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의 백성답게 /롬2 :17-29
 
정몽헌씨의 죽음을 놓고 해석이 분분합니다. `남북통일의 역꾼' `정치의 희생양' `통일을 명분으로 한 협잡꾼'이다 등등... 어쨌던 그의 죽음은 가장으로서나, 경영인으로서나, 이 사회의 영향력있는 리더로서 도리는 아니었습니다. 삶의 여러 좋은 여건을 죽음으로 마감했다는 것은 안타까운 일입니다. 
본문에도 좋은 여건을 가졌으면서도 도리를 못한 유대인에 대해 기록하고 있습니다. 그들은 하나님의 이름을 욕되게 했습니다.(24절) 

1. 유대인, 그들은 자랑꺼리가 많은 민족이었습니다.(17-20절) 
혈통적으로 그렇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친서라고 할 수 있는 율법을 맡았는데 유대인들은 스스로 우리는 나라 없이는 살아도 성경 없이는 못사는 민족이라고 말할 정도입니다. 또한 유일한 신이신 전능하신 여호와 하나님을 섬긴다는 것, 율법의 교훈을 받아 하나님의 의중을 알뿐만 아니라 체계적으로 잘 알고 있다는 것 등입니다. 
그러나 그들은 이처럼 좋은 여건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하나님의 이름을 세상에서 모독꺼리가 되게 했습니다. 유대인의 실패를 통해 우리 자신을 살펴 봅시다. 

2. 하나님의 백성으로서 유의할 것들. 
①긍지는 가지되 뽐내지는 맙시다. 
며칠전 어느 형제를 만났는데 최근 아주대학교 경영대학원 최고위 과정에 응시했답니다. 그런데 `내가 제일 못나 보입디다' 라고 하지 않겠습니까? 그래서 제가 그랬습니다. `아닙니다. 형제님은 최고 명문가인 하나님가(家에) 속한 사람입니다' 
몇 년전 어느 결혼 정보회사에서 `한국의 명문가'에 대한 기준을 소개한 것을 보았습니다. ·가족 재산이 50억 이상인자 ·부친의 직업이 2급 공무원이나 대기업 사장급 이상인자 ·부모와 당사자 모두 명문대 출신인자 ·당사자의 이미지가 준수할 것 ·전문직 종사자이거나 연봉 1억 이상인자. 이중 4가지 이상 충족되야 명문가라고 말입니다. 

벌써 기죽었나요? 허영에 들뜬 사람들의 헛소리이니 신경쓸 것 없습니다. 
영화 터미네이터의 주인공인 아놀드 슈워제네거가 캘리포니아 주지사에 출마했다고 합니다. 그는 오스트리아 출신으로 아메리칸 드림을 이룬 입지전적인 인물로 통합니다. 그가 고향을 떠나올 때 두가지 목표가 있었다고 합니다. 
할리우드 배우로 성공하여 거부가 되는 것, 케네디 가문의 여성과 결혼하는 것, 그는 이 꿈을 이뤘습니다. 이런거라면 우리는 이미 다 이루었습니다. 우리 하버지(하나님아버지)가 대단한 거부이시고 우린 하나님 가문의 사람을 배필로 맞았습니다. 
그러므로 우리의 신분에 대한 인식을 새롭게 해야 합니다. 긍지를 가집시다. 그러나 뽐내지는 맙시다. 자랑은 사랑의 태도가 아닙니다.(고전13:5) 자랑하다보면 우월의식을 갖게 되며 남을 깔보기 마련입니다. 그러므로 자랑꺼리 있을 때마다 주님께 감사하고 더욱 겸손하도록 합시다. 

②편가르기를 하지 않도록 하자. 
유대인은 인류를 크게 유대인과 비유대인, 할례 받은이와 할례받지 못한 이로 나눕니다. 편가르기는 적대감, 배타적, 편파적 등 많은 부작용을 낳게 됩니다. 서로의 차이를 인정하지 않게 되고 내 방식대로만 고집하게 됩니다. 세계 선교의 밀알이 되어야 할 그들이 맨날 주님주신 자랑꺼리로 편가르기만 하고 있었으니 참으로 답답한 노릇이었습니다. 
지금 우리나라도 편가르기 양상이 심각합니다. 똑 같은 쟁점을 두고 서로 죽기 살기식으로 매달립니다. 보수와 혁신, 주류와 비주류, 노사, 친노 반노,친북과 반북, 친미와 반미 등의 갈등은 대립의 정도를 넘어 경멸과 조롱 매도일변으로 치닫고 있습니다. 어느 사회나 갈등은 존재합니다. 그러나 그 모든 갈등은 공존을 전제로 하는 것이지 서로 해치는 길로 가지는 않습니다. 

③ 먼저 자신을 가르치는 자가 됩시다. 
유대인들의 믿음은 지식과 고백에만 머물러 있었습니다. 
몇 년전 영국의 유명한 앵커우먼이 교통사고로 죽었습니다. 런던 시민으로부터 사랑을 받고 요조숙녀로 추앙 받던 여자여서 많은 사람이 충격을 받고 슬퍼했습니다. 그런데 그녀가 죽은 뒤에 숨겨진 사생활이 밝혀졌습니다. `정부'가 있었다는 것입니다. 이중생활을 했던 것입니다. 교통사고가 나던 밤도 정부를 만나서 술을 마신 뒤 가다가 사고로 함께 죽었다는 것입니다. 이일 후 The Times라는 신문에서 이 사실을 보도하면서 이런 제목을 달았답니다. '그 여자는 그 여자가 아니었다' 
여러분, 지금은 무언의 가르침이 요구되는 시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