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날 항상 돌보시는 하나님”(시 34:8-22)


만약 지금 여러분이 누군가의 돌보심을 항상 받고 있다면 이 얼마나 마음이 든든하고 신나고 즐거운 일입니까? 그런데 그 누군가가 바로 하나님이라면 얼마나 든든하고 신나고 기쁜 일입니까? 그렇습니다. 내가 하나님은 날 항상 돌보시는 분이십니다. 

본문의 말씀은 다윗의 시로서 우리를 항상 돌보시는 하나님에 대해서 찬양하고 있는 고백시입니다.  다윗은 믿음의 거장이었지만 그에게도 짙은 영적 암흑같은 시대가 있었습니다. 얼마나 힘이 들었던지 블레셋 땅으로 망령하되 아기스 왕에게 미친척하면서 생명을 구걸하는 하는듯한 때가 있었습니다. 이 시기는 다윗에 참으로 수치스럽고 고통스런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삼상 21:10-22:2) 

그럼에도 불구하고 다윗이 그토록 참담했던 시절을 잘 극복하고 궁극적으로 승리할 수 있었던 것은 바로 다윗을 항상 돌보시는 하나님이 계셨기 때문입니다. 다윗의 이런 사상은 기독교의 핵심 사상입니다. 우리가 믿는 하나님은 항상 우리를 돌보시는 하나님이십니다. 하나님의 돌보심이 없다면 우리가 어떻게 존재할 수 있겠습니까?

그런데 어떤 신학자들은 “하나님은 세상을 창조는 하셨지만 다스리지는 않으신다.”고 말하면서 하나님의 돌보심에 대해서 정면적으로 도전합니다. 이런 사상을 가진 사람들을 창조적 자연신론자이라고 하는데, 그들은 내가 삶을 주도하고 내가 스스로 개척해야 한다고 말합니다. 그래서 그들은 하나님의 간섭하심을 싫어합니다. 인정하지도 않습니다. 

▶▶ 그렇다면 정말 그들의 말처럼 하나님은 세상을 창조만 하시고 돌보시지 않습니까? 결코 아닙니다. 이런 생각은 잘못된 생각입니다. 왜냐하면 세상에는 하나님의 돌보심을 받지 않는 피조물은 없기 때문입니다. 모든 피조물이 하나님의 돌보심을 받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 마태복음 6장 26절에서 "공중의 새를 보라 심지도 않고 거두지도 않고 창고에 모아 들이지도 아니하되 너희 천부께서 기르시나니 너희는 이것들보다 귀하지 아니하냐? "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공중의 새들은 씨를 뿌리지도 거둬들이지도 않지만 하나님께서 먹이시고, 들의 백합화는 길쌈도 수고도 하지 않지만 하나님께서 친히 가꾸셔서 그 아름다움이 솔로몬의 영광으로도 비교할 수 없게 하십니다. 이는 하나님께서는 산천초목(山川草木)을 친히 관리하시고 다스리시는 분이심을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하물며 하나님의 자녀들이겠습니까? 하나님께서는 사도 바울을 통하여 디모데전서5:8에서 "자기 친족 특별히 자기가족을 돌아보지 않는 자는 불신자보다 더 악한 자니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자기 가족을 돌보는 책임을 강조하신 하나님께서 어찌 자신의 백성들을 돌보시지 않으시겠습니까? 그런데 우리가 여기에서 기억할 것은 하나님께서 특별히 돌보시는 사람들이 있음을 아셔야 합니다.  
 
