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령께서 주시는 은혜”(엡 1:13-14)
 
본문의 말씀은 성령께서 주시는 은혜에 대한 말씀입니다. 사도 바울은 3-6절에서 성부 하나님의 예정과 선택에 대하여, 7-12절에서 “성자 하나님의 구속(救贖)”에 대하여 말씀한 후에 이제 본문에서는 성령께서 주시는 은혜에 대하여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성령께서 우리에게 어떤 은혜를 베풀어 주십니까?  
그것은 바로 “성령의 인을 치심”입니다. 주님을 영접하여 거듭난 성도들은 엄청난 삶의 변화를 체험하게 됩니다. 그러나 이 변화는 외적인 것이 아니라 내적인 것입니다. 그런데 성령의 인을 치심을 받은 성도들에게 나타나는 공통적인 특징이 있다면 삶의 전부는 이 세상이 아니라 하나님의 나라가 삶의 전부임을 깨닫게 하시고 이를 고백하게 하십니다. 그러기에 성령의 인을 치심을 받은 자는 이 세상은 순례자의 길이며, 오직 우리의 참된 소망은 하나님의 나라임을 고백하게 됩니다. 따라서 거듭난 성도는 성령의 인을 치심을 통하여 하나님의 나라를 기업으로 상속받는 것을 확신하며 살 수 있는 것입니다. 

1. 성령의 인치 심을 받는 조건은 무엇입니까?
다시 말하면 어떤 자에게 성령의 인을 치심을 주십니까? 사도 바울은 이에 대하여 세 가지로 말씀하고 있습니다. 

첫째로,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진리의 말씀을 들어야 합니다.(14절 상)
본문 14절 상반 절에서 “그 안에서 너희도 진리의 말씀 곧 너희의 구원의 복음을 듣고...”라고 말씀하고 있는 것처럼 성령의 인을 치심을 받는 첫번째 조건은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진리의 말씀 곧 복음을 들어야 합니다.
그렇다면 왜 우리가 진리의 말씀 곧 복음을 들어야 합니까? 그것은 롬 10:17에서 "믿음은 들음에서 나며 들음은 그리스도의 말씀으로 말미암았느니라.”고 말씀하고 있는 것처럼 우리가 성령의 인을 치심을 받는 조건은 바로 진리의 말씀 곧 복음을 들어야 합니다. 왜냐하면 복음(福音)을 듣지 아니하는 자에게는 아무런 반응도 일어날 수 없기 때문입니다. 복음을 들을 때만이 역사가 일어납니다. 왜냐하면 성령은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들을 때만이 우리의 마음에 들어오시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진리의 복음이란 무엇입니까?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이란? “예수님이 십자가의 죽으심과 사흘만에 부활하심으로 온 인류의 죄가 사함받고 무서운 심판으로부터 건짐을 받았다”라는 기쁨의 소식입니다. 다시 말하면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주신 말씀이기 때문에 진리의 말씀 곧 복음이라고 말합니다. 

따라서 우리는 이 복음을 들을 때만이 구원을 받을 수 있습니다. 그런데 여기에서 「듣는다」라는 것은 “주의하다, 경청하다”라는 뜻입니다.  이것은 “목마른 자가 물을 찾듯이, 돈 없는 자가 돈을 원하듯이, 배고픈 자가 음식을 찾듯이 그런 마음으로 복음에 귀를 기울이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사 55:2-3에서 “어찌하여 양식 아닌 것을 위하여 은을 달아 주며 배부르게 못할 것을 위하여 수고하느냐 나를 청종하라 그리하면 너희가 좋은 것을 먹을 것이며 너희 마음이 기름진 것으로 즐거움을 얻으리라 너희는 귀를 기울이고 내게 나아와 들으라 그리하면 너희 영혼이 살리라”고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의 영혼이 살기 위해서는 구원의 말씀 곧 진리의 복음을 들어야 합니다. 복음을 듣지 못하면 영적 갈증으로 인하여 멸망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오늘날 많은 사람들이 이러한 복음 듣기를 소홀히 하거나 거절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마치 유대인들이 완악함으로 예수님의 복음을 대적하였던 것처럼 복음을 대적하는 사람들이 많이 있습니다. 

