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이 무엇인가? 사도 바울은 그릇과 같다고 했습니다. 그릇은 우리의 삶에서 꼭 필요한 것입니다. 
무엇을 먹을 때 그릇이 필요하고요, 마실 때도 그릇이 필요하고요 그리고 무엇인가를 담을 때도 그릇이 필요합니다. 
그리고 그릇 가운데에는 여러 가지가 있습니다. 금 그릇, 은그릇, 놋그릇, 스텐 그릇, 질 그릇, 나무 그릇, 종이그릇 그리고 지금은 병, 캔도 있고요 플라스틱 비닐봉투와 같은 그릇도 있습니다. 
그런데 오늘 바울은 우리를 질그릇과 같다고 했습니다. 언제, 어디서 깨어질지 알 수 없는 흙으로 빚어진 하나의 질그릇이라고 합니다. 왜 그랬을까요? 바울이 살던 때나 오늘이나 역시 질그릇이 가장 일반적이고 유용하게 쓰이고 있기 때문입니다.  
오늘 본문에서 사도 바울은 '우리가 이 보배를 질그릇에 가졌으니 이는 능력의 심히 큰 것이
하나님께 있고, 우리에게 있지 아니함을 알게 하리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이 말씀은 
크게 세 가지 의미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1. 우리는 깨어지기 쉬운 그릇이라고 합니다.
바울은 자신을 깨어지기 쉬운 그릇이라고 했습니다. 이 말은 나는 의인이 아니라 죄인이라는 말입니다. “나는 죄인이다” 얼마나 아름다운 말입니까? 죄인이라는 말은 하나님과 사람 앞에서 철저히 자신을 낮추는 말입니다. 누가복음 15장에 나오는 “잃어버린 아들”이 자신의 모습을 발견했을 때 그는 말했습니다. “내가 하늘과 어버지께 죄를 얻었사오니 지금부터는 아버지의 아들이라 일컬음을 감당치 못하겠노라.” 이것이 인간 본성의 진실한 모습입니다.  
그러나 이전의 바울은 율법을 통해 구원을 얻고자 했던 철저한 완벽주의자였습니다.
그는 율법을 통해 구원을 얻을 수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부활하신 예수를 만난이후 부터는 자신의 한계와 죄인 됨을 드디어 발견하게 되었습니다. 그의 고백을 보세요. '오호라, 나는 곤고한 사람이로다. 이 사망의 몸에서 누가 나를 건져내랴' 롬7:24의 말씀입니다. 그는 이렇게 자신의 유한성과 죄성을 인정하고 이름을 바꾸었습니다. 사울, 큰 자로 부터 바울, 작은 자가 된 것입니다. 여러분도 금번 수련회 기간을 통해 사울이 바울로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여기에 자신을 깨어지기 쉬운 질그릇으로 표현하는 바울의 겸손과 진실이 있는 것입니다.

2. 질 그릇 안에 보배를 담자고 하십니다. 
프랑스의 철학자 데카르트는 인간에 대해서 생각하는 존재라고 말 했습니다. 그의 철학적 명제는 "나는 생각한다. 고로 존재한다"입니다. 이것을 말씀의 신학자 칼 바르트는 '나는 믿는다. 그러므로 나는 존재한다'라는 신학적 명제로 바꾸어 놓았습니다. 여러분 잘 생각해 보십시요. “나는 생각한다 고로 존재한다”라는 것보다 “나는 믿는다 그러므로 나는 존재한다.” 얼마나 확신에 찬 말씀입니까? 
우리는 존재 가치가 없는 존재들입니다. 우리 안에 존재 근거가 전혀 없습니다. 그러나 
우리 안에 보배로운 예수 그리스도의 생명과 능력이 있을 때 참으로 온 천하를 주고도
바꿀 수 없는 무한대의 가치가 있는 것입니다. 아무리 좋은 도자기라도 그 안에 오물을
넣으면 그 것은 변기에 지나지 않습니다. 그러나 하찮은 항아리일지라도 그것에 보물을
담으면 그것은 보물단지가 되는 것입니다.
여러분 안에 예수라는 이 보물을 가득 담으시는 여름 수련회가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3. 깨어지지 않는 그릇이 됩시다.
바울은 원래 기독교인을 핍박하던 사람이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부활하신 예수를 만난 이후부터는 이방인을 위해 특별히 세움을 받은 사도가 되었습니다. 그때부터 그는 병약한 몸으로 우리가 상상할 수도 없는 남다른 어려움을 겪어냈습니다. 
유대인들에게 잡혀 40에 하나를 감한 매를 다섯 번 맞고, 로마인에게 세 번 태장으로 맞고,
한 번 돌로 맞고, 전도 여행을 다니다가 세 번 파선하는데 일주야를 깊음에서 지내는 등,
그의 증언은 차마 들을 수 없는 환란을 털어놓고 있습니다. 고린도후서11:24-27에 나옵니다. 
질그릇 같은 인간, 바울이 몇 번이고 깨어지고 깨어졌어야 할 곡절을 겪었지만 그는 최후까지 이겨내며 복음을 전
했습니다. 그는 찬양을 했을 것입니다. “나는 비록 약하나 주 예수는 강하다. 나를 인도하시는 주, 주님께 가까이 가리라. I am weak but Thou art strong, Jesus keep me from all wrong. I'll be satisfied as long  as I walk, let me walk, close to thee." 이는 오직 하나님의 능력이었던 것입니다.
우리 한국교회의 아름다운 선교 이야기를 한개 소개하고 싶습니다.
전주 부근에 모악산이 있습니다. 전북 김제군 금산군 쪽으로 오면 금산교회가 있는데요, 금산교회는 기억자 교회가 그대로 보존 되어 있습니다. 지금부터 90여년 전 미국 선교사 테이트에 의해 세워졌습니다. 그런데 그 교회에 부자 조좌익과 그집의 종 마부 이화익이 함께 전도를 받아 예수를 믿었는데 장로 투표에서 종이 먼저 장로가 되었다고 합니다. 먹을 것이 없어서 구걸을 하며 경상도에서 전라도 까지 굴러온 이화익이 장로가 되었을 때 조좌익은 얼굴한번 붉히지 않고 이장로님을 극진히 섬겨 교회가 부흥하게 되었습니다. 조좌익은 자신보다 나이어린 이화익의 영특함을 알고 그에게 장학금을 주어 평양신학교에서 신학공부를 할 수 있도록 도와주었습니다. 이화익은 초대 교회의 훌륭한 목회자가 되었습니다. 
이와 같이 예수를 모시고 예수를 중심으로 사는 삶이 바로 깨어지지 않는 그릇입니다.
여러분 금번 수련회 기간동안에 내가 누구인가를 바로 아는 기회가 되시기를 바랍니다.
나는 깨어지기 쉬운 질그릇이다.
그러나 질 그릇 안에 보화를 담자.
그러면 이 그릇이 깨어지지 않는다.
이러한 축복을 모두 받으시는 여러분들이 되시기를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