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교
설교
글 수 616
가증한 일을 제거하라(겔 8:1-18)
오늘 본문은 하나님께서 포로로 잡혀간 에스겔에게 두 번째로 보여준 환상입니다. 첫 번째 보여준 환상에서 하나님은 예루살렘이 멸망당할 것을 보여줍니다. 당시 이스라엘 백성은 하나님의 말씀을 들어도 받아들이지 않았습니다. 마음이 굳고, 이마가 단단하여 아무리 말씀을 전해도 전혀 경청하지 않으려 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에스겔 선지자를 금강석처럼 단단하게 하겠다고 말합니다. 전파하는 사명을 가진 에스겔이 마음이 지독한 백성을 만나서 두려움에 떨지 않도록 에스겔의 마음을 강하게 무장시키는 모습이 첫 환상 속에 나옵니다. 그러면서 하나님은 에스겔 선지자에게 상징적인 행동을 하도록 부탁합니다. 어떤 행동입니까? 예루살렘의 멸망을 예견하는 다양한 행동입니다. 우선 예루살렘 성을 그린 다음 그 둘레에 토성을 쌓아 성벽을 부수는 행동을 하게 합니다. 또한 390일 동안 왼쪽으로 누어 꼼짝없이 지내고, 다음으로 오른 쪽으로 40일 동안 누어 꼼짝없이 지내게 합니다. 먹는 것도 겨우 먹고 살만큼만 먹게 합니다. 이런 여러 가지 상징적인 행동은 이스라엘의 멸망을 예고한 것입니다.
자, 이렇게 에스겔이 이상한 행동을 하자, 유다의 장로들이 에스겔 선지자에게 찾아옵니다. 장로들은 에스겔 선지자에게 이상한 행동을 한 까닭을 듣고 싶었습니다. 이에 하나님은 에스겔 선지자에게 환상 가운데 장로들과 유다 백성들이 성전에서 행동한 모습을 보여줍니다. 하나님께서 8장에서 에스겔에게 보여준 환상은 이러합니다.
먼저, 하나님은 에스겔을 예루살렘으로 데리고 갑니다. 예루살렘은 어떤 곳입니까? 하나님을 섬기는 성전이 있는 곳입니다. 그곳에서 어떤 일이 벌어지고 있는가를 보여주기 위해 하나님은 에스겔 선지자를 예루살렘으로 데리고 가는 것입니다. 에스겔 선지자가 예루살렘에 도착해서 성전으로 가는 안뜰로 들어가는 북향한 문에 투기를 격발하게 하는 우상들이 있었습니다. 그리고 뜰 문에 있는 담을 허니 각양 곤충과 가증한 짐승과 이스라엘 족속의 모든 우상들이 성전 내의 은밀한 방에다 그려 놓았습니다. 그곳에서 장로들이 하나님을 섬기는데 사용해야 할 향로를 우상을 섬기는 일에 사용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면서 이들은 성전 안에서 무슨 말을 합니까?
"여호와께서는 우리를 보지 아니하시며, 이 땅을 버리셨다."
14절에 보면, 성전 밖에서는 여인들이 담무스를 위하여 애곡합니다. 담무스는 베니게 지역에서 섬겨지던 우상으로 생명의 신을 상징했습니다. 16절에 보면, 성전 안에서 행한 가증한 일을 또 보여주는데, 약 25명의 사람들이 여호와의 전을 등지고 낯을 동으로 향하여 동방 태양에게 경배하는 모습을 보여줍니다. 하나님이 이렇게 예루살렘에서 일어나는 모든 행동을 보여주면서, 한결같이 하는 말은 무엇입니까?"가증한 일"이라는 단어를 붙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한 모든 행동은 여호와 하나님이 보시기에 가증한 일이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에스겔 선지자에게 가증한 일을 차례로 보여준 이유는 무엇일까요? 이스라엘 장로들과 백성들이 가증한 일을 행하니, 유다 장로들에게 이를 알려 반드시 떨쳐야 한다는 점을 알려주기 위해서 환상을 보여주었습니다.
