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심으로 감사하며(시 138:1-8)

"내가 전심으로 주께 감사하며 신들 앞에서 주께 찬양하리이다 내가 주의 성전을 향하여 경배하며 주의 인자하심과 성실하심을 인하여 주의 이름에 감사하오리니 이는 주께서 주의 말씀을 주의 모든 이름 위에 높게 하셨음이라 내가 간구하는 날에 주께서 응답하시고 내 영혼을 장려하여 강하게 하셨나이다 여호와여 땅의 열왕이 주께 감사할 것은 저희가 주의 입의 말씀을 들음이오며 저희가 여호와의 도를 노래할 것은 여호와의 영광이 크심이니이다 여호와께서 높이 계셔도 낮은 자를 하감하시며 멀리서도 교만한 자를 아시나이다 내가 환난 중에 다닐찌라도 주께서 나를 소성케 하시고 주의 손을 펴사 내 원수들의 노를 막으시며 주의 오른손이 나를 구원하시리이다 여호와께서 내게 관계된 것을 완전케 하실찌라 여호와여 주의 인자하심이 영원하오니 주의 손으로 지으신 것을 버리지 마옵소서" (시편 138:1-8) 

일본 동경에 있는 미스꼬시 백화점은 도시락 1개에 100만엔 짜리를 판매한다고 합니다. 새해 설 음식으로 한정판매이긴 하지만 우리 돈으로 1천만원이 넘습니다. 음식을 담은 도시락 상자만 80만엔, 그 안에 담은 음식은 114년 전통을 자랑하는 긴조로라는 식당에서 만든 것으로 20만엔이라고 합니다. 그리고 일본 다카시마야 백화점 니혼바시점은 개들을 위한 정월 설음식으로 1만 6천엔과 2만 7천엔짜리 요리를 주문 판매한다고 합니다. 

한끼 1인분 식사 천만원, 보통 부자는 상상도 못할 일입니다. 중요한 것은 그 음식을 먹는 사람들이 어떤 마음으로 먹을 것인가 하는 점입니다. 쭈뼛거리며 먹을까? 도도하게 먹을까? 감사하며 먹을까? 아무리 생각해 보아도 '감사하며' 먹을 것 같지는 않습니다. 사치, 허영, 식도락에 빠진 사람들은 감사할 줄 모르기 때문입니다. 

지난 8월초 50년된 로열살루트라는 위스키를 수입한 회사가 있었습니다. 병당 1,200만원짜리 였습니다. 워낙 고가여서 우리나라에 할당된 것은 20병이었습니다. 그런데 9월 중순에 다 팔렸다고 합니다. 위스키 잔으로 환산하면 한잔 당 50만원이 된다고 합니다. 
한잔에 50만원짜리 양주를 마시는 사람들은 과연 어떤 생각을 하면서 마실까요? 그들 역시 감사하는 마음은 아닐 것입니다. 
음식은 감사하는 마음으로 먹고 마셔야 맛이 있는 법입니다. 떡볶이, 라면을 먹어도 좋은 사람과 좋은 뜻으로, 좋은 분위기에서 먹으면 꿀맛이 되지만 산해진미를 먹어도 누구와 먹느냐에 따라 맛이 달라지는 것입니다. 우리 시대는 잘 먹고, 잘 입고, 잘 놀고, 잘 살아도 감사가 없습니다. 
시편 138편은 감사할 것을 우리에게 교훈하고 있습니다. 

1절을 보면 "내가 전심으로 주께 감사하며"라고 했고, 2절을 보면 "성전을 향하여"라고 했고, 4절을 보면 역시 "주께 감사한다"고 했습니다. 
"전심으로", "주께", "성전을 향하여" 감사한다는 것입니다. 감사의 대상이 누구이며, 어떻게 감사해야 하는가를 찾을 수 있습니다. 시편을 보면 "하나님께 감사하라"는 구절이 수를 셀 수 없게 반복됩니다. 왜 하나님께 감사해야 합니까? 

1. 나를 지으신 분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이 사람을 만드셨다는 것을 창조론이라 부르고, 아메바가 진화해 사람이 되었다는 것을 진화론이라고 합니다. 
생명을 가진 것들은 계속 진화한다는 것이 진화론자들의 주장입니다. 그렇다면 언젠가는 지렁이나 모기가 진화해서 사람이 될 수도 있다는 개연성을 가진 것이 진화론인 셈입니다. 

