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이 멀게 느껴질 때”(사 8:17)  
                        
 “이제 야곱 집에 대하여 낯을 가리우시는 여호와를 나는 기다리며 그를 바라보리라”(사 8:17)  
 
우리가 어떻게 느끼던 상관없이 하나님은 실제로 존재하십니다. 나의 긍정(肯定)이나 동의(同意)를 요구하지 않는 가장 정확한 진리입니다. 그러나 그런 하나님은 때때로 우리에게 원근감(遠近感)이 느껴질 때가 있습니다. 하나님은 나의 삶에서 가장 가깝게 느끼는 경우도 있지만, 몇 백만 킬로미터 떨어져 있는 것처럼 느껴질 때도 있습니다.

가까울 때에 그를 예배한다는 것은 쉽습니다. 그렇지만, 하나님이 멀게만 느껴질 때에 여러분은 어떻게 예배합니까? 이제 우리는 가장 수준 높은 예배의 모습을 살피려 합니다. 가장 깊은 경지의 예배는 고통 속에서도 하나님을 예배하고, 시련 속에서도 하나님께 감사하며, 시험을 당할 때에도 하나님을 신뢰하며, 느낌과는 상관없이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입니다. 친구 관계를 시험하는 것은 주로 이별과 침묵입니다. 멀어졌을 때에 그들의 우정은 시험을 받습니다. 이처럼 하나님과의 관계성도 마찬가지입니다. 하나님이 멀어졌을 때에 그때가 나의 믿음의 시험입니다. 그리고 중요한 것은 이러한 시험은 모든 그리스도인이 겪는 시험이라는 것입니다.
이 시기를 성 요한은 ‘영혼의 어두운 밤 ’, 헨리 나우웬은 ‘부재의 사역 ’, A.W. 토저는 ‘밤의 사역 ’, 또 어떤 사람은 ‘마음의 겨울 ’이라고도 했습니다. 심지어 성경 속에는 하나님과 가장 가까운 관계를 유지하였던 다윗에게도 “이러한 하나님의 부재를 경험했노라.”고백하고 있습니다. “여호와여 어찌하여 멀리 서시며 어찌하여 환난 때에 숨으시나이까?”(시 10:1) “내 하나님이여 내 하나님이여, 어찌 나를 버리셨나이까? 어찌 나를 멀리하여 돕지 아니하옵시며 내 신음하는 소리를 듣지 아니하시나이까? ”(시 22:1) 

그러나 중요한 하나님은 다윗을 떠나지 않으셨습니다. 하나님은 그의 신실함을 걸고 약속하셨습니다. “나는 너를 떠나거나 버리지 않을 것이다.”(신 31:8, 시 37:28, 요 14:16-18, 히 13:5) 하나님은 떠나지 않으시지만, 다윗에게는 하나님을 느끼지 못하고 있을 뿐입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떠나지 않으십니다. “너의 평생에 너를 능히 당할 자 없으리니 내가 모세와 함께 있던 것같이 너와 함께 있을 것임이라 내가 너를 떠나지 아니하며 버리지 아니하리니 ”(수 1:5) 우리는 이것을 놓치지 말아야 합니다. 하나님은 결코 “네가 나의 임재를 항상 느낄 것이다.”라는 약속을 주신 일은 없습니다. 하나님은 때로는 우리에게서 얼굴을 숨기신다는 사실을 인정해야 합니다.(욥 23:8-10) 

그런데 주목할 것은 이런 일이 나의 문제로 인한 것일 수 있습니다. 그러나 혹은 나의 어떤 문제로 인한 것이 아닐 수 있습니다. 오히려 아무 문제도 없는 온전함 가운데 있는 사람에게도 하나님은 시험과 성숙을 위해서 그런 과정을 허락하십니다. 고통스럽고 당황스럽지만, 우리의 믿음이 발전하기 위해서 꼭 필요한 과정(科程)입니다. 

욥을 생각해 보시기 바랍니다!!! 그는 하나님께서 보시기에 순전한고 정직한 정말 아름다운 사람이었습니다. 그렇지만, 하나님께서는 그에게 하나님의 모습을 감추시고, 오히려 환란을 허락하셨습니다. “그런데 내가 앞으로 가도 그가 아니 계시고 뒤로 가도 보이지 아니하며 그가 왼편에서 일하시나 내가 만날 수 없고 그가 오른편으로 돌이키시나 뵈올 수 없구나 나의 가는 길을 오직 그가 아시나니 그가 나를 단련하신 후에는 내가 정금같이 나오리라” (욥23:8-10) 욥은 그런 시험의 이유를 정확하게 알고 있었습니다. “내가 정금 같이 나오리라.”그를 만드시는 것이 하나님의 시험이라는 것입니다. 그러나 주목할 것은 그에게서 이루어진 시험은 욥의 성숙과 성장으로 결론 맺어졌습니다. 왜냐하면 그가 아까와 같은 믿음으로 시험을 이겨냈기 때문입니다. “내가 주께 대하여 귀로 듣기만 하였삽더니 이제는 눈으로 주를 뵈옵나이다.”(욥 42:5)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시험은 그리스도인의 삶에서 이것은 필수코스입니다. ‘믿음에 대한 시험(試驗)’ 우리 모두가 겪어야 하는 시험입니다. 즉 “내가 그분의 임재를 느끼지 못하거나, 내 삶에 그분의 역사하심의 가시적인 증거가 없을 때에도 나는 계속 하나님을 사랑하고 신뢰하며, 하나님께 순종하고, 예배드릴 수 있을까?”와 같은 시험인 것입니다. 

