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의 원동력(What drives your life?”(전 4:4) 

“내가 또 본즉 사람이 모든 수고와 여러 가지 교묘한 일로 인하여 이웃에게 시기를 받으니 이것도 헛되어 바람을 잡으려는 것이로다.”(개역성경 전 4:4) “나는 또 사람들이 열심히 일하여 성공하고자 하는 동기가 자기 이웃에 대한 시기 때문인 것을 알았다. 이것 역시 헛되고 바람을 잡으려는 것과 같은 것이다.”(현대인성경 전 4:4)

토마스 칼라일(Thomas Carlyle)이란 사람이 “목적(目的)이 없는 사람은 키 없는 배와 같다. 한낱 떠돌이요, 아무것도 아닌, 인간이라 부를 수 없는 사람이다.”라고 지적하고 있는 것처럼 모든 사람은 무엇인가에 이끌려 살고 있습니다. 그런데 전도서 기자인 솔로몬이 지적하고 있는 것처럼 성공을 위해서 열심히 일을 하지만 그것은 이웃에 대한 시기 때문에 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이런 사람은 헛된 바람을 잡으려 하는 사람입니다. 이런 사람은 잘못된 동기에 의해서 이끌려 가는 사람입니다.

① 많은 사람들이 죄의식(罪意識)에 의해 끌려 다니고 있습니다. : 그들의 오늘은 과거에 의해 조작(造作)되어집니다. 과거가 미래를 지배하게 됩니다. 그러기에 이런 사람들은 후회(後悔)에서 벗어나고 수치심(羞恥心)을 감추기 위해 결국 삶 전체를 허비합니다. “난 원래 이런 사람이야...”이런 사람은 새로움으로 나가지 못하고, 과거의 범죄와 실수와 실패의 감옥 속에서 벗어나지 못합니다. 가인은 동생을 아벨을 죽이고 땅에서 유리하는 자가 되었습니다.(창 4:12) 오늘날에도 가인처럼 ) 죄에 얽매여 오늘의 삶을 방황하는 사람이 많이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목적은 우리의 과거로 인해 제한 받지 아니하십니다. 하나님은 새롭게 시작할 수 있도록 해주시는데 전문가이십니다. 물론 우리는 과거의 산물이지만, 과거에 갇힐 필요가 없습니다. 나를 존귀(尊貴)롭게 할 ‘하나님의 목적’은 나의 과거에 제한 받지 않으십니다. 모세를 생각해 보시기 바랍니다. 비록 모세는 애굽의 왕자로 있을 때에 인본적인 생각과 자세로 갖고 히브리 사람을 때리는 애굽 사람을 죽이고(출 2:11-15) 미디안 광야에 도망을 쳐서 40년 동안 고통스럽고 고독한 생활을 하였지만, 하나님은 모세를 버리지 않으셨습니다. 오히려 모세에 대한 엄청난 계획을 갖고 계신 하나님은 모세를 호렙산 떨기나무 사이에서 이스라엘을 위한 지도자로 부르셨습니다.(출 3:4) 이처럼 하나님은 사람을 새롭게 하십니다. 

② 많은 사람들이 원한(怨恨)과 분노의 쓴 뿌리를 씹으며 살아갑니다. : 이런 사람들은 누군가로부터 받은 상처(傷處)로 말미암아 생겨진 쓴 뿌리를 제거하지 않고 있는 한 고통의 순간은 계속 되풀이 됩니다. 왜냐하면 분노와 시기라는 것은 엄청난 에너지이기 때문입니다. 그들은 상처에서 자유롭지 못합니다. 그 상처로 생긴 분노가 그들의 삶을 살라버리게 만듭니다. 
▶▶ 그런데 사람들은 여러 가지 모양으로 분노를 나타냅니다. 침묵(沈黙)하면서 분노를 내면화하는 사람들도 있고, 감정을 폭발하여 다른 사람에게 분노를 쏟아내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그러나 이러한 분노는 오늘의 삶을 열정적으로 만들지만 결코 나와 상대 모두에게 도움이 되지 못합니다. 분노는 품고 있는 자신도 상하게 할 뿐만 아니라, 분노를 쏟아내면 상대방으로 하여금 더 큰 분노에 휩싸이게 합니다. 이것은 모두를 죽이게 만드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원한을 품고 쓴 뿌리를 계속 가지고 있는 한 우리의 상처는 계속 상처로 남고 그 상처는 결코 아물 수 없습니다. 그래서 욥 5:2에서 “분노가 미련한 자를 죽이고 시기가 어리석은 자를 멸하느니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참으로 안타까운 것은 오늘날 수많은 사람들이 원한과 분노에 이끌려 오늘을 살고 있다는 것입니다. 상처는 상처일 뿐입니다. 또한 그것은 지나간 과거일 뿐입니다. 그 무엇도 우리의 과거를 바꿀 수 없습니다. 과거에 연연(連延)하는 사람이 되지 말고, 용서하는 것이 중요한다. 하나님 안에 있다면, 용서할 수 없었던 것도, 용서할 수 있습니다. 용서는 놀라운 평안이 되어서 나와 상대방에게 임합니다.

