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기가 있느냐?/요한복음 21장 1~6절
 
"그 후에 예수께서 디베랴 바다에서 또 제자들에게 자기를 나타내셨으니 
나타내신 일이 이러하니라 시몬 베드로와 디두모라 하는 도마와 
갈릴리 가나 사람 나다나엘과 세베대의 아들들과 또 다른 제자 둘이 함께 있더니 
시몬 베드로가 `나는 물고기 잡으러 가노라' 하매 
저희가 `우리도 함께 가겠다' 하고 나가서 배에 올랐으나 
이 밤에 아무 것도 잡지 못하였더니 
날이 새어갈 때에 예수께서 바닷가에 서셨으나 제자들이 예수신줄 알지 못하는지라 
예수께서 이르시되 얘들아 너희에게 고기가 있느냐 ? 대답하되 없나이다 
가라사대 `그물을 배 오른 편에 던지라 그리하면 얻으리라' 하신대 이에 던졌더니 
고기가 많아 그물을 들 수 없더라" (요한복음 21장 1~6절) 
<목회기도> 

세상을 바꾸시는 하나님, 
온 세상을 녹색으로 바꾸시고 우리의 옷도 바꾸어 입게 하시니 감사합니다. 
부활과 영생을 믿는 우리들의 예배를 받으시고, 
부활과 영생을 모르는 사람들에게 
부활과 영생을 전하며 살 믿음과 용기를 주옵소서. 
오늘 드리는 회개기도에 용서하시고, 드리는 찬양과 헌신을 받아 주시고, 
땀흘리는 봉사를 통해 기쁨을 주시옵소서. 
하나님, 지금 이 세상에는 
인터넷 중독, 알콜 중독, 니코틴 중독, 도박 중독…등에 빠져 
자신의 삶을 포기하는 사람들이 점점 많아지고 있습니다. 
이런 저런 이유로 자기 목숨을 끊는 사람, 
돈 때문에,목적 때문에 남의 생명을 끊어 버리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이런 때 우리가 빛되고 소금된 삶을 살게 하여 주시옵소서. 
하나님, 우리가 오늘 예배드림으로 하나님을 만난 기쁨과 
삶을 새롭게 하는 변화가 있게 하여 주시옵소서. 
이 시간 영육간의 질병이 치료되며 
상처받은 마음이 평안해 지는 시간 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이 복된 자리에 있지 못하고 병상에 누운 환자들을 긍휼히 여겨 주시옵소서. 
군대에 나가 있는 기둥교회 젊은이들, 외국에 나가 있는 기둥교회 성도들, 
안타까운 자리에서 인터넷으로 예배에 동참하는 이들에게까지 
은혜와 평강을 허락하여 주시옵소서. 
이 귀한 시간 성령께서 역사하실 줄로 믿고 
부활하셔서 영생의 소망을 주신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하옵나이다. 아멘. 


할렐루야! 
요즘 참 좋은 계절입니다. 
온통 녹색으로 변하고 멋진 봄꽃들이 만발했습니다. 
그런데 문제가 있습니다. 
해마다 4월, 5월이 되면 예배드리는 인원이 다른 때보다 조금 줄어 듭니다. 
그러나 비가 많이 오는 날에는 인원이 많아집니다. 
그래서 저는 토요일 오후에 비가 오는 것을 좋아합니다. 
토요일에 폭우가 쏟아지고 주일 오전까지 오다가 개면 예배 드리는 인원이 많아집니다. 
이래서야 되겠습니까? 
여러분, 주일성수하며 신앙생활하시기 바랍니다. 

이렇게 좋은 때에 좋은 것만 보며 사시기 바랍니다. 
멀리 있는 꽃은 아름답습니다. 잔디도 아름답습니다. 
그런데 가까이에서 보면 벌레도 있고 짐승들의 배설물도 있습니다. 
사람이 아무리 예뻐도 좀 떨어져서 봐야 예쁩니다. 
가까이에서 코만 본다든지, 귀만 보면 징그럽습니다. 
여러분, 신앙생활하면서 부분을 보고 흠 잡지 말고 
전체를 보고 귀중히 여기며 사시기 바랍니다. 
교회도, 목사도 마찬가지입니다. 좋은 점만 보시기 바랍니다. 
좋은 것만 보시고, 좋게 말하며 사시기 바랍니다. 

