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과 우정을 키워가기”(잠 3:32)  
                        
 “대저 패역한 자는 여호와의 미워하심을 입거니와 정직한 자에게는 그의 교통하심이 있으며”(잠 3:32) 
 
우리의 노력만큼 하나님께 가까이 갈 수 있습니다. 그래서 야고보 사도는 "하나님을 가까이 하라 그리하면 너희를 가까이 하시리라 ”(약 4:8)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다른 우정과 마찬가지로 하나님과의 우정을 키워가기 위해서는 그 만큼의 열정과 시간과 에너지가 필요합니다. 하나님을 가까워지기 위해서 오늘을 투자해야 합니다. 그것이 가장 훌륭한 투자입니다. 하나님과 가까이하는 일에 최선을 다해야 합니다. 여러분이 노력한 만큼 큰 은혜를 입을 수 있습니다. 큰 사랑을 받을 수 있습니다.
▶ 그렇다면 우리가 하나님과 우정을 끼워 나가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합니까? 우리는 6가지 중에 두 가지를 먼저 생각해 보았는데, 첫째는 하나님과 끊임없이 대화를 하는 것입니다. 이를 위해서 일상의 태도를 바꾸어야 합니다. 짧은 기도를 자주 드려야 합니다. 둘째는 말씀을 묵상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을 거듭 생각해야 합니다. 그리하면 그곳에서 쏟아지는 하나님의 뜻을 알게 됩니다.

그러면 나머지 4가지는 무엇입니까?  

세 번째는 하나님 앞에서 정직해야 합니다. 
우리가 하나님과 우정을 키워 나가기 위해서는 완벽한 솔직함이 필요합니다. 우리의 잘못과 느낌에 대해서 솔직해지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완벽함을 기대하지 않으시고 정직함을 원하십니다. 하나님의 가장 가까운 친구들인 모세, 다윗, 아브라함, 욥 그리고 그 외의 사람들이 밀려오는 의심과 싸운 적이 있다는 사실은 우리에게 희망을 줍니다. 하지만 그들은 그 의심을 상투적이고 종교적인 말들로 덮어버리기보다 공개적으로 모든 것을 솔직하게 이야기했습니다. 의심을 표현하는 것은 때때로 하나님과 한 단계 더 친밀해질 수 있는 첫걸음이 됩니다. 
그렇습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완벽할 것을 조건으로 삼지는 않으십니다. 그렇지만 하나님은 우리가 자신의 삶 앞에는 솔직하길 원하십니다. 예수님은 “죄인들의 친구 ”(마11:19) 이십니다. 죄인과도 친구가 될 수 있습니다. 하지만 단서를 붙이고 싶습니다. 외식을 벗어버린 자신을 드러낸 죄인과 친구가 되어 주십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과 우정을 키워 나가려면 하나님께 솔직해야 합니다. 지금 자신의 감정에 대해서 솔직해야 합니다. 지금 내가 느끼고 있는 모든 것에 대해서 하나님께 있는 그대로 고백해야 합니다. 가식적인 웃음보다는 솔직한 눈물을 하나님은 더 좋아하십니다. 하나님은 욥의 세 친구들을 책망하시면서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너희는 나에게 또한 나에 대해서 솔직하지 않았다. 나의 친구 욥은 그렇지 않았다. 나의 친구 욥은 이제 너희를 위해 기도할 것이고 나는 그의 기도를 들을 것이다. ”(욥 42:7) 

그렇습니다. 하나님께 우리의 분노를 표출하고 우리의 감정을 드러내는 것이 치유의 첫 단계입니다. 그래서 시142:2-3에서 “내가 내 원통함을 그 앞에 토하며 내 우환을 그 앞에 진술하는도다. 내 심령이 속에서 상할 때에도 주께서 내 길을 아셨나이다.”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내 것을 쏟아놓을 수 있는 사람에게 치유는 임합니다. 시편을 보시기 바랍니다. 그 안에는 고함, 한탄, 의심, 두려움, 분노, 열정, 감사, 찬양 등 우리가 가질 수 있는 모든 감정이 표현되어 있습니다. 그러나 이러한 감정적인 고백을 주님께서는 예배로 받으셨습니다. 

