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의 은혜를 힘입어 기도하자”(삼상 30:1-10) 

본문의 말씀은 하나님의 은혜를 힘입어 용기를 얻은 다윗에 대한 말씀입니다. 본문 6절 하반 절에서 “다윗이 크게 군급하였으나 그 하나님을 힘입고 용기를 얻었더라.”고 말씀하고 있는 것처럼 우리도 이 밤에 하나님을 힘입어 용기를 얻고 기도해야 합니다. 여기의 “군급”이란 말은 “근심에 깊이 빠졌다.”라는 말입니다. 

이러한 측면에서 본문은 심신이 지친 사람들에게 위로와 소망이 주는 말씀입니다. 우리가 어떤 자세를 가져야 할지에 대해서 분명하게 교훈하시는 중요한 말씀입니다. 저는 지치고 힘들 때마다 이 말씀을 묵상합니다. 
물론 사람들이 너무 실망을 하면 기도하지 못합니다. 사람이 너무 깊은 근심에 빠지면 기도하지 못합니다. 그렇지만 이러한 자세는 올바른 자세가 아닙니다. 결코 기도하는 일을 쉬지 말아야 합니다. 기도는 쉬지 말고 해야 합니다. 어려울수록 더욱 기도해야 합니다. 더욱 더 하나님을 의지해야 합니다. 기도의 자리로 나와야 합니다. 다윗은 어려울수록 더욱 많이 엎드려 하나님께 기도했습니다. 왜냐하면 다윗은 인생의 문제를 푸는 마스터 키는 여호와 하나님이심을 알았기 때문입니다.

그렇습니다. 인생의 문제를 푸는 마스터 키는 여호와 하나님이십니다. 
아무리 난해한 수학 문제라고 할지라도 답은 있는 법입니다. 왜냐하면 그 문제를 출제한 선생님은 정답을 알고 있기 때문입니다. 
이처럼 우리 인생살이 가운데서 때때로 정말 좌우로 막히고 앞뒤를 바라볼 수 없는 그럴 때가 있습니다. 이런 때에 여러분은 어떻게 하십니까? 답이 없다고 낙망하십니까? 결코 낙망하지 말아야 합니다. 우리 인생의 걸음에 도무지 풀릴 것 같지 않은 어떤 난해한 문제라 해도 이 모든 문제를 내신 하나님께서는 그 문제를 푸실 해답을 가지고 계신 줄 믿으시기 바랍니다.  
그러므로 의지할 만한 그 어떤 것도 스스로 가지지 못한 인생을 의지하는 것은 못난 짓이지만, 살아 계신 하나님, 우리들에게 모든 것을 이미 은혜로 주신 하나님을 의지하는 것은 잘난 사람들이 하는 것입니다. 이 사람이 겸손한 사람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인생의 풀기 어려운 문제가 생겼을 때에 여러분은 어떻게 하십니까? 인간적인 방법을 가지고 그 문제를 풀려고 애를 쓰고 있지는 않습니까?

이제 우리는 다시금 명심하실 것은 인생의 문제를 풀 수 있는 해결책은 하나님에게 있음을 기억해야 합니다. 그래서 시편의 기자는 시편 46:1에서 “하나님은 우리의 피난처시오 힘이시니 환난 중에 만날 큰 도움이시라.”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을 의지하는 것이 못난 것이 아닙니다. 우리는 홀로 아무 것도 할 수 없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아무 것도 할 수 없는 자지만 아무 것도 가진 것이 없는 우리들은 부요케 하시는 것은 분은 여호와 하나님이십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전능하신 여호와 하나님만을 의지하며 살아야 합니다. 그래야 삽니다. 

본문에 나오는 다윗은 철저히 하나님을 의지한 사람입니다.
다윗은 지금 정말 극복하기 힘든 한계상황(限界狀況)에 도달해 있습니다. 다윗이 블레셋 방백들로부터 불신을 받아 전쟁에 참전하지 못하고 시글락으로 돌아와 보니 아말렉 사람들이 시글락을 침노하여 거주지는 폐허가 되었습니다. 
또 본문 3절에서 "다윗과 그의 사람들이 성에 이르러 본즉 성이 불탔고 자기들의 아내와 자녀들이 사로잡혔는지라."고 말씀하고 있는 것처럼 다윗과 그의 사람들이 성에 이르려 본즉 성이 불탔고, 사랑하는 아내와 가족들은 이미 사로잡힌 상황이었습니다. 
그리고 본문 4절에서 “다윗과 그와 함께 한 백성이 울 기력이 없도록 소리를 높여 울었더라."고 말씀하고 있는 것처럼 사람들이 너무 기막힌 현실을 당하면 너무 슬픈 나머지 울 기력저차 없게 됩니다. 

