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축복의 절대성”(시 127:1-5)

지금 온 나라가 [이라크 전쟁]에 대한 반전 시위와 이라크 전쟁 파병 반대 철회 시위로 인하여 몸살을 앓고 있습니다. 이에 대해서 노무현 정부는 새 정부 출범이래 가장 큰 곤욕을 치루고 있습니다. 그런데 반전 시위는 비단 우리나라에서만 있는 것은 아닙니다. 지금 세계 곳곳에서 반전 시위로 인하여 반미 감정이 고조되고 있습니다. 뿐만 아니라 기독교 교계에서도 “전쟁은 보복의 악순환을 일으키는 것이며 생명을 파괴하는 범죄이다. 미국과 그 동맹국들이 시작한 이라크 전쟁은 중단되어야 한다... 부시 대통령이 중동지역과 세계의 패권을 장악하기 위해 명분 없는 전쟁이다. 이 같은 침략전쟁을 즉각 중단하라. 한국 정부는 한국군의 이라크 파병계획을 즉각 중단하라” 등의 반전 성명을 발표했고, 평화를 위한 사순절 기도회가 교회마다 계속되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를 지켜보는 우리나라 입장에서는 다른 나라와는 조금 다른 입장에 있습니다. 우리나라는 오랫동안 미국의 우방의 역할을 감당했습니다. 그러기에 부시 정부의 정책을 적극적으로 지지할 수밖에 없는 입장이고 이라크 전쟁을 위해서 파병을 해야 할 형편입니다. 그렇다고 해서 무조건으로 국민들의 정서를 볼 때에 무조건으로 지지할 입장도 아닙니다. 어떻게 보면 지금 미국이라는 나라는 [필요 악]적인 존재입니다. 있어서는 안 되지만 없어서도 안 될 존재입니다. 

그렇다면 그리스도인의 입장에서 이라크 전쟁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합니까? 
하나님은 전쟁을 싫어하시고 금하셨습니다. 평화를 사랑하십니다. 물론 구약성경에 보면 하나님의 공의를 나타내는 심판의 도구로 전쟁을 사용하시기로 하였습니다. 또한 이스라엘 백성의 해방을 위해서 전쟁을 명하시기도 하셨습니다. 이것은 거룩한 전쟁 곧 성전(聖戰)이라고 합니다. 여기에서 우리가 깨달을 것은 성경에서는 전쟁은 명분이 분명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런데 이라크의 전쟁은 성전(聖戰)도 아닐뿐더러 명분도 뚜렷하지 않습니다. 물론 연합군의 입장에서는 9.11 이후의 테러에 대한 응진이고, 이라크의 핵사찰에 대한 강력 대응에 대한 전쟁이라고 말하고 있지만 사실 그 속셈은 세계 제2의 매장량을 가진 석유자원에 대한 주도권의 확보입니다. 그러기에 미국의 제39대 대통령이며 노벨 평화상 수상자이자 신실한 기독교신자로 존경받는 지미 카터는 이번 전쟁이 ‘정의로운 전쟁’(Just War)을 구성하는 여러 기준을 갖추지 못하고 있다고 비판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그리스도인들은 부시행정부의 전쟁수행을 과거의 이슬람권에 대한 십자군 전쟁으로 동일시하는 ‘전쟁의 영’에 사로잡히지 말아야 합니다. 아울러 우리 신자들은 미국의 전쟁수행이 중동의 이슬람 세계와 기독교의 영향을 받은 서구문명과의 파괴적 충돌로 비화되지 않도록 기도하여야만 하는 비상한 시기를 맞이하고 있습니다. 이미 전쟁이 시작된 지금 우리는 세계의 평화를 위하여 기도해야 합니다. 우리는 기도의 지경을 넓혀야 합니다.  

