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는 흥하여야 합니다
- 교회의 부흥 -
요한복음 3:22~36
석원태 목사
 
「그는 흥하여야 하겠고 나는 쇠하여야 하리라」(요 3:30)! 이 말씀은 예수에 대한 세례 요한의 증거 중의 하나입니다. 세례 요한은 예수를 가리켜 
① 신부를 취하는 신랑이라고 하였습니다(요 3:29). 
② 위로부터 오시는 이, 곧 하늘로부터 오시는 이라고 하였습니다(요 3:31). 
③ 그는 하늘의 것을 보고 들은 자라고 하였습니다(요 3:32). 
④ 하나님의 말씀을 하시는 분이라고 하였습니다(요 3:34). ⑤ 만물을 주관하는 권세자라고 하였습니다(요 3:35). 
⑥ 영생과 심판의 주라고 하였습니다(요 3:36). 
이러한 증거들 가운데 또 하나가 ‘예수는 흥하여야 할 사람’이라고 한 것입니다. 여기 ‘흥한다’(aujxavnw)라는 말은 수나 양이 점점 많아진다(증가)는 단어입니다. ‘쇠하다’(ejlattovw)라는 말은 수나 양이 점점 줄어든다는 뜻으로 사용된 단어입니다. 「…흥하여야 하겠고… 쇠하여야 하리라」고 하였습니다. 여기 ‘…하겠고 …하여야 하리라’고 한 영감의 표현은 반드시 그렇게 되고, 또 되고 만다는 필연적인 도래의 사실을 염두에 두고 강조한 내용입니다. 그것은 자신의 어떤 계획이나 주장이나 목적에서가 아니라, 하나님의 영원한 계획과 목적에 따라 진행되고 있는 필연적인 사건을 뜻하는 내용입니다. 그렇다면 예수는 필연적으로 기어이 흥해야 하고, 자기(세례 요한)는 필연적으로 쇠하여야 한다는 세례 요한 자신의 증거입니다. 

Ⅰ. 먼저 나(자신)는 쇠하여야 하리라고 하였습니다.

요한복음 3장 30절 하반절에 「…나는 쇠하여야 하리라」고 하였습니다. 그는 자신의 존재적 사역에 대하여 이렇게 말하고 있습니다. 
① 자신의 활동은 본래 자신의 것이 아니고 하늘에서 받은 것이라고 하였습니다(요 3:27). 
② 또 나(자신)는 그리스도가 아니라고 하였습니다(요 3:27). 
③ 자신은 메시야를 증거하기 위하여 그 앞서 보내심을 받은 자라고 하였습니다(요 3:28). 
④ 자신은 신랑의 들러리라고 하였습니다(요 3:29). 
⑤ 그는 그리스도의 신들메를 풀기도 감당치 못할 자라고 하였습니다(막 1:7). 
⑥ 자신은 회개를 위한 물세례를 베푸는 자라고 하였습니다(막 1:8). 
그리고 자신은 쇠하여야 할 사람이라고 하였습니다. 이 말은 그에게 세례를 받으러 온 그의 제자들 중에서 예수에게로 가는 자들이 있다는 말을 듣고 나온 대답입니다. 아니 세례 요한 자신이 제자들을 예수에게로 보냈습니다(요 1:35~37). 자신의 수(數)는 점점 줄어들어야 될 것이라고 하였습니다. 나중에 세례 요한 자신도 투옥이 되었습니다(막 1:14, 눅 3:18~20). 그리고 그 자신의 존재마저도 순교를 당함으로 사라져 버렸습니다(마 14:8). 우리는 이러한 세례 요한의 최후 증거가 바로 구약시대의 마감을 선언하고 있음을 알아야 합니다. 그는 율법과 선지자를 대표하는 사람이었습니다. 누가복음 16장 16절에 「율법과 선지자는 요한의 때까지요 그 후부터는 하나님 나라의 복음이 전파되어 사람마다 그리로 침입하느니라」고 하였습니다. 예수님은 그를 가리켜 「…여자가 낳은 자 중에 세례 요한보다 큰이가 일어남이 없도다」(마 11:11)라고 하였습니다(눅 7:28). 인류가 낳은 자 중에 가장 위대한 자라는 뜻입니다. 그러므로 세례 요한은 그 어떤 사람보다도 큰 인물입니다. 인류 역사상 최대의 위인이었습니다. 그는 예수님보다 앞서 온 하나님의 사자로서 메시야의 전령사였습니다. 

그러한 그가 자신에 대하여 ‘나는 쇠하여야 한다.’고 하였습니다. 이는 많은 사람으로 시작된 구약은 세례 요한 자신 한 사람으로 줄어든다고 한 것입니다. 말하자면 구약이 끝나고 바야흐로 신약이 도래하고 있다고 하는 역사적 전환점을 알려주는 증거입니다. 구약 여러 시대, 여러 모양, 여러 사람으로 말씀하시던 하나님의 예언이 이제 세례 요한을 마지막으로 끝나고 있다는 사실을 알려주는 구약의 마침표였습니다. 율법과 예언의 마지막을 의미하는 구약종결의 선언입니다. 