이상과 같은 상황을 볼 때에 현재 다윗이 당한 절망이 최고조에 도달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이런 한계상황(限界狀況)의 때에 어떻게 하면 됩니까? 다윗은 동고동락(同苦同樂)을 함께 한 사람을 의지하면 됩니까? 그것도 여의치 않게 되었습니다. 왜냐하면 다윗과 생사고락(生死苦樂)을 같이 했던 부하들도 절망을 이기지 못하고 오히려 다윗을 향해 비난의 목소리를 높이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뿐만 아니라 6절에서 “백성이 각기 자녀들을 위하여 마음이 슬퍼서 다윗을 돌로 치자 하니 다윗이 크게 군급하였으나...”라고 말씀하고 있는 것처럼 다윗과 동고동락(同苦同樂)을 했던 사람들이 이 모든 위기의 원인을 다윗에게 돌리려고 했고, 그래서 그에게 화를 내고, 그를 돌로 치고자 했습니다. 그들은 이 모든 책임이 다윗에게 있다고 비난하고, 그 책임을 다윗이 져야 한다고 부르짖고 있습니다. 다윗을 돌로 치자는 것입니다. 

그런데 여러분은 이 장면을 통하여 무엇을 생각합니까?
어쩌면 이들의 모습은 바로 우리들의 모습이기도 합니다. 어떤 못난 사람들은 큰 어려움을 당하면 자신들의 잘못은 조금도 생각하지 아니하고, 지도자만 욕하고 죽이려는 복 받지 못할 자들의 태도를 보여주는 것입니다. 예나 지금이나 지도자를 원망하는 일들은 많이 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애굽에서 나와 가나안으로 가는 중에 모세와 아론을 많이 원망하고 죽이려고까지 했습니다. 

그러나 기억할 것이 있습니다. 인생은 결코 의지의 대상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시편 146:3-5에서 “방백들을 의지하지 말며 도울 힘이 없는 인생도 의지하지 말지니 그 호흡이 끊어지면 흙으로 돌아가서 당일에 그 도모가 소멸하리로다.  야곱의 하나님으로 자기 도움을 삼으며 여호와 자기 하나님에게 그 소망을 두는 자는 복이 있도다”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사람은 다 거짓말쟁이입니다. 사람을 의지하는 무너지는 담을 의지하는 것 같습니다. 사람은 상한 갈대와 같고, 위골된 이와 같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결코 사람을 의지하지 말아야 합니다. 

뿐만 아니라 우리가 여기에서 배울 수 있는 교훈은 우리는 사랑하는 사람들에게 배신을 얼마든지 당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성경은 그가 심히 군급했다고 했습니다. 가뜩이나 어려운 때에 자기와 생명을 같이하던 믿었던 자기 사람들까지도 등을 돌리고 원망하면서 죽이려고 돌을 듭니다. 그런데 만약 여러분에게 이런 군급한 상황에 어떻게 해야 합니까? 

