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씀을 존중히 여깁시다/계1:3
 
3 이 예언의 말씀을 읽는 자와 듣는 자들과 그 가운데 기록한 것을 지키는 자들이 복이 있나니 때가 가까움이라 

지난 주일에는 하나님을 존중히 여기는 방법에 대해서 말씀드렸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존중히 여겨야 하나님도 우리를 존중히 여겨 주시고, 하나님이 존중히 여기시는 생애가 되어야 우리가 복되고 형통하게 살 수 있다는 말씀을 드리면서, 우리가 하나님을 존중히 여기기 위해서 해야 할 첫 번째 일이 무엇이라고 했습니까? 
예배드리는 삶이라고 했습니다. 

그래서 오늘도 우리는 여기서 하나님께 예배드립니다. 
정해진 시간 정해 진 장소에서 신령과 진정으로 예배를 드리고 있습니다. 
날씨가 춥고 길이 미끄러워도 하나님께 예배드리러 여기까지 나왔습니다. 
이러한 우리의 태도는 하나님을 존중히 여기는 마음에서 나오는 것으로서, 하나님께서는 이렇게 자신을 존중히 여기는 여러분에게 상주시고 은혜를 베풀어주실 줄 믿습니다. 

오늘은 하나님을 존중히 여기는 삶에 대한 두 번째 말씀으로 하나님의 말씀을 존중히 여기는 삶에 대해서 말씀드리고자 합니다. 

우리가 어떤 사람을 존경한다면 그분에게 경의를 표할 뿐만 아니라 그분의 말에 대한 우리의 태도가 달라질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우리가 하나님을 존중할 때에 하나님께 진정한 예배를 드리게 될 뿐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우리의 태도도 달라진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어떻게 달라지는가? 


첫째는, 하나님 말씀의 권위와 능력을 인정하게 될 것입니다. 

말씀의 권위를 인정하지 않는 것은 그 분에 대한 모독입니다. 그 분을 존중하지 않는 것입니다. 

가령, 북한에서는 죽은 기일성의 말이나 김정일의 말이 얼마나 권위가 있는지 모릅니다. 
그들이 한 말은 곧 법이요 곧 진리입니다. 어디를 가더라도 그들이 쓴 글이 달려 있고 새겨 있는 것을 보면서 북한 사람들의 김일성 부자에 대한 존중은 인간적인 것을 넘어 신격화되어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었습니다. 
우리나라에서도 그 만큼은 아니어도 대통령의 말이 얼마나 권위 있습니까? 
그래서 그 아래 있는 사람들은 대통령의 말이면 무조건 순종합니다. 
그가 한 말을 한 마디도 빠뜨리지 않으려고 열중하는 각료들의 모습을 봅니다. 
그것이 곧 대통령에 대한 존중의 표시이기 때문입니다. 

우리도 하나님을 존중한다면 하나님의 말씀에 대해서 그 이상의 권위를 드려야 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의 권위를 어느 정도로 인정하느냐에 따라 그 사람의 하나님에 대한 존중이 나타난다는 것입니다. 

마태복음 8장에 보면 한 백부장의 이야기가 나옵니다. 
그에게 하인이 한 사람 있었는데 그가 중풍병으로 몹시 괴로워하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그가 예수님께 나아서 그 사실을 아뢰었습니다. 
예수님께서 "내가 가서 고쳐 주리라" 했을 때 그는 오히려 예수님을 말렸습니다. 
그리고는 하는 말이 "주여 내 집에 들어오심을 나는 감당치 못하겠사오니 다만 말씀으로만 하옵소서 그러면 내 하인이 낫겠나이다" 하면서 "나도 남의 수하에 있는 사람이요 내 아래도 군사가 있으니 이더라 오라하면 오고 내 종더러 이것을 하라 하면 하나이다"라고 했습니다. 
예수님께서 들으시고 기이히 여기셨다고 했습니다. 
그리시고는 말씀하시기를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이스라엘 중 아무에게서도 이만한 믿음을 만나보지 못하였노라" 하시면서 그 백부장에게 이르시기를 "네 믿음대로 될지어다" 했습니다. 나중에 보니까 그 하인의 병이 그 시로 나았다고 했습니다. 