1. 그렇다면 하나님께서는 특별히 돌보시는 사람이 누구입니까? 
① 하나님의 구원 역사를 깊이 체험하기를 원하는 사람입니다.(8절 상)
하나님의 구원 역사를 깊이 체험하기를 원하는 사람은 하나님의 특별하신 돌보심을 받습니다. 본문 8절 상반 절에서 “너희는 여호와의 선하심을 맛보아 알지어다.”라고 말씀하고 있는데, 여기의 “선하심”이란 말은 “좋은 은혜”라는 의미이고,  “맛보다.”(타암)라는 말은 문자적으로 “음식의 맛을 보다.”(욥 12:11) 혹은 “분별하기 위하여 약간 먹다”(삼상 14:24), “마음으로 인식하다. 노력하다. 경험하다.” 라는 뜻을 가지고 있습니다. 여기에서는 하나님의 선하심을 시험적으로, 경험적으로 생생하게 느껴보라는 의미로 사용되었습니다. 하나님의 구원 역사를 깊이 체험 보라는 말씀입니다. 
그렇습니다. 시편 기자는 자기가 만난 하나님을 다른 사람들도 만나보기를 원했습니다. 시편 기자가 체험했던 하나님의 구원을 다른 사람들도 체험하기를 원했습니다. 그런데 기억할 것은 하나님의 구원 역사를 깊이 체험하기 원하는 사람은 하나님의 특별하신 돌보심을 받습니다.   

② 하나님께 피하는 사람입니다.(8절 하)
본문 8절 하반 절의 “그에게 피하는 자는 복이 있도다”라고 말씀하고 있는 것처럼 하나님께 피하는 사람은 하나님의 특별하신 돌보심을 받습니다. 하나님의 백성들은 환난(患難)과 역경을 만날 때에 결코 의기소침(意氣銷沈)하지 말고 하나님께 피하여 도움을 받아야 합니다. 그런데 여기에서 "피하라"라는 말씀은 "의지하라"는 뜻으로서 하나님만을 신뢰하여 하나님에게만 소망을 걸고 순종하라는 것입니다.
다윗만큼 많은 시련과 위협을 당해 본 사람도 드물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다윗은 모든 환난 가운데서 오직 하나님만을 도움으로 삼고 하나님께 피하고 그분을 피난처로 삼아 곤경에서 구원을 얻었습니다. 다윗은 자신을 죽이려는 사울 왕을 피해 도망 다니면서 두려움 가운데 살아야만 했습니다. 그럴 때마다 하나님께 부르짖음을 들으시고 모든 환난에서 구원해 주셨습니다.

③ 하나님을 경외하는 사람입니다.(9절 상)
본문 9절 상반 절의 “너희 성도들아 여호와를 경외하라....”고 말씀하고 있는 것처럼 하나님을 경외하는 사람은 하나님의 특별하신 돌보심을 받습니다. “하나님을 경외(敬畏)하다”(야레)라는 말은 단순히 “두려워하라”는 뜻이 아니라 하나님을 존귀하게 여기는 가운데 그분의 말씀에 순종하는 삶을 살라는 뜻입니다. 
따라서 하나님을 경외한다는 것은 ①  하나님의 계명을 지키는 것입니다.(창 22:12,시 103: 17,18) ② 악(惡)에서 떠나는 것입니다.(잠3:7 ) ③ 불의한 이익(利益)을 탐하지 않는 것입니다(출 1821. 느 5:15) ④ 겸손(謙遜)한 것입니다(잠 22: 4) 그런데 기억할 것은 하나님을 경외하는 것은 지혜의 시작이요. 근본입니다. 그러기에 성도는 하나님을 두려워함으로 정직하게 하나님을 섬길 수 있으며(골 32), 거룩한 생활을 추구해 갈 수가 있습니다.(고후 7:1) 또한 거룩하신 사랑을 베푸시는 하나님을 앎으로써 그분을 바르게 경배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기억할 것은 하나님을 경외하는 사람은 하나님 앞에서 사는 사람입니다. 좌우를 살펴서 사람이 없음을 먼저 살피는 것이 아니라 모든 범사에 먼저 하나님을 살피면서 사는 사람입니다.   

④ 하나님을 찾는 사람입니다.(10절)
본문 10절의 “젊은 사자는 궁핍하여 주릴지라도 여호와를 찾는 자는 모든 좋은 것에 부족함이 없으리로다”라고 말씀하고 있는 것처럼 하나님을 찾는 사람은 하나님의 특별하신 돌보심을 받습니다.  여기에서 “여호와를 찾는 자”란 자신의 힘을 믿고 의지하는 자와 달리 자신의 삶을 전적으로 하나님께 맡기고 하나님의 선하심과 인자하심을 신뢰하는 자를 가리킵니다. 하나님께서 이러한 사람들을 특별히 돌보아 주십니다. 

