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의 축복을 받는 새해”(신 28:13-14)

본문 신명기 28장은 우리가 잘 알고 있는 것처럼 “축복의 장”입니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축복(祝福)에 대해서는 불과 14절(1~14절까지)만 기록하고 저주(詛呪)에 대해서는 그 3배가 넘는 44절(15~68절까지)에 걸쳐서 기록되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이 부분에 대해서는 별로 관심을 갖고 않고 있지 않습니다. 그렇다면 왜 이 부분에 대해서 별로 관심을 가지지 않고 있습니까? 왜 그럴까요? 그것은 아마도 사람은 자기가 관심을 가지는 부분만 보기 때문일 것입니다. 하지만 우리는 이 부분에 대해서도 관심을 가져야 합니다. 왜냐하면 그 부분도 하나님의 말씀이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신명기 28장이 분명히 축복의 장임에도 불구하고 축복의 말씀보다 저주의 말씀이 3배나 넘게 기록되고 있습니까? 이에 대해서 신학적으로 복잡하지 아니할지라도 분명하게 인식해야 할 것은 하나님의 축복을 받는 얼마만큼이나 힘들다는 것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말씀입니다.

뿐만 아니라 우리가 여기에서 기억해야 또 한 가지 사실은 하나님의 축복은 아무나 받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입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복 주시를 원하십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하나님의 백성으로 부르실 때에 모든 사람들에게 복을 나누어줄 수 있는 사람으로 불러 주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행복한 삶을 살기를 원합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축복은 무조건적으로 받는 복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거기에는 전제조건(前提條件)이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복을 주셔서 우리가 행복하게 살기를 원하십니다. 하지만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하나님의 백성답게 살기를 원합니다. 

그래서 신 10:13에서 "내가 오늘날 네 행복을 위하여 네게 명하는 여호와의 명령과 규례를 지킬 것이 아니냐"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측면에서 본문 13절 하반 절과 14절에서 “... 오직 너는 내가 오늘날 네게 명하는 네 하나님 여호와의 명령을 듣고 지켜 행하며 내가 오늘날 너희에게 명하는 그 말씀을 떠나 좌로나 우로나 치우치지 아니하고 다른 신을 따라 섬기지 아니하면 이와 같으리라”고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본문 1절 상반 절에서 “네가 네 하나님 여호와의 말씀을 삼가 듣고 내가 오늘날 내게 명하는 그 모든 명령을 지켜 행하면...”라고 말씀하고 있고, 그리고 본문 2절과 9절에서도 “내가 오늘날 네게 명하는 그 모든 명령을 지켜 행하면... 네가 네 하나님 여호와의 말씀을 순종하면....네가 네 하나님 여호와의 명령을 지켜 그 길로 행하면...”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1. 그렇다면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요구하시는 것이 무엇입니까?  
첫째는 “하나님의 말씀을 잘 들으라.”는 것입니다.(1절 상)
본문 1절 상반 절에서 “네가 네 하나님 여호와의 말씀을 삼가 듣고”라고 말씀하고 있는 것처럼 하나님의 말씀을 잘 들어야 합니다. 그런데 여기에서 주목할 말씀은 “삼가 듣고”라는 말씀입니다. 여기에서 “삼가 듣고”라는 말은 히브리어로 ‘솨마’라는 말로서 대개 “주의하여 경청하다.”라는 뜻입니다.(출 23:22). KJV은 본 구절을 “성실하게 듣다”라고 번역하였습니다.  

그렇습니다. 하나님의 백성이라면 하나님의 말씀, 하나님의 목소리를 주의해서 열심히 들어야 합니다. 성실하게 들어야 합니다. 복을 받을 만한 그릇되지 못하면 복을 받을 수가 없습니다. 복을 받을만한 사람답게 살아야 합니다.  
학사 에스라가 백성들 앞에서 하나님의 말씀을 펼 때... 모든 백성이 일어서서 손을 들고 아멘으로 응답하며 몸을 굽혀 얼굴을 땅에 대고 여호와를 경배하였던 것처럼 하나님의 말씀을 들을 때에 아멘으로 응답하며 하나님을 경배하는 것이 하나님의 말씀을 삼가 듣는 것입니다.(느 8:6)  
마리아가 예수님의 발아래에 앉아 열심히 말씀을 사모하여 들는 것처럼 듣는 것입니다.(눅 10:39) 
고넬료가 베드로의 심방을 간청하고 온 가족이 모여 하나님의 말씀에 귀를 기울였던 것처럼 말씀을 사모하면서 듣는 것입니다.(행 10:33)  
베뢰아 사람은 데살로니가에 있는 사람보다 더 신사적이어서 간절한 마음으로 말씀을 받고 이것이 그러한가 하여 날마다 성경을 상고하였던 것처럼 하나님의 말씀을 상고하면서 받는 것입니다.(행 17:11)
데살로니가 성도들이 하나님의 말씀을 받을 때에 사람의 말로 아니하고 하나님의 말씀으로 받았던 것처럼 하나님의 말씀을 사람의 말로 받지 않고 하나님의 말씀으로 받는 것입니다.(살전 2:13)
이처럼 하나님의 말씀을 읽고 듣고 지키는 것은 복이 있는 일입니다.(계 1:3).

