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에 등장하는 선한 사마리아인에 대한 비유는 크리스찬으로서 삶의 자세가 어떠해야 하는 지 분명히 교훈하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얼마전까지 내게 선한 사마리아 사람의 이미지는 좋은 사람 정도 이상은 아니었다. 

내 가까운 사람이 강도를 당하여 병원에 입원하게 되었을 때까지 나는 그의 행동이 얼마나 위대한 것이었는 지 느끼지 못했었다. '설마 내 가까운 사람이 그런일을 당할 것인가?' 라는 생각이 일상적인 나의 태도였었기 때문에 나는 다른 사람의 아픔에 그다지 신경을 쓰지 않는 사람이었다.

그러나 그날, 내 가까운 사람이 강도를 당하여 병원에 입원하게 되었다는 소식을 듣고 정신없이 달려가, 상황을 전해들으면서 나는 내내 두려움과 슬픔에 떨어야 했다. 그이 주변의 모든 사람들도 마찬가지였다. 거의 모든 사람이 가슴 두근 거림과 두려운 마음을 호소했다. 환자의 크게 다친 얼굴은 그 당시의 상황이 얼마나 끔직한 것이었는지를 설명하고 있었다. 나는 너무나도 절절히 환자의 아픔을 느낄 수 있었다.

내 가까운 사람이 아니어도 그랬을까? 물론 아니다. 그러니 선한 사마리아 사람이 얼마나 위대한가? 그는 강도 당한 사람이 자신과는 관계없는 사람이었음에도 그의 아픔을 자신의 아픔처럼 느낄 수 있었다. 아무나 그럴 수 있는 것은 아니다. 그는 분명 보통사람과는 다른 능력을 가지고 있었다. 예수님은 우리에게 다른 사람의 아픔에 진심으로 공감할 수 있는 사람들이 될 것을 요구하고 계신다. 크리스찬 리더로서 꼭 필요한 능력이 무엇인지를 가르쳐주신 것이다.

미국의 외교관들을 대상으로 한 하버드 대학의 연구에서도 소위 EQ가 높은 사람이 탁월한 성과를 만들어낸다는 사실을 증명하고 있다. 다른 사람과 더불어 사는 것의 중요성을 알고 있는 사람들, 주도적이고 활동적이지만 다른 사람의 마음도 보살필 줄 아는 사람들이 외교관으로서도 성공한다는 것이다. 탁월한 능력을 발휘하는 사람들은 지능이나 지식보다 정서적인 능력을 더 많이 활용할 수 있는 사람들이라는 것이 이 연구의 결론이다.

많은 부모들이 자신의 아이가 성공하기를 바란다. 때문에 미래의 우리아이에게 필요할 것으로 예상되는 능력을 키워주고싶어한다. 그러나 다른 사람의 아픔에 공감할 수 있는 능력이 얼마나 중요한 일인지는 실감하지 못하는 것 같다. 우리 아이는 자신의 일이 아닌 일에 눈길도 주지 않기를 바란다. 

한 번 상상해보자. 내가 나의 아이와 함께 강도당한 사람 곁을 지나가고 있다. 주위에는 아무도 없다. 강도당한 사람은 피투성이로 쓰러져 있다. 나는 어찌하겠는가? 우리아이는 어떤 반응을 보일까?

앞으로는 점점 더 똑똑하고 잘난 세상이 될 것이다. 지식은 이제 컴퓨터가 모두 대신해줄 수도 있다. 마이크로소프트의 빌게이츠 회장은 미래의 TV에 대해 "우리가 집에 도착하면 컴퓨터는 음성이나 얼굴로 우리가 누구인지 알며 우리가 좋아하는 프로그램과 어린이들이 보아서는 안 될 프로그램을 알 수 있다."고 예견한다.

똑똑하고 잘난 세상을 이끌어갈 지도자에게 필요한 능력은 무엇일까? 그 답은 이미 2000년 전 예수님의 말씀 중에 있다. 다른 사람의 아픔에 진정으로 공감할 수 있는 사람들이 위대해 보이는 요즈음이다.

국제제자훈련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