어떤 글에 보니 [오빠]인지, [아저씨]인지, [할배]인지 
알 수 있는 방법이 있다고 합니다. 
▶ 오빠라는 소리에 덤덤하면 오빠, 
반색하면 아저씨, '떽!'하고 소리 지르면 할배! 라고 합니다. 
옆의 분과 "오늘 참 멋있으십니다. 오늘 좋은 분과 옆에 앉게 되어 좋습니다."라고 
인사 나누시기 바랍니다. '오빠'라고 부르지는 말고 들어서 기분 좋은 인사를 하세요. 

미국 사람들은 코미디나 개그(Gag) 프로그램을 보면 
배꼽을 잡고 데굴 데굴 굴러가며 웃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그런데 한국 사람은 잘 웃지 않습니다. 
왜 그런가했더니 미국 사람은 '어디 한번 웃어보자.'하는 마음으로 보고, 
한국 사람은 '어디 한번 웃겨봐라.' 하는 마음으로 보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오늘 이 시간에도 말씀을 들으면서 
"오늘 은혜 받아야지! 하나님은 오늘 목사님을 통해 무엇을 내게 말씀하시려는가?" 
하는 마음으로 설교를 들어야 은혜가 임하는 것입니다. 


믿음으로 보는 예수님의 부활 

오늘 본문(요 21:1~6) 말씀은 예수님께서 
"죽은 자 가운데서 살아나신 후에 
세 번째로 제자들에게 나타나신"(요21:14) 기록입니다. 예수님께서 부활하신 후 제자들에게 나타나신 두 번은 
첫 번째, 요 20:19~23에 도마 제외한 제자들(10명, 가룟유다 제외)에게 
두 번째, 요 20:26~29에 도마까지 참석한 11명의 제자들에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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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활 후 예수님께서 나타나신 기록 : 
① 막달라 마리아에게 (막16:9, 요20:11-18) 
② 여인들에게 (마28:9-10) 
③ 글로바와 그의 동행자에게 (눅24:13-15) 
④ 시몬 베드로에게 (눅24:34, 고전15:5) 
⑤ 도마를 제외한 열 제자에게 (요20:19-23) 
⑥ 도마까지 참석한 열 한 제자에게 (요20:24-29) 
여기까지는 예루살렘에서 일어난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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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후 제자들이 예수님의 말씀대로 갈릴리로 간 후 다시 나타나셨다. 
⑦ 디베랴 바다에서 일곱 제자에게 (요21:1-14) 
⑧ 갈릴리의 어떤 산에서 제자들에게 (마28:16-20) 
많은 주석가들은 이것을 9번째와 동일시함 
⑨ 오백 여 형제에게 (고전15:6) 
⑩ 주님의 형제 야고보에게 (고전 15:7) 
⑪ 예루살렘 근처 감람산에서 열 한 제자에게 (행1:4-11, 눅24:50-51) 
→ 이 밖에도 여러 번 있었겠으나, 
더 이상은 정확하게 알 수 없음(참조, 행1:3). 


본문 2절에 보면 다른 제자들은 어디 갔는지 알 수 없고 
7명의 제자들만 소개되어 있습니다. 
시몬 베드로 /디두모라 하는 도마/갈릴리 가나 사람 나다나엘 
세베대의 아들(마10:2)인 야고보와 요한 / 그리고 또 다른 제자 두 명입니다. 

그때 7명의 제자들이 함께 있었는데 
본문 3절에 보면 언제나 그랬듯이 성질 급한 베드로가 입을 열었습니다. 
"나는 물고기 잡으러 가노라" 
우리 말로 쉽게 표현하면 '에이, 고기나 잡으러 간다!'는 뜻입니다. 
그러자 다른 제자들도 "우리도 함께 가겠다"고 따라 나섰습니다. 
베드로가 말한 "나는 물고기 잡으러 가노라"에 대해 
많은 주석가들은 베드로가 타락하여 복음 전파하는 것을 더 이상 
가치 없게 여기고, 옛날의 직업으로 돌아간 것이라고 해석한다. 
그러나 Lenski나 Matthew Henry등은 그것은 지나친 해석이며, 
"그들은 주님이 다시 나타날 때까지 기다리고 있는 동안 
게으르지 않기 위해 고기 잡으러 갔을 것"이라고 해석하기도 한다. 
어쨌든 베드로의 말에 대해 지나친 해석을 하는 것은 조심스런 일이다. 