⑤ 생명의 원천이신 하나님을 사모하는 사람입니다.(12절)
본문 12절의 “생명을 사모하고 장수하여 복 받기를 원하는 사람이 누구뇨”라고 말씀하고 있는 것처럼 생명을 사모하는 사람은 하나님의 특별하신 돌보심을 받습니다. 여기의 ‘생명’과 ‘장수’는 동일한 의미로서 이 땅에 건강하게 오래 사는 것을 가리킵니다. 이것은 인간이면 누구나 소망하는 축복입니다. 시인은 이처럼 모든 사람이 관심을 갖는 장수의 축복을 받는 비결은 생명의 원천이신 하나님을 바라보는 것을 증거하고 있습니다. 사도 바울이 골 3:4에서 “우리 생명이신 그리스도께서 나타나실 그 때에 너희도 그와 함께 영광 중에 나타나리라”고 말씀하고 있는 것처럼 생명의 원천이신 하나님을 사모하는 사람에게 영광 중에 거할 수 있도록 특별하신 돌보심이 있습니다. 

⑥ 입술로 범죄 하지 않는 사람입니다.(13절)
본문 13절의 “네 혀를 악에서 금하며 네 입술을 궤사한 말에서 금할지어다”라고 말씀하고 있는 것처럼 입술로 범죄 하지 않는 사람입니다. 여기에서 “혀를 악에서 입술을 궤사한 말에서 금하는 사람”은 하나님의 특별하신 돌보심을 받습니다. 말의 실수는 다른 사람을 죽일 수도 있습니다. 자신을 멸망으로 이끌어 갈 수도 있습니다. (약 3:2-12)  그러나 하나님의 특별하신 돌보심을 받는 사람은 자기 입술을 절제하여 입술로 범죄하지 아니하는 사람입니다.(시 140:9,잠 4:24, 마 16:23)
 
⑦ 하나님 앞에서는 악을 버리고 선을 행하며, 사람들 앞에서는 이웃과 더불어 화평을 도모하는 사람입니다.(14절)
본문 14절의 “악을 버리고 선을 행하며 화평을 찾아 따를지어다.”라고 말씀하고 있는 것처럼 하나님 앞에서는 악을 버리고 선을 행하며, 사람 앞에서는 이웃과 더불어 화평을 도모하는 사람입니다. 
그렇습니다. 하나님과 이웃을 사랑하는 사람은 하나님의 특별하신 돌보심을 받습니다. 하나님의 관계에 있어서는 악을 버리고 선행을 행하며 이웃과의 관계에서는 화평을 도모하는 사람입니다. 이는 하나님의 사랑을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하는 사람입니다. (마 22:37-40) 

⑧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려고 몸부림치는 사람입니다.(15절)
본문 15절의 “여호와의 눈은 의인을 향하시고 그 귀는 저희 부르짖음에 기울이시는도다.”라고 말씀하고 있는 것처럼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려고 몸부림치는 사람은 하나님의 특별하신 돌보심을 받습니다. 여기의 의인(‘義人)’이란 여호와를 경외하며 그분의 말씀에 순종하는 삶을 사는 사람을 가리킵니다. 

⑨ 하나님 때문에 마음이 상한 사람 곧 중심에 통회하는 사람입니다.(18절)
본문 18절의 “여호와는 마음이 상한 자에게 가까이 하시고 중심에 통회하는 자를 구원하시는도다.”라고 말씀하고 있는 것처럼 하나님 때문에 마음이 상한 사람 곧 중심에 통회하는 사람은 하나님의 특별하신 돌보심을 받습니다.   
 