▶ 그런데 참으로 안타까운 것은 오늘날 그리스도인들이 저지르는 가장 흔한 실수는 하나님보다 경험을 추구하고 있습니다. 하나님께 초점되어지지 않고, 내가 느끼는 경험과 감정에 치우친다고 한다면 그것은 올바른 예배의 모습이 될 수 없습니다. 초신자 때에는 하나님께서 우리의 마음을 보듬어 주시기 위해서 많은 감정의 확신을 주시고, 미성숙하고 자기중심적인 기도에도 응답해 주십니다. 그분의 존재를 알려주시기 위해서 말입니다. 그렇지만, 우리의 믿음이 자라면서는 이러한 ‘의존물’로부터 우리를 떼어놓으십니다. 

하나님께 기쁨을 드리는 모습은 감정이 아닌 믿음입니다. 하나님은 우리가“그분을 느끼고 있는가?”하는 것보다도 하나님을 신뢰하는 모습을 더 중요하게 생각하십니다. 물론 하나님께서 멀리 계시다고 느끼는 시험을 감당하는 것은 그렇게 쉽지 않은 일입니다. 캄캄한 밤에 홀로 들판을 헤매는 것 같은 참담함을 어떻게 쉽게 받아들이는 것은 쉽지 않습니다. 삶에서 일어나는 일들을 이해하지 못하는데 또한 하나님은 침묵하고 계신데 어떻게 예배해야 합니까? 아무런 의사소통이 없는 위기의 때에 어떻게 계속적으로 하나님과의 관계를 유지할 수 있습니까? 눈에 눈물이 가득 고여서 어떻게 예수님만 바라볼 수 있습니까? 이것은 아주 어려운 싸움입니다. 그렇지만 우리의 신앙의 선배들은 이런 싸움을 이겨냈습니다.  

욥을 보시기 바랍니다. 그는 바닥에 엎드려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욥이 일어나 겉옷을 찢고 머리털을 밀고 땅에 엎드려 경배하며 가로되 내가 모태에서 적신(赤身)이 나왔사온즉 또한 적신이 그리로 돌아가올지라 주신 자도 여호와시요 취하신 자도 여호와시오니 여호와의 이름이 찬송을 받으실지니이다 하고”(욥 1:20~21) 

그렇다면 하나님께서 멀리 계시다고 느껴질 때에 우리가 어떻게 승리할 수 있습니까?
1. 하나님께 솔직한 감정을 말해야 합니다.  
욥은 비록 힘들었지만 변함없이 하나님을 바라보았습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욥은 답답함의 모든 감정을 다 털어놓았습니다. 욥은 의심과 분노, 두려움, 슬픔, 혼란... 등 정말 말로 형언할 수 없는 시험을 만날 때에, 하나님께 다 쏟아놓았습니다. 물론 하나님께선 침묵하셨지만, 욥은 침묵하지 않았습니다. 관계를 끊고 생각하는 것이 아니라, 욥의 일방통행(一方通行)이라도 그는 손을 놓지 않고 있습니다. 그 표현이 분노, 두려움, 슬픔, 의심일지라도 그는 결코 하나님을 놓아버리지 않았습니다. 이런 이야기가 있습니다. “교회 안에서 고민하라. 그럼 이긴다. 교회 밖에서 고민하면 진다.” 
다윗은 시 116:10에서 “내가 믿는 고로 말하리라 내가 큰 곤란을 당하였도다. ”라고 말씀하고 있는데,  이는 “나는 하나님을 믿는다. 그러나 나는 망했다.”라는 고백입니다. 이것은 모순처럼 들립니다. “나는 하나님을 신뢰히지만 완전히 파멸되었다! ”라는 말입니다. 그렇지만 이와 같은 다윗의 솔직함 속에는 그의 깊은 믿음이 드러나고 있습니다. 첫째, 그는 하나님을 신뢰했고, 둘째, 그는 하나님이 자신의 기도를 들어주실 것을 믿었으며 셋째, 그는 자신의 감정대로 하나님께 솔직하게 이야기해도 여전히 하나님은 자신을 사랑하실 것이라고 믿었습니다.  