베드로를 포함한 제자들 대부분은 
이미 부활하신 예수님을 두 번이나 만났습니다. 
부활하신 예수님이 "너희에게 평강이 있을지어다"라고 선언해 주셨고, 
손의 못자국과 허리의 창자국을 보여 주셨습니다. 
그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났던 제자들은 기뻐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을 만나 기뻐했던(요20:20) 그들의 기쁨이 계속되지 못했고, 
전처럼 예수님과 동행하지도 못했습니다.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난 기쁨은 한 순간의 느낌이었을 뿐이었습니다. 
다시 말해서 예수님의 부활을 자신들의 사건으로 받아들이지 못했습니다. 

어떤 일이나 사건이… 자신에게 '직접적인 감격'이나 
'슬픔'이나 '안타까움'으로 받아들여지지 않으면… 
그 일이나 사건은 그 사람과 무관한 것이 되고 맙니다. 
- 예를 들자면, 이라크 전쟁에서 폭격으로 많은 사람들이 죽어갔습니다. 
부상당한 어린이들이 병원에 누워있는 모습도 우리는 뉴스를 통해 보았습니다. 
전쟁터에 나가 죽어간 미군, 영국 군인들이 많았습니다. 
여러분, 그 전쟁으로 인해 슬퍼해 보셨습니까? 
저나 여러분이나 우리 모두는 이라크에서의 전쟁을 구경만 했을 뿐이었습니다. 
다시 말해 우리와 상관이 없었던 일이었습니다. 
- 또 한 예를 들면 제가 예배 시간마다 
병들어 병원에 입원한 환자들을 위해 기도합니다. 
제가 환자들을 위해 기도 할 때 여러분은 "아멘, 아멘"하고 
안타까운 마음, 간절한 마음으로 그 기도에 하나가 되어 보셨습니까? 
아픈 사람 또는 가족 중에 병원에 입원해 있는 가족이 아니라면 
아마 '목사가 습관적으로 하는 기도'라고 생각할 지도 모릅니다. 
- 한 가지 더 예를 들면, 
제가 매 주일 예배 시간마다 군대간 젊은이들을 위해 기도합니다. 
그런데 군대에 간 아들이 없는 부모들은… 그 기도에 아무런 느낌이 없습니다. 
몇 년 전에 어떤 집사님이 제게 "목사님, 왜 매 주일 똑같이… 
군대간 아이들을 위해 기도하십니까?" 물으셨습니다. 
가만히 듣다보니 그분의 말씀이 
"왜 기도에 변화가 없이 매 주 같은 내용이십니까?"하는 것 같았습니다. 
저는 그때 아무 대답도 하지 않았습니다. 웃고 지나쳤습니다. 
그리고 얼마 전 주일에 제가 그 기도를 빼 먹었던 모양입니다. 
제가 좀체로 '군에 간 청년들'을 위해 기도하는 것은 잊어버리지 않는데… 
그날은 잊었던 모양입니다. 
그런데 바로 그 집사님이 입을 삐죽거리며 
"왜 군대간 아이를 위해 기도 하지 않았습니까?"라고 묻는 것이었습니다. 
알고 보니 자기 아들이 군대에 갔는데 
제가 '군대간 젊은이를 위한 기도'를 빼먹은 것입니다. 
자기 아들이 군대에 가고 나니까 그 기도가 얼마나 감사하던지… 
매번 감사하여 눈물이 났는데 
그 날은 제가 군대간 사람 위해 기도를 안하더랍니다. 

자신과 직접적인 관계가 된다고 느낄 때 감격과 감동으로 다가오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부활, 부활절… 부활과 영생을 믿는 사람들에게는 
감격과 감동, 기쁨과 감사의 복음입니다. 
"믿음은 바라는 것의 실상"입니다(히11:1) 
부활은 믿음으로 보는 사건입니다. 
믿음으로 얻는 기쁨입니다. 
믿음으로 하는 감사입니다. 
믿을 때만 의미 있는 것입니다. 