이 백부장은 예수님을 진정으로 존중한 사람이었습니다. 
예수님을 존경했기 때문에 예수님의 말씀의 권위를 인정했습니다. 
예수님의 말씀 한 마디면 안 되는 것이 없다고 믿었습니다. 그대로 이루어질 것을 믿었습니다. 
예수님은 이런 백부장의 태도를 귀하게 여겨 그의 부탁을 들어주고 하인의 병을 낫게 해 주신 것입니다. 

오늘 우리도 하나님을 존중한다면 하나님의 말씀을 이렇게 믿게 될 것입니다. 
그 분의 말씀이면 안 되는 것이 없다는 말씀의 권위에 대한 진정한 존중이 있게 될 것입니다. 

여러분에게는 이런 말씀에 대한 존중이 있습니까? 
하나님의 말씀은 능치 못하심이 없는 줄 믿으십니까? 
하나님이 말씀 한 마디로 온 천지를 창조하시고 우주를 주장하고 계신 것을 믿습니까? 
그렇다면 여러분들은 하나님을 존중하는 분들입니다. 
그러나 그렇지 못하다면 아직까지 하나님을 존중하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을 진정으로 인정할 때에 하나님의 능력을 경험하게 됩니다. 

마태복음 13장에 보면 예수님께서 고향에 내려 가셨는데 그곳 사람들은 예수님을 인정하지 않았습니다. 
인간적으로만 생각하니 예수님이 그냥 목수의 아들이었고 야고보 요셉 시몬 유다의 형일 뿐이었습니다. 
그래서 그 분의 말씀에 아무런 권위와 능력을 인정하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58절을 보면 "저희의 믿지 않음을 인하여 거기서 많은 능력을 행치 아니하시니라" 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의 권위를 인정하지 않는 곳에서는 말씀의 능력이 나타날 수 없는 것입니다. 

그래서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하나님의 말씀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말씀의 권위를 믿고 말씀의 능력을 믿으며 그 말씀이 변하지 않음을 믿읍시다! 
그러지 않았습니까? "천지는 없어지려니와 내 말은 없어지지 아니하리라"(마 24:35) 
이렇게 말씀에 대한 분명한 믿음이 있어야 합니다. 이것이 바로 말씀을 높이는 우리의 자세입니다. 


두 번째로, 하나님을 존중하는 자는 그 말씀을 사랑합니다. 

그래서 그 말씀을 읽기를 좋아하고 그 말씀 듣기를 좋아하며 그 말씀을 배우기를 좋아하고 묵상하기를 좋아합니다. 

저는 외국에서 부모님을 존중한 나머지 부모님들이 보내 준 편지를 읽고 또 읽고 계속 간직하는 사람을 보았습니다. 

우리도 하나님을 존중한다면 하나님의 말씀을 읽고 또 읽을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무엇이지요? 이 성경이 아닙니까? 
이 성경의 모든 말씀은 하나님의 감동으로 된 것으로 교훈과 책망과 바르게 함과 의로 교육하기에 유익한 말씀입니다.(딤후 3:16) 
또 이 말씀은 사사로이 풀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감동함을 입은 자들이 하나님께 받아 전한 것이라고 했습니다.(벧후 1:21) 
그래서 우리는 이 말씀이 하나님의 말씀인 것을 믿습니다. 

하나님을 존중하는 사람들은 이 말씀을 읽는 것을 좋아합니다. 
마치 부모님을 존경하기 때문에 부모님이 써보내준 편지를 간직하면서 읽고 또 읽는 것과 같습니다. 
그래서 시간만 있으면 이 말씀을 읽고 또 읽으면서 하나님의 사랑을 느낍니다. 