 둘째는 “하나님의 모든 명령을 지켜 행하라”는 것입니다.(1,2,9,13절 하)
본문 1절,2절, 9절, 13절 하반 절에서 “내가 오늘날 네게 명하는 그 모든 명령을 지켜 행하면... 네가 네 하나님 여호와의 말씀을 순종하면....네가 네 하나님 여호와의 명령을 지켜 그 길로 행하면... 오직 너는 내가 오늘날 네게 명하는 네 하나님 여호와의 명령을 듣고 지켜 행하면 이 모든 복을 주시리라”고 말씀하고 있는 것처럼 하나님의 약속된 모든 명령을 지켜 행해야 합니다. 
그렇습니다. 하나님의 풍성한 축복을 받을 수 있는 전제 조건은 순종입니다. 우리가 구원을 받는 것은 하나님의 절대적인 은총에 의한 무조건적이고 단독적인 역사입니다. 그러나 이 세상을 살아가는 하나님의 백성들은 자신들이 행하는 모든 행위에 책임을 져야 하며, 또한 하나님께서는 하나님의 백성들이 순종과 불순종에 대해서 반드시 보응하시는 분이십니다.(욥 34:11잠 24:12롬 2:6).

하지만 우리가 오해하지 말아야 할 것은 “우리가 축복을 받으려면 순종해야 한다.”는 식으로 본문의 말씀을 단순화(單純化)시켜서는 안 됩니다. “복을 받으려면 순종하라”는 식으로 이 말씀을 이해해서 안 됩니다. 본문은 단순하게 순종을 강요하기 위한 말씀도 아니고, 단순하게 축복만을 위한 말씀도 아닙니다. 만약 이런 식으로 설교를 하거나 설교를 듣는다면 그것은 율법적이고, 기복적인 설교가 흐르게 됩니다. 저는 본문의 말씀을 통하여 여러분을 위협하고 싶지 않습니다. 여러분에게 순종을 강요하기 위해서 본문을 선택한 것이 아닙니다. 여러분은 본질적인 의미를 파악하지 못하면서 단순하게 복만 받기만을 원하는 기복적인 자세를 버려야 합니다. 

신명기 28장이 우리에게 가르쳐주는 신학은 하나님의 축복을 누리는 것은 율법적 공로도 아니고 하나님과의 바른 관계를 유지하는데 있는 것입니다. 따라서 하나님과의 바른 관계가 없이 무조건적으로 순종만 한다고 해서 축복을 주시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축복을 받기 위해서는 하나님의 모든 명령을 지켜 행해야만 하지만 사실 우리는 힘으로는 하나님의 말씀을 지킬만한 힘도 능력도 없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구원받은 하나님의 백성으로서 하나님의 백성답게 살기 위해서 율법을 완성하신 예수 그리스도를 의지하면서 하나님의 말씀을 지켜 행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구원받은 것에 감사하고, 감격한 나머지 하나님의 말씀을 지킬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그런데 기억할 것은 구원받은 하나님의 백성이라면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에게 명령하신 그 명령을 우리도 아울러 지켜 행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명령을 지켜 행하지도 않으면서 복만을 받기를 원하는 생각은 잘못된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이 하나님께 순종하면 군사적으로나 물질적으로나 다른 나라보다 뛰어날 것이며 가나안 땅이 젖과 꿀이 흐르는 풍성한 땅이 될 것이라는 약속하셨습니다. 하지만 이러한 약속들은 이스라엘이 하나님과 맺은 언약을 지킬 때에 번영한다는 점입니다. 따라서 우리가 하나님의 축복을 받는 비결은 바로 하나님과 맺은 언약 안에 거하는 데 있습니다. 따라서 신명기 28장에서 말씀하시는 순종이란 단순하고 피상적인 순종이 아닌 하나님과 인격적인 관계 속에서 하나님의 언약 곧 말씀을 붙들고 살아가면서 순종할 때에 주시는 축복이라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하나님의 놀라운 축복을 받는 사람은 그 삶이 조금 다릅니다. 열심이 있습니다. 수고가 있습니다. 열정적으로 삽니다. 하나님 입에서 떨어지는 말씀이라면 어떻게 하든지 순종할 준비가 되어 있고, 어떤 대가라도 지불한 마음이 있고, 열심과 노력과 애씀 이 있는 하나님의 축복을 받은 사람들의 보편적인 특징입니다. 이런 사람은 안되고 싶어 안 될 수가 없고, 성공을 안 하고 싶어도 안 할 수가 없습니다. 
“이런들 어떠하라. 저런들 어떠하리.”하면서 인생을 희미하게 사는 사람은 무엇을 해도 제대로 안 됩니다. 그러나 믿는 사람은 그렇게 살지 않습니다. 믿는 사람은 열정으로 삽니다. 공부를 해도, 사업을 해도, 친구를 사귀어도, 직장 생활을 해도, 주님을 섬겨도 열심을 다해서 하는 것이 하나님의 명령에 순종하는 사람들의 특징입니다. 

