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익(無益)한 종 

-류철량목사/ 부천동광교회
마태복음 25 : 24~30



문화의 발달은 버리는 것이 많아지게 합니다. 값비싼 옷감으로 만든 멀쩡한 옷인데도 버리게 됩니다. 찢어지거나 달아서 못 쓰는 것이 아니라 유행 때문에 버려야 합니다. 시대는 바뀌는데 한 번 만들어진 물건은 변하지 않고 그대로 있으니 버려질 수밖에 없습니다. 사람도 그렇습니다. 내가 달라져야지 그냥 그대로 있으면 쓸모가 없어집니다. 석유등잔을 켜고 살던 마을에 전기가 들어오면 등잔은 버리게 됩니다.

여기 무익한 종의 이야기가 있습니다. 그는 주인에게 유익을 주지 못하여 해고되었습니다. 회사에 유익을 못 주는 사원은 해고됩니다. 종은 주인에게 내쫓겼습니다. 유익은커녕 해를 끼치고 있다면 더 말할 것 없습니다.



무익한 종은 어떤 사람일까요?



1. 그는 아무 일도 하지 않았습니다.



아무 일도 하지 않고 안일하게 세월을 보낸 것이 문제였습니다. 주인으로부터 받은 한 달란트를 잃어버리거나 도둑맞았기 때문에 내쫓긴 것이 아니라 아무것도 해보지도 않은 것입니다. 차라리 모험을 하다가 원금을 잃은 것이 나았습니다.

본문은 그 사람을 악하다고 합니다. 얼른 생각하면 그는 달란트를 땅을 파고 묻어 두었다가 그 돈을 고스란히 주인에게 내놓고 있습니다. 주인의 돈을 축내지 않으려고 애쓴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그런데 왜 그를 악하다 하는 것일까요?주인에 대한 오해 때문입니다. 주인을 잘못 알고 있었습니다. 24절에 주인은 “굳은 사람”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자기 주인을 “심지 않은 데서 거두고 뿌리지 않은데서 모으는 사람”으로 알았습니다. 우리가 심지 않으면 하나님도 자라게 할 수 없습니다. 그러나 두 달란트와 다섯 달란트를 받았던 두 사람은 주인으로부터 받은 달란트를 가지고 즉시 가서 장사를 했습니다. 원금의 갑절이나 소득을 올렸습니다. 주인이 시켜서가 아니라 스스로 했습니다. 잘했느냐, 잘못했느냐 이전에 그는 아무 일도 하지 않았다는 데 문제가 있습니다. 

신앙생활도 그렇습니다. 나는 잘못한 것이 없다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아무 일도 하지 않은 것이 문제입니다. 한 달란트를 받았던 사람이 빠지기 쉬운 시험은 ‘내 재간에 무엇을 할 수 있겠느냐? 나는 못 한다’입니다. 자기를 과소평가하기 쉽습니다. 자포자기하며, 자기보다 유능한 자를 부러워하며 혹은 시기하고, 하나님과 부모를 원망하기 쉽습니다. 그의 정죄의 원인은 두려워하여 사업에 손을 대지 못한 것입니다. 하나님에 대한 신앙도 자신에 대한 신념도 없었습니다. 자기에게 주어진 재능으로 무엇인가 해봐야 할텐데 아무 일도 하지 않는 것이 무익한 종이 되게 했습니다. 여러분 무익한 종이 아니라 유익한 종, 꼭 필요한 사람이 되시기 바랍니다. 아무 일도 하지 않는 것은 무익한 사람이 되는 길입니다.



2. 그는 게을렀습니다. 



게으른 사람은 어딜가나 환영받지 못합니다. 그는 악하고 또 “게으른 종”이라고 했습니다. 6세기 말에 그레고리 교황은 사람이 범하는 죄를 일곱 가지로 분류했습니다. 교만, 분노, 시기, 질투, 음란, 탐욕, 그리고 게으름입니다. 헤밍웨이는 부지런함을 가장 좋은 덕목으로 꼽았으며, 톨스토이는 게으른 자의 머릿속은 악마가 집을 짓기에 가장 알맞은 장소라고 했습니다. 인생을 성공적으로 살았던 사람은 모두 부지런했습니다.

성경은 게으름 자체를 죄로 규정합니다. 게으르지 말고 부지런하라고 하십니다. 발명왕 에디슨은 “일할 때는 절대로 시계를 보지 말라”고 했습니다. “게으른 자는 마음으로 원하여도 얻지 못하나 부지런한 자의 마음은 풍족함을 얻느니라(잠 13:4)” 하셨습니다.

열 처녀 가운데 다섯 처녀는 부지런하고 다섯 처녀는 게을렀습니다. 부지런함이 신랑을 영접했고, 게으름 때문에 심판을 받았습니다. 부지런은 천국이며, 게으름은 지옥입니다. 그때 신랑은 게으른 자에게 말씀하기를 나는 “너희를 알지 못하노라” 하였습니다(마 25:12). 게으른 자의 정욕이 그를 죽이나니 이는 그 손으로 일하기를 싫어함이니라(잠 21:25). 게으름은 하나님께도 죄가 되고, 자기 자신에게도 해가 됩니다. 게으름은 무익한 종이 되게 합니다. 게으른 사람은 굼벵이 같다고 합니다. 꼼짝도 하지 않고 가만히 있는 것입니다. “게으른 년 섣달 그믐날 빨래한다”는 말이 있습니다. 인도의 어느 지방에 일하기 싫어하는 게으름뱅이가 있었습니다. 그는 결국 거지가 되어 얻어먹는 신세가 되었습니다. 어느 날 길가에 앉아 구걸을 하는데 석가모니가 지나갔습니다. “한 푼만 보태줍쇼” 구걸하니, 밥을 주는데 거지가 손을 내밀어 받으려 했으나 웬일인지 손이 펴지지 않았습니다. 그때 석가는 일하기 싫어 구걸하기 때문이다. 수족은 일하는 사람에게 필요하니 이제 앞으로는 눈도 못쓰게 될 것이라고 했습니다.