2. 그렇다면 하나님께서 우리를 어떻게 돌보아 주십니까? 
① 여호와의 사자가 둘러 진치고 건져주심으로 돌보십니다.(7절)
본문 7절에서 “여호와의 사자가 주를 경외하는 자를 둘러 진치고 저희를 건지시는도다”라고 말씀하고 있는 것처럼 하나님께서 피하는 사람, 하나님을 경외하는 사람을 도와주시되 여호와의 사자를 보내셔서 둘러 진치고 건져주심으로 돌보아 주십니다. 
 하나님께서는 참으로 감당할 수 없는 시험 속에서도 “그리하지 아니하실지라도”의 신앙을 가지고 하나님을 경외했던 사드락, 메삭, 아벳느고를 풀무불 속에서 건져주셨습니다.(단 3:28) 기도하면 죽는다는 것을 알면서도 변함없이 하루에 세 번씩 하나님께 기도함으로 신앙의 지조를 지키었던 다니엘을 사자의 굴에서 보호하여 주셨습니다.(단 6:22) 이처럼 하나님께서 하나님께 피하고, 하나님을 경외하는 자들을 돌보시되 결코 포기하지 아니하시고 여호와의 사자로 하여금 보호하십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하나님께 피하고, 하나님을 경외하는 것이 얼마나 복된 일인지를 알아야 합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안전하게 하시는 분이십니다. 다윗은 평생을 통해 오직 하나님의 품안에서만 가장 안전하고 평화로움을 체험한 사람입니다. 그러기에 다윗은 시편 18:2에서 “여호와는 나의 반석이시요 나의 요새시요 나를 건지시는 자시요 나의 하나님이시요 나의 피할 바위시요 나의 방패시요 나의 구원의 뿔이시요. 나의 산성이시로다.”라고 말씀하고 있고, 시 3:6에서 “천만인이 나를 둘러치려 하여도 나는 두려워 아니 하리이다.”라고 고백하고 있습니다.

우리 인생의 완전은 오직 하나님께서 붙잡아 주실 때만 가능한 것입니다. 그래서 다윗은 자신이 환난(患難) 중에 있을 때에 “하나님께서 자기의 사자를 보내셔서 자기를 둘러 진치게 하셨다"고 했습니다(7절) 하나님께서는 만유보다 크시므로 하나님께 피하는 한 아무도 우리를 해칠 수 없습니다. 그런데 선하신 하나님께서 우리의 평생토록 안정하게 지켜 주십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이사야 선지자를 통해 사 46:3-4에서 "야곱 집이여 이스라엘 집의 남은 모든 자여 나를 들을지어다. 배에서 남으로부터 내게 안겼고 태에서 남으로부터 내게 품기운 너희여 너희가 노년에 이르기까지 내가 그리하겠고 백발이 되기까지 내가 너희를 품을 것이라 내가 지었은즉 안을 것이요 품을 것이요 구하여 내리라"고 약속하시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여호와께 피하는 사람이 복이 있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다윗은 평생 숱한 고난 속에서 하나님을 피난처로 삼아 그에게 피하여 여호와의 선하심을 맛보았습니다. 우리도 다윗처럼 어려움이 있을 때마다 하나님께 피하여야 합니다. 그리하면 시편121편 말씀처럼 천지를 지으신 여호와께서 졸지도 주무시지도 않으시고 영원토록 우리의 출입을 지켜 주실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도 다윗처럼 선하신 하나님께 피하고, 안전한 하나님께 피하므로 하나님의 지켜 주심의 축복을 받아 누리기시를 바랍니다.

두려움이 없는 삶을 살고 싶은 것은 모든 사람의 공통된 마음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연재해, 천재지변, 전쟁의 공포 등 이루 헤아릴 수 없을 만큼 우리의 생명을 위협하는 많은 위협들과 삶의 문제들이 항상 도사리고 있습니다. 이처럼 우리들의 삶은 온갖 종류의 두려움을 가지고 살아갑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특별하게 돌보시는 사람은 어떤 상황에서도 하나님의 건지심을 통하여 안전하게 생활할 수 있습니다. 