한마디로 우상숭배는 하나님 보실 때에 가증한 행동입니다.
이제 왜 가증한 일을 버려야 하는 지에 대해 조목조목 살펴보도록 합시다.
1) 하나님이 혐오하시는 행동이기 때문입니다.
우상 숭배는 하나님이 가장 싫어하는 행위입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을 가나안 땅으로 인도하신 이유 가운데 하나가 갈대아 우르 지역이 우상숭배와 각종 점성술이 만연한 곳이었기 때문이기도 합니다. 또한 하나님께서 모세에게 십계명을 주실 때에도 첫째되는 계명이 나 외에 다른 신을 네게 두지 말고, 둘째 계명이 너를 위해 새긴 우상을 만들지 말라고 했습니다. 우상의 정의를 어떻게 말합니까? 너를 위해 새긴 우상이라고 했습니다. 우상은 하나님을 섬기기 위한 행동이 아닙니다. 인간 자신을 위해 섬기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을 출애굽시킨 목적이 무엇입니까? 하나님에게 예배드리기 위해서 입니다. 하나님을 위해서 출애굽을 시켰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섬기는 가장 큰 이유가 무엇입니까? 우리를 위해 섬기는 것은 아닙니다. 하나님을 위해 섬기는 것입니다. 엄밀한 의미에서 세상의 모든 종교는 인간의 행복을 추구합니다. 그런데 기독교는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존재합니다. 그런데 우상은 자신을 위해서 새깁니다. 이처럼 우상을 섬기는 일과, 하나님을 경배하는 일은 출발부터가 다릅니다. 따라서, 자신을 위해 새긴 우상들은 하나님이 좋아하실 리 업습니다. 혐오합니다.
오늘 이스라엘 백성들이 성전에서 행한 일들을 보고 모두 가증한 일들이라고 했습니다. 하나님이 혐오하는 일들을 한다는 뜻입니다. 그렇습니다. 우상숭배는 하나님이 혐오하시는 일들이기에 버려야 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어떤 존재입니까? 하나님께 영광을 드려야 하고, 하나님을 기쁘시게 해야 할 존재입니다. 하나님을 찬양해야 할 존재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만드신 목적이 무엇입니까?
(사 43:21) 이 백성은 내가 나를 위하여 지었나니 나의 찬송을 부르게 하려 함이니라
인간은 하나님을 위해 지음을 받았습니다.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고, 하나님께 찬양을 드리기 위해 지음을 받은 것입니다. 그런데 우상은 하나님이 싫어합니다. 그러니까 제거해야 하는 것입니다.
여러분, 성경을 보면, 본래 이스라엘 백성은 하나님이 보실 때에 그리 사랑을 많이 받는 자들이 아니었습니다. 에스겔 16:3,4절을 보십시오.
(겔 16:3) 네 근본과 난 땅은 가나안이요 네 아비는 아모리 사람이요 네 어미는 헷 사람이라
(겔 16:4) 너의 난 것을 말하건대 네가 날 때에 네 배꼽줄을 자르지 아니하였고 너를 물로 씻어 정결케 하지 아니하였고 네게 소금을 뿌리지 아니하였고 너를 강보에 싸지도 아니하였나니.
이스라엘 백성의 근본은 가나안이라고 했습니다. 우상 숭배가 가득한 곳입니다. 출생자체가 부정합니다. 그리고 요즘으로 말한다면, 내어다 버린 아이와 똑같았습니다. 하나님은 이런 고아를 불쌍히 여기셔서 먹이시고, 입히시고, 재우십니다. 그러자 고아와 같은 이스라엘 백성은 자라서 어떻게 되었습니까? 16:13절에 보면 왕후의 지위와 같은 자가 되었다고 말합니다. 버려진 고아와 같은 존재를 왕후와 같은 높은 위치에 올려놓았으니, 일평생 하나님을 찬양해도 부족할 것입니다. 실제로 세계 민족의 역사상 홍해가 갈라지고, 여리고성이 무너지는 것과 같은 놀라운 기적을 체험한 백성은 어디에도 없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만큼 하나님의 놀라운 일을 체험한 백성은 어디에도 없습니다. 그런데 그런 놀라운 기적을 체험한 이스라엘 백성이 어떻게 행동을 했습니까?
