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영히 감사하리이다 
해운대교회 김광일 목사
 
시편 30:1-12

   아프리카에 살고있는 《맛지족》들은 '감사합니다' 라는 말을, '내 머리가 흙 속에 있습니다.' 라고 합니다. 그 이유는 그들은 다른 사람의 은혜에 대한 최고의 예의를 표할 때, 자기 머리를 땅에 닿기까지 숙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니까 자기 머리가 흙 속에 들어갈 만큼 감사하다는 것입니다. 반면에, 감사를 전혀 모르는 사람을 가리켜 '주둥이를 닦는 사람' 이라고 합니다. 우리말로 하면 '입을 싹 씻는다' 는 뜻입니다. 은혜를 받았으면서도 감사할 줄 모르고, 시치미를 뗀다든지 혹은 모르는 척 하는 것을 빗대어 하는 말입니다. 사람들은 흔히 감사할 만한 특별한 이유가 있어야 감사의 마음을 표현합니다. 
  현대의학이 발달되어 머잖아 암 정복의 시대가 온다고 합니다. 그런데 감기를 가져오는 바이러스만큼은 현대의학의 과제로 남아 있다고 합니다. 왜냐하면 감기를 일으키는 바이러스만해도 200여종이 넘기 때문입니다. 최근에 발견되는 바이러스는 정체도 알 수 없습니다. 에이즈도 바이러스입니다. 그리고 에볼라 바이러스는 더 무섭습니다. 바이러스가 얼마나 무섭고 지독한지 컴퓨터에 들어오는 방해꾼도 컴퓨터 바이러스라 부릅니다. 그런데 세상에 제일 무서운 바이러스가 무엇인지 아십니까? 바로 불평 바이러스입니다. 왜냐하면 마귀가 옮기기 때문입니다. 이 불평 바이러스가 들어오기 시작하면 사람뿐만이 아니라 단체나 기업이 망하게 됩니다. 지금 우리의 삶에 불평 바이러스가 침범하지 아니했습니까? 이 불평 바이러스에 감염되면 망합니다. 그런데 이 불평 바이러스를 치료하는 백신이 있습니다. 바로 감사입니다. 적극적으로 감사하는 생활만이 불평 바이러스를 퇴치할 수 있는 비결입니다. 오늘 본문 시편 30편은 다윗의 시로써 하나님의 은혜에 감사하는 시입니다. 다윗은 끝도 없이 영영히 감사하며 살기로 작정하였습니다. 다윗이 영영히 감사하는 이유는 무엇입니까? 

  첫째로 파멸에서 생명을 구해 주시니 감사합니다. 
  우리가 항상 잊지 말아야 할 은혜 중의 은혜요 최고의 은혜는 하나님께서 우리를 영원한 사망과 죄악에서 건져 주신 은혜입니다. 다윗은 그 누구보다도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에서 건져 주신 하나님의 은혜를 많이 체험한 사람입니다. 인생의 황혼에 이르고 보니 수많은 죽음의 고비 고비에서 하나님이 건져 주신 것을 너무나 실감나게 경험한 것입니다. 우리도 항상 기억하고 감사해야 할 일은 뭐니 뭐니해도 영원히 죽을 수밖에 없는 죽음의 자리에서 구원을 받은 그 은혜를 평생 잊지 말아야 합니다. 
  이 세상 기독교인들이 가장 많이 부르는 찬송이 405장 "나 같은 죄인 살리신 주 은혜 놀라와" 즉 Amazing grace입니다. "나 같은 죄인 살리신 주 은혜 놀라와 잃었던 생명 찾았고 광명을 찾았다" 우리를 영원한 죽음에서 구원해 주신 그 은혜를 잊지 맙시다. 아무리 어려워도 이 은혜만 생각하면 저절로 감사하게 되는 것입니다. 어떤 경우에라도 생명 지켜주신 하나님께 감사하는 삶이 되어야 합니다. 왜 사람들이 하나님의 고귀한 은혜를 잊어버립니까? 하나님께로부터 온 줄 모르기 때문입니다. 우리의 모든 것이 하나님으로부터 받았음에도 불구하고 자기 것인 줄 착각하고 있기 때문에 하나님께 감사가 없습니다. 빼앗기고 잃어버려 봐야 감사합니다. 내게 생명 주시고, 건강 주시고, 좋은 환경 주신 하나님께 감사할 줄 모르고 살다가 그 생명에 손상을 입고 그 좋은 환경 빼앗겨 보아야 하나님의 은혜를 깨닫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나의 생명의 주시라는 사실을 인정하며 그 은혜에 감사하며 살아갈 때 인간은 행복을 누릴 수 있지만 하나님을 잊어버리고 인간이 주인이 될 때 삶은 더 혼란해 지는 것입니다. 오늘 다윗처럼 자신의 생명을 파멸에서 구속해 주신 하나님을 찬송하며 감사하며 사시기를 바랍니다. 

