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화의 기적을 체험하자”(요 2:1-11) 

모든 사람들은 끊임없이 변화를 추구하고 있습니다. 특히 변화무쌍한 시대에 살고 있는 현대인들은 변화의 시대에 살기를 원합니 다. 그래서 사람들은 변화를 위해서 때때로 가구를 새로 구입하거나, 새롭게 배치하기도 하고, 머리카락을 다듬기도 하고, 짤라보기 도 해보고, 옷도 새로 사서 다른 옷을 입어 보기도 하고, 화장도 하기도 하고, 젊은 친구들은 이성 친구들을 바꿔 보기도 하 고, 어떤 사람들은 사업을 바꿔 보기도 합니다. 그러나 이러한 일시적인 변화들이 우리의 근본적인 욕구를 충족시켜 줄 수는 없습니 다. 그러기에 여전히 사람들은 만족할 수 없습니다. 왜냐하면 세속적으로부터 기인된 변화는 우리에게 진정한 만족과 즐거움, 기쁨 을 줄 수 없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어떤 사람들은 보다 더 짜릿한 변화를 위해서 변칙적인 방법을 찾기 시작합니다. 바로 그것이 바 로 마약과 섹스(Sex)입니다. 그러나 이러한 것은 순간적인 변화이지, 우리를 근본적으로 변화시킬 수 없습니다. 그러기에 이러 한 사람들은 보다 강도를 높여 보지만 그러면 그럴수록 자기 자신을 타락시킬 뿐입니다. 왜냐하면 진실된 변화만이 우리를 기쁨과 만족 을 줄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인간은 결코 우리의 욕구를 충족시킬 수 있는 변화를 가질 수 없는 것입니까? 아닙니다. 성경은 우리에게 분명하 게 말씀하시기를 인간을 만족시킬 수 있는 변화를 주시는 분에 대하여 말씀하시고 있습니다. 그 분이 누구이십니까? 바로 그분이 예수 님이십니다. 예수님 우리 인생에게 참다운 만족과 기쁨을 주십니다. 예수님은 세례 요한과 같이 세속과 절연(絶緣)하고 살거나 신비주 의자들과 같이 산이나 동굴 속에 살면서 현실에 초연한 모습으로 계시지 아니하셨습니다. 주님은 언제나 우리의 삶의 현장 속으로 찾아 오시는 분이시고, 우리의 삶에 진정한 변화를 주시는 분이십니다. 

이러한 측면에서 본문은 우리 인생의 질문에 궁극적인 대답을 주고 있는 것입니다. 본문의 말씀은 예수님께서 최초로 베푸 신 「가나 혼인 잔치의 이적」에 대한 말씀입니다. 그렇다면 ① 가나 혼인 잔치의 시기는 언제입니까? “사흘 되던 날” 곧 주님께 서 빌립과 나다나엘을 부르신 후 사흘 되던 때를 말합니다. ② 그 장소는 어디였습니까? 갈릴리 가나였습니다. ③ 이 기적의 사 건 배경은 무엇이었습니까? 혼인 잔치였습니다. ④ 이 기적의 주빈은 누구였습니까? 예수님과 그의 어머니 그리고 제자였습니 다. ⑤ 이 기적의 진실성 여부은 어떠합니까? 진실한 이적이었습니다. 이는 본문&nbsp6절에서 언급하고 있는 것처 럼 “돌 항아리 여섯 개”라는 숫자가 이 사건의 진실성을 밝히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본문의 사건을 단순하게 「물로 포도주를 바꾸는 기적」의 차원에서 이해해서는 안됩니다. 주님은 이 변화의 기적을 통하 여 강력하게 교훈 하시는 것이 있습니다. 그것이 무엇입니까? 그것은 본문&nbsp11절에서 말씀하시고 있는 것처럼 예수님 은 가나 혼인 잔치의 기적을 통하여 하나님께 영광을 돌렸으며, 우리들에게는 진정한 믿음을 주셨습니다. 본 사건은 희미한 믿음을 가 진 제자들에게 확실한 믿음을 갖게 하신 것처럼 우리는 본문을 말씀을 통하여 연약한 우리의 믿음을 바로 세워야 할 것입니다. 복음 의 능력을 확실할 수 있어야 하겠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기독교는 인간의 허무와 위선으로 치장된 종교가 아닙니다. 근본적으로 기쁨과 환희입니다. 그러므로 진 정한 변화를 통하여 만족을 추구하고자 인간을 만족시켜 줍니다. 그러므로 진정한 변화를 원하는 인간에게는 예수 그리스도가 절대적으 로 필요합니다. 왜냐하면 예수님과 상관이 없는 인생이 아무리 변화를 추구하여도 그것은 해결 없는 절망이나 슬플 만이 있을 뿐이 기 때문입니다. 그러면 본문의 말씀을 통하여 우리가 어떻게 「변화의 기적」을 체험할 수 있는지에 대하여 함께 생각해 보면서 은혜 를 나누고자 합니다. 