삶의 현장에서 부활을 증거하는 삶 

예수님의 부활은 '우리가 죽어도 살고 살아서 믿는 자는 
영원히 죽지 않는(요11:26) 진리를 증거 해 주는 첫 열매'(고전15:20)가 되었습니다. 
여러분은 부활을 믿으십니까? 
그렇다면 부활을 믿는 그 믿음의 기쁨과 감사가 생활로 드러나야 합니다. 
삶의 현장에서 부활을 믿는 사람으로 살아야 합니다. 

7명의 제자들은 예수님의 부활을 보았습니다. 
그러나 그 부활의 기쁨이 자신들의 것이 되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부활하신 예수님을 증거하거나 예수님과 동행하지 않고… 
그들의 삶의 터전이었던 갈릴리로 고기 잡으러 갔습니다. 

그들에게 있어서 고기잡이는 중요한 삶의 수단이었습니다. 
먹고 사는 방법이었습니다. 물론 먹고 사는 것이 중요합니다. 
그러나 어떤 마음으로 일터에 가는가가 중요합니다. 
여러분 가운데 운전을 하든, 기계를 돌리든, 학생을 가르치든, 물건을 팔든, 
어떤 일을 하든지, 그가 목사나 전도사라 할지라도… 
'어떤 마음으로 일하는 가'가 중요한 것입니다. 
비록 힘든 세상이지만…, 어려운 풍랑이 많은 세상이지만… 
"이 세상 풍파 이길 힘 주시는 주님"(찬송가 151장 2절)을 
<믿고 함께 가는가?> 가 중요합니다. 

저는 17년 전, 1986년에 그림을 그리는 집사님께 
제 얼굴이 들어 있는 그림을 선물 받았습니다. 
그때부터 그 그림은 제 서재의 출입문에 붙어 있습니다. 
지금도 붙어 있습니다. 
힘들고 어려울 때마다, 출입문을 드나들 때마다… 
저 혼자 그림을 보면서 위로와 용기를 얻습니다. 
"풍파 이길 힘주시는 주님"을 믿고 새 힘을 얻습니다. 

배의 키를 잡은 사람, 잘 생겼지요? 누구 같습니까? 
저는 이 그림을 보면서 "내 삶에 주님이 함께 계신다"는 생각을 합니다. 
저는 힘들고 어려운 일을 해결하러 갈 때, 
병든 이들을 위하여 기도하러 갈 때, 낙심한 자들을 위로하러 갈 때, 
성도들의 가정에 심방하러 갈 때도 이 그림을 보며 힘을 얻고 갑니다. 
왜냐하면, 이 그림을 보면 저는 저 혼자가 아니라 
주님이 함께 하심을 느끼기 때문입니다. 
여러분도 부활과 영생의 소망을 주신 주님과 함께 
풍파를 이기며 사는 승리자들이 되시기 바랍니다. 


고기가 있느냐?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나고도 고기를 잡으러 간 7명의 제자들은 
3년 동안이나 방치해 두었던 배를 갈릴리 호수에 띄우고 그물을 내렸습니다. 
그런데 그 밤에, 이상하게도… 한 마리도 잡지 못했습니다. 
갈릴리 호수에 고기가 마른 것도 아니고, 
고기가 어디에 있는 지, 어떻게 잡는 것인지 모르는 제자들도 아니었는데… 
아무리 3년 동안 쉬었다고 해도 
고기 잡는 것을 생업으로 하던 제자들이 밤새 헛고생만 했습니다. 
고기 잡아 먹고 사는 사람이 고기 못 잡으면 망하는 것입니다. 
고기 잡으러 간 사람이 고기 못 잡으면 나오는 것은 한 숨 뿐입니다. 
제자들이 밤새도록 한 마리도 못 잡았으니 그 기분이 어땠겠습니까? 