그러나 창조론은 하나님이 사람을 지으셨다는 것을 고백하고 믿습니다. 창조론을 믿는 사람들은 자기 속에 이뤄진 하나님의 형상을 보기 때문에 자세를 가다듬고 삶을 다스리게 됩니다. 마치 어른 앞에 설 때처럼 말입니다. 

"어머니, 왜 나를 이렇게 낳으셨어요."라며 덤비고 소리 지르는 사람은 성공하지 못합니다. 이유는 자신의 삶 자체를 온통 부정적으로 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어머니, 저를 낳아주셔서 감사합니다."라는 사람들은 성공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이유는 자신을 긍정하고 하나님을 믿기 때문입니다. 

2. 세상을 창조하셨기 때문입니다. 
건축공사 계약을 할 때 공사잔금 중 얼마를 남겨 놓고 지불하지 않는 방법이 있습니다. 그것은 완공이후 발생할 부실공사를 일정기간동안 보수해야되기 때문입니다. 세계적인 건축회사도 부실이 있기 마련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이 세상을 6일만에 창조하셨습니다. 창세기 1장을 보면 "있으라 되라 하시매", "그대로 되니라"는 구절이 6번이나 반복됩니다. 그 뜻은 땅을 파고, 철근을 깔고, H빔을 박고, 벽돌을 쌓고, 포크레인을 동원해 세상을 창조한 것이 아니라 말씀으로 "있으라, 되라" 하실 때마다 그대로 되었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하나님 보시기에 좋았더라"는 구절이 7번이나 반복됩니다. 좋았다는 것은 완성품이라는 뜻입니다. 부실도 없고, 하자보수를 할 필요도 없다는 것입니다. 

서예가들이 붓만 들면 국선 입선작이 나오는 것이 아닙니다. 썼다가 구기고, 쓰다가 찢기를 반복하면서 작품을 만들어 냅니다. 
저는 원래 서예를 공부한 일도 없고, 누구한테서 전수한 일도 없습니다. 목회를 하면서 사랑하는 교인들에게 내가 쓴 글씨를 선물했으면 좋겠다는 단순한 뜻으로 붓을 잡기 시작했습니다. 그 중 제일 많이 쓴 글자가 「길」이라는 글씨입니다. 

그런데「길」 한자를 쓰는 것도 붓만 들면 저절로 되는 것이 아닙니다. 쓰다보면 길이 경부고속도로가 됐다가 호남고속도로가 됐다가 영동고속도로도 됐다가 시골길도 됐다가 산골길도 됐다가를 반복합니다. 그러다가 이 길이 좋겠다 싶은 것이 있으면 낙관을 치게 됩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세웠다 부순 일도 없고, 쓰다가 찢은 일도 없었습니다. 있으라 하시니 있었고, 되라 하시니 그대로 되었고 그 모든 것이 '보시기에 좋았고' 였습니다. 

제가 가장 싫어하는 학설은 진화론입니다. 이유는 원숭이가 진화해 사람이 됐다면 동물원 우리에 갇혀 있는 원숭이를 볼 때마다 "조상님" 해야하기 때문입니다. 가장 싫어하는 시조가 있습니다. 그것은 "산절로 수절로"라는 시조입니다. 
이 세상에 저절로 존재하는 것은 단 하나도 없습니다. 하나님이 지으셨습니다. 

3. 나를 구원하셨기 때문입니다. 
「레미제라블」이라는 소설이 있습니다. 주인공이 가난과 굶주림을 견디다 못해 빵 한 개를 훔쳐먹은 것이 죄가 되어 결국 감옥에 들어간다는 것으로 얘기가 시작됩니다. 법은 빵 한 조각을 훔쳤건 수천억을 삼켰건 벌을 주도록 되어 있습니다. 물론 형량은 다릅니다. 

인간의 지을 수 있는 죄는 다양합니다. 법률학에서는 민법이니, 형사법이니, 특정법이니로 구분합니다만 절도, 살인, 강간, 상해, 사기, 무고, 명예훼손 등 죄가 성립되는 분야가 너무나 많습니다. 그러나 죄 가운데 가장 큰 죄는 하나님을 하나님으로 인정하지 않는 죄입니다. 

마태복음 12:31을 보면 "모든 죄와 훼방은 사하심을 얻되 성령을 훼방하는 것은 사하심을 얻지 못하겠고"라고 했고, 32절을 보면 "누구든지 말로 성령을 거역하면 이 세상과 오는 세상에도 사하심을 얻지 못하리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성령은 하나님이십니다. 하나님의 존재를 부인하고, 하시는 구원사역을 훼방하고 거역하면 용서받을 길이 없다는 것입니다. 
성경을 보면 간음하다 붙잡힌 여인도, 강도 짓 하다가 붙잡힌 사람도 용서해 주셨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을 거역하고 부인하는 사람, 그래서 믿지 않는 사람은 구원받을 길이 없는 것입니다. 
내가 예수 믿게 된 것, 나를 죄에서 건져주신 하나님께 감사해야 합니다. 

