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을 미소 짓게 만드는 것”(습 3:17) 

“그가 너로 인하여 기쁨을 이기지 못하여 너를 잠잠히 사랑하시며 너로 인하여 즐거이 부르며 기뻐하시리라”(습 3:17)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것이 우리의 첫 번째 목표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으로 하여금 기쁨을 이기지 못하게 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나를 보실 때에 자연스럽게 기쁨이 흘러넘치게 해야 합니다. 하나님으로 하여금 미소 짓게 만들어야 합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입가에 미소를 넘치게 할 방법을 찾아야 합니다. 그래서 바울은 엡 5:10에서“주께 기쁘시게 할 것이 무엇인가 시험하여 보라 ”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우리가 어떻게 하나님을 미소 짓게 만들 수 있습니까? 감사한 것은 우리에게는 완전한 신앙의 길잡이가 있는데, 바로 성경입니다. 성경은 믿음의 사람들을 보여줌으로 우리에게 신앙의 표본을 보여주는데, 하나님께 기쁨이 되었던 사람들 중에 한명을 꼽으라면 ‘노아’를 꼽을 수 있습니다. 

▶ 노아의 때에 온 세상은 도덕적으로 파탄 상태였습니다. 모든 사람들이 하나님의 기쁨이 아닌 자시의 기쁨을 추구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세상을 보면서 슬퍼하셨고, 그 슬픔은 실망으로 나타나서 인류를 창조한 것을 한탄(恨歎) 곧 후회(後悔)하시기까지 하셨습니다.(창 66) 하나님의 큰 실망은 모두 멸망시키실 생각까지 이어졌습니다. 그러나 그때에 주님께 기쁨이 되었던 한 사람을 하나님을 발견하셨습니다. 바로 노아였습니다.(창 6:8) 노아는 하나님께 기쁨이었고, 하나님은 그를 통해서 사람에 대한 희망을 발견하셨습니다. 그래서 노아의 가족들로 다시 시작하려는 마음까지 들게 하셨습니다. 많은 사람이 실망을 줄때에 노아는 하나님께 기쁨을 주었습니다.

그렇다면 노아의 어떤 삶이 하나님을 기쁘게 하였습니까? 하나님은 노아의 어떤 모습에 미소 지었습니까? 오늘 성경을 통하여 노아의 기쁨의 5가지 요소를 찾아보면서 은혜를 나누고자 합니다. 

1. 노아는 하나님께 눈을 맞추는 자였습니다. 
수많은 사람들이 하나님을 외면하는 삶을 살고 있었습니다. 일에만 바빠서, 사람들과 어울리기에만 바빠서 그들의 창조자이신 하나님을 잊고 살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노아만큼은 하나님을 기억할 수 있었고, 하나님과 눈을 맞추고 있었습니다. 창 6:9의 “의인이요, 당세에 완전한 자라 그가 하나님과 동행하였으며...”라는 말씀처럼 노아는 자신의 창조의 목적을 가장 ‘완전히’ 알고 있는 사람이었습니다. 그는 하나님과 동행했습니다. 동행(同行)이란 무엇입니까? 서로가 상대방을 느끼고 함께 걷는 것입니다. 당시 사람은 하나님으로 한탄케 만들었습니다. 하나님의 사람을 향한 지극한 관심은 당연하지만, 사람이 하나님께 향한 관심은 그 당시에 찾아보기 힘들었습니다. 

그렇지만, 노아는 하나님께 마음이 닿아 있었습니다. 그는 하나님을 인식했고, 그에게 자신의 마음을 드렸습니다. 하나님은 이 모습에 주체할 수 없는 기쁨을 느끼셨습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은 우리를 사랑의 대상으로 여기시기 때문입니다. 눈을 맞추는 것에서 사랑은 시작됩니다. 하나님께서 무엇을 원하십니까? 호 6:6에서 “나는 인애를 원하고 제사를 원치 아니하며 번제보다 하나님을 아는 것을 원하노라”고 말씀하고 있는 것처럼 인애 곧 사랑을 원하십니다. 하나님을 뜨겁게 사랑하는 것이 하나님을 미소 짓게 만듭니다. 