② 부족함이 없도록 하심으로 돌보십니다.(9-10절)
본문 9절에서는 여호와를 경외하는 자에게 부족함이 없겠다고 증거하고 있고, 본문 10절에서는 이것에 대하여 구체적으로 2가지로 보충 설명해 주시고 있습니다.
첫째, 젊은 사자는 주릴지라도 여호와를 경외하는 자에게는 부족함이 없다고 말씀하십니다.(9절) 늙은 사자는 힘이 없어 먹이를 사냥하지 못하니 주릴 수가 있으나, 힘이 센 사자야 왜 주리겠습니까?  그러나 절대 주릴 필요가 없는 젊은 사자라도 때때로 예외로 궁핍하여 주리는 경우가 있습니다. 하지만 여호와를 경외하는 자에게 절대적으로 부족함이 없다고 성경은 약속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하나님의 경외하는 일 자체가 결코 헛된 일이 아님을 명심해야 할 것입니다. 

둘째, 모든 좋은 것에 부족함이 없습니다.(10절) 좋은 것이 한 가지만이라도 기쁜데 여호와를 경외하는 자에게는 두 가지가 아니라 모든 좋은 것에 부족함이 없다고 성경은 약속하고 있습니다. 예를 들자면 엘리야의 경우를 보면 3년 반 기근에 굶주릴 필요가 없는 젊은 사자 같은 아합 왕도 물이 없어 고통을 겪었는데(왕상 18:5) 여호와를 경외하는 엘리야는 그릿 시냇가에 숨기시고 까마귀를 통하여 떡과 고기를 먹이시다가 강물이 마르자 사르밧 과부네 집에서 기름과 가루의 기적으로 3년 반 기근을 배불리 먹였으니 모든 좋은 것에 부족함이 없었습니다. 시 33:18,19에서 증거하고 있는 것처럼 기근 시에도 부족함이 없었습니다. 

③ 하나님의 자녀들의 부르짖음에 응답하심으로 돌보십니다.(15절) 
'부르짖음'은 기도입니다. 17절에는 "의인의 외침에 들으시고 저희의 모든 환난에서 건지셨도다"고 했습니다. 육신의 부모도 마음이 항상 자기 아이에게 가 있기 때문에, 자기자녀의 상황이나 울음소리를 민감하게 알아챕니다. 
그럼에도 육신의 부모는 불완전하기에 긴장을 하고 신경을 써도 놓칠 때가 더러 있습니다. 다 챙길 수 없습니다. 그래서 아이가 길을 잃기도 하고 다치기도 합니다. 그러나 다윗이 믿는 하나님은 완전한 보호자입니다. 그 하나님께서 우리의 아픔의 소리를 들으시고, 우리의 부르짖음에 귀를 기울이시고, 우리의 앉고 일어섬을 다 보고 계십니다. 

그래서 우리의 건강의 문제, 자녀의 문제, 경제의 문제, 인간관계의 문제 등을 가지고 하나님의 도우심을 구하면 하나님은 무시하지 않고 우리를 만나 처방을 주시고, 힘을 주십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돌보시려고 '기도'라는 축복의 선물을 주셨고, 기도를 통해 우리 삶에 개입하십니다. 다윗은 그의 인생 돌아보면서, 자신의 과거에 도우셨던 하나님을 생각하며 "하나님의 귀는 저희 부르짖음에 기울이시는도다."고 체험을 고백합니다. 
오늘 예배를 드리는 여러분에게도 하나님의 거룩한 귀가 여러분의 부르짖음을 들으시고 응답하시는 은총을 체험하시기를 바랍니다. 문제가 크다고 낙심하지 마세요. 하나님이 내 삶에 개입하시고 내 부르짖음에 응답하시면 이 태산과 같은 문제는 평지로 변하게 됩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약속입니다. 