우리가 지난 한 주간 성경읽기 대회를 가졌는데, 마침 20년만에 눈도 많이오고, 춥고 길이 미끄러웠습니다. 그러나 말씀을 사랑하기 때문에 이 말씀을 읽으려고 많은 사람이 모여와서 하루에 두 시간씩 성경읽기에 참석한 사람들이 있습니다. 
어떤 사람은 저에게 매일 성경읽기 낭독자로 세워달라고 빽을 쓰는 사람도 있었습니다. 그러나 이미 사람을 정하여 다 프린트를 해놓았기 때문에 할 수 없었습니다. 
저는 그런 분들을 보면서 성경 읽는 것을 그렇게 귀하게 여기고 사정까지 하면서 성경을 읽는 것을 하나님이 얼마나 귀하게 여기실 것인가 생각했습니다. 
우리가 말씀을 귀하게 여기면 하나님이 우리를 귀하게 여겨주십니다. 
지난 한 주간으로 성경읽기가 다 그친 것이 아닙니다. 앞으로도 계속해서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을 사랑하며 자주 읽읍시다. 마침 지난 주일에 여전도회에서 나누어 준 성경읽기표를 따라서 1년에 한번씩은 성경을 다 읽겠다는 목표를 세우고 기회닿는 대로 성경을 열심히 읽으시기 바랍니다. 이것이 바로 여러분들이 하나님을 사랑하고 높이는 행위이기 때문입니다. 


또한 하나님을 존중하는 자는 하나님의 말씀을 듣는 것도 좋아합니다. 

그래서 말씀 듣는 시간을 사모합니다. 말씀을 들을 때에 귀를 기울입니다. 
데살로니가전서 2:13의 말씀처럼 "말씀을 들을 때에 사람의 말로 아니하고 하나님의 말씀으로 받습니다" 그런 사람을 하나님은 귀하게 여기십니다. 이런 사람들에게 하나님의 역사가 나타나는 것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을 자주 들으면서도 말씀의 능력을 경험하지 못하는 까닭은 아직 우리의 말씀을 듣는 태도에 문제가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말씀을 들을 때, 비록 사람의 입술로 전해지지만 그 사람을 세우신 하나님, 그리고 그 사람이 증거하고 있는 말씀이 성경말씀, 하나님의 말씀이라고 믿어야 합니다. 
그리고 이 말씀을 높이고 말씀 듣는 것을 기뻐하고 말씀에 귀를 기울이는 자세가 되어야 합니다. 그래서 예배의 많은 시간이 말씀을 듣는 것으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말씀을 듣는 데에 실패하면 예배드리는 것 전부를 실패하게 됩니다. 그래서 언제든지 말씀을 들을 때마다 데살로니가전서 2:13의 말씀을 기억하면서 하나님의 말씀으로 받으시기 바랍니다. 
또한 다른 곳에서 말씀을 들을 때에도 하나님의 말씀, 성경이 전해질 때는 겸손한 마음을 가지고 이 말씀을 바른 자세로 받으십시오. 

말씀 듣는 것을 생각하면 우리가 얼마 전에 묵상했던 느헤미야 8장이 기억납니다. 느헤미야가 이스라엘 온 백성을 수문 앞 광장에 모아 놓고 에스라로 하여금 여호와의 율법을 읽도록 하고 백성들은 듣도록 한 사건이 생각납니다. 
그 때 백성들은 새벽부터 오정까지 하나님의 말씀을 들었는데 에스라가 말씀을 펼칠 때에 모든 백성이 그 자리에서 일어났습니다. 왜쟈하면 말씀의 존경을 보이기 위해서였습니다. 그리고 에스라가 말씀을 읽을 때에 백성들은 아멘! 아멘! 응답하면서 들었다고 했습니다. 지난 번 성경읽기 할 때 한 장을 다 읽으면 아멘하고 넘어갔던 것과 같습니다. 
그러다가 에스라가 그 말씀을 낭독하고 그 뜻을 해석하여 깨닫게 했는데 백성들이 그 말씀을 듣고 다 울었다고 했습니다. 
얼마나 감동이 되었으면 말씀을 듣고 울었겠습니까? 이것이 그 당시 이스라엘 자손들의 하나님을 높이는 태도였습니다. 그들이 이렇게 말씀을 듣는 것으로 하나님을 높이니 그들가운데 놀라운 영적 부흥이 일어났습니다. 그래서 자신들의 모든 잘못을 깨달아 개혁하고 모든 삶을 하나님의 말씀에 맞췄습니다. 
그러다보니 그들의 성전중건도 모두 마치고 성 안에서 하나님의 보호하심을 입어 평안한 삶을 살 수 있었습니다. 그들의 후대들까지도 이 성 안에서 복되게 살 수 있었습니다. 이것은 하나님의 축복입니다. 
어떻게 이렇게 하나님의 축복을 받게 되었느냐 하면 하나님의 말씀을 듣다가 이 말씀을 경외하고 그에 대한 올바른 반응을 보였기 때문에 하나님이 그들을 귀하게 여기시고 이런 복을 내려주셨습니다. 
우리가 우리 교회와 한국 교회의 영적 부흥을 위해 간절히 기도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런 기도가 어떻게 이루어질 것인가? 저는 확신하건대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을 듣는 중에 일어날 줄로 믿습니다. 
그래서 주일날 하나님 앞에 나와서 말씀을 듣는 이 시간을 귀하게 여기고 하나님의 말씀을 듣는 태도로서 아멘, 아멘 응답하면서 말씀 속에서 자신을 찾기 바랍니다. 
말씀을 높이는 자를 하나님은 반드시 축복해주시고 우리들 속에 놀라운 영적인 부흥을 일으켜주실 줄 믿습니다. 


