스려 자긍하기를 내 손이 나를 구원하였다 할까 함이니라' 녜 여기서 가장 중요한 단어가 있다면 자긍이라는 단어입니다. 이 단어를 좀 주목해 보십시요. 이스라엘 백성들이 나를 거스려서 자긍하기를 내 손이 나를 구원하였다 할까 두려워서, 내가 그들을 돌려보낸다. 여기서 중요한 단어는 자긍이라는 단어입니다. 자긍, 왜 하나님이 수다한 이스라엘 지원병들을 그대로 돌려 보내시기를 원하셨을까요? 오늘 2절에 보면은 이스라엘이 나를 거스려 자긍하기를, 다시 말하면 자긍하지 않게 하시려고, 우리가 자긍이라는 단어를 자랑이라는 단어로 번역해도 그렇게 틀린 말을 아닙니다. 자기 자랑 않게 하시려고, 그러나 조금 더 의미상으로 보면 교만에 합당한 단어입니다. 교만에 근사한 그런 단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교만치 않게 하시려고, 
자, 이스라엘 백성들이 만약 이 많은 숫자 3만2천이라는 많은 숫자로 이 전쟁에서 승리를 거두게 되면은 당연히 이스라엘 백성이 생각하기를 이 많은 우리들의 숫자가 구원했다고 혹은 이 숫자를 동원 할 수 있었든 우리들의 전력이 승리를 가지고 온 원인이라고 그들은 판단했을 것입니다. 그런데 300명 이것은 어림도 없는 숫자이거든요? 절대로 승산이 불가능한 상황이에요. 그래서 엎드려 기도하고 하나님을 의지 했더니 승리했다.그러면 그들은 승리의 원인을 결코 사람의 숫자나 사람에게서 찾지는 않을 것 입니다. 그것은 하나님 때문 이였다 라고 말하게 될 것입니다. 하나님이 이것을 아신 것이에요. 
우리가 성경에 보시면 하나님이 제일 싫어하는 것, 하나님이 절대로 보지 못해 하시는 것 한가지가 있다면 그것이 바로 교만입니다. 교만, 성경은 어느 정도로 말합니까? 하나님이 겸손한자에게 은혜를 주시고 또 반대로 교만한 사람을 어떻게 하신다고요? 그냥 놓아둔다는 정도가 아니라 교만한 자는 하나님이 대적하신다고 그랬습니다. 대적하신다고,우리의 그 삶의 장을 가만히 관찰해보면 때로 우리 연약함이 그대로 존재 합니다. 우리가 그리스도 인이고 또 기도하는 사람들이고 하나님의 도움을 의지하고 살아감에도 불구하고 연약함이 그대로 남겨지는 경우들이 있어요. 왜 그럴까요? 우리의 삶에서 연약함을 그대로 남겨두시는 이유, 오늘 우리의 부족함의 여지를 그대로 채워주시지 않고 남겨두는 많은 그 이유가운데 하나가 있다면, 혹은 저와 여러분이 하나님의 백성이고 하나님의 자녀이고 주님을 사랑하는 사람들임에도 불구하고 일생을 통해서 일련의 시련과 역경을 통과하게 하시는 중요한 이유가운데 하나가 있다면 바로 우리를 교만치 않게 하실려고 바로 그 까닭입니다. 