④ 하나님의 자녀들의 마음의 상처를 치료해 주심으로 돌보십니다.(18절) 
마음이  상하는 이유는, 첫째로 하나님의 자녀답게 살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나로 인해 하나님의 이름이 더렵혀지고, 맡은 직분을 잘 감당하지 못할 때, 하나님께 대한 약속을 이행하지 못할 때 우리 마음이 아픕니다. 둘째는, 내 남편이, 내 자녀가, 내 이웃이 주님을 열심히 섬길 수 있는 환경에 있음에도 불구하고 아직도 믿음이 희미할 때 마음이 아픕니다. 그리고 셋째는 직장에서나 사회에서 하나님의 정의보다 불의가 판을 칠 때 마음이 상합니다. 그러나 내 마음이 상한 것보다 더 중요한 것은 하나님은 마음이 상한 자를 치료하시고, 눈물을 씻어주시고, 위로해 주시기 위해서 가까이 하신다는 사실입니다. 

그리고 중심에 통회하는 자를 구원해 주십니다. 우리 모두는 각자 나름대로 배우면 배운 대로, 못 배우면 못 배운 대로, 가졌으면 가진 대로, 못 가졌으면 못가진대로 다 상처가 있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우리의 외상(外傷)은 금방 드러나지만 마음의 상처는 쉽게 드러나지 않습니다. 본인 스스로도 알지 못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그러다가 드러날때는 이미 만성이 되어 나타납니다. 

유아일 때부터 받은 상처가 결혼한 이후에 배우자와의 갈등과 자녀와의 갈등으로 나타납니다. 다윗도 상처가 있는 사람으로 시편27:10에 부모로부터 버림받은 상처를 "내 부모는 나를 버렸으나 여호와는 나를 영접하시리로다."고 고백합니다. 

다윗이 집에서는 잊어진 자였지만 하나님은 다윗을 기억하셨습니다. 하나님의 사랑과 은혜로 우리 속에 있는 쓴 뿌리를 뽑아내지 않으면 결국 우리 삶을 파괴시켜 버리고 맙니다. 여러분의 과거에 받았던 상처가 여러분의 미래에 영향을 미치지 않도록 하나님의 은혜로 매듭을 지으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부탁합니다. 

우리의 미래가 과거의 상처를 반복하며 살게 되면 더 깊은 상처를 받고 주변의 다른 사람들에게도 상처를 주는 불행한 인생이 되고 맙니다. 사람은 그래서 겉으로 판단하면 안 됩니다. 사람은 그가 마음의 상처들을 치료하시는 하나님을 경험한 체험을 가지고 있는지 사귀어 보아야 제대로 알 수 있습니다. 신앙생활의 능력은 외적인 것에 있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과의 깊은 비밀에 있습니다. 그래서 다윗은 또한 시편30:2에 "여호와 내 하나님이여 내가 주께 부르짖으매 나를 고치셨나이다."고 치료의 하나님을 고백합니다. 그리고 시편30:11에는 "주께서 나의 슬픔을 변하여 춤이 되게 하시며 나의 베옷을 벗기고 기쁨으로 띠 띠우셨나이다."라고 고백합니다. 

다윗이 과거에는 슬픔의 사람이었지만 하나님께서 그를 고치셔서 춤을 추며 기뻐하는 인생으로 변화시켜 주셨습니다. 이러한 체험이 여러분의 체험이요, 이 고백이 여러분의 고백이 되기를 바랍니다. 우리가운데도 과거에 목회자로부터 받은 상처와 동료로부터 받은 상처와 자신의 연약함이 범벅이 되어 교회 생활에 기쁨을 누리지 못하던 분들이 있습니다. 그런 분들이 우리평화교회에 와서 소리 없는 섬김과 비전을 통해 교회생활의 새로운 출발을 경험할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이를 위해서는 우리평화교회가 치유의 공동체가 되어야 합니다. 그래야만 기쁨을 가지고 교회생활을 하며 섬길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치유를 체험하기 위해서는 하나님께서 내 삶에 개입하시고 다스리시도록 삶의 주권을 드리고 내 마음의 문, 내 가정의 문, 대인관계의 문을 하나님을 향해 열어 드려야 합니다. 