이들이 왕후의 지위처럼 화려하게 되자, 그 명성을 믿고 화려함을 자랑하면서 지금까지 자신들을 길러준 하나님을 배역합니다. 그리고 지나가는 자로 함께 자면서 음란한 행동을 합니다. 한마디로 말해, 하나님은 이 세상에서 별 볼일 없는 민족을 자신의 자녀로 삼아 정성껏 길러주었더니, 후에 커서 타락한 짓을 행한 것입니다. 하나님의 백성은 하나님에게 영광을 돌릴 행동을 해야 합니다. 우상숭배는 하나님이 지극히 혐오하는 일이기에 버려야 하는 것입니다.
2) 하나님의 영광을 바라보지 못하게 하기 때문입니다.
에스겔이 환상을 보았을 때에 성전 안에 찬란한 하나님의 광채, 영광의 광채가 성전에 머무는 것을 보았습니다. 이처럼 찬란한 하나님의 영광을 바라보게 되면, 사람들은 그 영광 가운데 머무르려고 합니다. 그 영광에서 떠나지 않으려 합니다. 여러분, 예수님의 제자들이 변화산에 올라가서 놀랍게 변화된 예수님의 모습을 보고 어떻게 행동을 했습니까?
베드로가 이런 말을 했습니다. 주여, 여기 있는 것이 좋사오니, 제가 주를 위해, 모세를 위해, 엘리야를 위해 초막 셋을 짓겠습니다. 여기 있는 곳이 좋다고 말합니다. 영광을 보면, 머물고 싶어합니다. 영광을 보면, 오직 하나님만을 경배하고 싶어합니다.
어떤 청년이 자매를 좋아하게 되었습니다. 그러다가 깊이 사랑에 빠집니다. 그러면 어떤 일이 벌어집니까? 나는 당신 없이는 못살아! 당신만이 최고야! 이런 말을 합니다. 다른 사람이 그 자매를 어떻게 보든, 자신은 그 자매가 가장 아름답게 보입니다. 이게 사랑입니다. 남녀간의 사랑은 사람의 눈을 멀게 합니다. 그런데 하나님의 영광은 사람의 눈을 멀게 하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영광을 바라본 사람은 오히려 눈이 밝아집니다. 지금까지 이 세상에서 가장 아름답다고 생각한 것이 가치가 없어집니다. 지금까지 이 세상에서 가장 소중하다고 생각한 것이 별로 중요하지 않게 됩니다. 지금까지 이 세상에서 가장 두려운 존재라고 생각되었던 것이 별로 두렵지 않게 됩니다. 그러기에 하나님의 영광을 바라본 사람들은 눈이 밝아져서 이 세상을 바로 볼 수 있게 된 것입니다.
보세요. 아브라함이 갈대아 우르 땅에 있을 때에 영광의 하나님이 그에게 나타났습니다. 그리고 뭐라고 말했습니까? 네 본토 친척 아비 집을 떠나 내게 네게 지시할 땅으로 가라고 말합니다. 아브라함은 자신이 자란 곳이 가장 안전한 곳이요, 행복한 곳이요, 세상에서 출세할 기반이 있는 곳이라고 생각했는데, 영광의 하나님을 본 후에 그는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했습니다.
모세가 광야에 있을 때에 하나님의 영광이 떨기나무 가운데 나타났습니다. 떨기나무에 불이 붙었는데, 꺼지지 아니했습니다. 가까이 갈려고 하니, 하나님의 목소리가 들립니다. 모세야, 모세야, 가까이 하지 말라. 네가 선 곳은 거룩한 곳이네 네 신발을 벗어라. 이는 무엇을 뜻합니까?