물론 인생을 살다보면 열정이 식어질 때가 있습니다. 특히 30대 후반에서 40대, 50대 중반에 그런 증상이 나타난다고 합니다. 그것은 보고 ‘중년의 위기’라고 합니다. 그렇지만 하나님을 믿는 사람들은 꼭 그런 시기를 거쳐야 할 필요는 없습니다. 예수 믿는 사람은 매일 같이 하나님의 은혜를 힘입어 열정을 가지고 사니까 위기를 맞아도 실의에 빠질 여유가 없습니다. 우리를 보통 사람이 아닌 뛰어난 사람들로 높이 들어서 올려 주시는 하나님이십니다. 그런 사람은 누가 보아도 하나님께서 함께 하시는 것을 느낄 수 있습니다.  그랄 왕 아비멜렉 왕이 이삭에게 이런 고백을 했습니다. “... 여호와께서 너와 함께 계심을 우리가 분명히 보았으므로 우리의 사이 곧 우리와 너의 사이에 맹세를 세워 너와 계약을 맺으리라”고 말합니다.(창 26:28) 이런 모습이 하나님의 백성의 모습입니다. 

그런데 우리에게 이런 모습이 있습니까? 
하나님이 함께 하시는 사람이 되는 중요한 열쇠가 하나님을 사랑하고 순종하려는 열정과 수고입니다. 그래서 “순종이 제사보다 낫고 듣는 것이 수양의 기름보다 낫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삼상 15:22) 
믿음의 결국은 순종입니다. 아무리 믿음이 있고 아무리 기도를 잘 하고 아무리 교회의 많은 직분을 맡았어도 순종이 부족한 믿음입니다. 왜냐하면 믿음은 “순종하는 신앙”이기 때문입니다. 히 11:8에서  "믿음으로 아브라함은 부르심을 받았을 때에 순종하여 장래 기업으로 받을 땅에 나갈 새 갈 바를 알지 못하고 나갔으며"라고 말씀하고 있는 것처럼 아브라함은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았을 때에 순종하여 장래 기업으로 받을 땅에 나갈 때에 갈 바를 알지 못하는 중에 나갔습니다. 뿐만 아니라 히 11:17에서 “아브라함은 시험을 받을 때에 믿음으로 이삭을 드렸으니 저는 약속을 받은 자로되 그 독생자를 드렸느니라” 고 말씀하고 있는 것처럼 아브라함은 백세에 낳은 아들 이삭을 드리라고 했을 때에 믿음으로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함으로 드렸습니다. 바로 이런 사람은 세상이 감당하지 못합니다. 

그런데 기억할 것은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완전한 순종을 보고 축복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기본적인 마음과 태도와 노력하는 모습을 보고 축복하십니다. 아브라함의 경우가 대표적인 실례입니다. 아브라함도 실수와 허물이 있었습니다. 다윗은 어떤 사람입니까? 참으로 허물이 많은 사람입니다. 우리 중에는 다윗만큼 범죄(犯罪)한 사람도 없을 것입니다. 그는 살인을 했고, 간음을 했고, 거짓말을 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그 다윗을 그분에 합한 사람이라고 하셨습니다. 이는 다윗의 위대한 가슴과 그 열정적인 순종을 보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우리는 다 하나님의 명령에 다 순종하지 못합니다. 그러나 “주여! 순종하고 싶습니다. 말씀대로 살고 싶습니다. 저를 도와주옵소서! 저의 연약함을 긍휼히 여기시고 저의 실수를 용서하여 주시고, 저에게 힘을 주옵소서!”라고 기도하면서 순종하려고 몸부림친다면 하나님께서는 그 사람에게 풍성한 은혜를 주실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예배하시고 약속하신 복을 주실 것입니다.  

