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의 하나님 -정영택목사/ 경주제일교회

요한이서 4 : 7~8



본문 가운데 “하나님은 사랑이심이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이것은 설명도 아니고 증명도 아니고 사랑 그 자체라는 것입니다. 사랑을 말할 때 에로스, 필리아, 아가페라는 말을 씁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사랑은 아가페로 표현합니다. 그러나 우리가 하나님은 사랑이시라고 할 때 그것은 하나님께서 모든 것의 해결을 가능케 하심을 생각할 수 있습니다. 사랑을 한다는 데 무슨 이의가 있습니까? 사랑만이 모든 것을 용납하고 용서하며 가능케 하는 것입니다. 어떤 사람이 자식의 결혼을 반대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가정에 불화가 생겼고 자식이 가출하고 시끄럽습니다. 목사님이 찾아가서 부모님과 대화를 하는데 여러 가지 이유를 대면서 이 결혼은 허락할 수 없다고 합니다. 자식들이 부모의 말을 거역하는 불효자라고 그런 자식 없는 셈 치겠다고 야단을 하십니다. 목사님께서 이야기를 다 들은 후 조용히 물었습니다. “자식을 사랑하십니까?” “예.” “자식이 잘 되고 행복하기를 바라시죠?” “그럼요.” 이 대답을 듣고 목사님은 “그럼 됐습니다. 문제는 해결됐습니다.” 하고 자리에서 일어났습니다. 부모님은 “목사님, 무엇이 해결되었다는 것입니! 까? 아무것도 해결된 것이 없는데요.” 목사님은 빙그레 웃으면서 대답했습니다. “자식을 사랑하시면 됐죠. 자식이 행복한 쪽으로 허락하시면 됩니다.” 그렇습니다. 사랑하기에 문제는 해결되는 것입니다. 우리는 구원을 말하고, 은혜를 말하고, 봉사와 헌신을 말합니다. 왜 그럴까요? 하나님이 사랑하시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이 사랑하시지 않으면 우리에게 가능한 것은 아무것도 없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사랑이 모든 것의 해결이 아니라 모든 문제의 원인을 제공하는 것으로 나타나는 데 있습니다. 요즈음 사랑의 이야기는 사랑 아닌 것들을 사랑으로 오해시키고 있습니다. 자기도취적인 것, 자기중심적인 것, 불륜적인 것, 비도덕적인 것들을 사랑의 이야기로 미화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오늘 “하나님은 사랑이시다”(God is love)라고 하는 사랑으로서의 하나님을 믿고 고백하고 증언하는 것은 매우 소중한 일입니다.

하나님은 사랑이시라는 이 의미는 참으로 깊고 오묘한 의미입니다. 그렇다고 추상적이고 미화된 사랑을 의미하는 것도 아닙니다.

먼저 현재적으로 이 사랑은 언제나 위에서 아래로 내려가는 사랑입니다. 큰 사람으로 작은 자를 사랑하고, 선한 사람과 악한 사람을 구별하지 않고 햇빛과 비를 주시는 그런 사랑이며 원수를 사랑하며 핍박자를 위해 기도하고, 선으로 악을 이기는 사랑입니다. 이것은 살면서 사랑할 만하기에 사랑하는 그런 상대적인 사랑이 아닙니다. 자격이 없어도, 죄인임에도, 원수라도 사랑하는 사랑입니다. 그야말로 오직 사랑을 주어 사랑으로 구원받고 사랑으로 살게 하는 것입니다.

또한 이 사랑은 미래적입니다. 즉, 하나님은 영원하시기에 이 하나님의 사랑은 끝없이 베풀어집니다. 오늘만이 아니라 내일도 이 사랑은 계속 됩니다. 그래서 이 하나님의 사랑은 끝없이 주고 용서하는 사랑이라고 하는 것입니다. 결국 이 하나님은 사랑이시라는 이 사랑은 인간이 가지고 있는 모든 장점, 단점, 선악 간의 갈등, 약점과 강점을 모두 극복하는 능력입니다. 그래서 인간의 모든 가치, 판단의 기준을 초월하며, 감성, 지성, 의지를 초월하며 능동적으로 먼저 행하시는 사랑인 것입니다.