1.변화의 기적은 예수님께서 함께 하실 때에 일어나는 것입니다(2절) 
본문&nbsp2절에 보니 “예수와 그 제자들도 혼인에 청함을 받았더니”라고 말씀하시고 있는 것처럼 변화의 기적은 예수님께서 함께 하실 때에 일어납니다. 

① 예수 그리스도는 신성(神聖)을 가지신 분으로서 자연과 환경과 모든 것을 소유하고 주관하시는 분이시고(요2:8,9), 모 든 것을 소유하고 다스리시는 분이십니다. 그러기에 예수님께서 물로 포도주를 만드는 것은 너무도 자연스러운 일이라는 것입니다. 

② 예수 그리스도는 인간의 결핍을 충족시킬 수 있는 은혜를 베푸시는 분이십니다. 그러기에 물로 포도주를 만드신 것은 너무 도 당연한 일라는 것입니다(2:7,8) 혼인 잔치 집에 포도주가 떨어졌다는 것은 혼인의 기쁨이나 축하의 기쁨을 파국으로 몰고 가 는 요인으로 작용할 뿐만 아니라 그것은 혼인집의 큰 수치가 되고 하객들의 축복을 저주로 변하게 할 수 있는 위험을 내포하고 있었습 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 물로 포도주를 만드심으로써 혼인집과 하객들 모두에게 기쁨을 더하게 하셨습니다. 

③ 예수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영광을 나타내시고자 오신 분이십니다. 그러기에 예수님은 물로 포도주를 만든 기적을 통하여 삶 의 변화를 갖게 하시고 삶의 목적을 가르쳐 주시고 있는 것입니다(요2:11) 하나님의 영광은 인간의 삶 속에서 하나님의 뜻이 성취 되게 하심으로써 인간의 삶이 보다 의미 있게 하고 긍정적이며 희망적이게 함으로써 영광을 나타내십니다. 
그렇습니다. 주님 없는 세상은 마치 포도주가 떨어진 잔치 자리와도 같습니다. 
주님 없는 이 세상은 외형적으로는 풍요롭고 화려한 듯이 보이지만 실제로는 포도주가 떨어진 혼인 잔치와 같이 참된 기쁨과 즐 거움이 없습니다. 겉으로는 신랑, 신부의 화려한 의상과 풍성한 잔치 음식, 여기저기서 들려오는 웃음소리가 잔칫집을 가득 메우는 듯 합니다. 그러나 그 실상을 살펴보면 뒤에서는 포도주가 떨어진 잔칫집의 주인이 초조하고 안타까운 심정으로 술을 구하기 위해 백방으 로 노력하듯 불안과 당혹감만 가득할 뿐입니다. 그러므로 성도 여러분! 진실로 우리에게 참된 기쁨과 평안을 가져다주는 분은 공허하 고 허탄한 이 세상의 요란하고 화려한 물질이 아니라 참된 포도주요, 생명의 포도주가 되시는 우리 주님이심을 분명히 기억합시다. 
또한 주님은 우리의 삶 속에서 동행하십니다. 예수님께서 삶의 여정 속에서 「우리와 더불어 동행하신다」는 것은 「삶의 모 든 것을 보증 받는다」는 예표(豫表)이며, 「모든 것을 가능케 한다」는 축복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가나 혼인집에 예수님께서 초청되 어 계셨다는 그 자체가 낭패된 일을 해결할 수 있는 열쇠가 되었던 것입니다. 