그런데 지금 우리의 걱정은 이라크 전쟁이 아닙니다. 
이라크 전쟁 이후에 북한에 대한 미국 정부에 생각입니다. 과연 이라크 전쟁 이후에 미국의 행보에 대해서 온 국민들이 행보를 곤두세우고 있습니다. 그리고 이를 위해서 노무현 정부도 적극적으로 이라크 전쟁에 대한 부시 정부의 입장을 지지하고 있는 것이며, 국민의 정서에는 맞지는 않지만 파병 결정에 대한 강행할 수밖에 없었던 이유가 다 여기에 있습니다. 노무현 정부는 국익을 위해서 이라크 전쟁에 사병들을 파병해야 한다는 설득했던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가 여기에서 주목해야 두 가지가 있습니다. 
첫 번째는 전쟁은 여허와께 속하 것이며 마지막 때의 징조라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마 24:5-11에서 말세의 징조를 말씀해 주셨습니다. 마지막 때가 되면 적그리스도와 거짓선지자가 나타나 사람들을 미혹하고, 민족 간의 전쟁이 있고, 처처에 기근과 지진이 일어나고, 사람들의 심령에 사랑이 식어지고 불법이 성하고, 성도들이 환난을 당할 것이라고 이미 경고하셨습니다. 
그러기에 바로 지금이 깨어서 세계 평화를 위해서 기도할 때입니다.(마 24:13) 게으름의 자리에서 일어나야 합니다. 성경을 읽고 깨달아야 합니다(마2415). 맡은 일에 충성해야 합니다(마25:21). 서로 사랑해야 합니다.(마25:45) 신앙을 잘 해야 합니다.  

두 번째는 한반도의 평화는 사람에게 있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 있다는 것입니다. 
미국이 우리의 우방인 것은 분명합니다. 그러나 미국이 한반도의 평화를 지켜주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한반도의 평화를 지켜주셔야만 합니다.    

이러한 측면에서 우리는 본문의 말씀을 주목해야 합니다.
본문은 하나님께서 함께 하지 아니하시면 인간의 땀 흘리는 수고도 헛되어 이루어지거나 얻어지는 것이 없으며, 휴식조차도 평안을 누릴 수 없다는 교훈의 말씀이십니다. 모든 것의 근원은 하나님께 있음으로 하나님의 섭리에 대한 신뢰만이 그 어떠한 것도 가능하며 이루어지게 됩니다. 하나님께서 축복해 주셔야만 합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은 축복의 절대자이시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시인은 본문의 말씀을 통하여 “인생의 모든 일들이 다 하나님의 축복으로 되어진다”라고 말씀하면서 대표적으로 4가지 보기를 들어 설명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조심해야 할 것은 “하나님의 축복”이라고 해서 사람의 노력을 무시하는 것이 아닙니다. 사람들의 노력이 절대적으로 필요합니다. 그러나 우리가 명심해야 할 것은 우리가 노력한다고 해서 반드시 그 노력의 댓가로 열매를 맺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축복해 주셔야만 우리의 수고가 헛수고가 되지 않는다는 사실입니다. 

미국에서 성공적 생활에 관한 여러 권의 베스트셀러를 낸 유명한 [데일 카네기]는 미조리 주 가난한 농가에서 태어나 홀어머니 밑에서 자라났습니다. 그가 저녁 잠자리에 들기 전 반드시 그의 어머니가 곁에 와서 "하나님이 너를 돌보아 주신다"는 말을 어린 카네기가 잠들 때까지 반복해 주셨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는 그 후에 저녁을 굶고 잠자리에 든 적이 단 한번도 없었다라고 말하면서 다음과 같이 고백했다고 합니다.  "한 조각의 빵 속에는 어머니가 계셨고, 또한 하나님이 계셨습니다." 

그렇습니다. 지금 우리는 매우 불안한 삶을 살고 있습니다. 그러나 너무 걱정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와 함께 하시면 우리는 넉넉히 감당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함께 하시면 승리할 수 있습니다. 그러면 하나님께서 축복해 주시면 어떤 역사를 체험할 수 있는지 함께 생각해 보면서 은혜를 나누고자 합니다.   

1. 하나님께서 축복해 주셔서야만 집을 세울 수 있습니다(1절 상)
본문 1절 상반 절에서 “여호와께서 집을 세우지 아니하시면 세우는 자의 수고가 헛되며”라고 말씀하고 있는 것처럼 하나님이 함께 하시지 아니하면 세우는 자의 수고가 헛됩니다. 여기에서 말씀하시는 “집”이란  '집'이란 히브리어의 '바이트'란 말로서 “인간의 의지, 재능, 사업, 노력, 실력”까지를 다 포함하는 말입니다. 따라서 하나님께서 축복해 주시지 아니하시면 우리의 의지, 우리의 재능, 우리의 사업, 우리의 노력, 우리의 실력까지 다 헛되다는 뜻입니다. 
 