넷째로 믿음으로 하나님께 순종해야 합니다.  
우리가 하나님과 우정을 키워 나가기 위해서는 하나님께 순종해야 합니다. 믿음으로 하나님께 순종하는 것을 선택해야만 합니다. 순종을 통해서 우리와 하나님과의 우정은 친밀해집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요 15:4에서“너희가 나의 명하는 대로 행하면 곧 나의 친구라 ”고 말씀하고 있고, 삼상 15:22에서 “여호와께서 번제와 다른 제사를 그 목소리 순종하는 것을 좋아하심 같이 좋아하시겠나이까 순종이 제사보다 낫고 듣는 것이 수양의 기름보다 나으니 ”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예수님은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고 순종한 사람으로서 우리의 모델이 되십니다. 예수님이 하나님께 기쁨을 드리며 산 33년의 세월이 ‘순종하며 사셨다 ’라는 두 단어로 요약된 것입니다. 마 3:17에서 “하늘로서 소리가 있어 말씀하시되 이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요 내 기뻐하는 자라 하시니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기억할 것은 우리가 하나님께 순종하는 것은 의무나 두려움, 또는 강요에 의한 것이 아니라, 대신 그분에 대한 사랑과 믿음에서 순종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친구의 친밀함으로 다가오지만, 그와 편한 우정을 나눈다고 해서 그와 나의 본질적 차이에 대해서 잊으면 안 됩니다. 왕의 배려로 왕의 친구가 되었다고 해서 그가 왕의 명령을 어겨서는 안 됩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친구이기는 하지만, 그분과 동등한 관계는 아닙니다. 우리는 순종을 통해서 하나님을 더 깊이 사귈 수 있습니다. 그분은 나보다 나를 더 잘 알고 계신 분입니다. 
그분의 명령은 내 삶에 있어서 가장 안전하고, 가장 좋은 것입니다. 그분의 뜻을 따르는 것은 그분을 사랑함의 표현이고, 신뢰함의 표현입니다. 이것은 의무감이나, 죄의식, 형벌에 대한 두려움으로서의 순종이 아닙니다. 그 반대입니다. 우리는 용서받았고, 자유로워졌기 때문에 사랑으로 순종하는 것입니다. 이러한 순종은 내 삶에 큰 기쁨을 가져옵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요 15:9-11에서“아버지께서 나를 사랑하신 것 같이 나도 너희를 사랑하였으니 나의 사랑 안에 거하라 내가 아버지의 계명을 지켜 그의 사랑 안에 거하는 것과 같이 너희도 내 계명을 지키면 내 사랑 안에 거하리라. 내가 이것을 너희에게 이름은 내 기쁨이 너희 안에 있어 너희 기쁨을 충만하게 하려 함이니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다섯째로 하나님께서 소중히 여기시는 것을 소중히 여겨야만 합니다. 
우리가 하나님과 우정을 키워 나가기 위해서는 하나님께서 소중히 여기시는 것을 소중이 여겨야만 합니다. 친구는 상대방에게 중요한 것에 대해서 함께 마음을 씁니다. 마찬가지로 우리가 하나님과 친구가 되기 위해서는 그분이 마음 쓰시는 것에 마음 쓰는 것을 배울 필요가 있습니다. 
이것의 가장 좋은 예는 바울입니다. 하나님의 관심거리는 그의 관심거리였고, 하나님의 열정이 그의 열정이었습니다. “내가 하나님의 열심히 너희를 위하여 열심 내노니 내가 너희를 정결한 처녀로 한 남편인 그리스도께 드리려고 중매함이로다.”(고후 11:2) 다윗도 마찬가지였습니다. 그는 시편 69:9에서 “주의 집을 위하는 열성이 나를 삼키고 주를 훼방하는 훼방이 내게 미쳤나이다.”라고 고백하고 있습니다.

그렇습니다. 하나님이 가장 관심을 기울이시는 것은 바로 그분의 백성을 되찾는 것이었고 잃어버린 모든 자녀들을 찾는 것이었기 때문입니다. 진정한 친구가 되어갈수록 하나님께 원하시는 것을 나도 원하고, 하나님께서 슬퍼하시는 것을 나도 슬퍼합니다.
그렇다면 하나님께서 소중히 여기시는 것은 무엇입니까? 그것은 첫째, 그분의 백성을 찾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가장 주된 관심은 잃어버린 하나님의 백성을 찾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잃어버린 모든 자녀를 찾는데 힘을 써야 합니다. 둘째, 예수님의 죽음을 이야기를 다른 사람들에게 전해야 합니다. 십자가를 전하는 것은 우리를 하나님께 친밀함으로 인도합니다.  

마지막 여섯 번째로 우리는 그 무엇보다 하나님과의 우정을 소망해야 합니다.  
우리가 하나님과 우정을 키워 나가기 위해서는 그 무엇보다도 하나님과의 우정을 소망해야 합니다. 우리가 원하는 것만큼 하나님과 가까워질 수 있습니다. 하나님과의 친밀한 관계는 우연이 아닌 우리의 선택이며 우리가 의도적으로 추구해야 합니다. 
다윗은 그 무엇보다도 하나님을 원했습니다. 그는 동경, 사모, 목마름, 갈망등과 같은 단어를 사용해서 하나님을 원하는 자신을 표현했습니다. “내가 여호와께 청하였던 한 가지 일 곧 그것을 구하리니 곧 나로 내 생전에 여호와의 집에 거하여 여호와의 아름다움을 앙망하며 그 전에서 사모하게 하실 것이다.”(시 27:4) 야곱은 하나님께서 자신의 삶에 은혜 베풀어 주실 것은 정말 간절히 원하였습니다. “당신이 내게 축복하지 아니하면 가게 하지 아니하겠나이다.”(창 32:26)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하나님과의 우정에 열정을 품으시기 바랍니다. 바울의 삶에서 그것은 최우선 순위였고, 그의 중심이었고, 삶의 목표였습니다. 그래서 바울은 빌 3:10에서 “나의 확고한 목표는 그분을 알고, 그분과 더 깊은 관계를 맺으며, 그분과 더 친밀해지고, 그분의 인격의 놀라운 부분을 더욱 많이 그리고 명확하게 이해하고 인식하는 것이다.”라고 고백하였습니다. 
 