2. 노아는 하나님을 신뢰함으로 하나님께 미소를 드렸습니다. 
노아에게 있어서 하나님은 절대적인 분이었습니다. 하나님의 명령을 그는 의심하지 않았고, 그 명령을 마음에 담았습니다. 하나님은 신뢰 받기를 원하십니다. 자녀의 불신만큼 부모를 슬프게 하는 것이 어디 있습니까? 하나님은 전능한 하나님의 말씀이 피조물인 인간에게 거절되는 것을 슬퍼하십니다. 노아는 하나님의 말씀을 의심 없이 받아들였습니다. 그것이 하나님께 기쁨이었습니다. 히 11:7에서 “믿음으로 노아는 아직 보지 못하는 일에 경고하심을 받아 경외함으로 방주를 예비하여 그 집을 구원하였으니 이로 말미암아 세상을 정죄하고 믿음을 좇는 의의 후사가 되었느니라.”고 말씀하고 있는 것처럼 노아는 믿음으로 아직 보지 못하는 일에 대한 하나님의 경고를 들었습니다. 그는 하나님께 순종해서 그의 가족을 구원할 방주를 지었습니다. 노아에게 주신 명령은 그의 인간적인 지식으로 이해할 수 없는 것이었습니다. 하지만 노아는 하나님의 말씀대로 순종했습니다. ① 노아는 비를 한 번도 본적이 없었습니다. “여호와 하나님이 땅에 비를 내리지 아니하셨고 경작할 사람도 없었으므로 들에는 초목이 아직 없었고 밭에는 채소가 나지 아니하였으며 안개만 땅에서 올라와 온 지면을 적셨더라.”(창 2:5-6) ② 노아는 배에 대한 아무런 지식이 없었습니다. 그는 바다와는 수 백 KM2로 떨어진 육지 사람입니다. ③ 노아는 모든 동물을 모을 힘도 돌볼 힘도 없었습니다.
그런데 중요한건 이런 수많은 의심의 이유가 있었지만 하나님을 신뢰하여 말씀을 받아들였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일을 행하시고 이루시는 분이십니다.(렘 33:2) 우리는 이런 하나님을 믿어야 합니다. 믿음이 없이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 수 없습니다.(히 11:6) 

3. 노아는 마음을 다해 순종함을 통해서 주님을 기쁘시게 했습니다. 
하나님은 그냥 방주를 지으라고 말씀한 것이 아니라 방주에 실을 동물의 수뿐 아니라, 방주의 크기와 모양 그리고 재료까지 세세하게 말씀하셨습니다. 그것에 대해서 노아는 순종했습니다. “노아가 그와 같이 하되 하나님이 자기에게 명하신 대로 다 준행하였더라.”(창 6:22, 히 11:7) 노아는 모든 것에 순종했고 (하나의 지시사항도 간과하지 않았고), 정확하게 순종했습니다. (하나님이 원하시는 방법과 시간에 맞춰) 무려 120년에 걸쳐서 말입니다. 이로 인해서 하나님께서 기뻐하셨습니다. 하나님을 미소짓게 만들었습니다. 진심어린 순종은 하나님이 명하신 것에 조건을 달지 않고 지체 없이 하는 것입니다. “기도해 보겠습니다.”라는 말도 요즘은 불순종의 아주 중요한 이유입니다. 나중에 하겠다는 말이 사실은 하지 않겠다는 말인 것을 모르는 부모는 없습니다. 이해는 나중이라도 순종은 지금이어야 합니다. 하나님은 결코 나에게 손해가 될 말씀을 주시는 분이 아니십니다. 하나님은 나를 사랑하기에 만드신 분입니다. 그분께 즉시 순종해야 합니다. 시 119:33에서 “여호와여 주의 율례의 도를 내게 가르치소서 내가 끝까지 지키리이다.”라고 말씀하고 있는 것처럼 “주님! 제게 무엇을 해야 할지 말씀해 주십시오. 그대로 하겠습니다. 제가 사는 동안 진심으로 당신께 순종하겠습니다.”라고 고백해야 합니다. 

4. 노아는 마음에 우러나오는 예배를 드렸습니다. 
노아는 시켜서 순종할 뿐 아니라, 능동적으로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사람이었습니다. 노아는 홍수에서 살아남은 이후에 가장 먼저 한 행동이 산제물로 하나님께 감사를 드린 것이었습니다. “노아가 여호와를 위하여 단을 쌓고 모든 정결한 짐승 중에서와 모든 정결한 새 중에서 취하여 번제로 단에 드렸더니 ”(창8:20) 노아의 삶에는 하나님에 대한 감사의 마음이 살아있었습니다. 
오늘 우리의 삶에도 하나님께 드리고자 하는 능동적인 마음이 있다고 하면 하나님은 기뻐하십니다. 예수님의 희생으로 우리는 더 이상 동물의 제사를 드리지 않아도 됩니다. 그대신 하나님께 ‘찬미의 제사’(히11:35) 와 ‘감사의 제사 ’(시116:7)를 드려야 합니다. 마음으로 우러난 바로 그러한 제사를 드려야 합니다. 시 68:3에서“의인은 기뻐하여 하나님 앞에서 뛰놀며 기뻐하고 즐거워할지어다. ”라고 말씀하고 있는 것처럼 다윗의 기쁨은 하나님께 더 큰 기쁨이 되었습니다. 