이제 오늘 말씀에서 우리에게 깨우치는 것이 있습니다. “사랑하는 자들아 우리가 서로 사랑하자 사랑은 하나님께 속한 것이니 사랑하는 자마다 하나님께로 나서 하나님을 알고” 하는 말씀입니다. 바로 내가 사랑하고 하나님을 안다는 것은, 하나님께로부터 나왔음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즉, 하나님의 사랑으로 태어나 거듭난 자들이 되었다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우리가 예수 믿고 구원받았다는 것은 하나님께로서 난 것을 의미하며 그것은 바로 하나님의 사랑으로 그렇게 된 것입니다.

그러기에 계속해서 “사랑하지 아니하는 자는 하나님을 알지 못하나니 이는 하나님은 사랑이심이라” 말씀하고 있습니다. 이 말씀이 우리에게 깨우치는 바는 너무나 분명합니다. 사랑하는 자는 하나님을 알고, 사랑하지 아니하는 자는 하나님을 알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성도 여러분! 어떻습니까? 사랑하는 자로서 하나님을 알고 있습니까? 사랑을 하지 못하는 자이기에 하나님을 모르는 무지한 자입니까? 내가 하나님께로부터 났으며 하나님은 사랑이시기에 그 사랑이 내게 나타나 있으며 나도 사랑하는 자라고 하는 확신이 있습니까? 이 하나님의 사랑은 교회, 가정, 민족과 같이 집단에게도 나타나며 한 개인에게, 한 사람 한 사람에게 나타납니다. 중요한 것은 우리 한 사람 한 사람이 이 사랑의 나타남을 받아들이고 깨달아야 합니다. 왜냐하면 개별적으로 이 사랑을 받지 못하고 깨닫지 못하면 이 사랑의 진정한 고백자가 되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오늘도 우리는 이 점을 분명히 깨달아야 합니다. 하나님이 먼저 나를 찾아 주시고, 은혜를 주시고, 용서하시고, 외아들을 주시기까지 희생과 대가를 지불하셨다는 것을 개인적으로 깨달아야 됩니다. “나 같은 죄인을 그토록 오래 참으셨습니까, 나 같은 죄인을 이렇게 사랑하셨습니까?” 이런 고백, 감격이 우리 속에서 용솟음쳐야 합니다.

사랑이신 하나님께서는 오늘도 우리에게 하나님과 같은 사랑을 원하고 계십니다. 그래서 자기를 부인하고 제 십자가를 지고 예수를 따르라고 하시며 내 뜻보다는 아버지의 뜻을 따르기를 원하십니다. 그것은 계속해서 사랑이신 하나님을 우리를 통해 나타내시려는 하나님의 소원인 것입니다.

우리 성도들은 하나님은 사랑이시라는 이 고백 속에서 하나님 자신의 엄청난 사랑, 희생적 사랑, 조건 없는 사랑, 고통을 감당하신 사랑, 우리의 모든 문제를 해결하신 사랑, 그러면서도 공의로우신 사랑을 새롭게 깨닫고 사랑하는 자로서 하나님을 참으로 아는 자로 승리하시기 바랍니다. 이런 다짐으로 함께 찬양을 드립시다. “사랑하는 자들아 우리가 서로 사랑하자. 사랑은 하나님께 속한 것이니 사랑하는 자마다 하나님께로 났도다. 독생자를 세상에 보내심은 우리를 살리게 하시려 화목제로 보내셨도다. 화목제로 보냈도다. 사랑하는 자들아. 서로 사랑하자. 사랑은 하나님께 속한 것이니 서로 사랑하면 서로 사랑하면 주께서 우리 안에 거하심이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