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사람의 기도(누가복음18장 9-14절) 

오늘 말씀의 제목은 [ 두 사람의 기도]라는 제목으로 말씀을 상고하며 은혜를 나누겠습니다.

오늘은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기도자의 자세에 대하여 말씀해 주시고 있습니다. 각각의 비유를 들어서 설명을 해 주시기 때문에 이 비유의 내용이 무엇을 뜻하는가에 대하여 질문을 할 필요조차도 없도록 있는 그대로를 풀어내 주시고 있습니다.

 기도란 누구를 향하여 하는 것인가? 하는 질문에 대한 답이 들어 있습니다. 과연 천국을 열고 닫을 수 있는 기도자란 어떻게 기도하는가에 대한 기도에 대한 답이 들어 있습니다.

 사람이 스스로 자신을 낮추어서 하나님을 창조주로 모실 때에 비로소 하나님께서는 피조물인 인간의 엎드림을 들어 일으키시고 아들이라고 칭해 주십니다.  하나님 앞에서는 그 누구도 뻥쟁이가 되어서는 안 되지요. 최대한 낮추어야 크게 높임을 받을 수 있다는 사실을 말씀드리려고 합니다.

사랑하는 우리 님들의 기도는 스스로 낮아져서 하나님으로부터 높임을 받는 기도자가 되어 주시기를 축원합니다.

 오늘 말씀에 두 사람이 등장합니다. 한 사람은 바리세인이요, 한 사람은 세리입니다. 이 두 사람이 각각 대비되면서 과연 기도자의 태도는 어떤 태도를 가져야 할 것인가에 대하여 확실한 선을 그어 주시고 있는 말씀에 귀를 기울여 봅니다.

 오늘 말씀을 여기에서부터 출발합니다.


 1. 스스로를 의롭다고 믿는 바리세인 (11,12절)

 바리세인이 기도합니다. 그 기도의 내용은 함께 기도하러 성전에 올라왔던 세리를 염두에 두고 하는 기도입니다.

 이 기도는 세리가 들어 주어야 할 기도이지요. 바리세인은 " 이 세리와도 같지 않음을 감사하나이다" 라고 기도합니다. 바리세인은 이레에 두번씩 금식기도를 하고 있으며 소득의 십일조를 드리고 있다는 사실을 들어서 하나님 앞에 자랑을 합니다. 이렇게 된 것이 감사하다는 내용이지요.

 토색질도 안 했답니다. 불의를 행치 않았답니다. 간음을 행치 않았답니다. 그리고 한 것이라고는 금식을 했고 십일조를 했다고 합니다. 윤리적으로나 도덕적으로나 의인임이 틀림이 없습니다. 자신을 잘 관리하고 있는 멋진 사람입니다. 과연 존경 받을만한 사람입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바리세인의 기도를 기뻐하지 않으시는 것 같아요.

 사랑하는 여러분. 기도를 할 때에 누구를 쳐서 기도해서는 안 되겠습니다. 설교를 할 때에 누구를 쳐서 설교를 하면 안 되겠습니다. 결코 하나님께서 기뻐하시지 않는 기도입니다.

 이제 두 번째 사람에 대하여 알아 보겠습니다.


 2. 멸시 당하는 세리의 기도 (13절)

 세리는 저 멀리 서서 바리세인의 큰 기도 소리가 들려 오는 대로 가슴을 치며 기도합니다. 하나님 들으시라고 기도합니다. 그저 나는 죄인이로소이다. 나는 죄인이로소이다. 나를 불쌍히 여기시옵소서. 하고 기도할 뿐입니다.

 바리세인을 대항하여 기도하고 있지 않구요. 그저 하늘도 우러러 보지 못하고 가슴을 치면서 기도합니다. 나는 죄인입니다. 나를 불쌍히 여겨 주시옵소서. 자신이 왜 세리가 되었는지 한탄하지 않습니다. 사람이 먹고 살려니 어쩔 수가 없어서 세리가 되었고 작은 월급으로 입에 풀칠도 못하니 적당히 타협을 해야만 먹고 살 수 있지 않느냐고 하나님 아시지요?  아시지요. 하며 기도하지 않았습니다. 핑계가 빠진 기도입니다.

누구에게 대항 하는 기도가 아닙니다. 하나님을 원망하는 기도는 더욱 아닙니다. 그저 자신의 죄를 하나님 앞에 내어 놓고 내가 죄인입니다. 나를 불쌍히 여겨 주시옵소서. 하고 가슴을 치며 눈물을 흘리며 기도하고 있습니다. 핑계, 한탄, 저주, 치는 기도가 다 빠져 있습니다. 마치 석쇄에서 삼겹살을 굽는듯 기름이 쫘악 빠진 담백한 맛이 있는 기도입니다.