본문에 보니 다윗은 과연 믿음의 사람임을 알 수 있습니다. 
다윗은 절망 속에서 하나님을 힘입었습니다.  세상을 사는 동안 한 번도 낙심하지 않거나 절망하지 않고 산 사람은 한 사람도 없을 것입니다. 사람들이 세상을 살다 보면 극복하기 어려운 한계상황, 극한 상황에 도달할 때가 있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때 자신의 삶을 포기하려는 모습을 보여서는 안 됩니다. 다윗의 모습은 절망 속에 빠져 헤어 나오지 못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이럴 때 하나님을 힘입어 사태를 해결하려고 했습니다. 
본문 6절 하반 절에서 "다윗이 크게 군급하였으나 그 하나님 여호와를 힘입고 용기를 얻었더라"고 말씀하고 있는 것처럼 여호와 하나님을 힘입고 용기를 얻었습니다. 그렇습니다. 우리가 인생을 살아가면서 너무나 어려운 그런 한계상황을 만날 때에라도 사람이나 그 어떤 것을 의지하지 마시고, 우리 하나님 여호와를 힘을 입으시고 용기를 얻으시기 바랍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아무리 군급한 상황 곧 근심에 깊은 빠져있을 지라도 하나님을 힘입는 자는 하나님께서는 주시는 은혜를 통하여 용기를 얻을 수 있습니다. 믿음이 회복될 수 있습니다. 그러기에 다윗은 하나님을 힘입어 믿음을 회복했습니다. 뒤에 보면 그는 이 일에 대하여 하나님께 먼저 묻고 하나님 말씀에 따라 아말렉 군대를 치러가는 용기를 보여 주고 있습니다. 그래서 본문 7절에서 “다윗이 아히멜렉의 아들 제사장 아비아달에게 이르되 청컨대 에봇을 내게로 가져오라 아비아달이 에봇을 다윗에게로 가져 오매 (삼상30:8) 다윗이 여호와께 묻자와 가로되 내가 이 군대를 쫓아 가면 미치겠나이까 여호와께서 대답하시되 쫓아가라 네가 반드시 미치고 정녕 도로 찾으리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이처럼 하나님을 힘입어 용기를 얻고, 또 하나님께 물어서 순종하면서 앞으로 나아가는 것은 문제 해결을 할 수 있는 비결이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 모든 것을 다 맡기고 하나님을 의지한다는 것은 아무 것도 안 한다는 것이 아닙니다. 기독교는 운명론자들이 아닙니다.  기도는 모든 것을 하나님께 의지하므로 어떤 군급한 상황에서도 용기를 얻게 되고, 또 하나님께 묻고 하나님께 응답 받아 하나님께 순종으로 나아가는 것입니다. 그래서 시 84:7에서 “저희는 힘을 얻고 더 얻어 나아가 시온에서 하나님 앞에 각기 나타나리이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뿐만 아니라 하나님의 은혜를 받은 사람은 해결하는 방법이 달라야 합니다. 다윗은 문제 해결을 어떻게 했습니까?
다윗은 이런 현실까지 오게 된 데 대한 책임을 나 혼자의 책임이 아니라고 다른 사람에게 또 책임전가 시키려 하거나, 아니면 또 다른 비난의 화살을 다른 이에게 돌려 위기를 모면하려고 하지 않았습니다. 이것은 문제를 극복할 수 있는 방법이 될 수 없습니다. 다윗은 다투지 아니하였으며 부하들의 행동에 노하지 않고 침착하게 대처했습니다. 다윗이 이런 행동을 취할 수 있었던 것은 하나님을 힘입었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래서 본문 6절에서 “백성이 각기 자녀들을 위하여 마음이 슬퍼서 다윗을 돌로 치자 하니 다윗이 크게 군급하였으나 그 하나님 여호와를 힘입고 용기를 얻었더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사람을 볼 때는 실망하게 되지만 하나님을 바라볼 때는 소망을 가질 수 있음을 기억하게 됩니다.

다윗은 심신이 심히 지친 상태이지만 하나님을 힘입었습니다.
세상 살아가는 동안에 마음 편한 일만 있는 것이 아니기에 인간은 괴로움을 당하게 되는 것입니다. 특히 자신이 어려움에 처해 있으면 심한 정신적인 부담과 긴장감이 몰려와 심신이 지치게 됩니다. 본문에서 다윗은 부하들을 잘 달래어 자신들을 침략한 아말렉을 쫓아갑니다. 가다가 심신이 지친 부하 200명은 중도에서 쉬게 하고 나머지 400명만을 거느리고 갑니다. 생각해 보십시오. 
아말렉과의 전투에서 승리하기 위해서는 모든 부하들이 다 참전해도 어려운데 부하 200명이 중도에 포기하여 주저앉은 것은 다윗의 심신을 더욱 지치게 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그러한 때에도 다윗은 용기를 잃지 않았습니다. 하나님의 구원은 사람 수에 있는 것이 아니라 바로 하나님께 있음을 알기 때문입니다. 그리하여 결국은 아말렉을 진멸 시킬 수 있게 되었습니다. 본문 17절에서 “다윗이 새벽부터 이튿날 저물 때까지 그들을 치매 약대 타고 도망한 소년 사백 명 외에는 피한 사람이 없었더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렇습니다. 우리가 지치고 피곤할 때에라도 여호와를 앙망 하는 자는 새 힘을 얻게 되는 것입니다. 

이제 말씀을 맺겠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아무리 어려운 문제 때문에 염려하지 마십시오. 우리의 마음이 군급할 때에 다윗과 같이 하나님을 의지하면서 기도하시기를 바랍니다. 그리하면 하나님께서 힘을 주실 줄 믿습니다. 용기를 잃지 마시기 바랍니다. 절망 가운데서도, 비난 속에서도, 심신이 지친 상태에서도 하나님을 힘입어 새 힘을 얻는 성도들이 됩시다. 
하나님은 그러한 상황 속에 처한 당신의 자녀들을 결코 아니하시며 그것을 통해 하나님을 더욱 의지하도록 만드시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의지하는 자는 수치를 당하지 않을 것입니다. 하나님을 의지하는 것은 심약한 사람이나 하는 못난 행위가 아닙니다. 하나님이 아니고는 아무 것도 할 수 없고, 아무 것도 아니라는 겸손한 사람만이 하나님을 의지하여 힘을 얻고 용기를 가지게 됨을 깨닫고 이 밤에 철저히 하나님을 의지하면서 기도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그리함으로 하나님께서 주시는 은혜를 힘입어 여러분의 문제를 능히 해결할 수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아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