또 하나님을 존중하는 자는 하나님의 말씀을 배우는 것도 좋아합니다. 

그래서 말씀 공부가 있다면 열심히 참석합니다. 
어떻게 하면 말씀을 좀더 잘 배울까 사모합니다. 

사도행전 17:11에 보면 베뢰아 사람들의 이야기가 나오는데, 그들의 믿음은 아주 고상해서 말씀을 들을 때에는 간절한 마음으로 받고 또 들은 다음에는 그것에 대해서 더 알고 싶어서 날마다 성경을 상고했다고 했습니다. 
그들은 말씀을 읽은 것으로 부족하게 느끼고, 그래서 간절한 마음으로 말씀을 들으며, 들은 다음에는 그 말씀이 그러한가하여 또 열심히 공부하기까지 했습니다. 왜 그럴까요? 그만큼 하나님의 말씀을 사랑하고 말씀을 존중했기 때문입니다. 

우리 교회에서도 말씀을 배우는 기회가 많습니다. 
지금은 방학중에 있고 특강 정도가 있을 뿐입니다만, 3월부터 본격적으로 말씀을 배우는 '남서울 신앙학교'가 개강되겠는데, 금년에는 한 사람이 한 과목씩 꼭 참석해서 하나님의 말씀을 꼭 배우기 바랍니다. 

어떤 사람은 이제 다 배워서 더 이상 배울 것이 없다고 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과목이 유치하다고 합니다. 
그런 사람은 하나님의 말씀의 가치를 그 정도로 밖에 여기지 않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진정 마음으로 높인다고 하면 배우고 배워도 끝이 없습니다. 또 배우고 싶습니다. 
교회에서 말씀 공부가 있다고 하면 귀하게 여기시기 바랍니다. 
외부에서 무슨 학원에 돈싸들고 다니면서 취미생활을 잘 하는데, 교회에서 말씀 배우는 일은 더욱 소중히 여기기 바랍니다. 


뿐만 아니라, 하나님을 존중하는 자는 그 말씀을 늘 묵상합니다. 

시편 1편에 보면, "복 있는 사람은 악인의 꾀를 좇지 않고 죄인의 길에 서지 않고 오만한 자의 자리에 앉지 아니하며 오직 여호와의 율법을 즐거워하여 그 율법을 주야로 묵상하는 자로다" 했습니다. 그런 사람은 "시냇가에 심은 나무가 시절을 좇아 과실을 맺으며 그 잎사귀가 마르지 아니함 같으니 그 행사가 다 형통하리로다"라고 했습니다. 

하나님을 존중하는 자는 그 말씀을 늘 그 말씀을 늘 묵상합니다. 
그런 사람의 삶은 하나님이 함께 해 주십니다. 
그래서 시냇가에 심은 나무와 같이 해 주시겠다고 했습니다. 시절을 좇아 과실을 맺으며 그 잎사귀가 마르지 아니함 같이 지켜주십니다. 