(예화) 이솝 우화에 보면 이런 이야기가 있습니다. “어떤 욕심 많은 여우가 어느 날 포도원 주위를 맴돌다가 탐스럽게 익은 포도 열매를 보고 어떻게 하든 안으로 들어가려고 방법을 모색하던 중, 작은 구멍 하나를 찾았으나 그 구멍으로는 도저히 들어갈 수 없음을 알고, 사흘을 굶어 자기의 몸을 날씬하게 하여 들어가, 먹고 싶은 만큼 실컷 포식한 후 다시 밖으로 나오려고 하니 나올 수가 없었습니다. 그러니 어쩝니까? 또다시 사흘을 굶고 나올 수밖에 없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먹기 위해서 굶고 먹었기 때문에 굶어야 하는 이 모습이 어찌 이솝이야기의 여우에게만 해당되겠습니까? 하나님이 함께 하시지 않는 인간의 집을 짓는 수고는 제자리걸음만 답습하고 헛될 뿐입니다. 하나님께서 축복해 주시지 아니하면 우리는 결코 집을 바로 세울 수 없다는 것을 명심해야 합니다. 
우리가 생각하기는 참으로 훌륭한 집을 세운 것처럼 보이나 그것은 결국 무너진다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모래 위에 집을 세웠기 때문입니다. 사람들이 집을 세우려고 하나 노력만 한다고 다 집이 세워지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축복이 있어야 집을 세우려는 노력이 열매를 맺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안중에 두지 아니하고 자기 마음대로 무엇을 하는 것은 아무런 의미가 없습니다. 성공의 참된 근원은 하나님께만 있기 때문에 이 땅위에 짓는 모든 집은 하나님께서 함께 세워주시지 아니하시면 세워질 수 없다는 말씀입니다. 세워진다고 할지라도 곧 무너지는 집이 되고 말 것입니다. 

창세기 11장에 보면 그때의 사람들이 사용하는 언어는 하나였습니다. 그런데 인간들이 자기들의 이름을 내고 흩어짐을 면하려고 탑을 쌓기 시작했습니다. 하나님이 보시기에 그 일이 마음에 들지 않으셨습니다. 하나님은 사람들의 언어를 여러 말로 혼란시키셨습니다. 말이 통하지 않자 자연히 말이 통하는 사람들끼리 흩어지게 되었습니다. [바벨]이란 말은 [혼란]이라는 뜻입니다. 하나님이 함께 계시지 않은 삶, 하나님이 함께 하시지 않은 것은 혼란이었습니다. 하나님 없이 물질을 모으는 것도 처음에는 잘 되는 것 같지만 결국은 다 흩어지게 되어 있습니다. 하나님 없이 쌓는 학문의 탑, 명예의 탑, 권력의 탑은 결국엔 혼란으로 끝난다는 사실을 기억해야 합니다. 결국 바벨탑의 작업은 중단되었으며 보잘것없이 무너져 버리고 말았습니다. 

그렇습니다. 바벨탑을 쌓으려는 사람들이 노력이 모자라서가 아니라 하나님의 축복이 없이 하늘까지 쌓으려던 그들의 노력이 헛되고 말았던 것입니다. (창 11:1-9)  하나님께서 손을 들어 무효선언(無效宣言)을 하시면 인간들이 집을 세우려고 혼신을 다해 애써도 이루어질 수 없습니다. 

오늘날 권력과 물질의 바벨탑을 세워도 하나님께서 축복해 주시지 아니하면 모두 수고가 헛수고가 되고 마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허락 없이 하는 것은 그 무엇이든지 무너지는 바벨탑이 되고 맙니다. 하나님께서 축복해 주셔야만 바르게 세워지는 줄로 믿으시고 하나님의 도우심을 구하시는 여러분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하나님이 없이 무엇을 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은 참으로 어리석은 행동이라는 것을 명심하시기 바랍니다.  