이처럼 예수님은 우리 인생의 동반자가 되셔서 언제나 함께 동행하여 주십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 인생의 동반자가 되신다고 것 은 그저 잠깐 만났다가 헤어져 버리고 또 만났다가 떠나 버리는 것이 아닙니다. 인생의 동반자 되신 예수 그리스도는 어제도 오늘 도 내일도 영원토록 우리와 함께 해주시고, 우리의 도움이 되어 주시는 분이십니다. 그러기에 예수 그리스도께서 함께 하시는 삶에 는 놀라운 기적의 역사가 끊임없이 일어날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주님은 우리의 모든 형편 잘 아는 주님이십니다. 주님은 우리의 모 든 질병을 잘 아시는 분이십니다. 주님은 우리의 모든 시험을 잘 아시는 분이십니다. 주님은 모든 고민을 잘 아시는 분이십니다. 

사도 베드로가 말하고 있는 것처럼 “우리 인생은 나그네와 행인(行人) 같은 존재”입니다(벧전&nbsp2:11) 그러 기에 우리 인생은 참으로 힘들고 어렵게 문제 속에 살아갈 수밖에 없습니다. 때를 따라 걷다고 지쳐서 도저히 지쳐 버려서 그 자리 에 부저 앉고 싶은 욕망을 느낄 때가 많이 있습니다. 때를 따라 모든 것들을 다 포기하고 싶을 때가 있습니다. 어느 때에는 깊 은 터널을 통과하는 것처럼 참으로 답답할 때가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 주님이 함께 하실 때에는 ① 언제나 어디서나 보호를 받습니다. 그러기에 우리는 환경의 변화를 체험하게 되 고, 원수 마귀, 사탄도 이기지 못하는 기적을 체험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사도 요한은 요일&nbsp54에서 “대저 하 나님께로 난 자마다 세상을 이기느니라. 세상을 이기는 것은 우리의 믿음이니라”고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다니엘이 사자 굴에서 건 짐을 받은 기적과 그의 세 친구들이 불 가운데서도 머리털 하나 상하지 않도록 지키시는 기적은 하나님과 동행하는 자에게는 체험되어지 는 축복인 것입니다. 

사도 바울이 고후&nbsp4:8-10에서 “우리가 사방으로 우겨쌈을 당하여도, 싸이지 아니하며, 답답한 일을 당하여 도 낙심하지 아니하며, 거꾸러뜨림을 당하여도 망하지 아니하고”라고 말씀하고 있는 것처럼 우리는 결코 어떠한 일로도 낙심할 수 없습 니다. 왜냐하면 임마누엘 되시는 주님께서 우리와 함께 하셔서 보호하시기 때문입니다. 

② 예수님과 동행하는 자의 삶 속에는 언제나 넘치는 기쁨과 만족이 있습니다. 
평강의 하나님이신 주님께서(롬&nbsp15:33) 우리에게 분명하게 말씀하십니다. “평안을 너희에게 끼치노니 곧 나 의 평안을 너희에게 주노라. 내가 너희에게 주는 것은 세상이 주는 것 같지 아니하니라. 내가 너희에게 주는 것은 세상이 주 는 것 같지 아니하니라. 너희는 마음에 근심도 말고 두려워하지도 말라”고 말씀하십니다(요&nbsp14:27) 

세상 사람들은 누구나 기쁨과 만족을 갈망합니다. 그래서 돈이나 명예나 쾌락이나 지식이나 이성의 정욕을 찾습니다. 그러 나 참 기쁨과 만족 대신에 근심과 고통과 번민이 더할 뿐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 하는 자만이 역경에서나 순경에서나 참 만족 과 기쁨의 변화를 누리게 되는 것입니다. 