③ 많은 사람들이 두려움에 이끌리어 살아가고 있습니다. : 두려움에 빠져 살면 좋은 기회를 잃어버립니다. 왜냐하면 모험을 피하고, 다수 속에 숨으려고 하기 때문입니다. 두려움은 스스로를 가둬놓은 감옥입니다. 그들에게는 새로움이라는 단어는 없습니다. 그들은 똑같은 일상에서 안도감을 느낍니다. 그러나 우리의 지금 이대로의 모습은 온전한 모습이 아닙니다. 우리는 새로움을 필요로 합니다. 새롭게 되지 못하면, 거듭나지 못하면 하나님 나라에 이를 수 없습니다. 우리는 우리 안에 두려움과 맞서 싸워야 합니다. 그렇다면 어떻게 두려움을 물리칠 수 있습니까? 요한일서 4:18에서 “사랑 안에 두려움이 없고 온전한 사랑이 두려움을 내어 쫓나니 두려움에는 형벌이 있음이라 두려워하는 자는 사랑 안에서 온전히 이루지 못하였느니라.”고 말씀하신 것 같이 하나님의 사랑을 확신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나를 사랑합니다. 하나님의 사랑을 확신하는 사람은 두려움을 물리칠 수 있습니다. 

④ 많은 사람들이 물질에 이끌리어 살아갑니다. : 이런 사람에게는 무엇이든 획득하고자 하는 욕구가 삶의 목표가 됩니다. 무엇인가를 움켜잡으려는 욕구(慾求)가 삶의 원동력이 됩니다. 그들의 착오(錯誤)는 소유를 통해서 더 행복해 질 것이라고, 더 중요한 사람이 될 것이라고, 더 완전하게 될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기억할 것은 소유를 통해서 얻을 수 있는 사람은 일시적인 행복입니다. 더 많이 가지면 더 중요한 사람이 될 것이라는 생각은 그들의 그릇된 생각입니다. 소유물로 인한 가치는 진정한 그 자신의 가치가 아닙니다. 소유물을 통한 가치는 소유물이 사라지면 당연히 없어집니다. 왜냐하면 그것은 ‘나’의 가치가 아니기 때문입니다. 우리의 가치는 우리가 있는 물질에 의해서 결정되는 것이 아닙니다. 그러기에 많은 소유물은 오히려 그를 더 위험하게 만듭니다. 더 불안하게 만듭니다. 

⑤ 많은 사람들이 다른 사람들에게 인정받기 위하여 살아갑니다. : 이런 사람들은 다른 사람의 기대로 인해 자신의 삶을 만들어 갑니다. 도저히 만족하지 못하는 부모를 만족시키기 위해 그는 오늘을 무거운 짐을 지면서 살아갑니다. 물론 다른 사람에게 인정받는 것은 좋은 것입니다. 그러나 타인의 시선에 묶여져서 “다른 사람이 나를 어떻게 생각할까?” 라는 생각 속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사람은 참으로 불행한 사람입니다. 모든 사람을 만족시키려고 노력하는 것은 실패로 가는 길입니다. 그런데 만약 이런 것들이 우리를 이끈다면 우리는 막다른 골목으로 갈 것이고, 사용하지 못하는 잠재력, 불필요한 스트레스... 만족하지 않는 삶을 향해 나아가게 될 것입니다. 군중을 따라가는 사람은 군중 속을 헤매며 길을 잃게 됩니다. 우리가 다른 사람의 의견에 의해 통제 받는 것은 우리의 삶을 향한 하나님의 목적을 놓치게 만드는 것입니다. 그래서 마 6:24에서 “한 사람이 두 주인을 섬기지 못할 것이니 혹 이를 미워하며 저를 사랑하거나 혹 이를 중히 여기며 저를 경히 여김이라 너희가 하나님과 재물을 겸하여 섬기지 못하느니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바른 것이 나를 이끌어야 합니다. 바른 목적이 나를 이끌어야 합니다. 우리의 창조자이신 여호와 하나님께서 주시는 바른 목적, 그것이 오늘을 살아가는 나의 원동력이 되어야 합니다. 그러나 만약 이상과 같이 언급한 것들이 나의 삶의 원동력(原動力)이 된다면 결국 그 사람은 멸망으로 끝이 나고 말 것입니다. 하지만 하나님의 목적에 의해서 인도될 때에 여러분의 삶에 멋진 변화들이 일어나기 시작할 것입니다. 