지금까지 모세는 자신의 마음대로 행동해 왔습니다. 그런데 그게 모두 죄악된 행동입니다. 그리고 그 죄악된 행동을 벗어버려야 영광스런 하나님을 만날 수 있습니다. 어찌 보면, 모세는 광야에서 처음으로 영광스런 하나님을 경배했습니다. 처음으로 하나님을 만났습니다. 지금까지 애굽의 궁중에서는 그 하나님을 만나보지 못했습니다. 이제 참 신을 만난 것입니다. 그리고 모세는 자신이 보았던 참 영광을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보여줄 의무가 있습니다. 하나님은 이처럼 자신의 영광을 보여준 후에, 모세에게 사명을 줍니다. 바로에게 가서 하나님에게 제사를 드리려 광야로 사흘 길쯤 걸어가야 한다고 말해라.
모세는 그 말대로 바로에게 갑니다. 그러자 바로가 뭐라고 말합니까? 여호와가 누구냐? 여호와가 누구관대 이스라엘 백성을 마음대로 나가게 하느냐? 우리도 섬기는 신이 있다. 그러니 너희들이 섬기려면 나가지 말고 여기서 섬기라고 말합니다. 바로는 하나님의 영광이 얼마나 위대한지 모릅니다. 바로는 하나님의 영광도 자신들이 섬기는 각종 우상과 다를 바 없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광야에서 섬기겠다는 모세의 제의를 거절한 것입니다.
뿐만 아니라, 모세가 지팡이를 던져 뱀을 만들자 바로의 술객들 역시 뱀을 만듭니다. 그래서 바로의 마음은 모세가 섬기는 하나님이나, 바로의 술객이 섬기는 신이나 비슷하다고 생각하게 합니다. 우상은 이처럼 사람의 판단력을 흐리게 합니다. 하나님께서 판단력이 흐리게 하는 우상을 가만히 놔두겠습니까? 영광을 도적질하는 하는 그 우상을 멸망시킬 것입니다.
성전은 하나님이 계시는 곳입니다. 거룩한 분, 세상 모든 존재로부터 영광을 받는 분이 계십니다. 영광의 광채는 오직 하나님에게서만 나옵니다. 따라서 그곳에서 하나님의 영광을 바로 보지 못하게 하는 존재가 있습니다. 그게 무엇입니까? 우상입니다. 이 우상은 하나님의 영광을 바로 보아야 할 백성들의 눈을 흐리게 합니다. 바울은 이 사실을 깨닫고 로마서 1:23절에서 이렇게 말합니다.
"썩어지지 아니하는 하나님의 영광을 썩어질 사람과 금수와 버러지 형상의 우상으로 바꾸었다."
하나님의 영광은 썩어지지 아니합니다. 그런데 사람들이 만든 우상은 어떤 존재입니까? 썩어질 존재입니다. 썩어질 사람을 신으로 만듭니다. 때로는 짐승을 섬깁니다. 이 세상의 모든 종교의 창시자를 보십시오. 모두 다 인간입니다. 이들은 신이 아닙니다. 썩어질 존재입니다. 그런데 사람들이 그 썩어질 사람을 섬깁니다. 또한 피조물을 우상으로 만들어 섬깁니다.
한마디로 우상은 하나님의 영광을 보지 못하게 하는 존재입니다. 사람들의 판단을 흐리게 하여 가짜 영광을 보게 하고, 가짜 신을 참신처럼 섬기게 합니다. 그러기에 하나님은 우상을 싫어하고, 미워하는 것입니다.
3) 하나님에 대한 의식을 희미하게 합니다.
우리가 섬기는 하나님은 살아 계신 분입니다. 죽어있는 분이 아닙니다. 그런데 어떤 사람들은 하나님을 섬긴다 하면서도 이렇게 생각합니다. 귀가 있어도 듣지 못하고, 입이 있어도 말하지 못하며, 눈이 있어도 보지 못하며, 손이 있어도 만지지 못하며, 발이 있어도 걷지 못하는 분으로 생각합니다. 한마디로 우리에게 아무런 영향을 미칠 수 없는 분으로 생각합니다. 이것은 심히 잘못된 생각입니다. 하나님은 분명 살아 계십니다. 우리의 생각과 행동을 익히 아십니다. 그리고 오늘 이 순간에도 우리의 삶을 깊이 간섭합니다. 만일 우리가 하나님을 무용지물로 여긴다면, 그건 우상을 섬기는 사람들과 하나도 다를 게 없습니다. 보십시오. 시편 기자가 우상을 섬기는 자에 대해서 어떻게 말합니까?
