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 자가 할 일
(시편 30:9,10)

여러분, 사람을 산 자와 죽은 자를 어떻게 구별할까요? 아주 쉽게, 숨을 쉬면 산 자이고 숨을 안 쉬면 죽은 자입니다. 그러나 그리 단순지 않습니다. 논란이 많습니다. 의학적으로 ‘죽음은 생명 유지기관의 영구적 정지’를 말합니다. 생명유지기관은 뇌, 폐, 심장을 말합니다. 호흡이 먼저 정지하고 나중에 심박동이 정지하는 것을 폐장사라 합니다. 심박동이 먼저 정지하고 폐호흡이 나중에 정지하는 것을 심장사라고 합니다. 이렇게 되면 당연히 의식이 없게 됩니다. 이것을 죽음이라 합니다. 

그런데 문제는 폐와 심장은 살아있고 뇌가 죽은 상태를 어떻게 보아야 하느냐 하는 것입니다. 아직은 그리 쉽게 단안을 내릴 만한 단계가 아닙니다. 이들을 우리는 쉽게 식물인간이라 부릅니다. 의학적으로 살아있다고는 하지만 인간의 기능을 하지는 못하는 상태입니다. 살았으나 죽은 것입니다. 산 자는 산자가 해야 할 일을 할 때 비로소 살았다고 할 수 있습니다. 오늘은 신앙적으로 산 자가 그의 살아있음을 나타내는 중요한 일을 소개하려고 합니다. 

영적인 죽음과 삶 

육체적으로만 살고 죽은 상태를 말할 게 아니라 영적으로도 생각해 봐야 합니다. [딤전5:6] “일락을 좋아하는 자는 살았으나 죽은 자”라고 합니다. 일락을 좋아한다는 것은 육체적으로만 사는 걸 말합니다. 그러니까 육체적으로만 살면 실은 죽은 거라는 말입니다. 이렇게 놓고 보면 이 세상에는 살았으나 죽은 사람이 무수히 많습니다. 원래 인간은 산 자로 태어났습니다. 그러나 범죄함으로 죽은 자가 되었습니다. [고전15:22] “아담 안에서 모든 사람이 죽은 것같이” 아담의 범죄는 온 인류를 죽음의 도가니로 몰아넣었습니다. 

하나님은 아담에게 이런 말씀을 하셨습니다. [창2:17]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실과는 먹지 말라 네가 먹는 날에는 정녕 죽으리라 하시니라” 그러나 아담은 결국 선악과를 따먹고 말았습니다. 불순종의 죄를 짓습니다. 이 때 하나님은 수고하여야 먹고, 여인은 아픔을 느껴야 아이를 낳을 것이라고 했습니다. 에덴에서 쫓겨난 건 물론이고요. 그런데 사람들이 놓치는 게 있습니다. 이때 아담은 죽게 된 것입니다. 겉으로는 멀쩡했지만 영혼이 죽은 것입니다. 아담 안에서 모든 사람이 죽었다는 의미는 바로 영적 죽음을 말하는 것입니다. 

살려면 어떻게 해야 합니까? [고전15:22] “그리스도 안에서 모든 사람이 삶을 얻으리라” 그렇습니다.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됩니다. [요3:16]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저를 믿는 자마다 멸망치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니라” 예수님을 믿는다는 것은 잃어버렸던 생명을 찾는 일입니다. 아담의 죄(불순종)로 잃었던 생명을 찾는 일이 신앙입니다. 죄를 버리면 생명이 오고, 예수님을 버리면 죽음이 옵니다. [롬6:11] “이와 같이 너희도 너희 자신을 죄에 대하여는 죽은 자요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님을 대하여는 산 자로 여길지어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여러분은 죽은 자입니까? 산 자입니까? 병들었어도, 장애인이라도, 아이큐가 떨어져도 예수님을 믿는다면 산 자입니다. 여러분이 예수님을 만나 산 자가 되었음을 감사하시기 바랍니다. 

산 자의 일 

죽은 자는 아무런 생각이나 일을 할 수 없지만 산 자는 어떤 생각이나 일을 하기 마련입니다. 육체적인 삶이 그렇듯이 영적인 삶도 마찬가지입니다. 하나님은 산 자의 하나님입니다. [마22:32] “나는 아브라함의 하나님이요 이삭의 하나님이요 야곱의 하나님이로라 하신 것을 읽어 보지 못하였느냐 하나님은 죽은 자의 하나님이 아니요 산 자의 하나님이시니라” 성경에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의 하나님’이라는 말을 자주 사용하는데, 이것은 그들이 영적으로 산 자들이라는 말입니다. 즉, 산 자의 일을 했다는 것을 하나님께서 인정하는 말입니다. 

하나님은 영적으로 산 성도들이 일을 하기를 원하십니다. 그래서 예수님을 주셨습니다. [고후5:15] “저가 모든 사람을 대신하여 죽으심은 산 자들로 하여금 다시는 저희 자신을 위하여 살지 않고 오직 저희를 대신하여 죽었다가 다시 사신 자를 위하여 살게 하려 함이니라” 하나님은 예수님을 우릴 위해 주셨고, 우리는 그분 때문에 살아났으니 그분을 위하여 살라는 것입니다. 