2. 하나님이 어떤 분이신지지에 초점을 맞추어야 합니다.
상황과 감정에 상관없이 하나님의 변하지 않은 특성에 매달려야 합니다. 욥은 말씀의 사람이었습니다. 욥은 자기가 알고 있는 하나님을 기억했습니다. 그는 그에게 전해진 진리의 말씀을 가슴에 품고 있는 사람이었습니다. “내가 그의 입술의 명령을 어기지 아니하고 일정한 음식보다 그 입의 말씀을 귀히 여겼구나?”(욥 23:12) 그는 감정으로 하나님을 사귀지 않고, 성경의 진리로서 하나님과 교제했습니다. 하나님은 불변의 하나님이십니다.  감정이 아니라 말씀이 진술하는 것이 진정한 하나님이십니다. 그가 말씀의 토대 위에서 다음과 같이 고백했습니다. ① 하나님은 선하시며 사랑이 많은 하나님이시다.(욥 10:12) ② 하나님은 전능하시다.(욥 37:5) ③ 그분은 내 삶의 모든 구체적인 부분까지 아신다.(욥 31:4) ④ 하나님은 내 삶에 대한 계획을 가지고 계신다.(욥 23:14) ⑤ 하나님은 나를 구원하실 것이다.(욥 19:25) 욥은 시험 속에서도 말씀 위해서 고백합니다. “하나님이 나를 죽이실 지라도 나는 계속 그를 신뢰할 것이다.”(욥 13:15) 

3. 약속을 지키시는 믿어야 합니다. 
상황이 하나님의 특성을 바꿀 수 없습니다. 욥은 13:15에서 “그가 나를 죽이시리니 내가 소망이 없노라 그러나 그의 앞에서 내 행위를 변백하리라.”고 고백하고 있습니다. 이는 하나님이 나를 죽이실지라도 나는 계속 그를 신뢰할 것이라는 고백입니다. 왜냐하면 욥은 약속을 지키시는 하나님을 믿었기 때문입니다. 
 
4. 하나님께서 이미 우리를 위해서 하신 일들을 기억해야 합니다.
욥은 하나님께서 자신에게 하신 일을 기억했습니다. 오늘의 고통이 나의 과거의 은혜까지 바꿀 수 없습니다. 하나님께서 이미 베푸신 것 까지 오늘의 고통이 바꿔버릴 수는 없습니다. 솔직히 우리의 예배의 가장 큰 이유가 무엇입니까? 나의 예배의 가장 큰 이유는 오늘의 삶의 친밀함이 이유가 아닙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 보여주신 놀라운 사랑이 예배의 가장 큰 이유입니다. 예수님의 ‘아직 죄인 되었을 때’의 우리를 위해 보여주신 큰 사랑이 예배의 이유입니다. 그분의 고통의 흔적(痕迹)... 엄청난 희생 우리는 가끔 너무 익숙하다는 이유로 내 삶의 예배의 가장 근본적인 이유를 잊고 있습니다. 오늘의 은혜는 옵션입니다. 이런 것에 나의 원래의 마음이 흔들려서는 안 됩니다. 바울이 고후 5:21에서 “하나님이 죄를 알지도 못하신 자로 우리를 대신하여 죄를 삼으신 것은 우리로 하여금 저의 안에서 하나님의 의가 되게 하려 하심이니라”고 고백하고 있는 것처럼 예수 그리스도는 죄가 없으셨지만 우리가 하나님과 연합하여 그의 의로움을 함께 나눌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 하나님은 예수님에게 그 죄 값을 대신 치르게 하셨다는 것을 명심해야 합니다. 

(結論)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내가 어떻게 느끼든 하나님은 실제로 존재하십니다.”히 13:5에서“내가 과연 너희를 버리지 아니하고 과연 너희를 떠나지 아니하리라”고 말씀하시고 있는 것처럼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떠나지 아니하십니다. 물론 때때로 하나님께서 비록 멀리 느껴질 때도 있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우리의 느낌일 수 있고, 사실일지라도 그것은 나를 멀리하시기 위함이 아니라 욥과 같이 정금 같은 믿음의 사람으로 연단하시기 위함이며, 나중에 갑절의 복을 주신 것처럼 우리에게 이와 같은 복을 똑같이 주신다는 것을 명심하여 지금 비록 조금 힘들다고 할지라도 변함없이 하나님을 사랑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그리함으로 욥과 궁극적으로 믿음의 승리자가 될 수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아멘)

☞ 삶으로 떠나는 질문 : 
1. 여러분은 처음 믿을 때와 지금, 어느 때가 하나님과 더 친밀했던 것 같습니까? 그것은 정상적일까요? 
2. 감동이 없는 예배를 지속해야할까요? 당신은 혹시 느낌을 추구하며 예배하진 않나요? 
3. 하나님이 멀리 계신 것처럼 느껴질 때 어떻게 하면 하나님이 계시다는 사실에 초점을 맞출 수 있을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