2. 하나님께서 축복해 주셔야만 성을 지킬 수 있습니다.(1절 하) 
본문 1절 하반 절에서 “여호와께서 성을 지키지 아니하면 파숫군의 경성함이 허사로다”라고 말씀하고 있는 것처럼 하나님께서 축복해 주셔야만 성을 지킬 수 있습니다. 파수꾼이 밤새워 경성하는 노력으로만 성이 지켜지는 것이 아니라, 여호와께서 축복해 주셔야 밤새워 지키는 파수꾼의 노력이 열매를 맺게 됩니다. 유다 나라가 바벨론에게 망할 때에 파수꾼이 없어 망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축복으로 지켜 주시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 축복으로 지켜 주실 때에는 비록 성벽이 없다고 하더라도 하나님께서 스스로 불성곽이 되어 지켜 주십니다(슥 2:4-5) 우리나라도 마찬가지이고, 우리가정도 마찬가지입니다. 하나님께서 축복해 주셔서 우리나라를 지켜주시고, 우리가정을 지켜 주시면 어느 누고도 우리나라나 우리가정을 결코 침범할 수 없게 됩니다.  

(예화) 로마제국이 기독교를 박해할 때, [페릭스]라는 교회지도자가 로마 수색대를 피해서 산 속의 굴로 피했습니다. 그러나 수색대가 그 굴을 발견하게 되었습니다. 그 굴로 들어오면 영락없이 체포될 판이었습니다. [페릭스]는 ‘나의 생명을 받아 주소서’하며 마지막 기도를 올렸습니다. 
그런데 그 동안 거미가 바위틈 입구에 거미줄을 쳤기 때문에 수색대는 굳이 수색할 필요를 느끼지 않고 지나갔습니다. 그래서 [페릭스]는 생명을 무사히 보전할 수 있었습니다. 후에 그는 말하기를 “하나님이 함께 하시지 않으면 돌벽과 쇠문도 거미줄처럼 약하다. 그러나 하나님이 함께 하시면 거미줄도 철문보다 강하다”고 말했습니다. 

그렇습니다. 인생의 성을 수없이 쌓았다가 무너진 사람이 많습니다. 하나님 없이 자기의 마음대로 살아보겠다고 탑을 쌓다가 무너져서 다시 하나님께로 돌아온 사람들이 많이 있습니다. 보통 사람들은 집을 잘 짓고 나면 담을 쌓고 성을 쌓습니다. 무너지지 않게, 잃어버리지 않기 위해, 도적맞지 않도록 애를 쓰지만 사람이 지킬 수는 없습니다. 자신이 지키려 한다고 모든 것을 지킬 수는 없습니다. 물질의 성, 명예의 성, 사업의 성, 정치의 성… 그 어떤 것도 인간이 지킬 수 없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이 지켜 주시면 됩니다. 하나님께서 축복해 주셔야만 합니다. 사도 요한은 요한일서 5:18에서 "악한 자가 저를 만지지도 못하느니라"고 고백하고 있는 것처럼 하나님께서 축복해 주시면 악한 자가 만지려고 할지라도 결코 만질 수 없습니다. 악한 자로 하여금 만지지도 못하게 하는 것은 오직 하나님 한 분밖에 없습니다. 

저는 이라크의 전쟁을 보면서 아무리 이라크의 군대가 지킨다할지라도 현대의 가공할만한 무기와 미사일 앞에 여지없이 바그다드의 대통령 궁과 시설들이 한번에 무너지는 것을 보게 되었습니다. 우리가 아무리 지키려 해도 하나님이 함께 하시지 아니하면 지키는 자의 수고가 헛될 뿐입니다. 
우리나라도 60만 대군이 두 눈을 부릅뜨고 철책 선을 지키고 있지만 보이지 아니하시는 전능하신 하나님의 눈이 함께 지키고 있음을 믿어야 합니다. 무엇보다도 먼저 전능하신 하나님이 지켜주셔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축복해 주셔야만 합니다. 하나님께서 축복해 주시면 이 땅의 평화가 가득하게 될 것입니다. 뿐만 아니라 건강도 하나님이 지켜주셔야 합니다. 물질도 하나님이 지켜주셔야 합니다. 자녀도 하나님이 지켜주셔야 합니다. 사업도 하나님이 지켜주셔야 합니다. 지키는 일이 허사가 되지 아니하도록 하나님의 도움을 언제나 구하시기 바랍니다. 

