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을 세우는 사람

- 임화식목사/ 순천중앙교회

빌립보서 4 : 2~20



사도 바울은 그가 쓴 13권의 서신서 가운데서 ‘주 안에서’라는 말을 50회, ‘그리스도 안에서’라는 말을 34회,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라는 말을 48회 사용하고 있습니다. 총 132회 가량 되니까 평균 1통의 편지에서 10회 가량 사용하고 있다고 볼 수 있습니다. “주 안에 서라.” 주 안에 서는 일이 바울의 이 다음에 언급되고 있는 모든 권면의 초석이 되는 말씀이기에 그렇습니다. 

주 안에 서 있는 것이 왜 그리 중요한 일인가? 우리가 주 안에 서 있질 못하게 되면, 그것이 곧 죄악이요, 악행이요, 하나님의 뜻에 불순종하는 일이 되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아시는 대로 ‘죄’라고 하는 말은 히브리어로는 ‘하타’요, 헬라어로는 ‘하마르티아’입니다. 이 두 단어는 의미상으로는 똑같은 뜻을 지닌 말입니다. 잃다, 틀리다라는 의미인데 원래는 화살이 과녁을 빗나가는 상태에서 유래된 명사입니다. 즉, 죄란 마땅히 있어야 할 곳에 있지 않는 것이 죄입니다. 그러면 이제부터 그 다음 말씀들과 연결시켜 보겠습니다. ‘주 안에 서라’는 이 말씀은 2절의 ‘주 안에서 같은 마음을 품으라.’ 즉, 그리스도의 마음을 품으라는 말과 괘를 같이 하는 말씀입니다. “누구든지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새로운 피조물이라. 이전 것은 지나갔으니 보라 새 것이 되었도다.” 고린도후서 5:17 말씀입니다. 누구든지 주 안에 서기만 하면 그리스도적인 피조물로 새롭게 거듭날 수밖에 없습니다. 그것은 마치 그리스도라고 하는 포도나무에 일단 접붙임을 당하게 되면 그리스도의 열매를 맺는 것과도 같습니다. 우리가 주 안에 설 수 있게 될 때 맺을 수 ! 있는 구체적인 열매 가운데 하나가 바로 기쁨의 열매입니다. 4절을 보시면 사도바울은 “주 안에서 항상 기뻐하라. 내가 다시 말하노니 기뻐하라”고 권면합니다. 말이야 쉽습니다. 

그러나 사람이 도대체 어떻게 항상 기뻐할 수 있겠습니까? 세상 살다보면 별별 사람을 다 만나게 됩니다. 때로는 정말 천적과도 같고 앙숙과도 같은 사람과의 숙명적인 만남도 있습니다. 나하고 무슨 원수 진 일이 있다고 사사건건 나를 헐뜯고 괴롭히는 사람, 참는 것도 한두 번이지 어떻게 모든 사람에게 관용을 베풀 수가 있습니까? 그러나 인간의 생각으로는 도저히 불가능해 보이는 일이 가능케 되는 것이 신앙생활의 묘미입니다. 



마태복음 19:26을 보면 주님께서 말씀하십니다. “사람으로는 할 수 없으되 하나님으로서는 다 할 수 있느니라.” 내 힘으로 내 능력으로 되어지는 일은 많지 않습니다. 

결국 내가 하나님 안에 설 수 있을 때 하나님께서 해결사가 되어 주시는 것입니다. 아마 학창시절에 이런 실험 해보신적 있으실 것입니다. 책상 위에 두 개의 소리굽쇠를 올려놓고 한 쪽의 소리굽쇠를 치면 한참 있다가 마주보고 있는 다른 소리굽쇠에서도 똑같은 소리가 나는 ‘소리의 공명 현상’에 대한 실험 말입니다. 나에게서 어떤 진동의 음파가 발산되고 있는가 생각해 보신 적 있으십니까? 어떤 소리가 울립니까? 우울하고, 부정적이고, 슬프고, 염세적이고, 증오가 담겨 있는 어두운 음률을 발하고 있으면 나는 분명히 주 안에 서 있지 않은 상태라고 단정해도 좋습니다.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그리스도라고 하는 절대 음감’입니다. 어떠한 상황 속에서도 그리스도의 소리만 내는 것입니다. 그러기 위해서 우리는 주 안에 서 있기만 하면 됩니다. 우리가 그리스도 안에 있기만 하면 우리에게서는 그리스도의 톤, 그리스도의 시그널, 그리스도의 칼라, 그리스도의 향기가 배어져 나올 수밖에 없습니다. 

이런 경험해 보신적 있을 겁니다. 화기애애한 분위기에 어떤 사람이 끼어들기만 하면 금새 분위기가 썰렁해져버리는 경우가 있지요? 반대로 침울하고 우울한 분위기 였는데 어떤 사람이 나타나기만 하면 금세 분위기가 살아나는 경우도 있습니다. 한 사람은 트러블 메이커이고, 한 사람은 분위기 메이커 내지는 피스 메이커입니다. 소리와 색깔과 냄새는 전염성이 있습니다. 