▶ 그런데 기억할 것은 과거의 열정은 지금의 나와는 상관이 없습니다. 지금의 열정이 중요합니다. 라오디게아 교인들이 책망을 받은 이유가 무엇입니까? 그들은 과거에는 주님을 정말로 사랑하는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런데 그들은 주님에 대한 첫사랑을 잃어버렸고, 단순한 신앙생활을 하면서 의무감만이 있었습니다. 이러한 모습이 우리에게 있어서는 안 됩니다. 열정을 주시길 간청하면서 오늘의 소망을 불태워야 합니다. 하나님은 그 모습에 감격하시며, 더 뜨겁게 여러분을 안아주실 것입니다. 

물론 우리가 하나님과 우정을 소망하지만 고통을 겪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고통은 열정을 위한 연료입니다. 고통은 오히려 우리로 하여금 우리가 보통 때 갖고 있지 않은 변화에 대한 열망을 일으키는 에너지입니다. 그래서  C.S. 루이스는  “고통은 하나님의 확성기이다”라고 말했습니다.  여러분 중에 고통이 있는 분이 계십니까? 그렇다면 하나님께서 더욱 만나기를 소망하시기 바랍니다. 그러면 하나님께서 만나주십니다. 그래서 렘 29:13에서 “너희가 전심으로 나를 찾고 찾으면 나를 만나리라.” 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하나님과의 우정을 만들어가는 것보다 중요한 것은 아무것도 없습니다. 그것은 영원히 지속될 관계입니다. 그런데 바울이 딤전 6:21에서“이것을 좇는 사람들이 있어 믿음에서 벗어났느니라. 은혜가 너희와 함께 있을지어다.”라고 말씀하고 있는 것처럼 믿는 사람들 중에 일부는 그들의 삶에서 가장 중요한 것을 놓치는 사람들이 많이 있습니다. 하나님을 믿는다고 하면서 하나님을 알지 못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런데 여러분은 어떠합니까? 삶에서 가장 중요한 것을 놓쳐본 적이 있습니까? 지금부터 그것을 바로 잡을 수 있습니다. 그것은 우리의 선택입니다. 이것을 기억해야 합니다. 우리는 원하는 만큼 하나님과 가까워질 수 있다는 것을 명심해야 합니다.

(結論)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하나님과의 우정을 만들어 가는 것보다 중요한 것은 아무것도 없습니다. 사도 바울이 딤전 6:20-21에서 “디모데야 네게 부탁한 것을 지키고 거짓되이 일컫는 지식의 망령되고 허한 말과 변론을 피하라  이것을 좇는 사람들이 있어 믿음에서 벗어났느니라.”고 말씀하고 있는 것처럼 우리는 망령되고 허망한 말과 변론을 피하고 하나님과의 관계를 맺는 일에 더 주목해야 합니다. 왜냐하면 내가 하나님을 원하는 만큼 하나님과 가까이 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약 4:8) 
그런데 우리가 하나님과 우정을 키워 나가기 위해서서는 ① 끊임없이 하나님과 대화를 해야 합니다. ② 하루 종일 하나님의 말씀을 묵상해야 합니다. ③ 하나님에 앞에 정직해야 합니다. ④ 믿음으로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해야 합니다. ⑤ 하나님께서 소중히 여기시는 것을 소중히 여겨야 합니다. ⑥ 그리고 그 무엇보다도 하나님과의 우정을 소망해야 합니다. 이제 바라기는 오늘의 말씀을 가슴을 새기면서 하나님을 더 가까이 하여 하나님과 가장 친밀한 관계를 맺어 크게 쓰임을 받으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아멘)  
 
☞ 삶으로 떠나는 질문 : 
1. 여러분은 누구에게 가장 솔직합니까? 여러분의 연인입니까? 친구입니까? 하나님입니까? 없습니까? 자신입니까? 
2. 여러분은 하나님의 관심에 관심이 있었습니까? 그것은 무엇이었습니까? 
3. 여러분은 오늘 하나님과 더 가까워지기 위해서 어떤 현실적인 선택을 할 수 있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