Ⅱ. 예수, 그는 흥하여야 한다고 하였습니다.

요한복음 3장 30절에 「그는 흥하여야 하겠고…」라고 하였습니다. 이 말씀은 ‘예수 한 분’(one)에서 ‘많은 사람’(many)으로 불어나고 늘어나는 수적군세를 의미합니다. 예수 한 분이 한 알의 밀알이 되어 많은 열매를 맺는 사실을 가리킵니다(요 12:24). 그는 흥하여야 한다! 이 말씀 속에는 많은 지역적 확대가 담겨져 있습니다. 예루살렘과 유대뿐만 아닌, 사마리아와 땅끝까지의 전 우주공간의 영역을 실감나게 합니다. 뿐만 아니라 많은 사람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예수 한 사람에서 열두 제자, 70인 제자, 120문도, 3,000명, 5,000명, 안디옥 교회, 아시아 일곱 교회, 더 나아가 세계 교회… 마침내 14만 4천인(계 7:4, 14:1, 2), 곧 각 나라와 족속과 백성과 방언으로부터 나오는 아무라도 능히 셀 수 없는 큰 무리(계 7:9)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유대인의 충만한 수(롬 11:12)에 이방인의 충만한 수(롬 11:25)를 합친 온 이스라엘(롬 11:26)의 충만한 수가 담겨져 있습니다. 말하자면 신약도래의 선포입니다. 새 시대 출현의 선언입니다. 그 분의 오심이 율법과 사망의 끝임을 말하는 것입니다. 사단의 감금과 종말을 뜻합니다. 말하자면 옛것이 물러가고 새것, 새 세상이 들어옴을 의미합니다. 은혜와 진리가 도래한 새 세상의 시작을 말하고 있습니다. ‘새 술은 새 부대’라고 하는 내용입니다. 

우리는 다시 ‘그는 흥하여야 하겠다.’는 세례 요한의 영감의 증언 속에 숨어있는 신약 도래의 큰 내용을 음미해야 합니다. 그는 흥하여야 하겠다! 예수의 흥함이란 무엇을 의미함인가? 

1. 성령 충만의 흥함을 담고 있는 증언입니다. 

주님께서 사람으로 33년 동안 이 세상에 계셨습니다. 수많은 무리가 그에게 모여들었습니다. 많은 사람들은 서기관과 바리새인을 떠났습니다. 율법사와 제사장들의 곁을 떠나 예수에게로, 예수에게로 모여들었습니다. 실로 막을 수 없는 새 시대의 물결이었습니다. 마침내 대제사장들과 서기관들 그리고 바리새인들은 로마의 권력과 합세하였습니다. 그리고 그를 십자가에 못 박혀 죽도록 하고 말았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바로 예수가 흥하는 동인(動因)이 되었습니다. 그가 땅에서 들림으로 많은 사람을 그에게로 이끌게 된다고 하였습니다(요 3:14, 8:12, 12:32). 그의 십자가의 죽음이 죄와 사망에서 인류를 해방하는 하나님 자신의 방법이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십자가 위에서 내가 「다 이루었다」(요 19:30)고 속죄성취의 개가를 불렀습니다. 이렇게 그의 죽으심이 우리 대속의 근거가 되었습니다. 또한 그의 사흘만의 부활이 우리 의의 근거가 되었습니다. 그리고 그의 승천과 보좌에 앉으심이 그의 흥함의 기초가 되고, 근거가 되었습니다. 

그 분이 다시 그의 약속대로 보혜사로 이 세상 우리 중에 오셨습니다. 이것이 오순절 성령강림이었습니다(요 14:16, 23, 15: 26, 16:7~14, 행 2:1~3). 이것은 ‘이 세상’(this Age)에, ‘오는 세상’(Age to come)이 들어오는 일이었습니다. 예수의 흥함은 바로 그가 보혜사 성령으로 다시 ‘오는 세상’을 가지고 우리 가운데 임재한 것입니다. 그 결과 그에게 이끌림을 당하는 하나님의 백성의 수효가 땅에 충만해져버렸습니다. 예수의 흥함이었습니다. 

2. 말씀 충만의 흥왕을 담고 있는 증언입니다.