그런데 고기 한 마리 못 잡고 지쳐 있는 그 때, 
사람도 쉽게 분간키 어려운 아주 이른 아침에…(Early in the morning,~)(요21:4) 
한 목소리가 들려왔습니다. 
"이보슈, 친구들, 고기 좀 잡았소?" 
우리 성경에는 "얘들아, 너희에게 고기가 있느냐?"라고 되어 있습니다. 
영문 성경(NIV)에는 "친구들 고기 좀 잡았소?"라고 되어 있습니다. 
("Friends, haven't you any fish?") 
유진 피터슨(Eugene H. Peterson)이라는 사람이 번역한 
더 메시지[The Message - The New Testament in contemporary Language]라는 
성경을 보면 "좋은 아침입니다. 아침 먹을 것 좀 잡았소?" 
("Good morning! Did you catch anything for breakfast?") 
우리 식으로 표현하면 "안녕하십니까? 아침거리는 잡았소?"라는 뜻입니다. 
요즘 새로 발행된 [쉬운 성경]에 보면 
"친구들이여, 한 마리도 못 잡았느냐?"했는데 번역이 좀(?) 어색합니다. 
오히려 "친구들, 한 마리도 못 잡았나?" 아니면 
"친구들, 고기 좀 잡았소?"해야 맞는 것이라 생각됩니다. 


그때 제자들은 간단하게 답했습니다. 
"아니오." ("No.") 
우리 성경에는 "없나이다"라고 되어 있지만 
'아니요', '헛탕이요', '없소.' 라는 뜻의 단 한 마디("No.")였습니다. 


깊은 데로 가서… 고기를 잡으라 

그때 예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그렇다면 배 오른편에 그물을 내려보시오. 고기를 잡을 것이요." 
낯모르는 사람이… 배 오른편에 그물을 내리라고 했는데… 
왜 그랬는지 모르지만 제자들은 배 오른편에 그물을 내렸습니다. 


[누가복음 5장에 보면 베드로가 예수님을 만나기 전의 사건이 나옵니다. 
어느 날 베드로와 그 일행들이 밤새껏 고기 한 마리도 못 잡고, 
아침에 그물을 씻고 있었습니다. 
그때 예수님이 베드로의 배에 오르셔서 사람들을 가르치셨습니다. 
예수님이 베드로의 배에서 말씀을 가르치셨으니까 
베드로도 그 말씀을 들었을 것입니다. 
그 말씀을 듣고 보니 예수님이 새롭게 보였을 것이고, 
말씀을 듣는 중에 감동이 되었고 믿음이 생겼을 것입니다. 
"믿음은 들음에서 난다"고 했습니다.(롬10:17) 

말씀을 마치신 예수님이 그물을 씻은 사람들에게 
"깊은 데로 가서 그물을 내려 고기를 잡으라"고 했습니다. 
이미 고기 잡는 것을 마치고 그물을 씻었는데… (눅5:2) 
고기 잡는 데는 베드로가 전문가인데… (베드로는 배 주인 눅5:3) 
갈릴리에서는 주로 고기를 밤에 잡았는데… (눅5:5) 
그 아침에, 다시 그물을 내리고 싶었겠습니까? 

배에서 말씀을 전하시는 예수님의 말씀을 들은 베드로는 
예수님의 말씀을 듣고 심령의 변화를 받았습니다. 
그때 예수님이 "깊은 데로 가서 그물을 내려 고기를 잡으라"고 했습니다. 
그러자 베드로가 뭐라고 했습니까? 
"선생이여 우리들이 밤이 맞도록 수고하였으되 얻은 것이 없지마는 
말씀에 의지하여 내가 그물을 내리리이다" (눅5:5)하고 그물을 내렸습니다. 
베드로는 그물이 찢어질 정도로 많은 고기를 잡았습니다. 
그리고 사람 낚는 어부가 되기 위해 배와 그물… 등 
"모든 것을 버려 두고" 예수님을 따르는 제자가 되었습니다(눅5:11).] 