행 2:37-38에서 “저희가 이 말을 듣고 마음에 찔려 베드로와 다른 사도들에게 물어 가로되 형제들아 우리가 어찌할꼬? 하거늘 베드로가 가로되 너희가 각각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세례를 받고 죄 사함을 얻으라. 그리하면 성령을 선물로 받으리니”라고 말씀하고 있는 것처럼 복음을 듣는 자는 양심의 찔림을 받고 회개하게 되고, 회개함으로 성령을 선물로 받을 수 있습니다. 
오순절 성령강림으로 예루살렘 교회가 태동할 때 모인 군중들을 향하여 베드로는 성령인 충만하여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전했습니다. 그들은 경청했습니다. 그 말씀에 마음이 찔렸습니다. 그들이 십자가에 못 박도록 내어 그 나사렛 청년 예수가 하나님이 보내신 그리스도란 사실을 깨달았던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경청하여 목마른 사슴이 시냇물을 찾듯이 갈급하여 들었으 때 성령님은 그들에게 임하셨던 것입니다. 그날에 3000명이 영혼들이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듣고 구원받았던 것입니다.

그런데 오늘날 도덕윤리 설교, 사회시사 설교, 개인 간증설교는 인기가 있는데 「예수 십자가 피의 복음」 말씀에는 시큰둥하는 이유는 무엇입니까? 성숙한 성도들은 말씀을 듣는 태도가 진지하고 간절하고 겸손합니다. 특히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에 대해서는 경의를 표하며 듣습니다. 듣는 태도는 성령이 함께 하는가 아닌가를 나타냅니다. 태도에 주의하십시오.

둘째로,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구원의 말씀을 믿어야 합니다.(14절 하)
본문 14절 하반 절에서 “…그 안에서 또한 믿어”라고 말씀하고 있는 것처럼 성령의 인을 치심을 받는 두 번째 조건은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구원의 말씀 곧 복음을 믿어야 합니다. 여기에서 구원의 말씀이란 것은 죄 ㄴㅎ은 인간에게 하나님의 사랑과 자비와 구원을 가져다주었기 때문입니다. 

진리의 말씀 곧 복음을 들은 후에는 믿어야 합니다. 그래서 야고보 사도는 약 1:21에서 "너희 영혼을 구원할 바 마음에 심긴 도를 온유함으로 받으라.”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이것은 들은 바 진리의 말씀 곧 구원의 복음을 온전히 믿으라는 것입니다. “온유함으로 받으라”라는 말은 믿음 없이 이루어질 수 없다는 것입니다. 롬 10:17에서 "믿음은 들음에서 나며 들음은 그리스도의 말씀으로 말미암았느니라.”고 말씀하고 있는 것처럼 우리가 말씀을 경청하며,주 의하여 사모하는 자세로 들을 때에 반드시 믿음이 생깁니다. 따라서 말씀을 듣고 마음에 믿음이 왔다는 것은 성령이 임하셨다는 것 즉 「성령으로 인침」을 받았다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하나님의 계획이 아무리 위대하고 예수님의 십자가의 피 공로가 아무리 크다한들 그 사실을 전하는 진리의 말씀을 믿지 않으면 그 엄청난  축복도 나와는 아무런  상관이 없게 됩니다. 믿음이 없으면 전능하신 하나님도 속수무책(束手無策)입니다. 그래서 히브리서 기자는 히 11:6에서 “믿음이 없이는 기쁘시게 못하나니 하나님께 나아가는 자는 반드시 그가 계신 것과 또한 그가 자기를 찾는 자들에게 상 주시는 이심을 믿어야 할지니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말씀에 대한 믿음만이 하나님의 축복을 소유할 수 있고 믿음만이 성령님을 맞이할 수 있으며, 믿음만이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 수 있습니다. 
베드로가 가이사랴의 백부장 고넬료의 집에서 복음을 전 할 때 놀라운 일이 일어났습니다. 고넬료와 그 모든 가족들과 하인들은 베드로가 전한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믿음으로 들었을 때 성령이 강하게 임하셨던 것입니다.(행 10:43-44)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믿는 사람은 성령의 인침을 받은 분입니다. 믿음이 온 사람은 성령의 인침을 받은 것입니다. 성령님을 맞이 한 것입니다. 믿음은 나의 이해와 이성의 지적인 동의가 아닙니다. “하나님의 하신 일에 대한 나의 이성과 지식의 굴복입니다.” 