③ 예수님과 함께 하는 자는 풍족하게 되고, 형통함을 누리게 됩니다. 
혼인 잔치 집에 손님들은 “포도주가 처음 것보다 나중 것이 더 좋았더라”고 격찬하였습니다(10절) 가나 혼인집에 항아리 가 변화의 기적을 가져온 것도 신랑 신부가 기적을 일으킨 것이 아니라 그곳에 계셨던 예수님께서 일으키셨습니다. 기독교의 역사상 에 누구든지 예수님과 함께 하였던 자들은 모두가 변화의 기적을 체험하게 됩니다. 그 대표적인 예가 이스라엘의&nbsp4 대 족장이었던 요셉이었습니다. 창&nbsp39장에 “여호와께서 요셉과 함께 하시매 형통하였더라... 하나님께서 함께 하심으 로 형통하였더라”고 여러 번씩이나 분명하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요셉은 하나님께서 함께 하심으로 인하여 애굽의 군대 장관 보디발 가 정에 종살이할 때도 형통하였고, 억울하게 감옥에 갇혔을 때에 형통하였습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풍족하게 되고, 형통함을 누리게 되 는 것은 우리의 환경에서 연유되는 아니라 예수님께로부터 연유되는 것임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따라서 우리는 변화의 기적은 예수님께 서 함께 하실 때에 일어나는 것임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2.변화의 기적은 예수님께 간구할 때에 일어납니다.(3절) 
본문&nbsp3절에 “포도주가 모자란지라 예수의 어머니가 예수에게 이르되 저희에게 포도주가 없다하니...”라고 말씀하고 변화의 기적은 예수님께 간구할 때에 일어납니다. 
혼인 잔치집에 포도주가 떨어졌습니다. 이는 낭패요 수치요 당황입니다. 없다는 것은 슬픔과 고통이 따릅니다. 이는 건강이 없 을 때, 밥이 없을 때 옷이 없을 때, 집에 없을 때, 사랑이 없을 때, 기쁨이 없을 때 당황하고 낙심하는 것과 마찬가지입니 다. 그런데 주님을 아는 마리아는 그 부족한 것을 채우시는 예수님께 아뢰었던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신앙(信仰)이란 우리의 부족함과 당황과 낙심을 주님께 아뢰는 것입니다. 
그래서 베드로 사도는 벧전&nbsp5:7에서 “너희 염려를 다 주께 맡겨 버려라 이는 저가 너희를 권고하심이니라” 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또한 렘&nbsp33:2,3에서 "일을 행하는 여호와 그것을 지어 성취하는 여호와 그 이름은 여호와 라 하는 자가 이같이 이르노라 너는 내게 부르짖으라. 내가 네게 응답하겠고 네가 알지 못하는 크고 비밀한 일을 내게 보이리라 “고 약속하고 있습니다. 
뿐만 아니라 우리의 부족함을 아시는 주님은 마&nbsp7:7-11에서 “구하라 그러면 너희에게 주실 것이요 찾으 라 그러면 찾을 것이요 문을 두드리라. 그러면 너희에게 열릴 것이니 구하는 이마다 얻을 것이요. 찾는 이가 찾을 것이요. 두드리 는 이에게 열릴 것이니라 너희 중에 누가 아들이 떡을 달라하면 돌을 주며 생선을 달라하면 뱀을 줄 사람이 있겠느냐 너희가 악한 자 라도 좋은 것으로 자식에게 줄줄 알거든 하물며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서 구하는 자에게 좋은 것으로 주시지 않겠느냐“라고 분명하 게 약속해 주시고 있습니다. 

마리아가 부족함을 채워주시는 예수님께 필요함을 간구한 것처럼 우리는 나의 부족한 것을 서슴없이 아뢰어야 됩니다. 그리하 면 반드시 응답해 주실 줄 믿습니다. 그래서 사도 야고보는 약&nbsp1:5에서 “너희 중에 누구든지 지혜가 부족하거든 모 든 사람에게 후히 주시고 꾸짖지 아니하시는 하나님께 구하라 그리하면 주시리라”고 약속하고 있습니다. 또한 요 일&nbsp3:22에서 “무엇이든지 구하는 바를 그에게서 받나니 이는 우리가 그의 계명들을 지키고 그 앞에서 기뻐하시는 것 을 행함이라”고 말씀하시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부족한 것을 믿음으로 주님께 아뢸 수 있어야 합니다. 그리함으로 반드시 응답 해 주실 줄 믿습니다. 

3.변화의 기적은 예수님의 말씀에 순종할 때 일어납니다(5절) 
본문&nbsp5,7절에 보니 “그 어머니가 하인들에게 이르되 너희에게 무슨 말씀을 하시든지 그대로 하라 하니 라&nbsp... 예수께서 저희에게 이르시되 항아리에 물을 채우라 하신 즉 아구까지 채우니 연회장은 물로 된 포도주를 맛보 고 어디서 났는지 알지 못하되 물 떠온 하인들은 알더라 연회장이 신랑을 불러 말하되 사람마다 먼저 좋은 포도주를 내고 취한 후 에 낮은 것을 내거늘 그대는 지금까지 좋은 포도주를 두었도다 하니라”고 말씀하시고 있는 것처럼 변화의 기적은 예수님의 명령을 순종 할 때 일어납니다. 