그 대표적인 사례를 우리가 누구에게서 찾아볼 수가 있어요? 바울 사도가 아니겠습니까? 이 단신의 거인,. 교통도 불편했든 그 당시에 세계를 적어도 한 네바퀴씩 돌면서 전 세계를 복음으로 완전히 뒤바꾸었든 이 놀라운 영적인 거인, 바울을 생각해 보세요.그가 기도하면 사람들이 치료를 받고 그가 들어가는 도시마다 마을 마다 복음이 그 충격 속에서 삶이 바뀌는 역사가 바뀌는 놀라운 사건들이 일이 일어났습니다. 그런데 바울이 해결하지 못한 것이 있었잖아요? 자기 육체의 질병이엥요. 바울은 그것을 육체의 가시라고 불렀습니다. 나를 계속 찌르고 있는 가시, 나를 괴롭히고 나를 아프고 나를 고통스럽게 만들고 있는 가시, 성경에 보시면 바울이 세번씩이나 하나님 앞에 나와서 '하나님 이 병 고쳐 주십시요' 아마 결사적으로 기도한 것으로 보여집니다. 그런데 나았어요? 안 나았어요? 낫지를 않았죠?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이 그 육체의 가시를 남겨두는 이유를 바울이 깨닫습니다. 그리고 성경에 무어라고 고백을 합니까? 하나님이 나를 너무 자고 하지 않게 하시려고, 하나님이 나에게 이미 은혜를 많이 주셨는데 그런데 그 은혜 가운데다가 내가 건강까지 하더라면 나는 틀림없이 교만할 수 있는 가능성이 있기 때문에 하나님이 이 가시를 부등켜 안고 나로 살게 하시므로서 그것 때문에 겸손 할 수 있도록 나를 자고하지 않게 하실려고 이 가시를 허용하셨다. 이렇게 고백하는 바울의 고백을 들어 볼 수가 있죠. 뭐 그 가시가 뭐냐 신학자들의 토론이 있어요 뭐 어떤 사람들은 바울이 간질병이 있었다 이렇게 생각을 합니다. 또 어떤 사람들은 바울이 다메섹 도상을 가다가 강열한 그 빛을 경험하는 순간 뭐 안질에 걸렸다. 간질이든 안질이든 뭐 하여튼 상관 없어요. 하여튼 이 난치의 질병을 끌어안고 바울이 괴로워 하면서 그러나 그 병이 떠나가지 않는 이유를 하나님 앞에 질문한 끝에 얻었든 그 대답이 뭐냐하면 '나를 너무 자고 하지 않게 하시려고' 그것이 바울이 발견한 대답이였어요. 

저는 뭐 인생을 살면서 그렇게 크다란 시련을 겪어본 일은 없습니다. 그래서 늘 그 지나치게 참 어려운 가운데서 사시는 분들을 보면 참 마음속에 죄송한 생각이 있어요. 저는 큰 시련을 격어본 일은 없습니다. 그러나 누구나 그런 것처럼 저도 인생을 통해서 작은 시련은 좀 겪어 보았습니다.그런데 그 작은 시련을 격을 때 마다 좀 지나고 나서 제 삶을 이렇게 돌이켜 보면 어떤 때냐? 한가지 공통점이 있더라구요. 제가 약간 다소간 교만해 질려고 할 때 하나님이 이런 시련을 주시는 것을 발견하게 됩니다. 그래서 하나님이 내가 교만한 꼴은 도대체 두고 못 보시는구나. 뭐 이런 발견을 늘 하게 됩니다. 
전 그때마다 늘 생각나는 사건이 있어요. 저 신앙의 첫사랑의 계절, 내가 예수 처음 믿고 구원의 감격을 가졌든 그 계절에 경험했든 한 사건이 늘 생각이 납니다. 제가 도사시절 이였습니다. 도사란 것은 전도사의 준말입니다. 뭐 이상하게 쳐다보지 마세요. 그때 한번 그 부산에서 큰 집회가 열렸어요. 구덕 체육관에서 큰 집회가 열렸는데 저에게 통역 부탁이 왔습니다. 선명회 총재였든 스텐무니엔 박사께서 오셔서 말씀을 전하시는데 본래 통역하기로 되어있든 어떤 분이 다른 일로 못 오시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제가 스페아 타이어로 내려가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저로서는 전도사로서 제가 사역을 시작한 다음에 가장 많은 청중 앞에 서는 순간 이였어요 뭐 그의 수천명 이상 모였으니까 꽉 찬 청중 앞에 섰더니 뭐 정신이 없더라구요. 그래서 제가 기도 많이 하고 갔습니다. 하나님 도와달라고, 아~좀 도와달라고, 실수하면 어떻게요. 그때 한경직 목사님도 오셨어요. 선명회 한국 총재이셨기 때문에 와 계셨는데 옆에서 이제 통역을 시작하는데 그 이상하게 통역이 잘 되어요. 