예수님이 십자가에 죽으셨고 누구든지 믿는 자는 죄 씻음 주신다는 것은 오직 믿을 때에 나에게 적용되는데 바로 이것을 성령께서 우리에게 믿어지도록 하십니다. 왜냐하면 성령께서 하시는 사역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하신 일을 우리로 하여금 믿어지도록 하시는 일을 하시기 때문입니다. 성부 하나님은 계획하시고, 성자는 성취하시고, 성령은 적용하십니다. 그러기에 성령의 감동으로 기록된 하나님의 말씀을 듣는 믿게 하시고,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에 이르도록 하십니다. 또한 믿음이 있는 성도는 하나님의 말씀 앞에서 겸손하게 아멘으로 무릎 꿇을 수 있습니다. 바로 이러한 일은 성령의 인을 치심을 받은 자에게 일어납니다. 

그래서 사도 요한은 계 1:3에서 “이 예언의 말씀을 잃는 자와 듣는 자들과 그 가운데 기록한 것을 지키는 자들이 복이 있나니 때가 가까움이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읽는 것과 듣는 것과  믿는 것”이 복 중의 복입니다. 「말씀을 듣고 믿음」 뒤에는 성령이 일하시기 때문에  마음에서 놀라운 축복된 일을 일어납니다. 말씀을 듣다가 성령님이 내게서 일하시면 자꾸 눈물이 납니다. 자꾸 새 마음이 생깁니다. 자꾸 새 힘이 솟습니다. 자꾸 마음이 뜨거워져 주님의 일이 하고 싶어집니다. 기쁨이 솟아 얼굴에 빛이 납니다. 사랑이 회복되고 갈등과 대립이 사라집니다. 천국 사람답게 예수 그리스도의 성품인 성령의 아홉 가지 열매를 얻게 됩니다.

이렇게 성령을 맞이하고 성령께 자기의 문제가 자유케 된 행복을 맛보면 다른 사람들이 불쌍하게 여겨집니다. 그 영혼을 불쌍히 여기어 전도를 하게 됩니다. 그래서 전도를 열심히 하는 사람을 보면 성령을 체험하고 자유와 기쁨을 얻은 자기 간증이 있는 사람입니다.  진지하게 경청하고 믿음으로 들으십시오. 그래서 계 2:29에서 “귀 있는 자는 성령이 교회들에게 하시는 말씀을 들을 찌어다”라고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2. [성령으로 인을 치심]이란 무엇입니까?
원래 인(印)라는 것은 소유권을 의미하는 것이며 품질의 정확성과 완전성을 보장하는 표시입니다. 이스라엘의 주인은 자기 가축이나 노예를 사면 맨 먼저 인을 쳐서 자기 소유를 확인하였습니다. 이와 같이 하나님께서는 예수 그리스도의 피 값으로 산 자기 자녀에게 소유한 증거로 반드시 성령님이 임하도록 하셨습니다. 구약에서는 할례로써 선민의 표적으로 육신에 표시를 했지만 이제는 영적 할례가 곧 성령으로 인을 치심인 것입니다.