그로부터 몇 년이 지났습니다. 
예수님의 제자로 살다가 예수님의 부활을 보고도 다시 고기 잡으러 온 베드로가 
예수님을 처음 만난 날 처럼 밤새 고기 한 마리도 못잡고, 헛탕 쳤습니다. 
그런데 누군지도 모르는 사람의 
"배 오른편에 그물을 내려 보라"는 소리를 듣게 되었을 때 
누가복음 5장의 사건을 기억해 냈을 것입니다. 
밤새 고기를 못 잡았지만 
"그물을 배 오른 편에 던지라 그리하면 얻으리라"하는 소리에 
제자들은 순종하였고, 그 결과 그물을 들어 올릴 수 없을 만큼 
많은 고기를 잡았습니다.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나고도, 자신들의 일터로 돌아가 버린 제자들에게, 
밤새도록 고기 한 마리 잡지 못하고 실패한 제자들에게 찾아가셔서 
"배 오른편"을 가르쳐 주시고 고기 잡게 하셨던 그 주님이 
부활의 주님을 다시 한번 확인하고, 
부활의 예수님을 믿고 사는 우리들에게 오늘 물으십니다. 
"너희에게 고기가 있느냐?" 
이 시간 기둥교회의 예배실에서 말씀을 듣는 중에도 
고신일목사의 음성을 통해 다시 물으십니다. 
"너희에게 고기가 있느냐?" 
우리의 부족과 허물, 낭패와 실망을 발견케 하시려고 물으십니다. 
"너희에게 고기가 있느냐?" 

"없습니다" ("No.") 
예수님께서 '고기가 있느냐'고 물었을 때 
제자들은 솔직하게 '없다'고 대답했습니다. 
제자들은 실패한 자신을 솔직하게 시인했습니다. 
그때 예수님이 다시 고기를 잡게 해주셨습니다. 

주님은 지금 이 세상을 사는 우리에게 순간 순간 다가오십니다. 
말씀을 읽는 중에, 말씀을 듣는 중에, 찬송을 부르는 중에, 기도하는 중에, 
생활 속에서… 가르치시고 생각나게 하시는 성령으로(요14:26)… 다가오십니다. 
그런데 우리는 자꾸 외면합니다. 우리를 만나시려는 주님을 피합니다. 
왜 우리가 주일 성수해야 하고, 예배를 드려야 합니까? 
왜 하나님의 말씀을 들어야 하고, 읽어야 하고, 기도하고 찬송해야 합니까? 
하나님은 예배하는 자를 찾으신다고 했습니다.(요4:23) 
예배하는 자를 만나주신다고 했습니다. 
그래서 목회자들이 '예배 드려라, 예배의 자리에 참석하라'고 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사람들은 이런 저런 이유를 대고 예배의 자리에 빠지려 합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만나 주시려고 하는 예배 시간에 빠지려 합니다. 
주일 낮에만 하나님이 찾아오시는 것이 아닙니다. 
저녁예배, 수요예배… 등 여러 예배의 자리가 있습니다. 
그때마다 하나님이 우리를 만나 주시려고 하는데 우리는 자꾸 피합니다. 
주일저녁예배, 수요예배… 등 공식적인 예배에 참석치 못하는 분들… 
저는 이해가 됩니다. 먼 거리에 사시고, 일 때문에 참석하지 못하는 분들, 
이해갑니다. 이해하려 합니다 
다른 사람은 몰라도 본이 되어야 하는 권사님, 장로님에게 묻고 싶습니다. 
주일저녁예배, 수요예배… 멀리 살아서, 일 때문에 못 오십니까? 안 오십니까? 

주님은 '고기 많이 잡을 수 있는 배 오른편'을 말씀하시려고 
순간 순간 우리의 삶의 현장에, 우리들 가슴에, 예배에 찾아오십니다. 
그런데 우리는 찾아오시는 주님을 만나려 하지 않고 등을 돌립니다. 
고기 잡으러 간다는 이유로…, 이런 저런 것을 붙잡으러 간다는 이유로… 
세상 재미 잡으러, 돈 벌러, 이런 저런 이유로… 
갈릴리 호수로 고기 잡으러 간 제자들에게 찾아가신 주님이 찾아오십니다. 


천국을 향해 가는 나그네 

사실 우리는 천국을 향해 가는 나그네입니다. 
거룩한 말로 순례자라고 합니다. 
여러분이나 저나 천국을 향해 가는 나그네입니다. 
이 세상에 영원히 사는 사람은 없습니다. 
그런데도 세상 것을 붙잡는 데 급급해 하는 것이 문제입니다. 