  둘째로 거룩하신 이름으로 살게 하시니 감사합니다 
  조지 에버렛 로스 선교사는 31년간 선교활동을 하고서 믿음에는 두 가지가 있다는 것을 발견했다고 합니다. 하나는 ".... 이라면" 이라고 말하는 신앙이고 다른 하나는 "...이라고 할지라도" 라고 말하는 믿음이라는 것입니다. "...이라면" 이라고 말하는 사람들은 모든 일이 잘 풀리면, 내 인생이 번성하면, 내가 성공한다면 그 때 나는 하나님을 믿고 기도하고 교회에 출석하고 헌금을 하겠다고 말합니다. 그러나 "...이라고 할지라도" 라고 하는 사람은 비록 악한 자들이 번창한다고 해도, 갈보리에서 나의 잔을 마신다고 할지라도, 십자가를 지고 죽어야 한다고 할지라도 나는 그 순간에도 나를 창조하신 하나님을 신뢰할 수 있다고 고백합니다. 그가 나를 죽이시더라도 나는 주님을 믿겠다는 것입니다. 즉 죽어도 믿고, 죽여도 믿고, 죽어가도 믿고, 죽어서도 믿겠다는 믿음입니다. 하나님의 이름을 앞세우며 사는 승리의 믿음을 간직하는 성도들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1991년, 세계적인 패션잡지 <엘르>의 편집장이 된 장 도미니크 보비는 유명한 저널리스트이며, 두 아이의 자상한 아버지 그리고 누구보다 자유를 좋아하는 멋진 남자였습니다. 그러나 1995년 그는 뇌졸중으로 쓰러졌고 예기치 못했던 병마는 그의 모든 걸 바꿔 놓았습니다. 뇌와 신체를 잇는 신경망이 끊어져 말할 수도, 먹을 수도, 혼자 힘으로 숨을 쉴 수도 없게 된 것입니다. 오로지 움직일 수 있는 건 왼쪽 눈꺼풀이 전부였습니다. 캄캄한 병실에 혼자 누워 벽에 걸린 가족사진을 볼 때 아무리 의지 강한 보비도 어쩔 수 없이 눈물짓곤 했습니다. 그러던 중 친구들이 눈을 깜빡여 책을 써보는 게 어떻겠냐고 제안했고 그는 드디어 자신의 슬픈 마음과 가족들에 대한 사랑을 이야기하고 싶었습니다. ‘그래, 해 보자!' 프랑스어의 알파벳을 눈 깜빡거리는 횟수로 표시하기로 했습니다. E나 S처럼 자주 사용하는 문자는 가능하면 눈을 적게 깜빡이도록 순서를 재배열했고, 마침표는 눈을 아예 감아 버리는 것으로 약속했습니다. 하루에 원고지 반 쪽, 한 문장을 만드는 데 꼬박 하룻밤을 새는 기나긴 작업이 이어졌습니다. 그는 대필자인 클로드 망디빌에게 20만 번 이상이나 눈을 깜빡거려야 했습니다. 그가 오로지 움직일 수 있는 왼쪽 눈이 빨갛게 충혈 되어 가는 동안, 마음만은 자신의 현재 상태를 잊어버리고 훨훨 자유롭게 여행을 다닐 수 있었습니다. 사랑하는 가족에게로, 예전의 일터로, 한 번쯤 다시 가보고 싶은 곳으로... 그리하여 드디어 1년 3개월만에 <잠수복과 나비>라는 책이 탄생했습니다. 이 책은 불과 열흘만에 17만 부가 팔리는 프랑스 출판사상 유래 없는 엄청난 베스트셀러가 되었습니다. 1997년 3월 9일, 보비는 그를 가두고 있던 잠수복을 벗어 던지고 나비가 되어 하늘나라로 올라갔습니다. 그의 투병생활은 다큐멘터리로 만들어 방송됐고, 그의'희망과 사랑을 지켜본 사람들은 아름답다'는 말을 했습니다. 누가 보아도 게임이 되지 않는 상황인데도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서는 믿음! 그것이야 말로 하나님의 이름을 앞세우며 사는 승리의 신앙입니다. 
  4절에 "주의 성도들아 여호와를 찬송하며 그 거룩한 이름에 감사할지어다"라고 했습니다. 하나님의 이름은 여호와입니다. "여호와"는 전에도 계시고 지금도 계시고 장래도 계신 하나님, 전지전능하신 하나님을 의미합니다. 여호와 하나님은 현재 우리를 완전하게 지켜 주시는 하나님을 의미합니다. 즉 하나님께서 현재 우리의 삶을 완전하게 지켜주심을 감사해야 합니다. 우리를 완전하게 지켜주시는 분은 오직 하나님 한 분 뿐입니다. 그 하나님께 감사와 찬송과 영광을 드려야 합니다. 다윗은 그 누구보다도 고생도 해보고 영광도 누려본 인물입니다. 그런 다윗이 자신의 삶을 체험을 통해서 얻은 결론이 하나님께 감사하라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감사는 바로 하나님 백성의 표식이기 때문입니다. 