성도 여러분! 평소 여러분은 어떠한 소리와 어떠한 색깔과 어떠한 냄새로 분위기를 오염시키는 편입니까? 오염된 것까지 재생시키는 쪽에 서 있습니까?바울 사도는 그리스도의 절대음감을 가질 수 있는 방법을 8절에서 조목조목 예시하고 있습니다. 형제들아 무엇에든지 참되며, 경건하며, 옳으며, 사랑할만하며, 무엇에든지 칭찬할 만하며, 덕이 있어야 한다고 구체적으로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성도 여러분! 유감스럽게도 내 자신을 돌아보면 이러한 은사가 나에게는 조금도 없는 것 같아서 걱정될 때도 있으실 겁니다. 바울 사도의 말씀입니다. “염려하지 마라. 오직 모든 일에 기도와 간구로 너희 구할 것을 감사함으로 하나님께 아뢰라. 그리하면 모든 지각에 뛰어난 하나님의 평강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 마음과 생각을 지키시리라.” 여기서 우리는 기도가 무엇인지를 새롭게 이해할 수 있습니다. 그것은 나라고 하는 소리굽쇠를 하나님의 소리에 맞추는 일 다시 말씀드리면 나의 생각을 하나님의 뜻에 조율하는 일인 것입니다. 말이 조율이지 방법은 너무도 간단합니다. 내 자신이 주 앞에 서는 것입니다. 아니 주 안에 굳게 서 있기만 하면 됩니? ? 지금 여러분에게서는 어떤 소리가 나옵니까? 그 소리가 여러분의 가정의 소리가 될 것입니다. 지금 여러분의 칼라는 어떤 색깔입니까? 그것이 곧 여러분의 가정과 직장의 색깔을 대변하게 될 것입니다. 

여러분이 만일 주 앞에 서 있게 되면 우선 말씨부터 달라질 것입니다. 우리는 오늘의 본문 말씀 가운데서 참으로 신앙적으로 위대한 표본적 인물을 보게 됩니다. 신앙생활에 있어서 달인의 경지에 들어가 있는 바울이라고 하는 모델입니다. 바울이 지금 빌립보서를 기록하고 있는 장소가 어디입니까? 로마의 감옥입니다. 그럼에도 그는 주 안에서 크게 기뻐하고 있다고 10절에서 말씀하고 있습니다. 바울사도에게 있어서는 자신의 형편과 처지가 문제 되지 않습니다. 궁핍함 가운데서도 풍부할 수 있으며, 배고픔 속에서도 배부를 수 있으며, 비천함 속에서도 자족할 수 있는 비결은 어디에서 나오는 것입니까? 그것은 자신을 능력 주시는 자 안에 두게 될 때 가능하다고 고백하고 있습니다. 



주님께서도 마가복음 9:23에서 말씀하셨습니다. “할 수 있거든 이 무슨 말이냐 믿는 자에게는 능치 못할 일이 없느니라.”



진실로 우리가 주님 안에 서 있게 될 때 평소 불가능해 보일 것만 같은 일들이 가능한 현실로 다가오는 실례를 하나 소개해 드리겠습니다. 지난 주 성경 공부를 마치고 성도님들과 식사를 하는 중에 저는 어느 집사님으로부터 참으로 귀한 간증을 들은 바가 있습니다. 남편이 7년 전에 소천 하셨는데, 남편이 예수 믿고 교회봉사하시다가 혈압으로 쓰러지셔서 하늘나라 가기까지의 감동적인 사연이었습니다. 한번은 교구담당 목사님이 심방을 오셨는데, 이런저런 이야기 끝에 가족들은 다 신앙생활 잘하고 있느냐고 묻더랍니다. 그래서 남편만 빼고는 그렇다고 솔직하게 말씀드렸답니다. 

그랬더니 그 목사님 말씀이 남편의 구원을 위해서 발목을 붙들고 기도해 본적이 있느냐고 물으시면서 없으면 한번 실천에 옮겨 보라고 하시더랍니다. 그래서 그날부터 발목잡고 기도는 하기는 해야 되겠는데, 맨 정신으로는 어디 그 일이 쉬웠겠습니까? 그래서 남편이 잠들기를 기다렸다가 코고는 소리가 나면 그때부터 발목을 붙들고 기도하기 시작했더랍니다. 그렇게 며칠을 계속하다보니까 어느 날부터인가 남편이 그렇게 불쌍한 생각이 들어서 기도할 때마다 뜨거운 눈물이 나기 시작했답니다. 하루는 기도 중에 눈물이 남편의 발목에 떨어지는 순간 남편이 벌떡 일어나면서 놀라 “뭐하는 짓이냐”고 묻더라나요? “뭣하긴 뭐했겠어요. 당신의 영혼을 구원해 달라고 기도했지요.” 모르긴 몰라도 아마 때로는 기도하는 걸 남편이 깨어서 듣기도 했었던 모양이지요? 그래서 뜸이 좀 들었다 싶은 느낌이 들어서 “이제 교회에 나갑시다” 다그쳤더니 “조금만 더 있다가 나가겠다”고 그러시길래 “결국 조금만이 평생이 됩니다. 나갑시다.” 밀어붙여서 결국 교회에 처음 나오셨고, 그 해에 세례 받고, 교사대학 마치시고, 교회학교에서 차량부에서 5년 봉사하! 시고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으셨다는 것입니다. 

성도 여러분! 사도 바울의 신앙고백이 오늘 우리들의 신앙고백이 되실 수 있기를 바랍니다. “내게 능력 주시는 자 안에서 내가 모든 것을 할 수 있느니라.” 이런 확신을 갖고 가정을 바로 세우고 세상을 바로 세워가는 성도가 되며 오늘도 이 약속의 말씀에 힘입어 승리하는 삶을 사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