2. 그렇다면 하나님께서는 순종하는 자에게 어떤 복을 주십니까?
본문 13절 상반 절에서 “여호와께서 너로 머리가 되고 꼬리가 되지 않게 하시며 위에만 있고 아래에 있지 않게 하시리니”라고 말씀하고 있는 것처럼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을 삼가 듣고, 좌로나 우로나 치우지 아니하고 순종하는 삶을 살면 “머리가 되고 꼬리가 되지 않게 해 주신다”라고 약속하시고 있습니다. 
여기에서 “머리”(로쉬)라는 말은 “명예, 존귀”라는 뜻이고, “꼬리”(자나르)라는 말은 “부끄러움, 비천”이라는 뜻입니다. 따라서 머리가 되고 꼬리가 되지 않게 하신다는 것은 우리로 하여금 명예와 존귀를 얻게 하셔서 부끄러움과 비천에 처하지 않게 하신다는 축복된 말씀입니다. 이는 열강을 주도하고 지배하는 복을 주신다는 말씀입니다. 이는 영적으로 주도하는 권세적인 삶의 모습으로도 이해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성경에서 머리를 말할 때에 축복의 원천되신 하나님 자신을 가리킵니다. 그래서 고린도전서 11:3절에서 “…그리스도의 머리는 하나님이시라” 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또한 예수 그리스도를 가르켜 ‘만물의 머리’요(엡1:22,4:15),‘각 남자의 머리’이며(고전11:3), 그리고 ‘교회의 머리’라고 하였습니다(엡1:22, 5:23, 골1:18).
그리고 구약 시대에는 “이스라엘 족속의 지도자의 역할을 하였던 족장들”을 가리켜 머리(首長)라고 하였습니다. 곧 구약 성경에서는 어른, 두목, 두령, 족장 등의 칭호가 바로 머리였습니다.(출 6:14, 18:25, 민 1:4, 13:3, 수 14:1) 뿐만 아니라 민족의 지도자, 집권자, 영도자, 통치자들을 머리라고 불렀습니다(삿11:8-11).
 그래서 이사야는 이사야 9장 14-15절에 “이러므로 여호와께서 하루 사이에 이스라엘 중에서 머리와 꼬리며 종려가지와 갈대를 끊으시리니 머리는 곧 장로와 존귀한 자요 꼬리는 곧 거짓말을 가르치는 선지자라” 고 말씀하고 있는 것처럼 참된 선지자(지도자)는 머리요, 거짓된 선지자는 꼬리라고 구별하여 말하기도 하였습니다.  

3. 그렇다면 머리가 되는 복은 구체적으로 어떤 복입니까?
첫째로, 어디에 살든지 복을 받습니다.(2,3절)
본문 2,3절에서 “네가 네 하나님 여호와의 말씀을 순종하면 이 모든 복이 네게 임하며 네게 미치리니 성읍에서도 복을 받고 들에서도 복을 받을 것이며...”라고 말씀하고 있는 것처럼 머리가 되는 사람은 어디에 살든지 하나님의 복을 받습니다.
하나님의 축복을 받는 사람들은 어디에서 살든지 문제가 되지 않습니다. 도시에 살든지 시골에 살든지, 한국에 살든지 미국에 살든지 간에 문제가 되지 않습니다. 하나님께서 머리가 되게 하시고 꼬리가 되지 않게 하시는 사람은 어디에 살든지 하나님의 축복을 받습니다.  

둘째로, 생산적이고 효과적인 삶을 살 수 있는 복을 받습니다.(4절) 
똑같이 일하는데 어떤 사람은 그 수고가 헛된 것으로 끝나는 사람이 있습니다. 그러나 어떤 사람들은 똑같이 아침에 일찍 일어나고 저녁에 늦게 눕지만 그 수고가 헛되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 생산적이고 효과적인 삶을 살 수 있도록 축복해 주시기 때문입니다. 
똑같이 일하지만 하나님의 뜻대로 순종하며 살려고 노력할 때에 그의 노력을 하나님께서 축복하십니다. 보통 사람보다 휠씬 더 효과적이고 생산적인 결과가 나타났습니다. 그런데 놀라운 사실은 본문 4절에서 “네 몸의 소생과 네 토지의 소산과 네 짐승의 새끼와 우양의 새끼가 복을 받을 것이며...”라고 말씀하고 있는 순종하며 살려고 하는 하나님의 자녀들에게는 그 거느리는 짐승마저도 생산적인 것이 됩니다. 
하나님의 역사는 참 놀랍습니다. 똑같은 음식을 먹어도, 기도하고 감사하는 마음으로 먹은 사람에게 더 효과가 나타납니다. 똑같은 공부를 해도, 기도하고 감사하며 공부하는 더 효과를 거둡니다. 하나님을 섬기면서 영적인 삶을 계속하며 주님의 뜻대로 살려고 부단히 노력하는 사람은 하나님께서 더 효과적이고 생산적인 삶을 살 수 있도록 만들어 주시겠다고 약속해 주셨습니다. 
주님께서 물고기 두 마리와 떡 다섯 개를 가지고 축사하니까? 오천명이 먹고도 남았고 열 두 광주리가 남았습니다. 이것이 바로 예수 믿는 사람들의 삶입니다. 하나님의 뜻대로 바치고 드리면 조그만한 것인데도 위대한 역사가 나타납니다. 이런 삶이 하나님의 백성의 삶이요, 우리를 향하신 하나님의 뜻입니다.  