저는 이 말씀을 생각하면서 우리가 금년 1년 동안 특별히 경제적으로 어려운 이 때를 어떻게 지낼 것인가를 생각해 보았습니다. 
저는 경제 전문가가 아니니 어떻게 하라고 말씀드릴 수 없지만, 목사로서 한 가지 분명히 말씀드릴 수 있는 것은, 이런 때일수록 하나님의 말씀을 사모하고 말씀을 묵상하는 삶을 살아야겠다는 것입니다. 공연히 근심하거나 걱정하지 말고, 불안해하며 우왕좌왕하지 말고 이런 때일수록 평소에 아는 하나님 말씀을 묵상하며 살아가십시오. 
하나님이 내게 원하시는 것이 무엇인지 말씀 속에서 해답을 찾으시기 바랍니다. 그러면 이렇게 말씀을 존중히 여기는 태도를 보고 하나님께서 여러분을 귀하게 여기십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귀하게 여기시면 아무 걱정이 없습니다. 시냇가에 심은 나무와 같은 인생이 되기 때문입니다. 
저는 우리가 다 이런 축복 받기를 바랍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사랑해서 늘 말씀을 읽고, 들을 때 하나님의 말씀을 듣는 것처럼 하고, 그 말씀을 열심히 배우고, 말씀을 마음에 간직해서 묵상하는 삶, 이것이 말씀을 높이는 마음의 자세입니다. 


마지막으로, 하나님의 말씀을 지키는 자가 하나님을 존중하는 자입니다. 

우리가 아무리 하나님의 말씀의 권위를 존중하고 또 그 말씀을 사랑한다 해도 그 말씀을 지키는 것이 없으면 어찌 하나님을 높인다고 할 수 있습니까? 
정말 우리가 읽고 듣고 공부하는 이 말씀이 하나님의 말씀이라면 우리는 그 말씀에 순종해야 합니다. 
그런데 우리들 가운데에는 하나님의 말씀의 권위를 인정하고 또 그 말씀을 사랑한다고 하면서도 그 말씀대로 살지 않는 사람들이 많이 있습니다. 
그런 사람들은 하나님을 욕되게 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사울왕을 잘 압니다. 
그는 잘 생겼습니다. 힘도 세고 리더십도 있었습니다. 인간적으로 참 훌륭한 인물이었습니다. 
그러나 결국 하나님께서 그를 버리시고 하나님의 마음에 맞는 다윗을 왕으로 세웠습니다. 
그 이유가 어디 있었습니까? 
사울이 하나님의 말씀을 버린 것입니다. 말씀을 버린 것은 곧 하나님을 버린 것과 같습니다. 

한번은 이스라엘과 아말렉과의 전쟁이 있었습니다. 
하나님은 사무엘 선지자를 통해서 아말렉 족속들을 소와 양까지 다 진멸하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랬는데 그가 하나님 말씀을 어기고 전쟁에 이겼을 때 아말렉 왕도 살려 주고 짐승들 가운데 실하고 좋은 것은 다 남겨 놓았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사무엘에게 임하셨습니다. 사울 왕을 세우신 것을 후회하신다는 말씀이셨습니다. 그 이유는 그가 돌이켜 하나님을 좇지 아니하고 하나님의 명령을 이루지 않는다는 것이었습니다. 
처음에는 사울 왕이 그러지 않았습니다. 
그는 철저히 하나님의 말씀을 순종하면서 하나님을 존중하는 사람이었습니다. 
그러나 왕이 되어 여러 해 지나고 보니 이렇게 하나님의 말씀을 순종하지 않는 일이 나타나게 되었습니다. 그것은 하나님을 향한 그의 마음의 표현이었습니다. 
그래서 성경에 보면 그 말을 듣고 사무엘이 근심하며 여호와께 부르짖었다고 했습니다.(삼상15:11)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하나님의 종이 어느 때 근심하는지 아십니까? 
물론 여러분들이 육신적으로 병들었을 때도 근심합니다. 사업이 어려워졌을 때도 근심합니다. 
그러나 제일 근심이 되는 때는 성도들이 하나님의 말씀을 우습게 여기고 하나님을 존중하지 않고 제멋대로 살아갈 때 하나님의 종에게는 무거운 근심이 생깁니다. 
하나님의 종을 근심시키지 마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의 종이 여러분 때문에 부르짖지 않도록 마음속에서부터 하나님을 존중하는 것을 잃어버려서는 안됩니다. 
그러나 사울은 그것을 다 잃어버렸습니다. 
사무엘이 근심하며 부르짖고 난 다음날 사울을 만나러 갔습니다. 여기 저기서 짐승들의 울음소리가 들립니다. 
이게 어찜이냐 물으니 사울이 하는 말이 "여호와께 제사하려 하여 양과 소의 가장 좋은 것을 남겼다"고 합니다. 그 때 사무엘이 말합니다. 
"여호와께서 번제와 다른 제사를 그 목소리 순종하는 것을 좋아하심같이 좋아하시겠나이까? 순종이 제사보다 낫고 듣는 것이 숫양의 기름보다 낫지 아니하냐 왕이 여호와의 말씀을 버렸으므로 여호와께서도 왕을 버려 왕이 되지 못하게 하셨나이다(삼상 15:22)" 
여러분, 아주 두려운 말입니다. 하나님이 버리시면 끝장입니다. 
하나님이 왜 사울을 버리셨습니까? 사울이 먼저 여호와의 말씀을 버렸기 때문입니다. 우리도 하나님의 말씀을 버리면 이렇게 됩니다. 어떻게 하나님을 멸시한다고요? 하나님의 말씀을 순종하지 않는 것이 말씀을 버리는 것입니다. 