  셋째로 평생을 은총으로 인도하시니 감사합니다 
  비록 현실이 우리로 하여금 눈물을 자아내게 할 만큼 비참하다 할지라도 우리는 그 눈물을 속상해 우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 간구 하는 신앙의 눈물로 변할 때 하나님은 반드시 눈물을 씻겨 주시고 그 눈물이 변하여 기쁨이 되게 하실 줄 믿습니다.
   “나는 믿노라, 나는 믿노라 나는 지상의 영원한 평화의 시대가 올 것을 믿노라. 마치 구름이 태양을 가린다해도 태양 빛이 있다는 것을 믿듯이 그 시대가 비록 늦어지더라도 그 시대가 올 것을 나는 믿노라” 나치 독일의 아이슈비츠 강제수용소 독가스 실에서 죽어가면서도 유대인들이 부른 노래입니다. 어릴 때부터 유대인들은 자녀들에게 하나님께 대한 감사를 가르쳐 왔습니다. 배운 것이 감사니까 죽어가면서도 감사가 나올 수밖에 없습니다. 유대인의 역사는 박해의 역사지만 자취는 감사의 자취 밖에 없습니다. 
  우리에게는 내일이 있습니다. 특히 우리 교회를 향한 하나님의 비전이 있습니다. 어떤 경우에라도 감사를 잃지 않는 성도들 되시기 바랍니다. 울음이 기숙하는 저녁때를 살아간다 할지라도 아침의 사람이 되시기 바랍니다. 기쁨이 다가오는 아침을 바라보고 하나님께 감사할 줄 아는 아침의 사람이 되시기 바랍니다. 아침이 되면 어두움은 물러가고 어김없이 태양은 떠오릅니다. 만물의 모습이 분명히 밝혀 보여 집니다. 그때야 모습을 찾게 되는 것입니다. 비록 캄캄한 밤중을 살아간다 할지라도 성도는 하나님께 감사할 때 감사할 일이 일어날 줄 믿습니다. 다윗은 일찍 이것을 깨달았습니다. 근심 속에서도 근심을 품지 아니하고 그 근심을 감사로 승화시킬 때 슬픔이 춤이 되고 눈물이 기쁨으로 변한 것입니다.  성도 여러분 슬플 때 감사하시기 바랍니다. 그 슬픔이 춤으로 변할 것입니다. 눈물 날 때 감사하시기 바랍니다. 그 눈물이 기쁨으로 변할 것입니다. 이럴 때 하나님께 더 감사하시기 바랍니다. 슬픔이 변하여 춤이 되고 눈물이 변하여 기쁨이 됩니다. 
  인도의 간디가 한번은 막 출발하려는 기차를 타다가 신발이 한쪽이 떨어졌습니다. 그러자 간디는 얼른 나머지 신발도 떨어뜨렸습니다. 동행하던 사람이 놀라며 그 이유를 묻자 간디는 빙긋이 웃으며 말합니다. “어떤 가난한 사람이 한쪽 신발을 줏었다고 상상해 보세요. 그것이 아무런 쓸모가 없을 것입니다. 하지만 이제 나머지 한 짝 신발마저 갖게 되지 않았습니까?” 오늘 우리도 이런 마음의 여유를 가지고 하나님을 생각하고 이웃을 생각하며 감사하는 마음을 가지시기 바랍니다. 그 감사에 반드시 하나님의 역사가 나타납니다. 
  다윗이 이런 은혜를 깨닫고 하나님께 찬송하며 감사의 고백을 하였습니다. “이는 잠잠치 아니하고 내 영광으로 주를 찬송케 하심이니 여호와 나의 하나님이여 내가 주께 영영히 감사하리이다” 그는 순간의 감사아닌 영원의 감사를 말합니다. 하나의 작은 축복에 감사함이 또 다른 큰 축복을 받는 통로가 됩니다. 분쟁이 있고 미움이 있으며 문제가 생김은 감사를 잃어버렸기 때문입니다. 감사란 삶의 상황에 따라 하는 것이 아니라, 삶 그 자체로서 감사해야 합니다. 성도는 생명을 파멸에서 구해 주신 하나님께 감사하며 살아야 합니다. 그리고 모든 일에 하나님의 이름으로 승리하며 살게 하심을 감사해야 합니다. 비록 현실이 저녁에는 울음이 기숙할지라도 아침에는 기쁨이 올 걸 내다보고 감사하며 사는 미래적인 감사가 있는 자들이 되어 남은 바 삶가운데서 영영히 감사하며 사는 복된 성도들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