오순절에 임한 성령의 폭풍은 그의 제자들의 가슴과 입에 불을 질렀습니다. 그것이 바로 베드로의 성령 설교였습니다. 그 결과는 3,000명, 5,000명으로 그 수가 많아지는 예수 백성의 흥함이었습니다. 이러한 말씀의 흥왕은 예루살렘 뿐 아니고 사마리아인과(행 8: ), 고넬료 가정(행 10: )과 안디옥(행 11:19~26) 여러 이방 지역으로 확산되고 말았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말씀이 흥왕하여 더하더라고 성경은 기록하고 있습니다(행 6:7, 12:24, 19:20). 마침내 성령은 사도들을 영감하였습니다. 그래서 예수의 흥함을 기록하게 하였습니다. 그것이 바로 기록된 말씀인 성경입니다. 계시의 성문화였습니다(딤후 3:16, 벧후 1:20~21). 영감으로 기록된 성경은 예수께서 하나님의 아들이시고, 또 우리가 그를 믿고, 영생을 얻게 함에 있다고 하였습니다(요 20:31). 그래서 예수의 흥함은 하나님의 말씀의 흥함으로 나타났습니다. 그래서 성경은 세기적인 책이 되고 말았습니다. 

3. 교회의 흥함으로 입증하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예수에 대한 세례 요한의 영감의 증언은 ‘그는 흥하여야 하겠다.’는 것이었습니다. 그것은 바로 그가 피로 값 주고 사신 교회의 흥함을 담고 있는 내용이었습니다. 그는 흥해야 하겠다! 이것은 예수님 곧 하나님 나라의 확장을 의미합니다. 교회의 성장과 확장을 의미합니다. 구약의 끝 날과 함께 새로 시작되는 신약은 사실상 종말의 영역입니다. 「이 모든 날 마지막에 아들로 우리에게 말씀하신」(히 1:2) 종말의 시작입니다. 하나님이 이 세상에 계시하신 종말의 위대한 표적은 바로 ‘하나님 나라 운동’의 선포였습니다(막 1:14~15). 로고스이신 예수께서 화육강세하시고, 다시 오순절에 성령(보혜사)으로 오시고, 그 성령께서 사도들로 하여금 친히 말씀하게 하고, 또 기록하게 하여(성경) 남기시는 끝 날의 표적이 바로 ‘하나님 나라’ 곧 ‘교회’입니다. 물론 ‘하나님의 나라’라고 할 때, 이 세상에서는 교회 운동을 표현하지마는 그것은 사실상 더 넓고, 높고, 영원한 하나님 자신의 구속사적 통치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예수의 흥함은 교회의 흥함으로 우리 중에 나타나게 되었습니다. 예수께서 세상에 오셔서 역사 가운데 남기신 불사조적 표적이 바로 교회입니다. 그래서 교회를 가리켜 「하나님이 자기 피로 사신 교회」(행 20:28)라고 하였습니다. 교회는 역사의 알맹이입니다. 교회는 영생 얻기로 작정된 하나님의 자기 백성들의 공동체입니다(행 13:48). 그러므로 참된 교회는 망할 수 없고 흥해야 합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예수 십자가의 복음은 언제, 어디서, 무엇에든지 복음이어야 합니다. 그것은 시간적으로 1세기에도 복음이고, 10세기에도 복음이고, 21세기에도 복음이어야 합니다. 그것은 지역적으로 예루살렘에서 복음이면 사마리아에서도 복음이고, 또 땅끝에서도 복음이어야 합니다. 아이들에게 복음이면 어른들에게도 복음이어야 합니다. 남자에게 복음이면 여자에게도 복음이어야 합니다. 유대인들에게 복음이면 이방인에게도 복음이어야 하고, 주인에게 복음이면 종에게도 복음이어야 합니다. 그 큰 이유는, 예수는 어제나 오늘이나 영원토록 동일하시기 때문입니다(히 13:8). 죄인에게 필요한 것은 구원의 복음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예수는 흥해야 한다는 사실입니다. 

21세기는 세계화 시대로 특징지을 수 있습니다. 국제화 시대, 정보화 시대입니다. 정치권력의 중심 시대, 경제 중심 시대, 과학 중심 시대, 문화 중심 시대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실상은 21세기도 예외 없이 예수 중심 시대입니다. 그것은 바로 역사의 중심이 B.C와 A.D이기 때문입니다. B.C와 A.D는 세계 역사의 연호입니다. 그것은 그리스도를 중심하고 역사가 계산되고 있다는 확실한 증거입니다. 그러므로 그리스도 중심의 역사는 바로 교회 중심의 역사로 연결되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교회는 흥해야 합니다. 주님께서 성령과 말씀을 통하여 교회를 흥하게 하시고 계십니다. 그것은 존재하는 역사의 필연적 내용이고 목적입니다. 그 이유는 이 세상에서 교회가 존재하는 목적인 구원인의 정족수가 찼을 때 이 세상 역사는 대단원의 막을 내리고 말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것은 하나님의 공의로운 마지막 심판이기 때문입니다(벧후 3:7~13). 이런 의미에서 존재하는 지상의 교회는 「살아계신 하나님의 집이요 진리의 기둥과 터」(딤전 3:15)가 됩니다. 흥하는 집, 흥하는 교회, 흥하는 진리의 기둥과 터가 됩니다. - 아 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