따라서 “성령으로 인을 치심을 받았다”라는 말은 중생한 자들에게 부여된 하나님의 자녀 됨을 깨닫게 하시고, 천국의 기업에 참여할 것에 대하여 확인하는 표인 것입니다. 이것을 「성령으로 인(印)을 쳤다」라고 하신 것입니다. 하나님은 우리로 하여금 구원을 받아 누리기에 확실성 있게 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성령을 주신 것은 “성령으로 인치셨다”라는 증거입니다.
그러므로 성령의 인을 치심 받았다는 것은 성령님이 그에게 처음 들어 오셨다는 것을 말합니다.  우리를 향하여 「너는 내 것이야」라고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성령의 인침을 받는 것은 성령께서 우리 안에서 들어오신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가 기억해야 할 것은 구원(救援)의 확신을 갖게 하시도록 성령으로 인쳐주시는 성령님은 약속의 성취로 주어졌다는 것입니다.(13절 하) 이는 구약의 예언 성취로 성령께서 오신 것처럼(욜 2:28)  장래의 구원 성취도 약속하신 성령께서는 반드시 우리를 구원하여 주십니다.(갈 3:14)

그렇습니다. 하나님은 구약 시대의 이스라엘 백성들이 자기 고집대로 행하여 악의 길로 빠지자 진노(震怒)하시어 바벨론에 70년간 포로생활을 하도록 징계(徵戒)하셨습니다. 그리고 죄에 빠진 영혼들이 스스로 복된 의의 길로 가지 못함을 불쌍히 여기셨습니다. 그래서 그들을 도와주시는 성령님을 보내주시겠다고 약속을 하셨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요엘서 2:28에서 “그 후에 내가 내 신을 만민에게 부어 주리니 너희 자녀들이 장래 일을 말할 것이며 너희 늙은이는 꿈을 꾸며 너희 젊은이는 이상을 볼 것이며”라고 약속하셨습니다.

그런데 이 약속은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성취되었습니다. 제자들을 남겨두고 십자가에 죽으시고 부활 승천하시기 전에 다시 약속하셨습니다. 내가 도와주시는 성령님으로 다시 오면 내가 너희와 함께 하여 너희를 인도하여 교회를 세우리라고 약속하셨습니다.(요 14:16-18) 
약속하신 대로 승천하신 예수님은 성령으로 다시 오순절 마가의 다락방에서 간절히 기대하는 초대교회의 120명의 성도들에게 임하셨던 것입니다.  약속대로 성령으로 오셔서 12사도와 성도들에게 함께 하셔서 능력과 권세를 주셔서 교회를 세우고 많은 사람들을 주님 앞으로 인도하였던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가 기억할 것은 오순절 이후 지금도 계속해서 성령께서 역사하시고 계십니다. 

누구든지 성령을 맞이하고 성령에 이끌리지 않으면 이 험하고 어두운 세대에서 하나님의 자녀로 죄를 이기며 살아 갈 수 없습니다. 복음을 전파할 수 없습니다. 가정의 행복도 교회의 부흥도 사회의 안정도 이룩할 수 없습니다. 그러나 우리에겐 약속하신 성령님이 계십니다. 누구든지 성령님을 맞이할 수 있습니다. 그래야 진정한 하나님의 자녀가 되며 그렇게 살 수 있습니다. 
 
3.우리에게 [성령으로 인을 쳐주시는 분]은 누구입니까?(고후 1:21)
인을 치시는 분은 성령이 아니라 성부 하나님이십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은 고후 1:21,22에서 “우리를 너희와 함께 그리스도 안에서 견고케 하시고 우리에게 기름을 부으신 이는 하나님이시니 저가 또한 우리에게 인치시고 보증으로 성령을 우리 마음에 주셨느니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따라서 성령은 인치는 자가 아니라 “성령의 인” 그 자체인 것입니다.  

4. [성령으로 인을 치심]의 이유는 무엇입니까?(14절)
첫째로, 우리의 기업의 보증이 되게 하시기 위함입니다.(14절 상) 즉 하나님의 소유가 되게 하십니다.
여기의 [우리의 기업의 보증]이란 [영생]을 말하는 것입니다. [보증]이란 말은 본래 매매(賣買)하는 일에 있어서 지불되는 계약금을 말합니다. 따라서 “성령으로 인을 치심으로 말미암아 우리의 기업의 보증이 되게 하셨다”라는 것은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그의 보혈로 우리를 사셔서 천국의 기업을 주셨는데, 하나님께서 그것을 확실히 해 주겠다”라는 계약의 의미로 우리에게 성령을 주신 것을 말하는 것입니다. 