셋째로 물질의 복을 받습니다.(5절)
하나님께서는 순종하는 자의 물질생활에 부족함이 없게 해 주십니다. 본문 5절에서 “네 광주리와 떡 반죽 그릇이 복을 받을 것이며...”라고 말씀하고 있는 것처럼 우리의 광주리와 떡 반죽 그릇이 복을 받게 됩니다.  
여러분! 엘리야를 섬겼던 사르밧 과부의 이야기를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엘리야 선지자가 사르밧 과부를 향하여 먹을 것을 좀 달라고 했을 때에 그 과부는 한 줌의 가루 밖에 없어서 그것으로 떡을 만들어 자기 아들과 함께 먹고 죽으려고 한다고 했습니다. 엘리야가 이 말을 듣고 집에 가루 한 줌과 기름 조금으로 먹을 것을 만들어서 자기에게 가져오라고 했습니다. 이에 그 과부는 순종했고 순종하니까 엘리야를 통하여 그 가정을 축복하게 하셨습니다. 그랬더니 어떤 일이 일어났습니까? 3년 6개월 동안 가뭄 날에도 밀가루 통과 기름  통에는 차고 넘치는 역사가 일어났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그런데 왜 이러한 역사가 지금은 많이 나타나지 않습니까? 하나님께서 주무시기 때문입니까? 하나님께서 졸기 때문입니까? 아닙니다. 하나님은 졸지도 주무시지도 않습니다. 문제는 우리에게 축복을 주시는 하나님의 명령에 순종하려는 마음이 없기 때문입니다. 
 
넷째로, 들어가도 나가도 복을 받습니다.(6절)
본문 6절에서 “네가 들어가도 복을 받고 나가도 복을 받을 것이니라...”고 말씀하고 있는 것처럼 하나님의 명령에 순종하려고 몸부림치는 하나님의 백성에게는 들어가도 나가도 복을 받습니다. 쓰러져도 일어나도 하나님께서 축복해 주십니다. 
여러분이 하나님의 뜻대로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대로 살고자 하는 부단한 노력을 생활화한다면, 어디에 가서 무엇을 해도 상관이 없습니다. 하나님이 여러분을 들어서 모든 민족 위에 위대한 민족을 만들어 주시고, 모든 동료들 사이에 인정받게 해 주시고, 이웃들의 존경을 받게 해 주시고, 후손들에게 큰 축복을 주실 것입니다. 이것은 하나님의 약속입니다. 

다섯째로 절대로 해를 받지 않는 복을 받습니다.(7절)
본문 7절에서 “네 대적들이 일어나 너를 치려 하면 여호와께서 그들을 네 앞에서 패하게 하시리니 그들이 한 길로 너를 치로 들어왔으나 네 앞에서 일곱 길로 도망하리라...”고 말씀하고 있는 것처럼 하나님의 말씀대로 순종하려고 몸부림치는 성도들에게 하나님께서 복을 주셔서 절대로 해를 받지 않게 해 주십니다.  
세상에는 대적하는 것들이 많이 있습니다. 건강의 적도 있고, 정신적인 적도 있고, 사람의 적도 있습니다. 우리가 이 세상을 살아가면서 만나는 적들이 무수히 많습니다. 그러나 롬 8:35에서 “누가 우리를 그리스도의 사랑에서 끊으리요 환난이나 곤고나 핍박이나 기근이나 적신이나 위협이나 칼이랴”고 말씀하고 있는 것처럼 하나님의 사랑을 받는 사람들은 아무도 대적하지 못합니다. 
하나님의 손에 붙잡힌 사람들, 철저하게 하나님께 순종하려고 노력하는 사람들은 이러한 적이 손을 댈 수가 없습니다. 하나님의 도움의 손길 밑에 있는 사람은 아무도 해를 끼칠 수 없습니다. 결코 망하지 않습니다. 결코 잘못되지 않습니다.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도록 하나님께서 붙잡아 주십니다. 

여섯째로, 무엇을 하든지 잘 되는 복을 받습니다.(8절)
본문 8절에서 “여호와께서 명하사 네 창고와 네 손으로 하는  모든  일에 복을  내리시고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네게  주시는  땅에서  네게  복을  주실  것이며”라는  말씀하고 있는 것처럼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려고 몸부림치는 사람들에게 무엇을 하든지 잘 되는 복을 주십니다. 
어떤 사람들은 새롭게 손대는  것마다  잘됩니다. 무엇을 하든지 이상하리만큼 잘 됩니다. 특별히 노력하는 것도 없는 것 같은데 잘 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러나 이상한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무엇을 하든지 잘 되도록 복을 주시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이러한 복은 우리들도 얼마든지 받을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높이 세우셔서 뛰어나게 하시고, 우리와 우리의 후손들을 믿지 않는 사람들 가운데서 뽑아서 하나님의 백성으로 만들어 주신 것은 우리를 위대한 사람들로 만들어 주시기 원하는 하나님의 뜻입니다.  