3. 하나님께서 축복해 주셔야만 돈을 벌 수 있습니다.(2절) 
본문 2절에서 “너희가 일찌기 일어나고 늦게 누우며 수고의 떡을 먹음이 헛되도다. 그러므로 여호와께서 그 사랑하시는 자에게는 잠을 주시는도다”라고 말씀하고 있는 것처럼 하나님께서 축복해 주셔야만 돈을 벌 수 있습니다. 우리가 돈을 벌려고 남보다 일찍이 일어나고 늦게 누우며 먹는 것도 험하게 먹는다고 해서 반드시 돈이 벌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돈을 벌려는 우리의 노력이 열매를 맺는 데에는 하나님의 축복이 있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축복해 주시지 아니하시면 수고의 떡을 먹음이 헛됩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함께 하시고, 축복해 주신다면 평안한 중에 생활할 수 있습니다. 
여기의 “여호와께서 그 사랑하시는 자에게 잠을 주시는도다”라는 말씀을 바로 이해해야 합니다. 이는 사랑하는 자에게는 하나님께서 축복하심으로 말미암아 일이 잠 됨으로 인한 단 잠입니다. 하나님께서 축복해 주시면 걱정 근심하지 않고 단잠을 잘 수 있고, 한 걸음 더 나아가 잠을 자고도 일이 잘 됩니다.  

(예화) 우드로 윌슨이 대통령시절 외교문제로 큰 난관에 봉착하였습니다. 하나님의 도우심이 절대적으로 필요함을 깨닫고 간절히 기도를 드린 후 각료회의에 참석하였습니다. 그리고 "여러분은 어떻게 생각하실지 모르지만 저는 기도의 능력을 믿습니다. 현재의 난관을 위해 함께 기도 합시다"라고 말하고 곧 전 각료들과 함께 무릎 꿇고 기도함으로 위기를 무사히 넘겼다고 합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하나님께서 사랑하는 사람은 '무엇을 얼마나 많이 이룰 수 있느냐'가 아니라 '무엇을 어떻게 하느냐'의 사람입니다. 이 땅에서 자기중심적인 인간의 노력과 수고로는 진정한 행복과 평안을 얻을 수 없습니다. 
하나님께서 축복해 주셔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함께 하셔야 합니다. 하나님이 함께 하지 아니하시면 수고의 떡을 먹음이 헛되다는 것입니다. 열심히 일하고 열심히 산다고만 좋은 것은 아닙니다. 성실한 삶과 열정 속에 하나님께서 함께 하셔야만 진정한 성공이 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일하되, 수고하되, 땀을 흘리되 하나님께 경영을 맡기시기 바랍니다. 하나님께 경영의 주권을 드리시기 바랍니다. 사나 죽으나 주의 것임을 믿고 전폭적으로 가정의 경영권, 인생의 경영권, 자식의 경영권, 사업의 경영권을 주님께 드리시기 바랍니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 잠언 16:3에서 "너의 행사를 여호와께 맡기라 그리하면 너의 경영하는 것이 이루리라"고 약속하셨기 때문입니다. 

4. 하나님께서 축복해 주셔야만 자녀 문제가 해결될 수 있습니다.(3-5절) 
본문 3-5절에서 “자식은 여호와의 주신 기업이요 태의 열매는 그의 상급이로다. 젊은 자의 자식은 장사의 수중의 화살 같으니 이것이 그 전통에 가득한 자는 복되도다. 저희가 성문에서 그 원수와 말할 때에 수치를 당치 아니하리로다”라고 말씀하고 있는 것처럼 하나님께서 우리가 자녀를 낳는 것은 하나님의 주신 기업이요 상급입니다. 뿐만 아니라 자녀가 많은 부모는 전통에 화살이 많은 것처럼 성문에서 원수와 말할 때에 수치를 당하지 않습니다. 

그런데 우리가 여기에서 기억할 것이 있습니다. 자녀를 낳는 것이 인간의 노력으로만 낳아지는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라헬이 그처럼 아기를 낳기 원하나(창30:1-2) 낳지 못하다가 하나님께서 축복해 주실 때에 비로소 낳을 수 있었습니다(창30:22-24) 한나가 자녀를 낳고자 하였으나 낳을 수 없었습니다. 그러다가 하나님의 축복으로 자녀를 낳았는데 그 자식이 사무엘이 아닙니까?(삼상 1:24) 또한 사무엘은 하나님의 축복으로 이스라엘 민족을 구원하는 훌륭한 제사장이요, 선지자가 되었습니다.  
그러나 만약 하나님께서 우리의 자녀들을 축복해 주시지 않으시면 우리의 자녀가 결코 기업이 될 수 없습니다. 상급이 될 수 없습니다. 원수입니다. 우리 주변에 자녀들 때문에 얼마나 고통을 받는 분들이 많이 계십니까? 