제가 생각해도 너무너무 잘했어요. 뭐 거의 통역 이라는 것을 의식하지 않을 정도로 내 설교를 하는 것 처럼 자유스럽게 말씀을 그렇게 증거 했습니다. 그래서 사람들이 은혜를 받더라구요. 은혜 받는 것이 보여요. 녜, 그러니까 끝나고 나서 한 목사님이 제 손을 만져주시면서 한국 교회에 인재가 났다. 저도 그렇게 생각했습니다. 하하~~ 뭐 등어리 두드려주시고 격려를 하시면서 집회 끝내고 해운대 호텔에 갔는데 부산에 목사님들 장로님들 많이 오셨는데 아주 뭐 한 람이 설교하는 것 같았다고 그렇게 뭐 통역 설교 같지 않게 은혜를 받았다고, 목소리는 그렇게 좋으냐고, 얼굴은 그렇게 미남이냐고, 하하~~대게 기분 좋더라구요. 녜, 그날 밤 이제 해운대 호텔에서 자는데 잠이 안와요. 너무 너무 좋으니까 잠이 안와요. 드디어 나도 한국 교회의 스타가 되었다. 스타 탄생의 밤, 어떻게 잠이 오겠습니까? 잠이 오지않고 너무 좋아했어요. 야~너무 너무 좋았어요. 그래서 그 이튿날 제가 더 명 통역을 하기위해서 딱 그분 옆에 서서 통역을 딱 시작하는데 한 5분쯤 지나가니까 목소리가 그냥 가버려요. 아무 목소리가 안나오는 거에요. 컥컥 소리밖에는 아주, 그래서 너무 너무 황당하더라구요. 목소리가 나와야 무얼하죠 그때 그기 다른 윤목사님 이라고 설교 통역하시는 분이 한분 있었어요. 그래서 그분에게 할 수 없이 맡기고 저는 내려왔습니다. 그런데 너무 마음이 비참해서 그 자리에 있을 수 없는 심정이었어요. 택시 잡아타고 호텔로 돌아왔습니다. 속상하더라구요. 어제 밤에 쌓아올린 모든 공든 탑이 다 무너진 거란 말이죠. 그 좌절,부끄러움 수치감, 하~너무 너무 속상하니까 그날 밤 또 속상하니까 잠이 오지않아요. 너무 너무 잠이 안와요. 그렇게 밤을 보내는데 그의 새벽이 밝아오는 그런 시각이었는데 갑자기 제 마음속에 작은 음성 하나가 들려 오는거에요. 야! 너 그 목소리 네꺼야? 네가 통역할 수 있는 그 Ability,. 그 능력이란 것이 네꺼야? 내 꺼 가지고 왜 내 자랑하지 않고 네 자랑을 해? 그런 음성이에요 그런데 너무나 똑똑한 음성이 들려오는 거에요. 저는 깜짝 놀랐어요. 그래서 저는 호텔 그 조그만 방에 무릎을 끓었습니다.그 침대를 붙들고 기도를 시작했습니다. 그런데 뭐 제 추한 모습, 제 에고(Ego), 내안에 있었든 그런 모든 자존심, 이런 것들이 막 보이기 시작하고 통회가 막 되어요. 눈물 바닥이 되면서 그냥 계속 회개기도를 그날 새벽녘에 했습니다. 얼마를 지났는지 모르겠어요. 어떤 큰 손이 저를 만져주는 것 같아요. 이렇게 만져주고 괜찮다고, 이제는 내 자랑하고 살라고, 네 자랑이 아니라, 새벽이 밝아오면서 제가 기도하다가 성경을 딱 펼쳤어요. 여러분 성경 반 딱 펼치면 대부분 시편이 나옵니다. 반 딱 이렇게 펴면, 그런데 시편 딱 폈는데 첫 구절이 이런 시편이 딱 눈에 띠는거에요. '여호와여 영광을 우리에게 돌리지 마옵소서 여호와의 인자 하심과 진실하심을 인하여 주의 이름 앞에만 영광을 돌리게 하소서' 전 제 마음이 좀 이렇게 부풀어 오르려고 할 때마다 괜히 제 자신을 높이고싶은 그런 유혹이 저를 찾아 올때 마다 그래서 저는 그 해운대의 호텔의 그 자리로 다시 늘 돌아 갈려고 합니다. 왜냐하면 그것이 내 사역의 끝이라는 것을 알기 때문에, 내가 만약 교만하다면, 

여러분 그 미국 대통령 선거가 치루어 질 때 제가 미국에 있었습니다. 우리 교회의 홈페이지에도 제가 그 소감을 올린 일이 있습니다만 아주 재미있게 그 미국 대통령 선거를 관전했습니다. 이분이 아주 Excite한, 흥분이 있었든 그런 일종의 게임과 같은 선거였잖아요?그런데 이제 그 이 선거 과정에 있어서 투표가 되기 전에 이제 대통령 후보들의 토론, 고어와 부시의 토론이 있기 직전에 미국의 대부분의 언론들이 이렇게 보도하고 있었습니다. 아마 두 사람의 토론이 시작되면 전세는 압도적으로 고어쪽으로 기울 것이다. 저도 그렇게 생각했어요 왜냐하면 이 고어가 똑똑한 사람이고 아주 유능하고 그리고 아주 이런 논쟁을 토론회를 잘하는 분이었습니다. 