(시 115:5) 입이 있어도 말하지 못하며 눈이 있어도 보지 못하며
(시 115:6) 귀가 있어도 듣지 못하며 코가 있어도 맡지 못하며
(시 115:7) 손이 있어도 만지지 못하며 발이 있어도 걷지 못하며 목구멍으로 소리도 못하느니라
(시 115:8) 우상을 만드는 자와 그것을 의지하는 자가 다 그와 같으리로다
우상은 이처럼 인간에게 아무런 능력을 행할 수 없습니다. 그런데 우상을 섬긴 이스라엘 장로들이 뭐라고 말을 합니까? 12절, 하반절을 보십시오.
여호와께서 우리를 보지 아니하시며, 이 땅을 버리셨다 하느니라.
참으로 어리석을 말을 하고 있습니다. 백성의 지도자라면, 어떻게 말을 해야 하겠습니까? 여러분, 느헤미야를 보십시오. 백성들에게 하나님에 대해서 말을 할 때에 어떻게 말을 했습니까?
(느 1:5) 가로되 하늘의 하나님 여호와 크고 두려우신 하나님이여 주를 사랑하고 주의 계명을 지키는 자에게 언약을 지키시며 긍휼을 베푸시는 주여 간구하나이다
느헤미야는 하나님을 가리켜 하늘의 하나님 여호와, 크고 두려우신 하나님이라고 말했습니다. 하나님이 이 세상을 다스리지 않는다면 우리는 하나님을 두려워할 필요가 없습니다. 하나님이 죽어 계신 분이라면 하나님을 경외할 필요가 없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죽은 분이 아니고, 하나님은 멀리 계신 분도 아니시며, 하나님은 이 세상 어디에나 다 계시며, 하나님은 악인을 멸하시고, 의인을 보호하시며, 하늘을 가르시고 강림하시는 분입니다.
우리가 섬기는 하나님은 놀라운 하나님입니다. 우리는 이런 하나님을 섬깁니다. 그런데 지금 이스라엘 장로들은 하나님은 우리를 보지 아니하시며 이 땅을 버리셨다고 말합니다. 이런 신앙은 정말로 무서운 것입니다. 하나님에 대한 의식이 희박하게 하여 불신앙을 가져옵니다.
20년 전, 우리 나라의 정치가 유신 독재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을 때에, 일부 사람들은 하나님을 이렇게 묘사했습니다. 혀 짤린 하나님, 귀 먹은 하나님, 이들은 당시 사회의 암울한 상황, 인권이 유린되고, 노동자가 탄압당하고, 신문이나 방송 등 언론매체들이 제 역할을 못하자, 하나님은 귀가 먹고, 혀가 짤려서 말을 못하신 분이라고 묘사합니다. 역사의 어둠이 깊었을 때에 사람들은 하나님에 대해서 이렇게 말합니다. 오늘 본문에 나온 예루살렘 장로들도 포로로 끌려간 이스라엘 백성을 그대로 놔두고 보신 하나님을 원망하면서, 우리를 보지 아니하고, 이 땅을 버리셨다고 한탄합니다.
그러나 이 땅의 현실이 암울하다고 해서, 개인의 현실이 암울하다고 해서 하나님은 살아 계시지 않는 분이고, 하나님이 귀머거리가 아니며, 하나님의 혀가 짤린 것은 아닙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이 고통을 받는 그 가운데 계시며 함께 탄식하시는 분입니다. 결과적으로 유다 장로들이 우상을 섬기다 보니 하나님에 대한 의식마저 희미해져 살아 계신 하나님을 무용지물의 하나님으로 생각한 것입니다.