※ 그렇다면 바른 목적이 내 삶을 이끈다면 내 삶에 어떤 유익이 있습니까?
① 목적을 아는 것은 삶의 의미를 부여해 줍니다. : 삶의 의미가 있다면 인간은 거의 모든 것을 견딜 수 있지만, 반대로 삶의 의미가 없으면 그 어떤 것도 참을 수 없습니다. 예를 들면 삶의 의미가 있다면 시베리아 형무소의 형벌도 견디어 낼 수 있습니다. 그러기에 가장 큰 비극은 죽음이 아니라 목적이 없는 삶입니다. 그런데 참으로 감사한 것은 우리에게는 삶의 분명한 목적이 있기에 오늘을 살아갈 이유가 있습니다. 우리는 바울이 엡 3:20에서 “우리 가운데서 역사하시는 능력대로 우리의 온갖 구하는 것이나 생각하는 것에 더 넘치도록 능히 하실 이에게 ”라고 기도하고 있는 것처럼 우리가 기도하면 온갖 구하는 것이나 생각하는 것에 더 넘치도록 넉넉히 주시는 하나님께 지혜와 능력을 구해야 하겠습니다. 

② 목적을 알면 우리의 삶이 단순해집니다. : 목적을 알면 필요한 행동과 불필요한 활동을 명백히 구별하여 분별(分別) 있는 삶의 계획을 갖게 됩니다. 왜냐하면 목적은 우리가 무엇을 해야 하고, 무엇을 하지 말아야 할지를 명확하게 해 주기 때문이다. 우리의 목적은 꼭 필요한 활동과 그렇지 않은 것들을 평가하는 기준이 됩니다. 이런 사람은 어떤 일을 실행하기 전에 언제나 “이 일이 나를 향한 하나님의 목적을 달성하는 데 도움이 될까?”라고 자문합니다. 이런 사람은 잠 13:7에서 “스스로 부한 체 하여도 아무 것도 없는 자가 있고 스스로 가난한 체 하여도 재물이 많은 자가 있느니라.”고 말씀하고 있는 것처럼 스스로 부한 체 하지도 않고, 스스로 가난한 체 하지도 않습니다. 부하든지, 가난 하든지 간에 하나님의 목적을 분명히 알기에 복잡하게 살지 않고 모든 일에 최선을 다하고 하나님께 내려놓습니다. 

③ 삶의 목적을 알면 초점을 맞춘 삶을 살게 됩니다. : 우리의 노력과 에너지를 중요한 것에 집중합니다. 초점을 맞추는 삶은 힘이 있습니다. 이는 마치 돋보기를 통하여 햇빛을 한 곳에 집중시키는 것처럼 강력한 삶을 살 수 있습니다. 바울이 빌 3:14에서 “푯대를 향하여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님이 위에서 부르신 부름의 상을 위하여 좇아가노라.”고 말씀하고 있는 것처럼 삶의 초점을 푯대가 되신 예수 그리스도를 향하여 좇아가는 사는 아주 힘이 있게 미래를 열어갈 수 있습니다. 

④ 삶의 목적을 알면 삶의 동기가 유발됩니다. : 왜냐하면 목적은 열정을 낳기 때문입니다. 뚜렷한 목적만큼 힘이 되는 것은 없습니다. 하나님의 영광을 위한 것이 삶의 목적인 사람은 모든 범사에 긍정적이고 적극적인 마음을 갖게 됩니다. 바울이 빌 4:13에서 “내게 능력 주시는 자 안에서 내가 모든 것을 할 수 있느니라.”고 말씀하고 있는 것처럼 하나님께서 내게 능력을 주시면 모든 것을 할 수 있다는 확신 속에서 당당하게 세상을 살아갑니다. 

⑤ 삶의 목적을 알면 영생을 준비 할 수 있습니다. : 우리를 심판 할 수 있는 분은 하나님 한분이십니다. 다른 사람의 이야기는 그렇게 중요한 것이 아닙니다. 그런데 목적을 아는 삶은 하나님 앞에 설수 있게 만듭니다. 영생을 준비하게 합니다. 영생을 준비한 사람은 하나님의 심판대 앞에 서서 하나님께서 우리의 삶에 대해서 조사하실 때에 분명한 대답을 할 수 있습니다. 영생을 준비한 사람은 “너는 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 무엇을 하였느냐?”“내가 너에게 준 것들로 너는 무엇을 했느냐?”라고 질문하실 때에 이에 대해서 분명한 답변을 할 수 있습니다. 

(結論) 사 26:10에서 “주께서 심지가 견고한 자를 평강의 평강으로 지키시리니 이는 그가 주를 의뢰함이니라.”고 말씀하고 있는 것처럼 삶의 분명한 목적을 갖고 사는 사람은 견고한 심지와 같은 사람들입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이런 사람들에게 평강의 평강으로 지켜 주신다고 말씀하시고 있습니다. 바라기는 분명한 목적을 갖고 살았던 바울이 빌 4:6-7에서 “아무 것도 염려하지 말고 오직 모든 일에 기도와 간구로, 너희 구할 것을 감사함으로 하나님께 아뢰라. 그리하면 모든 지각에 뛰어난 하나님의 평강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 마음과 생각을 지키시리라”고 말씀하고 있는 것처럼 이제 삶의 분명한 목적을 가진 성도답게 아무 것도 염려하지 말고 모든 일에 기도하되 감사함으로 하나님께 아뢰어 응답을 받을 수 있기를 바랍니다. 오늘도 주님 안에서 승리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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