유능한 분이기 때문에 일단 토론이 시작하면 압도적으로 전세는 고어쪽으로 기울 것이다 저도 그렇게 생각을 했어요. 그러나 유심히 첫번째 토론을 지켜 보았습니다. 예상한대로 첫번째 토론이 끝난 후에 그 토론은 고어가 일방적인 게임으로 승리한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그런데 재미나는 것은 뭐냐 하면 그 미국에 청중들을 대상으로 당신들이 투표할 때 고어를 투표 하겠는가? 그기에 대해서는 반반 비슷하게 나왔어요. 토론은 압도적으로 고어가 이겼다고 그러는데 찍을 때는 사람들이 비슷하게 나오더라구요. 그래서 왜그러냐? 그것을 조사를 해 보니까 고어가 너무나 말을 잘하니까 얄밉다는거에요.이 부시는 좀 부시시하고 말이죠 사람이? 좀 뭐가 모자라는 것 같고, 그런데 호감이 간다는 거죠 사람들이 마음에 호감이 간다는 거에요.여러분 똑똑함만 가지고서 인생을 살아 갈수 있는 것은 아닙니다. 뭐 사람들도 이런 관점을 가지고 인간을 접하는데 하나님의 관점에서 어떻겠어요? 모든 것을 소유하신 하나님, 모든 것에 능하신 하나님, 모든 것을 아시는 하나님 앞에 우리가 가져야 얼마를 가졌고 알아야 얼마를 알겠어요? 주님이 쓰시는 사람들을 그는 자기의 부족을 알고 엎드리는 겸허한 사람들이다 그렇다면 사랑하시는 청지기 여러분 금년 한해를 살아갈 때 정말 하나님 앞에서 겸허한 자긍하지 않는 저와 여러분이 될 수 있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그래야 주께서 우리를 쓰실 것입니다. 

자, 주께서 쓰셨던 기드온의 300명 용사들, 어떤 사람들이었습니까? 둘째로 그들은 주를 신뢰하는 사람들이었습니다. 주를 신뢰하는 사람들이었습니다. 여러분 우리가 겸손하다고 그래서 그리고 우리가 자신의 부족함을 알고 있다고 해서 그것만으로 자동적으로 또 우리가 하나님에 의해서 쓰임을 받을수 있는 것은 아닙니다. 
중요한 것은 이거에요.내 부족함을 알기에 하나님을 의뢰할 줄 안다는 것이 중요한 것입니다. 하나님 저 부족해요 저 못해요.이런 사람은 못해요. 아무것도 못해요 부족함만 가지고는 안되요 그것을 인정하는 것만 가지고 되지않습니다. 자기 연약을 아는 것 만으로도 가능하지 않습니다. 자기의 연약을 알기에 자기의 부족을 알기에 강하신 주님 앞에 와서 그분 앞에 무릎 꿇을 줄 아는 것이 중요합니다.그리고 내 무지를 알기에 전지하신 그분을 의뢰하며 내 연약함을 알기에 강하신 그분을 정말 의뢰할 줄 안다는 것이 정말 중요한 것입니다. 

유명한 세계적인 전도자인 '디엘 무디'는 모세의 일생을 성경을 통해서 공부하다가 그 일생을 세가지의 스테이지(Stages)로 단계로 나누었어요. 아주 흥미 있게 나누었습니다.모세가 모두 몇 년 살았죠? 120년,그것을 세 단계로 나누면 처음 40년 중간40년 마지막 40년, 그런데 무디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모세의 처음 40년 애굽의 궁중에서 프린스로 왕자로 자라나든 그 40년 간의 모세를 묘사하면서 한마디로 그때 모세는 자기가 굉장한 인간인줄 착각 하면서 살든시대, 그걸 영어 표현으로 하면요, 한국말로 정확하게 번역이 안돼요. 할수없이 하는건데 자,영어 자랑할려는 것이 아니고, 그래서 무디가 이렇게 표현을 했어요. 처음 40년간 모세는 뭐냐하면 I am somebody, I am somebody, 뭐 내가 굉장한 인간인 것처럼 착각하고 살든 시절, 그런데 두번째 40년 미디안 광야에서 하나님이 모세를 광야로 밀어내었고 그 광야에서 두번째 40년간 모세가 배운 렛슨은 하나에요.그걸 무디는 이렇게 표현 했습니다. 두번째 단계의 모세는 내가 아무것도 아니다 .I am nobody, 나는 아무것도 아니다. 처음에 나는 굉장한 인간일줄 알았다가 내가 하나님 앞에서 자신을 들여다 볼수록 내가 하나님 앞에 정말 나는 아무것도 아니다. 이 렛슨을 위해서 이 교훈을 위해서 이 고백을 위해서 40년이 필요했든 거에요. 