특히 하나님의 백성들이 우상을 섬기면 손해 보는 일이 많습니다. 18절을 보십시오.
하나님은 우상을 숭배하는 자들이 받을 고통에 대해 이렇게 말합니다. 긍휼을 맛보지 못하며, 부르짖을 지라도 내가 듣지 아니하리라. 기도해도 응답이 없습니다. 하나님께서 불쌍히 여기셔야 문제가 해결될 것 아닙니까? 신약시대에 수많은 질병에 걸린 사람들이 예수님에게 나아오면서 부르짖는 말이 무엇인지 아십니까?
다윗의 자손 예수여, 나를 불쌍히 여기소서.
예수님께서 나를 불쌍히 여기시고, 긍휼히 여겨야 나의 문제가 해결됩니다. 나의 문제는 내 힘으로는 해결할 수 없으니 불쌍히 여기셔서 내 문제를 해결해 주소서. 내 질병을 고쳐 주소서. 이렇게 부르짖었습니다. 그런데 우상을 섬기는 일로 인해 하나님은 더 이상 불쌍히 여기거나 긍휼을 베풀지 않겠다고 합니다. 부르짖어도 응답을 받을 수 없을 것이라고 말합니다.
결국 우상숭배는 긍휼이 풍성한 하나님을 맛볼 수 없게 합니다. 기도해도 응답을 맛볼 수 없게 합니다. 그 결과 사람들은 하나님이 보지 않으시며, 불쌍히 여기지 않으신다고 투덜거리게 되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이스라엘 백성들이 우상만을 전적으로 섬긴 것은 아닙니다. 오늘 보니 성전에서 우상을 숭배했고, 성전에서 각종 가증한 일을 행했습니다. 이것은 무엇을 말합니까? 이들이 하나님도 섬기며, 우상도 섬겼다는 것을 말합니다. 마찬가지로 오늘 이 세상에 살고 있는 그리스도인들도 이 같은 잘못을 범할 수 있습니다. 세상을 섬기며, 하나님도 섬기고, 명예를 섬기면서 하나님을 섬기고, 재물을 섬기면서 하나님을 섬깁니다. 그래서 우리가 하나님의 혐오의 대상이 되고, 하나님의 영광을 보지 못하며, 하나님에 대한 의식이 희미해진다면 참으로 불행한 신자가 되는 것입니다. 우리 자신을 다시 한번 점검합시다. 그래서 순수하고 깨끗한 신앙을 갖도록 합시다. 우리 속에 있는 더러운 오물들을 떨쳐버리고 오직 진실한 마음으로 하나님을 섬기는 자가 되길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Tweet
오늘 본문은 하나님께서 포로로 잡혀간 에스겔에게 두 번째로 보여준 환상입니다. 첫 번째 보여준 환상에서 하나님은 예루살렘이 멸망당할 것을 보여줍니다. 당시 이스라엘 백성은 하나님의 말씀을 들어도 받아들이지 않았습니다. 마음이 굳고, 이마가 단단하여 아무리 말씀을 전해도 전혀 경청하지 않으려 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에스겔 선지자를 금강석처럼 단단하게 하겠다고 말합니다. 전파하는 사명을 가진 에스겔이 마음이 지독한 백성을 만나서 두려움에 떨지 않도록 에스겔의 마음을 강하게 무장시키는 모습이 첫 환상 속에 나옵니다. 그러면서 하나님은 에스겔 선지자에게 상징적인 행동을 하도록 부탁합니다. 어떤 행동입니까? 예루살렘의 멸망을 예견하는 다양한 행동입니다. 우선 예루살렘 성을 그린 다음 그 둘레에 토성을 쌓아 성벽을 부수는 행동을 하게 합니다. 또한 390일 동안 왼쪽으로 누어 꼼짝없이 지내고, 다음으로 오른 쪽으로 40일 동안 누어 꼼짝없이 지내게 합니다. 먹는 것도 겨우 먹고 살만큼만 먹게 합니다. 이런 여러 가지 상징적인 행동은 이스라엘의 멸망을 예고한 것입니다.