게으름을 내쫓아야 합니다. 게으름이 내 속에 자리 잡고 앉아 있으면 나는 무익한 종이 됩니다. 쓸모없는 폐품이 됩니다. 게으른 자식은 낳지도 말라 했습니다. “게으른 자여 네가 어느 때까지 눕겠느냐(잠 6:9).” 부지런하여 유익한 종 되시기 바랍니다.



3. 그는 있는 것을 활용하지 않았습니다.



이 사람은 주인으로부터 받은 달란트를 땅을 파고 묻어 두기를 주인이 오랜 후에 돌아 올 때까지 했습니다. 하나님이 주신 은사와 재능을 활용하지 않으면 무익한 종이 됩니다. 모든 사람에게는 타고난 재능이 있습니다. 그것은 하나님이 주신 것으로 그것을 활용해야 합니다. 샘물은 퍼서 써야 계속 솟아납니다. 칼도 쓰지 않으면 녹이 슬어 못 쓰게 됩니다. 폐품도 활용하면 유용하게 쓰여집니다. 사람의 수족도 써야 건강해지고 안 쓰면 시들어집니다. 눈도 쓰면 시력을 보존할 수 있으나, 쓰지 않으면 시력을 잃고 맙니다. 죽을 끓일 때도 주걱으로 잘 저어 줘야지 가만히 놔두면 탑니다.

강철 왕 카네기가 세상을 떠났을 때 그 묘비에는 이런 문구가 새겨졌다고 합니다. “여기 자기보다 훌륭한 사람을 잘 활용하여 크게 성공한 사람이 잠들어 있다.” 자기보다 더 유능한 사람을 활용하여 크게 성공한 카네기가 얼마나 멋있습니까?사람에게 주어지는 기회는 균등하나 결과는 다릅니다. 자기에게 주어진 자산을 어떻게 활용했느냐에 따라서 그 결과는 불공평하게 나타납니다. 세상은 불공평합니다. 하나님은 공평하지 않으십니다. 어떤 사람은 다섯 달란트를, 어떤 사람은 두 달란트를 주셨습니다. 어떤 사람에게는 더 주고 어떤 사람은 주었던 것도 다시 빼앗습니다. 어떤 사람은 많고, 어떤 사람은 적고, 또 어떤 사람은 없습니다. 재능을 활용한 사람은 적은 것이 많아지지만 활용하지 않은 사람은 모든 것을 잃고 맙니다.

옛날 어떤 사람이 눈이 얼마나 소중한가를 생각하고는 한번에 두 눈을 다 쓸 것이 아니라 한쪽 눈만 써도 되겠다고 생각했습니다. 보호차원에서 한쪽을 가리고 여러 해를 지나서 싸매 두었던 눈을 풀어놓았으나 그 눈은 실명되고 말았습니다. 안 쓰는 것이 잃는 것이 됩니다. 우리는 재능이나 능력은 가꾸고 활용해야 합니다. 하나님은 힘쓰는 자에게 힘을 더하시고 재능도 활용할 때 더해 주십니다.

10년 전에 부임한 교회의 교인 수가 그 때나 지금이나 똑같다면 하나님은 그 교회를 빼앗아 다른 종에게 주실 것입니다. 우리에게 주어진 기회를 활용하고, 주어진 환경을 활용해야 합니다. 우리 교회 이 권사님은 몇일 동안 몸이 불편하여 자리에 누워 계셨습니다. 심방을 갔더니 성경 읽기 표를 내보이면서 성경 전권을 다 읽었다고 하시더군요. 속으로 아픈 것은 안 됐지만 성경 읽은 것은 잘 했다고 생각했습니다.

1975년 당시 세브란스 병원장이고 연세대 부총장이던 민광식 박사가 가톨릭대 학장 김학현 박사와 포항제철을 방문한 적이 있었습니다. 그들은 포항제철을 돌아보면서 무한한 감동을 받았습니다. 그때 민 박사는 포항제철 여상환 부사장에게 이 회사의 중역과 간부 모두에게 정밀한 건강진단을 받게 했으면 좋겠다고 권했습니다. 민 박사는 “이 회사 사장을 비롯하여 모든 사원의 눈빛이 광기를 품고 있어요. 의학적인 입장에서 보면 모두 미친 사람들의 눈입니다”라고 했습니다. 그 후 한 달이 못 가서 부사장이 목 디스크로 쓰러졌고, 제철소 소장이 디스크로, 관리 담당이사가 척추통증으로 입원하는 등 문제가 터져 나왔습니다. 포항제철의 성공 요인을 학자들 나름대로 말하고 있지만, 무엇보다도 중요한 요소는 미친 사람들이 만들어 낸 드라마였습니다. 교회성장은 전도에 미친 교회만이 달성 할 수 있습니다. 갈수록 일에 미친 사람을 찾아보기가 힘들어 집니다. 다가오는 21세기는 일에 미치고 선교에 미친 사람들에 의해 새롭게 발전할 것입니다. 무익한 종이 아니라 꼭 필요한 사람이 되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