자, 그런데 40년이 끝난 후에 하나님이 모세보고 '!너 됐어 이제 겸손해 졌구나 내가 너를 붙들어서 쓰겠다. 너 내 백성을 이끌어내라' 그러니까 모세가 녜, 가겠습니다. 그럽니까? 너무 겸손해진 나머지 모세가 이렇게 말합니다. 하나님 나 이제 못해요. 아무것도 못해요 정말 못해요. 전 말도 할 수 없고요 이 백성을 설득할 수도 없어요. 그러나 하나님이 하도 기가 막히나까 '야! 너 말할수 있는 것 그것, 그 능력 그것 누가 준 줄 알아? 네 입을 누가 만들었느냐? 네 주둥이를 누가 만들었느냐?' 하나님이 그렇게 말씀 하셨어요. 정말 못하니까 그러면 내가 세울께 말하는 사람을, 아론을 대신 세워줄께, 나 믿고 가! 이때 비로소 모세는 하나님을 의지하기 시작해요. 
그래서 무디는 모세의 나머지 마지막 40년, 마지막 세번째 단계의40년을 가리켜서 그때 정말 자기의 부족을 알기에 이제는 자기를 의뢰하지 않고 하나님을 의뢰할 수 있었든 모세,그 걸 무디는 이렇게 표현 했습니다. I am Gods body, 하나님의 종, 이제 somebody가 아니에요 Nobody도 아니에요. I am Gods body, 이제 하나님의 손에 붙들림을 받아 하나님만 의뢰하고 사는 하나님의 종이 되었을 때 하나님이 바로 이런 모세를 통해서 출애굽 엑스도스의 영광을 나타내시고 놀라운 이스라엘의 새로운 역사를 펼쳐 가신다 라고 말했습니다. 

그렇습니다. 오늘 본문에 8절에서 끝나는데 그 다음9절 한번 보세요.사사기7장9절입니다. 한번 찾아보세요 성경을, 사사기7장9절 말씀입니다.사사기 7장9절 우리 다같이 읽겠습니다. 다함께 다같이 시작, '이 밤에 여호와께서 기드온에게 이르시되 일어나 내려가서 적진을 치라 내가 그것을 네 손에 붙였느니라' 자,이제300명밖에 남지 않았는데 하나님께서 기드온에게 이렇게 말씀하시는 거에요. 이 밤에 여호와께서 기드온에게 이르시되 자, 일어나라 내려가라 너 적진을 치라 내가 그 적들을 네 손에 붙였다 자, 이 말씀 믿고 가는 거에요. 그런데 그 말씀을 믿었어요. 약속의 말씀을 믿었습니다. 네 적진을 너희 손에 붙였다 너희들이 300명이지만 내가 너희들에게 이 적군을 맡겼다 이 하나님의 말씀을 믿는 순간 그리고 그 말씀을 말씀하신 하나님을 신뢰하는 순간 갑자기 300명은 강력한 군사가 됩니다. 강력한 군사가 되었어요. 

사랑하시는 여러분 자기의 연약을 깨닫고 엎드려서 하나님을 의뢰하는 그 순간이 가장 강해지는 순간입니다. 이것을 그리스도인의 삶의 역설이라고 패러독스(Paradox)라고 말할 수가 있습니다. 우리가 연약함 때문에 연약해 지는 것이 아닙니다. 자기의 연약함을 모르기 때문에 연약해 지는 것입니다. 도대체 연약함을 어찌할 줄 모르기 때문에 연약해지는 것입니다. 자기의 연약을 알고 인정하는 자, 그리고 자기의 연약을 사용할 수 있는 강하신 하나님을 의뢰하는 자들은 더 이상 약하지 않습니다. 바울은 이 놀라운 역설을 배웠습니다. 그래서 자기 육체의 가시의 고통스러움을 고백하다가 갑자기 바울이 외쳤든 놀라운 고백이 뭐에요? '내가 약할 때 나는 강하다!' 여러분 이 역설을 생각해 보세요. 내가 약할 때 나는 참으로 강한 자이다. 그렇습니다. 그렇습니다. 이제 300명은 강한 집단이 되었습니다. 강력한 사람들, 바로 여호와를 의뢰하는 믿음을 통해서 그들은 강한 자가 될 수가 있었든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사랑하시는 여러분 금년 한 해에 우리가 아니 우리 일생을 나머지 인생을 걸고 주님을 섬길 때 자기의 연약함을 알기에 주 앞에 엎드리는 사람들, 그리고 참으로 주를 신뢰할 줄 아는 사람들, 그분을 의뢰하는 자로 설수가 있다면 사랑하시는 여러분 저와 여러분은 약한 자가 아니라는 것을 기억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하는 바입니다. 주를 신뢰하는 사람들이 되십시다. 