그래서 본문 9-10절에서 “…너를 세워 자기의 성민이 되게 하시리니... 너를 여호와의 이름으로 일컬음을 세계 만민이 보고 너를 두려워하리라”고 말씀하고 있는 것처럼 하나님이 함께 하여 많은 사람들 앞에서 명성을 떨치게 되는 복을 주십니다. 이것이 바로 우리로 하여금 머리가 되게 하시고 꼬리가 되지 않게 하시는 복입니다. 이왕이면 이런 복을 받고 사는 사람들이 되어야 합니다. 금년 한 해 동안 이왕이면 이와 같이 머리가 되고 꼬리가 되지 않는 복을 받아야 하겠습니다.  

이제 말씀을 맺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하나님께서 축복하시는 사람들에게는 주시는 원칙이 있습니다. 그것이 순종입니다. 히 6:14,15절에서 "내가 반드시 너를 복 주고 복 주며 너를 번성케 하고 번성케 하리라 하셨더니 저가 이같이 오래 참아 약속을 받았느니라”고 말씀하고 있는 것처럼 하나님께서는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려고 몸부림치는 사람들은 반드시 복을 주십니다.  

그런데 현재 우리의 영적 상태는 어떠합니까? 다시금 우리 자신의 영적 상태를 철저하게 점검하고 난 후에 금년 한해를 출발해야 하겠습니다. 우리가 두려워 할 것은 재난이나 질병이 아니라 하나님의 품에서, 은혜의 자리에서 멀어져 가는 것입니다. 학개서 1장 6절에 보면 "너희가 많이 뿌릴지라도 수입이 적으며 먹을지라도 배부르지 못하며 마실지라도 흡족하지 못하며 입어도 따뜻하지 못하며 일꾼이 삯을 받아도 그것을 구멍 뚫어진 전대에 넣음이 되느니라"
이것을 요즈음 말로 표현하면 남편이 아무리 돈을 많이 벌어 와도 쓸 돈이 없고, 좋은 음식을 먹고 마셔도 만족이 없고, 유명 메이커 좋은 옷을 사 입어도 마음에 흡족함이 없고, 삶에 별 의미나 재미가 없었다는 말씀입니다. 세상에서는 겉으로 보이는 일에만 정신을 쏟다보니 영적 생활이 메말라 가고 황폐해 가는데 그것을 깨닫지 못하고 살더라는 것입니다. 이것이 현대인들의 모습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근본적인 것이 해결되어야 합니다. 잘못 들었다 싶으면 돌아서야 합니다. 깨달음을 주시는 대로 돌이켜야 되요. 자존심(自尊心)이 문제가 아니에요. 체면(體面)이 문제가 아닙니다. 후회해도 안 될 때가 있습니다. 늦기 전에 돌이켜 순종의 길, 축복의 길,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길 가야합니다. 축복의 길로 가야 축복을 받고, 하나님 기뻐하시는 자리로 나아가야 그 앞날이 열립니다. 오늘도 말씀을 듣는 가운데 우리 인생에 새로운 해답을 얻으셔야 합니다. 

어떤 경우라도 부모 의지하며 사는 자녀가 복된 자녀예요. 어린아이가 부모의 손에 꼭 붙잡혀 있으면 넘어지는 순간에 부모가 일으켜주고, 위험할 때 안전한 곳으로 인도해주듯이, 주님이 우리의 손을 붙잡아주실 때 어려운 시대가운데에도 넉넉히 이길 줄로 믿습니다. 때를 따라 도와주실 줄로 믿습니다. 여건이 어렵고 환경이 힘들 때일수록 감사를 잃지 말아야 합니다. 