다시 말하면 “성령으로 인을 쳐 주시는 이유”는 신분 증명(證明)을 위한 것입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은 딤후 2:19 상반 절에서 “그러나 하나님의 견고한 터는 섰으니 인침이 있어 일렀으되 주께서 자기 백성을 아신다 하며...”라고 말씀하시고 있는 것입니다. 즉 하나님의 자기 백성이라고 성도들의 신분을 증명해 놓으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성령님의 역사로 말미암아 여러분의 현재와 미래에 받아야 할 모든 축복을 보증받게 된 것입니다. 따라서 예수님을 영접하여 하나님의 자녀 된 성도는 하나님 아버지의 천국의 축복을 상속받을 수 있는 자격이 있습니다. 이것이 바로 우리가 「천국에서 누릴 복의 권리」이며 기업인 것입니다. 

본래 이스라엘 백성들에게서 「기업」이란 약속의 땅 가나안으로 들어가 각 지파별로 분배받는 땅을 의미하였습니다. 하나님이 주신 약속의 땅, 젖과  꿀이 흐르는 행복한 나라를 의미하였습니다. 이 기업을 받을 수 있는 자는 오직 아브라함의 자손들인 이스라엘의 12지파 사람들뿐이었습니다.  그들은 하나님의 약속에 의하여 가나안 땅을 분배받을 권리가 있는 사람이입니다.

그러나 이 가나안의 약속의 땅은 영원한 하나님의 나라 「천국」의 모형이므로, 하나님의 약속하신 기업은 영원한 성도의 본향 「천국의 땅」을 말합니다. 이것은 천국에 가서 누릴 수 있는 터전과 권리와 축복을 포함하는 것입니다. 「천국에서 살 땅과 축복의 권리」 이것을 우리의 기업이라고 하며 상속권이라고도 합니다. 이 축복을 보증해 주시는 분이 성령이란 말입니다. 성령님을 맞이하여 동거하는 사람은 미래의 천국에서 영원한 복락을 소유했다는 것을 보증 받은 사람입니다.

그러므로 성령의 보증을 받는 성도는 현재의 고난을 잘 이깁니다. 왜냐하면 현재의 고난이 아무리 어려워도 장차 천국에서 받을 영광과 족히 비교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롬 8:17-18) 그 뿐만 아니라 성령님은 현재에도 무한한 천국의 축복을 누릴 수 있게 하십니다. 고통스럽고 괴로운 이 땅위에서도 천국의 안식과 평화를 누릴 수 있게 합니다.
 
그러기에 성령으로 인을 치심을 받은 성도는 모든 고통의 결박으로부터 해방되는 자유를 누립니다. 그래서 눅 4:18-19에서 “주의 성령이 내게 임하셨으니 이는 가난한 자에게 복음을 전하게 하시려고 내게 기름을 부으시고 나를 보내사 포로 된 자에게 자유를 눈먼 자에게 다시 보게 함을 전파하며 눌린 자를 자유케 하고 주의 은혜의 해를 전파하게 하려 하심이라 하였더라”고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38년 동안 병마에 묶여 지내던 병자가, 날 때부터 소경된 거지 바디매오가, 귀신들려 무덤에서 살던 자가, 몸을 팔던 창녀가, 죽어 썩어가던 나자로가 찾아오신 예수님 만나 자유를 게 된 것처럼  오늘도 성령으로 찾아오신 예수님은 여러분들을 자유 케 해 주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아름다운 교회는 온 성도들이 성령님을 맞이한 인침을 받아 성령님과 함께 도움과 능력을 받아가며 즐겁고 기쁘고 행복한 예수를 섬깁니다. 그래서 하나님께 드리는 찬송이 넘치고 하나님의 영광을 찬미 하는데 온 힘을 다 하여 소문난 교회가 되는 것입니다.