마지막 세번째로 이 기드온의 용사들은 그들은 준비에 힘쓰는 사람들 이었습니다. 준비에 힘쓰는 사람들, 5절과6절에서 그것을 알 수가 있습니다.여러분 우리가 하나님을 의지한다고 할 때 그리스도인들에게 존재할 수 있는 가장 빈번한 오해는 뭐냐 하면 내가 하나님을 믿기 때문에 나는 아무것도 안해도 좋다는 생각입니다. 잘 들어시기 바랍니다. 진정한 믿음은 믿기 때문에 아무것도 안하는 것이 아니라 참된 믿음은 믿기 때문에 최선을 다하게 하는 것입니다. 내가 하나님을 의뢰한다는 말은 하나님을 신뢰한다는 말은 하나님을 믿고 아무것도 안하는 것이 아니라 전능하신 하나님을 믿기 때문에 그를 믿고 최선을 다하는 것 이에요 우리는 그런 상황을 오늘 본문에서도 볼 수가 있습니다. 
자, 오늘 본문에서 주께서 어떻게 최종적으로 이 300명을 추려 내셨습니까? 어떻게 선별하셨습니까? 그들은 일련의 테스트의 과정을 거치게 되죠? 어떤 과정이었습니까? 물을 마시게 했어요. 두가지로 쫙 갈라졌잖아요? 한 종류의 사람들은 어떻게 했습니까? 무릎을 끓고 편안히 물을 마시고 있었습니다. 여러분 기억하실 것은 이미 전쟁은 시작된 전시 상황이라고 할 수가 있어요. 그런데 선택된 이 300명 그들은 무릎을 꿇지 않았습니다. 손으로 물을 움켰어요 그러니까 물이 얼마나 뭐 그렇게 담을 수가 없었겠죠 그냥 적셨겠죠. 그러나 그것으로 입을 적셨어요. 그러나 하나님께서 그 300명을 선택했어요. 다시 말하면 그들은 긴장을 풀지않고 경계 태세를 가지고 있었든 사람들, 지금 전시 상황이니까, 
저는 우리가 하나님을 대할 때 그리고 우리의 이웃들을 대할 때는 항상 편안한 안식의 자세가 중요하다고 생각해요.그러나 그리스도인 들은 전시 상황에 있다는 것을 아십니까? 깨어라! 너의 대적 마귀가 우는 사자와 같이 두루 다니며 삼킬 자를 찾느니라, 우리가 이 사탄의 대적과 사탄의 간교함을 아는 한 그리스도인 들은 긴장을 풀지 말아야 합니다. 적어도 사탄을 대적하는 일에 있어서 항상 우리는 준비된 자세가 있어야 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대부분의 이스라엘의 병사들은 그 긴장의 띠를 쉽게 풀어버리고 말았다는 것이에요. 하나님은 그들을 쓰시지 않았어요. 준비하고 있었든 사람들만 
여러분! 그들이 시험 받았던 시험은 아주 미미한 것이에요. 물을 마시는 일이에요 뭐 아무것도 아니죠. 물을 마시는 일, 그러나 그것이 테스트 였어요. 또 흥미로운 사실은 그들은 테스트를 받으면서 테스트를 받고 있었다는 사실을 전혀 모르고 있었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오늘도 저와 여러분을 테스트 할지 몰라요. 그 테스트는 일상적인 삶의 환경에서 치루어 집니다. 날마다의 삶의 환경에서 아주 가장 작은 일에서부터 그러나 작은 오늘의 일 앞에 성실할 수 있는 사람, 하나님은 그들을 위해서 내일의 드라마를 내일의 위대함을 준비하고 계시다는 것을, 물을 마시는 일, 아무것도 아닌 일이에요. 그러나 거기서부터 최선을 다하고 준비하고 있었든 하나님의 사람들, 하나님이 그들을 쓰시는 거에요. 우리가 이런 삶의 태도를 가리켜서 하나님 앞에서 삶을 사는 것이다 이렇게 말할 수가 있습니다. 