주변을 한 번 둘러보세요. 몸이 아파서 고생하는 분들도 많거니와 오래 누워있는 분들 보면 등이 썩고, 오래 앉아 있으면 엉덩이가 썩어 가는 거예요. 움직일 수 있는 건강 주신 것도 감사하고, 건강하게 다니고, 음식을 먹고, 활동하고, 교회에 나와 예배할 수 있는 것만으로도 감사할 수 있어야 합니다. 욕심 부리면 한이 없어요. 있는 것 헤아려보고 감사하는 복된 성도님들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분명하게 약속하셨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들을 뿐 아니라 지켜 행하면 하나님께서 뛰어나게 하실 것이고, 모든 복이 임하여 성읍에서도, 들에서도 복을 받을 것이며, 몸의 소생은 물론이고, 짐승의 새끼까지도 복을 받고, 들어가도 나가도 복을 받을 것이라고 약속하셨습니다. 한 마디로 머리가 되는 복을 주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을 잘 듣고 깨닫고 순종하는 길은 축복의 길입니다. 축복의 길을 열어 주실 뿐 아니라 때를 따라 지혜를 주시고, 영감을 주십니다. 주님이 축복하신다고 할 때 아무 일도 하지 않고 기적만 바라고 있는 자에게 저절로 축복이 이루어진다는 의미는 아닙니다. 하나님이 약속하신 것은 반드시 행하시고, 이루시는데 노력도 수고도 없이 그냥 주시는 것은 아니더라는 것입니다. 가나안을 약속하신 주님은 가만히 앉아 있기를 원치 아니하시고, 마음을 강하게 하라 담대히 하라고 했습니다. 넘어야 할 산이 많고, 감당해야 할 일이 많기에 그렇게 말씀하신 것입니다. 믿음으로 나아가는 자에게 감당할 만한 힘을 주십니다. 우리 믿는 자들이 세상사는 일에도 위로부터 주시는 지혜를 받아야 하고, 사업에도 지혜를 받아야 합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하나님의 말씀 듣고 은혜 받고 순종하다가 포기하지 말아야 합니다. 뒤돌아보지 말아야 합니다. 아무리 힘들고 어렵지만 믿음으로 참고 나아갔더니 결국은 하나님의 약속이 이루어지고, 성취됨을 보게 됩니다. 내 마음이, 내 생각이, 내 시각이 달라지면 모든 것이 달라질 수 있습니다. 
같은 환경 속에서도 마음이 크면 훨씬 위대한 일을 할 수 있습니다. 시각이 큰 사람, 생각이 넓은 사람은 같은 여건 속에서도 훨씬 큰일을 합니다. 보는 눈이 바뀌면 세상이 달라집니다. 죄의 길을 가고, 저주의 길을 가느냐? 순종의 길을 가고, 축복의 길을 가느냐? 이것이 보는 눈을 바꾸고, 생각을 바꾸고, 마음을 바꾸는 것에서부터 시작됩니다. 우리의 눈이 바꾸어지는 축복이 임하시기를 축원합니다. 우리의 생각이 더 넓어지기를 축원합니다. 우리의 마음이 죄로 향하지 아니하고, 주님 예비하신 축복의 길, 형통의 길로 향하실 수 있기를 바랍니다. 

우리를 믿음의 자리에서 멀어지게 하려는 사단의 장난에 속지 말아야 합니다. 어떻게 하든지 하나님의 역사를 중단시키려고 하고, 어떻게 하든지 하나님과 멀어지게 하고, 주의 전에서 멀어지게 하고, 세움 받은 목회자와 멀어지게 하는 사단의 역사는 늘 있어요. 때로 우리를 넘어지게 하고, 오해하게 하고, 서로 마음을 상하게 하고, 돌아서게 하는 것은 사단의 장난이에요. 배후를 알아야 합니다. 이런 사단의 장난에 최대의 복수는 하나님께 더 가까이 나아가는 거예요. 주의 전에 더 열심을 내는 것입니다. 더 순종하며 나아가는 거예요. 그러면 사단은 맥을 못 써요. 더 이상 역사를 못해요. 나 혼자만 어려운 것 아닙니다. 
지금은 우리나라만 어려운 것 아닙니다. 세계 경제 대국인 일본, 우리보다 열 배 스무 배 잘 산다고 하는 일본도 6,7년을 불경기로 보내고 있어요. 세계에 있는 일본의 땅을 모두 팔고, 동경시내 땅 값이 반으로 내렸다는 거예요. 경제 성장이 몇 년 동안을 멈추어도 침착합니다. 독일도 동, 서독이 통일된 다음에 경제가 그렇게 어려울 수가 없습니다.   

주님은 결코 우리가 어려울 때일수록 나 혼자가지 아니하시고 가까이 계십니다. 환란 중에 주님은 우리를 찾아 오셔요. 버려두지 않습니다. 호세아 11:8에서 "에브라임이여 내가 어찌 너를 놓겠느냐 이스라엘이여 내가 어찌 너를 버리겠느냐"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이스라엘은 하나님께 범죄하고 거역하고 하나님 싫어하시는 길로 가고 있었지만 하나님의 사랑은 변함이 없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오직 주님의 손길에 소망이 있음을 기억하면서 살아야 합니다. 어떤 경우라도 주님의 은혜의 자리에서 멀어지지 말아야 합니다. 주님 품에서 멀어지고, 교회와 멀어지면 넘어지게 되어 있어요. 기도의 힘이 떨어지면 무너지고 실패하게 되어있어요. 어려운 때일수록 믿음만 잃지 아니하면, 어려울수록 하나님 앞에 진실만 잃지 아니하면 감당할 만한 힘을 주실 줄로 믿습니다. 