⑤ 하나님의 자녀들을 고난에서 건지심으로 돌보십니다.(19절) 
본문 19절에서 말씀하시고 있는 것처럼 하나님은 우리를 모든 고난에서 건지시고 보호하십니다. 여기에서 '그 모든 뼈'는 '인생 그 존재 자체'를 의미합니다. 
이 말씀은 신약에서 예수님께 적용된 말씀입니다. 예수님의 죽음을 예언한 말씀입니다. 예수님과 함께 십자가에 달렸던 두 강도는 뼈가 꺾임을 당했지만 예수님은 뼈가 꺾이지 않고 보호를 받았습니다. 
예수님을 보호하신 하나님은 예수님을 통해 하나님의 자녀된 우리를 또한 보호하십니다. 의인에게 고난이 없는 것이 결코 아닙니다. 오히려 의인에게는 고난이 많으나 하나님께서 그 모든 고난에서 건지십니다. 고난은 우리의 이해 저 너머에 있기 때문에, 고난을 다 이해할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그러나 한 가지 분명한 것은 "하나님을 사랑하는자 곧 그 뜻대로 부름을 입은자 들에게는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느니라."는 것입니다.(롬 8:28) 
주님은 우리의 고난을 다 해석해 주시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주님은 우리에게 주님의 심정을 담은 말씀을 주셨습니다. 믿는 자들도 지금 우리가 직면해 있는 여러 가지 고난과 어려움을 통하여 고난을 맞이할 수 있습니다. 불안하고 잠을 이루지 못하고 암담함을 떨칠 수 없습니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하나님께서 우리 미래를 붙잡아 주시고, 길을 열어 주시고, 책임지신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하나님의 자녀들을 보호하십니다. 이것이 우리의 신앙고백입니다. 다윗만의 고백이 아니라 이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의 신앙고백입니다. 하나님은 "여호와의 이름을 부르는 자는 수치를 당치 아니하리로다"고 약속해 주셨습니다.(시 22:5,25:20,71:1)
똑같이 고난을 당하지만 수년이 지난 후에는 땅을 치며 후회하는 성도가 있는 반면에, 시편119:71처럼 "고난당하는 것이 내게 유익이라. 이로 인하여 내가 주의 율례를 배웠나이다."는 믿음으로 고난의 유익을 주목하고 주님을 찬송하는 삶으로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경험하고 더 크게 주님을 찬송하는 성도가 있을 것입니다. 

이제 말씀을 맺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여러분은 어느 편에 서길 원하며, 지금 어느 길에 서있습니까? 하나님은 약속에 신실하신 분이십니다. 부르짖는 자에게 가까이 하시고, 삶의 고난과 아픔을 치료해 주시고, 내 삶의 미래를 친히 이끌고 가시는 분이십니다. 그런데 기억할 것은 하나님은 특별하게 돌보시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하나님은 ① 하나님의 구원 역사를 깊이 체험하기를 원하는 사람입니다.(8절 상) ② 하나님께 피하는 사람입니다.(8절 하) ③ 하나님을 경외하는 사람입니다.(9절) ④ 하나님을 찾는 사람입니다.(10절 중) ⑤ 생명의 원천이신 하나님을 사모하는 사람입니다.(12절) ⑥ 입술로 범죄 하지 않는 사람입니다.(13절) ⑦ 하나님 앞에서는 악을 버리고 선을 행하며, 사람들 앞에서는 이웃과 더불어 화평을 도모하는 사람입니다.(14절) ⑧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려고 몸부림치는 사람입니다.(15절) ⑨ 하나님 때문에 마음이 상한 사람 곧 중심에 통회하는 사람입니다.(18절)
하나님은 바로 이러한 사람들을 ① 여호와의 사자가 둘러 진치고 건져주심으로 돌보십니다.(7절) ② 부족함이 없도록 하심으로 돌보십니다.(9-10절) ③ 하나님의 자녀들의 부르짖음에 응답하심으로 돌보십니다.(15절) ④ 하나님의 자녀들의 마음의 상처를 치료해 주심으로 돌보십니다.(18절) ⑤ 하나님의 자녀들을 고난에서 건지심으로 돌보십니다.(19절) 바로 이러한 하나님을 만나며, 우리 삶을 책임지시고 인도하시는 하나님의 은혜의 손길을 경험하는 모든 믿음의 가족들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