저 유명한 개혁자인 칼빈의 한평생을 지배했든 삶의 모토는 하나님 앞에서 소위 코람데오 였습니다 내가 하나님 앞에서 산다 누가 뭐 보든지 안보든지 상관없어요. 내가 하나님 앞에서 산다. 하나님 앞에서 최선을 다한다. 하나님은 그들에게서 하나님은 그들에게서 하나님은 그들을 붙들어 한번 놀라운 일을 할 수 있는 가능성을 보신 것 입니다.그리고 그들과 함께 하기 시작한 것입니다. 

저는 늘 성경의 한 사람을 볼 때 마다 그의 삶의 드라마가 저에게 얼마나 크다란 교훈이 되는지 몰라요. 시편 78편을 한번 찾아보세요. 시편78편 마지막 부분입니다. 시편78편입니다. 성경 찾는 것 이것도 테스트입니다. 굉장히 중요한 것 입니다. 녜, 내가 지금 하나님의 말씀을 경청하기 위해서 성경을 펼치고 거기서 주의 음성을 진지하게 들을려는 태도, 하나님이 그것부터 보셔요 그것부터, 성경이 안 찾아지니까 아예 창피를 모면하기 위해서 아예 찾지 않기로 단념하시는 것 하나님이 그 마음도 보십니다.하하~ 이제 찾아보세요 시편78편에 마지막 부분에 보시면70절 우리 다같이 읽겠습니다 시편78편70절입니다. 다함께 읽습니다 시작, '또 그 종 다윗을 택하시되 양의 우리에서 취하시며' 하나님이 왜 다윗을 선택하셨는가 이스라엘 역사의 히어로(hero) 그 역사를 바꾸었든 이스라엘 백성들이 가장 존경했든 하나님의 마음에 합한 사람이었든 다윗, 하나님이 다윗을 택하신 이유를 설명하고 있는 대목입니다.양의 우리에서 취하셨다 그 다음절에 보시면 71절 다같이 '젖 양을 지키는 종에서 저희를 이끄사 그 백성인 야곱, 그 기업인 이스라엘을 기르게 하셨더니' 자, 다윗이 본래 뭐하든 사람 이라구요? 목동이었습니다. 양을 치는 목동, 그러니까 이 구절이 무슨 뜻입니까? 하나님이 다윗이 양무리를 치는 것을 보니까 양 한 마리하고 놀고 그들을 돌보는 일, 너무 성실하게 잘 하는거에요. 하나님은 어느날 이렇게 스스로 말씀하고 있었을 것입니다. 다윗을 내려다 보시면서 아!참 양을 참 잘 돌보는구나! 내가 저 성실한 다윗에게 내 민족을 맡겨도 무방하겠다! 그래서 그를 이스라엘의 왕으로 이스라엘의 목자로 민족의 목자로 다윗을 세워셨다는 거에요. 그러면서 마지막 절에 성경은 이 다윗의 삶의 퀄리티(Quality)를 어떻게 증언하고 있습니까? 마지막절 같이 읽겠습니다. 시작, '이에 저가 그 마음의 성실함으로 기르고 그 손의 공교함으로 지도 하였도다' 다시 말하면 하나님은 다윗이 양을 칠 때의 성실성에서 민족을 리드하는 리드쉽의 Quality를 볼 수가 있었든 것입니다. 
생각나는 구절 없어요? 지극히 작은 것에 뭐에요? 충성 된 자는 큰 것에도 충성되고, 오늘 내 삶의 장에서 오늘 내 사역의 장에서 주어진 일 그것이 아무리 작은 일이라도 상관이 없어요. 그 작은 일을 주의 일로 알고 주께서 나에게 맡기신 일로 알고 신살하게 긴장의 띠를 풀지않고 최선을 다하는 사람들, 그들을 통해서 하나님의 나라의 드라마가 펼쳐진다는 사실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만약 우리교회의 모든 봉사자들이 이런 마음으로 자신의 연약을 알고 교만하지 않고 스스로 겸비하여 전능하신 하나님을 의롸하면서 최선을 다한다면 저는 우리교회를 통해서 하나님이 한번 놀라운 일을 행할 줄로 믿습니다. 