결국은 되게 하시는 크신 능력을 체험하게 될 줄로 믿습니다. 하나님의 큰 은혜가 무엇입니까? 예민해 지는 거예요. 주님이 깨달음을 주실 때 잘 깨닫는 것이 은혜 중에 큰 은혜예요. 작은 것에도 감사할 줄 알고, 작은 것에도 마음 아파하며 회개 할 줄 아는 그것이 큰 은혜 받은 사람의 모습이에요. 주일 예배에 어쩌다가 하루만 결석해도 큰 일나는 줄 알고, 기도 생활 조금만 소홀히 하면 그 날 하루가 찝찝하고, 죄송하고, 할 일을 못한 것 같은 예민한 심령이 주님이 기뻐하시는 심령이에요. 사랑하는 여러분의 심령이 늘 살아있는 심령 되시기를 바랍니다. 거짓말 하나 하고도 마음 아파하고 울면 그 영혼 복된 영혼이에요. 하나님 앞에서는 물론이거니와 우리 주변의 모든 사람과도 우리 마음이 어린아이 마음같이 순수해지는 복된 성도들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부모가 많은 것 물려주고 잘해 준다고 꼭 자녀가 잘 되는 것도 아닙니다. 자녀에게 잘 입히고 잘 먹이고 유학시키고 최고로 만들어서 제일 좋은 차 사 준다고 효하는 것 아닙니다. 

(예화) 로마에 네로의 어머니 아그리피는 네로를 얼마나 사랑했는지 어머니가 남편을 죽이고 이 아들에게 로마의 황제를 물려주고 좋은 색시를 얻게 합니다. 그런데 이 네로는 어떻게 됩니까? 그 어머니 존경할 마음 있겠어요? 결국 그 어머니를 죽이게 되고 나중에는 자기도 자살하고 맙니다. 
잘못하면 부모들이 자녀를 생각한다는 것이 자녀를 망치게 됩니다. 자녀들이 조금 굶어도 괜찮아요. 못 입어도 괜찮습니다. 내가 희생하더라도 자녀는 잘 돌보아 주어야하고, 남부럽지 않게 해 주어야 되겠다는 생각에 자녀를 망치지 마십시오. 무엇보다 자녀들 하나님 경외하는 믿음의 자녀로 만드십시오. 힘들어도 말씀에 순종하는 순종의 자녀로 만드십시오. 이것이 자녀들에게 축복을 물려주는 비결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면 축복의 사람 되어집니다. 이것은 살아계신 하나님의 약속입니다. 이 말씀을 믿을 뿐 아니라 내 생활 속에 체험되어지는 복된 말씀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이 나라를 살리는 길, 내가 살고 우리 가정이 살고, 자녀를 살리는 길이 다른 곳에 있지 않아요. 내 자녀가 잘 되고 이 땅을 복된 땅으로 만드는 길은 은혜 받고 잘 깨달아 주님 기뻐하시는 길 가는 것입니다. 영적으로 회복 되어지고, 영적으로 축복 받을 때 육신도 잘 되어지고 풍성함을 누리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가 몰라서 못하는 것은 아닙니다. 이 시간 성령께서 우리의 마음에 깨달음을 주시는 대로 새롭게 결단하고 출발하는 은혜가 임하시기를 바랍니다.   
 
하나님께서 오늘 본문의 말씀을 통하여 우리에게 약속하신 복은 우리의 삶 속에서 실제적으로 나타나는 생산적인 복입니다. 
(예화) 세계 최대의 부자로 기억되는 사람 가운데 록펠러라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는 세계 최고의 부자, 석유 왕, 자선가로 불렸습니다. 그는 세계에서 노벨상 수상자를 가장 많이 낸 시카고대학을 비롯하여 24개의 명문대학을 양성했고 4928개의 교회를 지었습니다. 그렇게 큰 부와 명예는 어디서 왔을까요? 그의 어머니 엘리자로 부터 받은 신앙의 유산이었습니다. 
그는 철저한 십일조 생활을 했습니다. 어려서부터 어머니를 따라 교회에 출석했으며 그가 받은 용돈 20센트에서 꼭 십일조를 바쳤습니다. 또 교회에선 맨 앞자리에 앉아 예배를 드렸습니다. 교회의 일에 순종하고 목사님의 마음을 아프게 하지 말라는 어머니의 가르침을 지켰습니다. 그는 98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났는데 그의 후손들이 부모의 아름다운 신앙을 기념해 뉴욕에 세계적으로 아름다운 리버사이드 교회를 봉헌하였습니다.
그런데 기억할 것은 이러한 복은 우리에게도 얼마든지 나타날 수 있다는 것을 명심하여 금년 한해에는 정말 하나님과 바른 관계를 맺는 복된 한해가 되시기를 바랍니다. 그리함으로 하나님의 말씀을 삼가 듣고, 지키는 가운데 하나님께서 나를 위해서 예비하신 복을 받아 누리시는 역사가 일어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