또 반대로 성경에 보면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여 복 받은 사람들이 나옵니다. 
그 대표적인 예가 아브라함일 것입니다. 
그는 100세에 낳은 독자 이삭을 번제로 드리라는 말씀을 받았습니다. 
평소에 늘 하나님의 말씀을 듣는 것을 기쁨으로 여기고 말씀을 늘 묵상하며 사는 사람이었는데 하루는 그런 청천벽력과 같은 명령이 떨어진 것입니다. 
그러나 아브라함에게는 하나님을 존중하는 마음이 있었습니다. 
다음날 아침 일찍 일어나 아들을 데리고 모리아산에 올라가 하나님이 지시한 그곳에서 아들을 번제로 드리려고 했습니다. 그 때 하나님이 천사와 함께 나타나 아브라함에게 말씀하시기를 "이제야 네가 나를 진정으로 경외하는 줄 알겠다"고 하셨습니다. 
무슨 뜻입니까? 아브라함이 하나님 말씀에 순종하는 것을 보면서 결국은 아브라함이 하나님을 높이는 마음을 아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오늘날에도 하나님의 복을 받고자 하면 말씀에 대한 순종이 있어야 합니다. 순종이 있기까지는 아직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을 높이는 것이 아닙니다. 
그런데 여러분들이 얼마나 하나님의 말씀을 순종하십니까? 여러분들이 성경의 말씀대로 살려고 얼마나 노력합니까? 여러분에게 힘들고 좀 손해가 나더라도 말씀대로 살려고 애쓰십니까? 이것이 곧 하나님을 존중히 여기는 태도인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 모두가 금년 1년을 하나님을 존중히 여기며 살기를 바랍니다. 하나님을 존중히 여기는 방법이 무엇입니까? 
하나님의 예배를 존중히 여기고 말씀을 존중하는 것이라고 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존중히 여기기 위해 그 말씀의 권위와 능력을 인정하고, 그 말씀을 읽고 듣고 공부하고 묵상하는 것을 좋아하며 더 나아가 말씀에 순종할 때 말씀을 귀히 여기는 것입니다. 
우리 교회는 말씀을 귀하게 여기는 교회입니다. 우리 성도들은 말씀을 귀하게 여기는 성도들입니다. 말씀을 귀하게 여긴다는 것이 입으로만 그런 것이 아니라 실제로 우리의 마음과 행동, 실천으로 나타나야 한다는 것입니다. 

바라기는, 금년 1년과 또 앞으로 사는 모든 생애가 하나님을 존중히 여기는 가운데, 하나님이 우리를 존중히 여기시고 우리에게 하나님께서 예비하신 축복 다 내려주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이철 목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