21세기를 향한 우리교회 333비젼 333비젼이 무엇입니까? 처음에 3은 우리가 최소한도 3만명의 가족들에게 영혼을 구원하여 그들을 우리교회 지체들로 삼고자 하는 것 입니다. 저는 여기에 대해서 여러분이 오해하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우리교회가 그냥 무조건 큰 교회 만들자는 것이 아니예요. 여러분 우리 교회 현재의 위치 또 우리교회의 자원, 우리교회의 가능성을 볼 때 이만한 가능성과 자원과 은사와 기회를 부여 받고 있는 우리들이 이 근처에 이 수많은 아파트와 그리고 수많은 우리 주변의 사람들을 볼 때 그 중에 적어도 3만 명의 영혼들에게 복음을 전하여 그들을 구원하지 못한다면 저는 하나님 앞에서 우리의 직무유기라고 생각을 해요. 
그러나 그 중에서 적어도 한 10분의1인 십일조인 한 3천명정도는 정말 평신도의 선교사의 마인드를 가진 사람들, 우리가 해외선교사를 보낼 때, 파송할 때 그 선교사에 기대하는 기대치가 있잖아요? 그런데 똑같은 선교사의 마인드를 가지고 여러분이 여러분의 직장으로 간다면 직장에서 선교사적 삶을 살기위해 내가 학교 교사이기 때문에 학교로 갑니다 마는 나는 그 학교를 복음화 하기위한 선교사로 학교로 가는 것입니다. 병원으로 가는 것입니다. 사업장으로 가는 것입니다. 직장으로 가는 것입니다. 우리가 모두가 선교사의 마인드를 가지고 훈련되어 정말 내 직장에 내 사업의 장에, 내 삶의 장에 파송된 선교사로 훈련 받아 나아가서 복음을 전한다면 이 민족이 좀 달라지지 않겠습니까? 선교사의 마음을 가진 그리스도인 정치가, 선교사의 마음을 가진 그리스도인의 비지니스맨, 선교사의 마음을 가진 그리스도인 의사, 선교사 심정을 가진 가르치는 사람, 좀 달라지지 않겠어요? 
적어도 한 3천명만 있으면 저는 이민족이 좀 바뀔 수가 있지않겠는가? 그리고 그 중에 다시 십일조인 한 300명정도는 열방 가운데 우리가 복음의 빚을 지고 있는 이 세계 열방 가운데 아직도 예수그리스도의 복음을 듣지 못한 사람들 가운데 파송 하여 나라를 바꾸는, 열방들을 바꾸는, 세상을 바꾸는 일들 가운데 한번 참여해보자는 것, 이러한 위대한 드라마는 이 위대한 비젼은 먼저 여러분과 저 개인에게서 시작되는 것 입니다. 오늘 이 순간 지금 여기에서 여기의 삶의 장에서 여기에 봉사의 장에서 하나님 보시기에 나는 누구입니까? 나는 누구입니까? 
내 연약함을 알기에 전능하신 주님 앞에 엎드려 그분을 의뢰하면서 주님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이 고백을 함으로 주 앞에 설수 있다면 이 비젼은 하나님의 비젼이 될 것을 믿습니다. 

기도 하십시다. 
우리 일어나서 기도 하시겠습니다. 
자,다시 밝아오는 한해, 한해를 우리는 청지기로 봉사자의 발걸음으로 걸어가고 살아야 합니다 또 우리 일생 우리 남은 생을 어떻게 사시겠습니까? 우리 모두 참 부족하지요 그러나 부족함을 알기에 주앞에 엎드려 하나님을 의뢰하면서 오늘 우리에게 주어진 가장 작은 일에 신실하게 충성 되게 걸어가는 우리 일꾼들이 될 수가 있다면 저를 쓰시고 여러분을 쓰시고 우리를 쓰셔서 한번 위대한 일을 행하실 주님 앞에서 하나님 그렇습니다. 부족합니다. 연약합니다. 그러나 제가 주님 의지하겠습니다.저를 써주시고요 저를 보내 주시옵소서 

우리 다같이 통성으로 기도 드리겠습니다. 
기도 하십시다. 
지비로우신 아버지 하나님 감사합니다. 오늘 주신 말씀을 받습니다.그리고 우리가 어떻게 우리 남은 생애를 살아야 할 것인가를 묻습니다. 우리의 많은 연약함과 부족함에도 불구하고 주님이 우리를 붙들어주신다면 우리와 함께 하신다면 하나님의 뜻을 펼쳐가는 하나님의 비젼을 실현하는 도구로 우리도 쓰임 받을 수가 있음을 믿습니다. 하나님 저를 붙들어주시고 저와 함께하시고 저희들을 통해서 주의 영광을 선포하시며 복음의 위대한 비밀을 드러내시고 그래서 하나님의 나라가 이땅에 이루어지는 놀라운 삶을 우리에게 펼쳐 주옵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