마리아는 하인들에게 이르기를 “너희에게 무슨 말씀을 하시든지 그대로 하라”고 하였습니다. 왜냐하면 주님께서 하시는 명령 은 온전한 말씀이기에 오직 순종하게 되면 곧 맹물이 포도주로 변화되는 기적을 체험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순종은 무엇에서든지 하나 님으로 하여금 일하시게 하는 비결입니다. 그래서 마틴 루터는 말하기를 “순종은 이적보다 낫다”라고 말하였습니다. 

우리 그리스도인들이 쓰는 용어들 가운데 「사랑, 은혜, 믿음, 속죄, 소망」 등과 같이 여러 가지가 있습니다. 그러 나 그 중에서도 가장 많이 쓰는 단어가 “아멘”입니다. 기도할 때나 설교를 듣다가 감동이 오면 그리고 찬송을 부를 때에 더 깊 은 신앙의 고백으로 아멘 이라고 말합니다. 그러므로 기독교에서 쓰이는 모든 용어를 한마디로 종합하면 바로 「아멘」이 될 것입니 다. 이 「아멘」이란 말은 구약에서 신약에서 이르기까지 수백 번이나 기록되어 있습니다. 이 말의 본래의 뜻은 “진실로 그러합니 다, 그렇게 믿겠습니다, 그렇게 이루어지기를 원합니다. 확실합니다. 분명합니다”라는 것이며 부사로 쓰일 때는 “진실로, 참말로”라 는 뜻으로 쓰이고 있습니다. 
그렇다고 하면 하나님과 예수님의 말씀이나 명령을 진실로 믿는 그리스도인이라면 그 명령에 다만 순종만이 있을 뿐입니다. 그 순종의 과정을 통해서 인격도 삶도 변화되게 되고 기적도 체험을 하게 되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① 자기 자신의 권한이나 주권을 포기하고 온전히 하나님 말씀 앞에 순종하는 자에게 변화의 기적을 체험할 수 있습니다. 
사울은 하나님 앞에 겸손히 낮아져서 자기 권한을 하나님 앞에 포기할 때에는 하나님께서 그를 높여 주셨지만, 자기 자신이 스 스로 교만하고 자기 권한을 주장하면서 불순종하게 될 때, 그는 버림을 받아 비참하게 될 수밖에 없었습니다(삼 상&nbsp15:7) 그러나 지렁이 같은 야곱은 딸 디나가 세겜 추장에 의하여 못된 짓을 당하는 큰 낭패를 당하였으나, 하 나님의 명령에 순종하여 “이방 신상을 버리고, 자신을 정결케 하고, 의복을 바꾼 후에 일어나 벧엘로 올라 갈 때”에 삶에 엄청 난 변화의 축복을 받을 수 있었습니다(창&nbsp35:2,3) 아브라함과 이삭에게 나타나셔서 계시하셨던 하나님께서 이제 야 곱에게 나타나셔서 이제는 그의 이름을 “야곱”이라고 하지 않고 “이스라엘”이라고 하셨습니다. 그리고 야곱에게서 이스라엘의 열두 지 파가 나오게 되는 엄청난 축복을 받을 수 있었던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인생의 핸들을 내가 붙잡고 있으면 주님께서는 우리를 온전히 운전하실 수 없습니다. 그리스도의 절대 지배권의 확 립이 되어 있지 않을 때에는 하나님의 능력도 기적도 나타날 수 없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인생의 핸들을 주님께 드려야 합니다. 우 리 자신의 모든 주권을 포기하고 온전히 하나님 말씀 앞에 순종할 수 있는 자가 되어야 합니다. 

② 주님께서 명하시는 일이라면 무엇이나 그대로 하기만 하면 좋은 결과를 주실 줄 믿고 그대로 믿음 안에 의지하고 순종할 때에 기적의 변화를 체험할 수 있습니다(요15:15) 
우리 인생에게 바램도 있고 욕망은 있더라도 “주님을 떠나서는 아무 것도 할 수” 없는 존재임을 깨닫고, 오직 주님의 말씀 을 의지하고 그 안에서 순종하여야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잠언&nbsp305에서도 “하나님의 말씀은 다 순전하며 하나님 은 그를 의지하는 자의 방패시리라”고 했습니다. 
그렇습니다. 바다에서 태어나 바다에서 잔뼈가 긁은 베드로로서 어느 누구보다도 고기 잡는 것에는 풍부한 경험을 가졌던 베드로 였지만 “깊은 데로 가서 그물을 내려 고기를 잡으라”고 말씀하시는 주님의 말씀에 “선생이여 우리들이 밤이 맞도록 수고를 하였으 되 얻은 것이 없지마는 말씀에 의지하여 그물을 내리리이다”라고 순종할 때에 “고기를 에운 것이 심히 많아 그물이 찢어지지라” 고 할 정도로 인간의 경험을 능가한 놀라운 기적의 역사가 일어났습니다. 이처럼 우리가 인간적으로 도저히 납득이 되지 않지만 “하나 님의 말씀을 의지하여” 순종(順從)할 때에 변화의 기적을 체험하게 될 것입니다. 