 기도는 하나님 앞에서 하는 것이지요. 남들으라고 하는 기도가 아닙니다. 남을 의식하면서 멋을 부리면서 기도하는 것도 아닙니다. 오직 하늘과 땅 사이에 하나님과 나만 있는듯 그렇게 하나님과 독대하여 기도하는 것이 기도입니다.

 나와 하나님과의 사이에 누추하게 핑계를 끌어 댈 것도 없는 겁니다. 다른 사람의 기도가 내 기도를 방해 한다고 목소리를 높여서 쫓아 내는 기도를 할 것도 아닙니다. 그저 내가 죄인입니다. 내가 죄인이기에 하나님의 영광을 가리우며 삽니다.  나를 불쌍히 여겨 주시옵소서. 참 담백한 기도입니다.

살다 보니 몸에 기름기가 빠지는지 멋도 기름도 쪼옥 빠져 나가는 것 같습니다. 기도도 담백하게 하고 설교도 담백하게 하고 말도 담백하게 하고 싶으며 글도 담백한 것이 좋으니 말이지요.

 사랑하는 여러분. 사람의 멸시가 무에 대단한 것이겠습니까. 그저 하나님께서 내 기도를 들어 주시면 그만입니다. 아무리 너스레를 떨어가면서 맛을 내고 멋을 부려서 유창하게 기도를 해도 하나님께서 기뻐하시지 않으면 말짱 헛것이 되고 말지요.

 성도의 기도는 담백하여야 합니다. 저와 여러분은 하나님 앞에서 기도할 때에 항상 담백하게 기도하시기 바랍니다.

 창조주 하나님 앞에서 기도하는데 그 기도에 이것 저것을 끼워 넣어서 햄버거처럼 만들지 마시고 오직 담백한 생수처럼 맑고 밝게 기도할 수 있는 저와 여러분이 되기시를 축원합니다.


 3. 자신을 낮추는 사람이 의롭다 인정을 받습니다. (14절)

 하나님 앞에서 기도를 할 때에도 바리세인은 세리를 멸시하고 묵사발을 만들며 기도를 했는데 평상시에는 어땠을까요. 사람 위에 사람 없고 사람 밑에 사람 없는 겁니다. 사람 위에는 오직 하나님이 계실 뿐이며 사람 밑에는 음부가 있을 뿐입니다.

사람이라는 존재는 위를 향할 때에는 거룩함으로 옷 입고 아래를 향할 때에는 회칠한 무덤이 되고 맙니다. 저와 여러분은 항상 하나님 앞에서 살고 있다는 사실을 깊이 인식하면서 살아야 할 것입니다. 오직 하나님께 인정을 받는 것이 온 세상에서 내어주는 인정보다 우월하며 값지며 복이 된다는 사실을 깊이 깊이 심중에 넣어 두셔야 할 일입니다.

 항상 자신을 낮추면 높아짐이 있습니다. 자신을 높일 때에 원수가 생기고 적이 만들어지는 것입니다. 하지만 자신을 스스로 낮출 때에는 결국은 인정과 함께 존경도 따라 옵니다. 자신을 낮추는 사람을 우리는 언제나 만나고 싶어 합니다. 자신을 높이는 사람은 별로 만나고 싶지 않습니다. 사람도 이러한데 하물며 창조주 하나님께서는 어떠실까요.

사랑하는 여러분. 우리 예수님께서 스스로를 낮추시고 낮추시어서 인간의 형상을 입고 종의 신분으로 이 땅에 오셨습니다.

 아들임에도 불구하고 종의 신분으로 이 땅에 오신 예수님. 종의 신분으로 오셔서 하나님의 뜻을 온 몸으로 순종해내셨습니다. 십자가에 죽어주시기까지 한  순종의 십자가. 여기에서 예수님의 겸손이 나옵니다.

 예수님께서는 우리들에게 겸손과 온유를 배우라고 말씀하십니다. 저와 여러분이 이 땅에 살면서 과연 겸손과 온유를 배워야 할 것입니다. 저와 여러분은 기억하는 사람에게 겸손한 사람,  온유한 사람으로 인식되어 있으면 좋겠습니다. 과연 그리스도의 발자취를 따르는 신실한 사람으로 각인되어졌으면 좋겠습니다.
     
 말 할 것도 없이 저와 여러분은 겸손하고 온유한 사람이 되어 주시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