때로는 신앙생활을 하다가 너무 많은 일을 교회에서 해야 하기 때문에 짜증이 날 때도 있을 것입니다. 우리교회처럼 작은 교회는 더욱 심합니다. 안 하는 사람이야 하나도 안 하지만, 일하는 사람은 한 사람이 적어도 서너 개의 직함을 가지고 일해야 합니다. ‘왜 나만 이렇게 궂은일을 해야 하는가?’ 하면서 힘이 빠질 때가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여러분, 일 할 수 있음을 감사하십시오. 일을 하는 분이 살아있다는 증거입니다. 죽었으면 일 못합니다. 아니 일 안 맡깁니다. 

오늘 성경에서 시인은 이렇게 말합니다. “내가 무덤에 내려갈 때에 나의 피가 무슨 유익이 있으리요” 자신이 일찍 죽게 된다면 하나님께 손해가 될 거라는 말입니다. 다른 말로 하면 자신을 병에서 고쳐달라는 말입니다. 살아야 주의 일을 할 수 있다는 것이지요. 이 기도 속에서 살려주면 하나님의 일을 열심히 하겠다는 각오를 말하고 있습니다. 여러분, 여러분은 예수 그리스도의 피 공로로 살아났음을 의심하지 마십시오. 살아났다면 무엇인가 해야 합니다. 

가장 중요한 일 

사람마다 가장 중요한 일이 다를 것입니다. 그러나 영적으로는 단 한 가지입니다. 이것보다 더 중요한 것은 없습니다. 그것이 전도입니다. 주님은 한 생명을 살리는 것을 천하를 얻는 것보다 더 귀하게 생각하십니다. 죽은 사람을 살리려고 예수님을 오셨습니다. 당연히 예수님을 통하여 산 사람은 예수님의 그 목적을 따라야 합니다. 

본문에서 시인은 이렇게 말합니다. “어찌 진토(塵土)가 주를 찬송하며 주의 진리를 선포하리이까” 죽으면 하나님께 영광 돌릴 수도, 전도를 할 수도 없다는 말입니다. 이 말을 뒤집으면 주를 찬송하고 전도를 하지 않는다면 진토나 나름이 없다는 말입니다. 시인은 단순히 생명을 연장시켜 달라고 하는 게 아니고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고 영적으로 죽은 자들에게 전도를 할 터이니 살려달라는 것입니다. 이 말속에서 산 자는 찬양과 전도를 해야 하는 것임을 알 수 있습니다. 결국 그는 병에서 고침 받았습니다. 은혜를 체험한 시인은 이 기쁨을 주변 사람들에게 전합니다. 

(11-12절)에 보면 “주께서 나의 슬픔을 변하여 춤이 되게 하시며 나의 베옷을 벗기고 기쁨으로 띠 띄우셨나이다 이는 잠잠치 아니하고 내 영광으로 주를 찬송케 하심이니 여호와 나의 하나님이여 내가 주께 영영히 감사하리이다” 닐스(D.T. Niles)는 전도를 “밥을 공짜로 얻어먹은 거지가 다른 거지들에게 어디에 가면 너희도 공짜로 밥을 얻어먹을 수 있다고 말해주는 것”이라고 했습니다. 여러분은 예수님의 은혜로 밥 한 끼가 아니라 생명을 통째로 얻은 사람들입니다. 그렇다면 전도는 당연하죠. 

현대인들이 가장 고민하고 또 많은 질병이 비만입니다. 비만은 모든 병의 지름길입니다. 고혈압, 당뇨, 심장질환, 뇌경색, 뇌졸중..... 이루 말 수 없는 성인병의 원인이 다 비만입니다. 비만이란 먹은 것만큼 배출하지 않으므로 생기는 병입니다. 현대는 영적 비만상태의 성도가 너무 많습니다. 우리교회에도 많습니다. 비만한 사람들은 음식이 맛있는지 없는지 귀신 같이 압니다. 음식에 관한한 전문가입니다. 마찬가지로 영적비만 환자들도 설교를 잘하는지 못하는지 귀신 같이 집어냅니다. 

그러나 열매는 없습니다. 신앙인의 열매는 여러 가지가 있지만, 가장 중요한 것은 영혼의 추수입니다. 하나님께서 영혼을 천하보다 귀하게 여기시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사람마다 만나는 사람들이 다르게 하셨습니다. 그것은 그의 영혼은 그 성도에게 맡긴 것입니다. 나다나엘은 빌립이 전도합니다. 안드레는 요한이 전도합니다. 그들만이 만날 수 있는 사람이기 때문입니다. 여러분이 어제 만난 사람, 오늘 만나는 사람 그 사람의 영혼이 여러분의 손에 달려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여러분은 살만한 가치가 있는 분들입니다. 그것은 세상의 일 때문이 아니라 주님의 일을 하게 하기 위해서입니다. 산 사람은 전도해야 합니다. 여러분만이 전도할 수 있는 사람이 여러분 곁에 있습니다. 여러분에게 “나를 전도해 달라”고 손을 내밀고 있습니다. 살았다고 하면서 그게 안 보입니까? 다음 주일입니다. 그의 손을 잡고 교회로 나옵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