③ 변화의 기적은 하는 척 하다가 마는 것이 아니고 끝까지 돌 항아리의 물을 아구까지 채울 때에 일어났던 것처럼 끝까지 하 는 충성을 다하는 자에게 일어납니다(요2:7) 하나님께서는 순종을 요구하십니다. 아담과 하와가 불순종하여 이 땅에 실패와 가난 과 죄가 들어오게 됨으로 멸망케 되었으나 우리 예수님께서는 죽기까지 순종하심으로써 의와 평강과 영생과 구원을 이루어 놓게 되었 던 것입니다. 
우리 자신의 질그릇 속에 못된 교만과 정욕과 불순종의 요소를 모두 다 쏟아 부어 버리고 다시 주님의 명령을 받아 새로운 생 수를 채움 받게 될 때 현재와 미래와 영원을 좌우할 수 있는 삶의 기적들이 나타나게 될 줄로 믿습니다. 복종을 아는 자는 모든 것 을 아는 자요, 그리스도인이라고 하면 무엇보다도 순종을 먼저 배우는 훈련을 받아야 능력 있는 신앙의 생활로 변화나 기적을 누릴 것 입니다. 

4.변화의 기적은 은밀한 중에 일어납니다(9절) 
본문&nbsp9절에 보니 “연회장은 물로 된 포도주를 맛보고 어디서 났는지 알지 못하되... ”고 말씀하시고 있 는 것처럼 변화의 기적은 예수님의 명령을 순종할 때 일어납니다. 혼인 잔칫집에 무미한 맹물을 맛있는 극상품의 포도주로 변화시키 는 사건은 놀라운 일입니다. 그 일이 없었더라면 축하 손님들에게 실례요, 신랑 신부의 기쁨은 절망으로 바뀔 것이며, 양가 부모님들 은 일생의 수치와 부끄러움을 받아야 할 사건이 변화의 기적을 통하여 큰 축복을 받게 된 것입니다. 
가나 혼인 잔치의 기적은 한 두껍의 물이 아니라 여섯 개의 큰항아리에 가득 채워진 많은 양의 물을 변화시키는 주님의 역사 는 연회장도 알지 못할 정도로 은밀하게 행하셨습니다. 물론 포도주 맛과 나중 나온 포도주의 맛에 대한 차이점은 구분하였으나 변화 가 어떠한 과정을 통하여 되었는지 전혀 알지 못하였습니다. 

그런데 이 세상의 사람들은 변변치 않는 자그마한 사건을 놓고도 요란스럽게 침소(寢所)붕대(繃帶)격으로 선전하므로 자기의 공 로나 의를 자랑합니다. 하지만 하나님의 주권(主權)이나 역사를 믿는 진실한 그리스도인들은 도리어 선행을 하고도 별로 드러내지 않습 니다. 왜냐하면 자기 자신이 성행할 환경이나 결과도, 또한 순종하고 복종할 믿음 그 자체도 하나님의 주권임을 믿기 때문입니다. 
이처럼 주님의 구속 역사는 마치 한 덩어리의 누룩이 많은 양의 밀가루를 부풀게 하여 발효시키듯이 은밀하고 조용하게 각 개인에게 역사 하지만 변화된 각 개인은 엄청나고도 놀라운 폭발적 능력은 변화된 삶을 살게 되는 것입니다. 

① 주님은 구제나 기도나 금식하는 것을 은밀하게 행하므로 외식하는 자와 같이 되지 말라고 하셨습니다(마&nbsp65,6,17,18) 
사람에게 영광을 얻으려고 하는 구제는 이미 상을 받았기에 상급이 없다고 말씀하십니다. 그러므로 구제하는 오른 손이 하는 일 을 왼손이 모르게 은밀한 중에 행해야 합니다. 그리할 때만이 은밀한 중에 보시는 주님께서 갚아 주시는 것입니다. 또한 기도하는 자 는 은밀한 중에 골방 들어가서 하고, 금식하는 자는 사람에게 보이려고 하지 말아야 한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특히 기도의 행위 는 전적으로 하나님과의 관계이기 때문에 사람에게 보이므로 상급을 상실하지 말라고 권고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성숙한 신앙인은 어려움 이 있을 때에 더 은밀하게 기도의 시간을 가져야겠습니다. 