둘째로, 내세 완전한 구속을 얻게 하심입니다.(14절 중) 즉 하나님의 보호하심이 있습니다.
“성령으로 인을 치심으로 말미암아 우리의 기업의 보증이 되게 하셨다”라는 것은 성도들이 천국에서 완전한 구속을 얻게 하시기 위함입니다. 그러므로 우리에게 오신 성령은 우리의 장래 구원을 현세에서부터 확고하게 하여 주십니다. 구원은 미래에 완성해 주시지만 현세에도 우리의 구원을 보장해 주십니다. 

그렇습니다. 성령으로 인을 치심은 우리를 구속의 날까지 완전하게 보존하시겠다는 뜻이 내포되어 있습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은 엡 4:13에서 “하나님의 성령을 근심하게 하지 말라 그 안에서 너희가 구속의 날까지 인을 치심을 받았느니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러기에 한 번 들어오신 성령님은 결코 떠나지 않습니다. 떠내 보낼 수도 떠나가시지도 않습니다. 그래서 요 14:16에서 “내가 아버지께 구하겠으니 그가 또 다른 보혜사를 너희에게 주사 영원토록 너희와 함께 있게 하시리니”라고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영원히 같이 게십니다. 동거하십니다. 함께 계셔서 천국에 이를 때까지 지켜주십니다. 돌보아 주시며, 힘주시고 간섭하십니다.

뿐만 아니라 천국에 이르도록 위험이나 어려움에 빠질 때마다 건져주신다는 것입니다. 이 세상 험하고 나 비록 약하나 성령님이 함께 하면 이겨나갈 수 있습니다. 결혼생활은 혼자 하는 것이 아니듯, 신앙생활도 혼자 하는 것이 아닙니다. 성령님의 도움을 없이는 결코 우리는 승리할 수 없습니다.
그러기에 찬송가 465장에서 「주 와 같이 길가는 것 즐거운 일 아닌가」 → 「성령님과 길가는 것 즐거운 일 아닌가?」라고 찬송하고 있는 것입니다. 

셋째로, 하나님의 영광을 찬미하게 하심입니다.(14절 하) 
성령으로 인을 치심을 받아 구속함을 받은 성도들은 하나님의 영광의 찬미하는 자들이 됩니다. 왜냐하면 성도들의 구속의 완성은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는 최고의 찬송이 되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구속받은 모든 성도들은 구속의 감격을 체험하며 살아야 합니다. 성령의 인도하심과 위로하심 가운데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우리에게 주신 구원의 은총에 대하여 감사하되 이러한 영광의 은혜를 주신 하나님을 찬미하며 살아야 합니다. 날마다 찬미의 제사를 드려야 합니다. 이것이 구원받은 성도의 마땅한 자세입니다. 그래서 히 13:15에서 “이러므로 우리가 예수로 말미암아 항상 찬미의 제사를 하나님께 드리자 이는 그 이름을 증거하는 입술의 열매니라”고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제 말씀을 맺겠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저와 여러분은 성령으로 인을 치심을 받은 자들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말씀을 듣는 일에 게을리 해서는 안 됩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잘 들어야 합니다. 경청하여 들어야 합니다. 그리고 무엇을 말씀하시는가를 들어야 합니다. 그리하기만 하면 성령님께서 우리들에게 많은 복의 열매들이 주렁주렁 달리도록 인도하여 주실 줄 믿습니다. 

그러나 듣는 것으로 끝나지 말고 그 말씀을 믿고 순종해야 합니다. 믿음으로 들으십시오. 신뢰하며 들으십시오. 진리로 들어야 합니다. 그리하기만 하면 성령님이 우리에게 충만하게 인도하실 것입니다. 우리의 삶을 온전한 길도 인도하여 주실 것입니다. 그런데 현대 우리의 삶의 모습은 어떠합니까? 이제라도 진리의 영되신 성령의 인도하심과 도우심을 받아 영육(靈肉)간 기뻐하며 승리하는 복된 삶을 살 수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