5. 노아는 평범한 삶을 통해서 기쁨을 드렸습니다. 
홍수 이후에 하나님은 그에게 다시금 예전의 평범한 삶을 명하셨습니다. “생육하고 번성하여 땅에 충만하라... 무릇 산 동물은 너희의 식물이 될지라 채소같이 내가 이것을 너희에게 주노라 ”(창 9:1-3) 노아는 아이를 낳고, 채소를 기르며, 짐승을 사냥합니다. 그는 일상의 평범한 삶을 살았습니다. 그러나 그 삶은 하나님께서 하나님의 기쁨을 위하여 그에게 허락한 일상입니다. 노아가 그렇게 하나님의 말씀대로 일상의 삶을 살아갈 때에 하나님은 기뻐하셨습니다. “여호와께서 사람의 걸음을 정하시고 그 길을 기뻐하시나니”(시 37:23) 
그렇습니다. 죄를 제외하고서, 사람이 하는 모든 활동이 찬양의 자세를 가지고 행해질 때 하나님께 기쁨을 드릴 수 있습니다. 자식의 열심히 사는 모습을 기뻐하는 부모처럼, 여러분에게 주신 재능과 능력을 발휘하는 우리의 모습에 하나님은 기뻐하십니다. 시33:15에서 “저는 일반의 마음을 지으시며 저희 모든 행사를 감찰하시는 자로다 ”라고 말씀하고 있는 것처럼 하나님은 각 사람을 다르게 만드셨고 우리가 지금 하는 모든 일을 보고 계십니다. 
그렇습니다. 하나님은 내가 기쁨 마음으로 하는 아주 작은 행동에도 기뻐하십니다. 내 깔깔거리는 웃음에도 하나님은 미소 지으시고, 나의 잠들어 있는 모습에서도 행복을 느끼십니다. 하나님에게 있어서 우리는 그만큼 사랑의 대상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 중요한 것은 하나님을 느끼며 생활하는 내 마음의 태도입니다. 

그런데 여러분은 하나님께 기쁨 드리는 것이 삶의 목표입니까? 
바울이 고후 5:9에서“그런즉 우리는 거하든지 떠나든지 주를 기쁘시게 하는 자 되기를 힘쓰노라 ”고 말씀하고 있는 것처럼 하나님을 기쁘시게 해야 합니다. 하나님은 지금 우리를 바라보십니다. 하나님은 지금 나를 내려다보고 계십니다.(시 142:2) 하나님은 내가 21세기의 노아가 되기를 원하십니다. 

▶ 결론적으로 하나님을 미소 짓게 만드는 것은 할 수 있는 다섯 가지 예배의 모습입니다. ① 하나님은 우리가 그를 가장 사랑할 때 미소 짓게 만듭니다. ② 하나님은 우리가 여러분을 온전히 신뢰할 때 미소 지으십니다. ③ 하나님은 우리가 마음을 다해 순종할 때 미소 지으십니다. ④ 하나님은 우리가 계속해서 하나님을 찬양하고 감사드릴 때 미소 지으십니다. 예배는 상호작용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이 우리를 위해 해주신 것들에 기뻐하고 우리가 그 즐거움을 하나님께 표현할 때 하나님 또한 기뻐하십니다. 그리고 이는 우리에게 더 큰 기쁨을 주십니다. ⑤ 하나님은 우리가 능력을 사용할 때 미소 지으십니다. 그런데 만약 우리의 능력을 사용하지 않고 숨기거나 다른 사람처럼 되기 위해 노력할 때는 하나님께 영광이나 기쁨을 드릴 수 없습니다. 이제 바라기는 노아처럼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사람들이 되어서 이 시대의 노아와 같은 사람들이 다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 삶으로 떠나는 질문 : 
1. 여러분의 자녀가 여러분에게 기쁨을 주는 때는 어떤 모습을 보일 때입니까? 

2. 여러분이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일이 있습니까? 그 일은 어떤 일들입니까? 

3. 하나님이 나에게 가장 좋은 것이 무엇인지를 아시기 때문에, 나는 내 삶의 어떤 부분에서 하나님을 가장 신뢰해야합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