[외국 여행을 하던 한 관광객이 유명한 현자가 있다기에 찾아갔습니다. 
길을 물어 물어 골목길을 돌아 돌아가니 달동네 같은 곳에 
얼기설기 지어진 판자집에 현자가 살고 있었습니다. 
그는 실망했습니다. 
현자라면 으리으리한 대궐 같은 집에 살 것이라고 생각했는데 
허술하기 짝이 없는 집에 살고 있었기 때문이었습니다. 
허름한 옷에 판자집에 앉아 수도하는 현자에게 나그네가 물었습니다. 
"당신이 그 유명한 이 나라 현자입니까?" 
"글쎄요. 저는 잘 모르겠소만 다른 사람은 그렇게 불러 준답니다." 
"선생님은 옷이 없어 그런 낡은 옷을 입고 계십니까? 
게다가 냉장고도 없이 사시나요? 가구도 없습니까? 자동차도 없나요? 
책 한 권 보이지 않는군요." 
실망한 투로 쏘아대는 나그네의 말을 듣던 현자가 입을 열었습니다. 
"내가 선생에게 묻겠소. 선생은 차가 있습니까?" 
"그야 물론 고국에 있지요. 제 집은 해변 근처에 있는 멋진 집인데 
거기에 좋은 차가 있습니다." 
"그러면 냉장고도 있나요? 왜 짊어지고 다니지 않습니까?" 
"그야 물론 집에 다 있지요. 저는 지금 여행 중이거든요." 
그러자 현자가 말했습니다. 
"나도 여행중입니다. 내 본향에 있는 집에 가면 모든 게 다 있습니다."] 


우리들은 다 여행객입니다. 하나님의 나라를 향해 가는 여행객입니다. 
여행객은 건강하게 잘 지내다가 집에 돌아가는 것이 목적이어야 합니다. 

우리가 살면서 부활의 증인으로, 예수 믿는 사람으로 살기를 하나님께서 원하셨지만 
이 세상에 살면서 자기 일터에 머물러 버린 사람들… 
예수 믿기 이전의 상태로 돌아간 사람들… 
은혜 받기 전으로 돌아간 사람들…, 직분 받기 이 전으로 돌아간 사람들… 
바로 우리와 같은 사람들에게 부활하신 주님이 다시 찾아 오십니다. 
"너희들이 지금 잡은 것이 무엇이냐? 지금 너희들이 붙잡으려는 것이 무엇이냐?"고 
주님이 물으십니다. 
부족과 실패를 인정하고, 주님의 말씀에 순종하며, 
하나님의 자녀로 빛되고 소금된 삶을 살라고 우리에게 다가오시는 주님이 물으십니다. 
"너희가 잡은 것이 무엇이냐? 너희가 붙잡으려는 것이 무엇이냐? 
너희가 가진 것이 무엇이냐?" 너희가 가지려는 것이 무엇이냐?" 
제자들을 향해 물으셨던 주님이, 오늘 우리에게 물으십니다. 
"너희에게 고기가 있느냐?" 


<기도> 
부활의 증인으로 예수 믿는 사람으로 살기 원하셨지만 
자신의 일터에 묻혀 버린 사람들…, 예수님 만나기 전으로 돌아간 사람들… 
은혜 받기 전으로, 직분 받기 전으로 돌아간 사람들 
바로 우리들을 찾아오시는 주님, 
갈릴리 호숫가에 고기 잡다 헛탕친 제자들에게 물으셨던 
"너희에게 고기가 있느냐?"하는 질문, 
오늘 우리들의 귀로, 우리들의 심령으로 듣게 하셨으니 감사합니다. 
부족과 실패를 인정하고, 주님의 말씀에 순종하며, 
주님과 동행하는 삶을 살 결심을 하게 하여 주시옵소서. 
부활의 증인으로, 부활을 증거하며 주님과 동행하는 평생이 되기를 간절히 소원합니다. 
말씀을 듣고 결단하는 모든 심령들의 평생을 주장하여 주시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하옵나이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