(예화) 오래 전에 기독교 상학상담학 교수이신 양은순 사모님의 강의 시간에 들은 이야기입니다. 양은순 사모님의 친구로 밤늦게 전화를 받았는데, 그 전화의 내용인 줄 “중학교 3학년 된 자기의 딸이 가출을 했는데 무사히 돌아올 수 있도록 중보 기도해 해 달라”는 전화였습니다. 그런데 얼마 후에 다시 전화가 왔는데, “가출했던 자기 딸을 찾기는 했는데, 가출한 것이 아니라 불량 학생들에게 납치를 당했고, 그 여학생의 온 몸에다 뱀의 문신을 새겨 놓았다”라고 하면서 엉엉 울면서 전화를 받았다는 말을 들은 적이 있습니다. 

저도 자녀를 가진 부모의 심정으로 만약 이러한 일을 당했다면 정말 견딜 수 없었을 것입니다. 그런데 중요한 것은 하나님께서 우리 자녀를 축복해 주시지 아니하시고, 지켜주시지 아니하시면 우리의 자녀들이 결코 안전할 수 없다는 것을 명심해야 합니다. 그러므로 우리의 자녀들을 하나님께 맡겨야 합니다. 
 
이제 말씀을 맺겠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는 이상에서 인생의 모든 일들이 하나에서 백까지 다 하나님의 축복이 없이는 안된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그러므로 내 힘과 노력이면 무엇이나 다 할 수 있다고 교만하고 어리석은 생각을 버려야 합니다. 오직 겸손히 하나님의 축복을 바라고 살아야 합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어떤 사람에게 이와 같은 축복을 주십니까? 아무에게나 이와 같은 축복을 주시지 않습니다. 시편 128:1-2에서 “여호와를 경외하며 그 도를 행하는 자마다 복이 있도다. 네가 네 손이 수고한 대로 먹을 것이라 네가 복되고 형통(亨通)하리로다”라고 말씀하고 있는 것 것처럼 “하나님을 경외하는 자”입니다. 이와 같은 축복의 말씀은 시편 25:12-14에서도 있습니다. “여호와를 경외하는 자 누구뇨 그 택할 길을 저에게 가르치시리로다 저의 영혼은 평안히 거하고 그 자손은 땅을 상속하리로다 여호와의 친밀함이 경외하는 자에게 있음이여 그 언약을 저희에게 보이시리로다”시편 112:1에서도 있습니다. “할렐루야 여호와를 경외하며 그 계명을 크게 즐거워하는 자는 복이 있도다” 시편 115:13에서도 있습니다. “대소 무론하고 여호와를 경외하는 자에게 복을 주시리로다” 성경에는 하나님을 경외하는 자에게 축복해 주신다는 말씀들이 참으로 많이 있습니다. 

그렇다면 “하나님을 경외한다”라는 것이 무엇입니까? 그것은 잠 3:5-6의 말씀과 같이 “마음을 다하고 여호와 하나님을 의뢰하고 우리의 명철을 의지하지 않고 오직 범사에 하나님을 인정하는 행위”입니다. 하나님을 경외하는 성도에게는 집을 세우는 일이 헛되지 않도록 해 주십니다. 성을 지키는 일이 헛되지 않게 해 주십니다. 돈을 버는 일을 헛되지 않게 해 주십니다. 자녀의 문제가 해결 받도록 해 주십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하나님은 우리가 무너지기를 원하시는 분이 아닙니다. 우리 하나님은 우리가 세우는 것이 헛된 수고가 되기를 원치 않으십니다. 우리가 지키기 원하는 것 잘 지켜지기를 원하시는 분이십니다. 모든 범사에 하나님을 의뢰하고, 하나님 말씀에 순종하며 하나님 마음에 합한 믿음의 삶을 사시기 바랍니다. 그리하여 언제나 하나님이 함께 하시는 삶을 사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이 함께 하시는 수고가 될 때 보람이 있습니다. 하나님이 지켜 주시는 나라가 될 때 평안이 있습니다. 하나님이 함께 하시는 가정이 될 때 기쁨이 있습니다. 우리 교회가 하나님이 함께 하시는 교회가 될 때 부흥이 있을 줄로 믿습니다. 이제 성도 여러분, 하나님이 아니시면 안된다는 믿음을 가지고 언제나 하나님이 함께 하시는 믿음의 삶을 통하여 참된 평안과 축복을 얻는 그리스도인들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