② 하나님께서는 반드시 은밀한 일을 살피시고 드러내시며 심판하십니다. 
그래서 마태는 마&nbsp6장을 통하여 “하나님은 은밀한 중에 갚으시는 하나님이시다”고 말씀하시고 있고, 욥 은 욥&nbsp1222에서 “어두운 가운데서 은밀한 것을 드러내시는 분이시다”라고 고백하고 있습니다. 뿐만 아니라 사도 바 울은 롬&nbsp2:16에서 “하나님이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사람들의 은밀한 것을 심판하신다”고 말씀하시고 있습니 다. 그러기에 하인들이 순종을 은밀하게 행하였으나 그의 믿음의 결과를 기뻐하시고 맹물을 포도주로 바꾸어 주시는 축복을 받아 누리 게 된 줄 믿습니다. 

③ 인간과 인간관계를 참된 변화나 화목을 원하는 그리스도인들은 그 형제에 대한 은밀한 일 자체를 어떤 경우라도 누설치 않습 니다. 그래서 잠&nbsp25:9에서 “너는 이웃과 다투거든 변론만 하고, 남의 은밀한 것을 누설하지 말라”고 말씀하고 있 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 하나님께서는 근본적인 변화를 은밀하게 행하시므로 좋으신 결과를 가져와 주시는 것입니다. 우리는 일상의 삶의 현장 속에 서 지극히 작은 일이라도 성실하게 나의 직무를 믿음으로 감당해 나가다 보면 머지 않아서 엄청난 변화의 환경에서 기적의 열매를 거두 게 될 것입니다. 기독교의 역사 중에, 봉사하는 중에, 사랑의 충성을 하는 중에, 부요한 사람으로 승리의 사람으로 변화는 자신 을 바라보게 될 것입니다. 

이제 말씀을 맺겠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솔로몬은 이 세상에서 누릴 수 있는 모든 부귀 영화를 다 누려보았습니다. 그러나 이런 솔로몬도 노년 에 이르러서는 전도서에서 이 세상의 모든 것을 다 헛되고 헛되다고 고백하였습니다. 그리고서는 솔로몬은 결론적으로 교훈하기를 “오호 라 나는 곤고한 자로다고 탄식할 때가 이르기 전에 젊은 날에 창조주 하나님을 기억하라”고 하였습니다 (전&nbsp12:1) 그렇습니다. 우리 주님이 없는 이 세상은 겉으로는 아름답고 화려한 듯이 보이나 실상은 포도주가 떨어 진 잔칫집 주인의 심정처럼 초조함과 당혹감으로 가득차 있습니다. 그러기에 우리는 주님 없는 이 세상에서는 결코 변화된 삶도, 영원 한 기쁨과 즐거움도 누릴 수가 없습니다. 그러므로 성도 여러분! 우리는 이 죄악된 세상에서 자신도 알지 못하는 허탈하고 무익하 고 육신의 즐거움에 사로잡히는 어리석은 자가 되지 말아야 하겠습니다. 무엇보다도 본문을 통하여 우리가 깨달은 것처럼 변화의 기적 은 예수님이 함께 하실 때에 일어난다는 것을 명심합시다. 변화(變化)의 기적은 예수님의 말씀을 순종하고 복종(服從)할 때에 일어납 니다. 변화의 기적은 요란한 중에 나타나는 것이 아니라 아주 은밀한 중에 일어난다는 것을 명심합시다. 하지만 이러한 진정한 변화 의 역사는 어떤 제도적 힘으로나 교육으로나 훈련으로 되어지는 것이 아니라 다만 예수 그리스도가 주로 시인되어지는 곳에서만 되어 질 것입니다. 그러므로 겸손하게 그 분을 높이고 그 말씀을 받들어 순종하면서 묵묵히 살아가는 그곳에 변화의 기적은 태동하게 될 것 입니다. 이제 바라기는 이러한 변화의 기적이 우리 자신을 물론이고 가정과 교회, 여러분이 속한 직장과 모임 위에 함께 하시기를 주 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