본문 1절 첫머리에서 "전심으로 감사하라"고 했습니다. 전심이 무엇입니까? 흩어지지 않은 마음, 몸과 마음과 뜻을 묶어 드리는 감사가 전심 감사인 것입니다. 

교회를 처음 나오는 사람이나 교회생활을 오래 하는 사람들이 귀가 아프도록 제일 많이 듣는 말들이 있습니다. "은혜, 사랑, 아멘, 할렐루야"입니다. 그리고 "감사"라는 말도 그 중 하나입니다. 그러나 홍수 후에 마실 물이 없다는 말처럼 감사 속에 참 감사가 없을 수 있다는 것을 주목해야 합니다. 

전심으로 감사해야 합니다. 입으로도 감사하고, 마음으로 감사하고, 몸으로도 감사하고, 물질로도 감사해야 합니다. 
거리는 떨어졌지만 한 동네에서 구멍가게 겸 잡화점을 운영하는 두 사람이 있었습니다. 

새벽에 문을 열고 저녁 늦게 가게 문을 닫는 것은 두 집 다 같습니다. 그런데 3년이 지난 후 두 가게는 전혀 달라졌습니다. 한 집은 3년 만에 문을 닫았고, 한 집은 슈퍼마켓으로 발전했습니다. 이유는 간단합니다. 
먼저 문을 닫은 집 얘기부터 해 보겠습니다. 남자가 40대 후반에 소위 명퇴로 회사 임원을 그만두고 망설이다가 아내의 권유로 퇴직금을 털어서 가게를 시작했습니다. 

그런데 주인은 회사 임원 시절의 향수를 버리지 못합니다. 아침이면 승용차와 기사가 대문밖에 대기하고 있었습니다. 회사에 도착하면 수위들이 차 문을 열어주었습니다. 사무실에 들어가면 여비서가 맞아 주고 커피를 준비해 주었습니다. 그런데 구멍가게라니…, 짜증나고 한심하고 원망스럽고…. 그러다보니 아침 일찍 일어날 이유도 없고 10원, 100원, 500원 남는 물건 팔이가 얘들 장난처럼 보였습니다. 걸핏하면 때려치우자며 아내와 다퉜습니다. 3년 만에 때려치우기 전에 가게 스스로 문이 닫혔습니다. 

슈퍼마켓으로 발전하고 종업원이 20명으로 불어난 집 얘기를 해보십시다. 
이 집의 경우 역시 남자가 40대 초반이었습니다. 감원 바람이 불자 본인이 명퇴를 신청하고 퇴직을 했습니다. 그리고 아내와 의논 끝에 구멍가게를 시작했습니다. 
승용차도 용달겸용 차로 바꿨습니다. 부부가 함께 가게를 운영했습니다. 중요한 것은 그들의 태도입니다. "하나님께 감사합시다. 건강 주신 것 감사하고, 일거리 주신 것 감사하고, 아이들 잘 자라는 것 감사하고, 부정으로 쫓겨나지 않고 명퇴한 것 감사합시다." 
생각이 이런 쪽으로 정리되니까 일이 즐겁습니다, 피로가 빨리 풀립니다, 손님들이 기뻐합니다. 대형 유통점이 들어서도 동네 사람들이 친절한 가게라며 찾아옵니다. 작은 기업으로 성공한 것입니다. 
감사하면 길이 열립니다. 원망하면 길이 막힙니다. 

하나님께 전심으로 감사하면 환난을 당하더라도 하나님이 그를 소성 시키시고 손을 펴사 막아주시고 주의 오른손으로 구원하신다고 7절이 밝히고 있습니다. 

그리고 8절을 보면 "나에게 관계된 모든 것을 완전케 하신지라"고 했습니다. 내가 하는 일, 나와 관계된 일을 완전하게 해주신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감사의 응답인 것입니다. 

감사는 안되는 것을 되게 하시고, 불완전한 것을 완전케 하시고, 넘어진 것을 일으켜 세워 주시고, 환난을 손을 펴 막아 주십니다. 이유는 하나님은 감사를 기뻐하시기 때문입니다. 
주님! 감사합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