자, 이렇게 에스겔이 이상한 행동을 하자, 유다의 장로들이 에스겔 선지자에게 찾아옵니다. 장로들은 에스겔 선지자에게 이상한 행동을 한 까닭을 듣고 싶었습니다. 이에 하나님은 에스겔 선지자에게 환상 가운데 장로들과 유다 백성들이 성전에서 행동한 모습을 보여줍니다. 하나님께서 8장에서 에스겔에게 보여준 환상은 이러합니다.
먼저, 하나님은 에스겔을 예루살렘으로 데리고 갑니다. 예루살렘은 어떤 곳입니까? 하나님을 섬기는 성전이 있는 곳입니다. 그곳에서 어떤 일이 벌어지고 있는가를 보여주기 위해 하나님은 에스겔 선지자를 예루살렘으로 데리고 가는 것입니다. 에스겔 선지자가 예루살렘에 도착해서 성전으로 가는 안뜰로 들어가는 북향한 문에 투기를 격발하게 하는 우상들이 있었습니다. 그리고 뜰 문에 있는 담을 허니 각양 곤충과 가증한 짐승과 이스라엘 족속의 모든 우상들이 성전 내의 은밀한 방에다 그려 놓았습니다. 그곳에서 장로들이 하나님을 섬기는데 사용해야 할 향로를 우상을 섬기는 일에 사용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면서 이들은 성전 안에서 무슨 말을 합니까?
"여호와께서는 우리를 보지 아니하시며, 이 땅을 버리셨다."
14절에 보면, 성전 밖에서는 여인들이 담무스를 위하여 애곡합니다. 담무스는 베니게 지역에서 섬겨지던 우상으로 생명의 신을 상징했습니다. 16절에 보면, 성전 안에서 행한 가증한 일을 또 보여주는데, 약 25명의 사람들이 여호와의 전을 등지고 낯을 동으로 향하여 동방 태양에게 경배하는 모습을 보여줍니다. 하나님이 이렇게 예루살렘에서 일어나는 모든 행동을 보여주면서, 한결같이 하는 말은 무엇입니까?"가증한 일"이라는 단어를 붙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한 모든 행동은 여호와 하나님이 보시기에 가증한 일이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에스겔 선지자에게 가증한 일을 차례로 보여준 이유는 무엇일까요? 이스라엘 장로들과 백성들이 가증한 일을 행하니, 유다 장로들에게 이를 알려 반드시 떨쳐야 한다는 점을 알려주기 위해서 환상을 보여주었습니다.
한마디로 우상숭배는 하나님 보실 때에 가증한 행동입니다.
이제 왜 가증한 일을 버려야 하는 지에 대해 조목조목 살펴보도록 합시다.
1) 하나님이 혐오하시는 행동이기 때문입니다.
우상 숭배는 하나님이 가장 싫어하는 행위입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을 가나안 땅으로 인도하신 이유 가운데 하나가 갈대아 우르 지역이 우상숭배와 각종 점성술이 만연한 곳이었기 때문이기도 합니다. 또한 하나님께서 모세에게 십계명을 주실 때에도 첫째되는 계명이 나 외에 다른 신을 네게 두지 말고, 둘째 계명이 너를 위해 새긴 우상을 만들지 말라고 했습니다. 우상의 정의를 어떻게 말합니까? 너를 위해 새긴 우상이라고 했습니다. 우상은 하나님을 섬기기 위한 행동이 아닙니다. 인간 자신을 위해 섬기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을 출애굽시킨 목적이 무엇입니까? 하나님에게 예배드리기 위해서 입니다. 하나님을 위해서 출애굽을 시켰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섬기는 가장 큰 이유가 무엇입니까? 우리를 위해 섬기는 것은 아닙니다. 하나님을 위해 섬기는 것입니다. 엄밀한 의미에서 세상의 모든 종교는 인간의 행복을 추구합니다. 그런데 기독교는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존재합니다. 그런데 우상은 자신을 위해서 새깁니다. 이처럼 우상을 섬기는 일과, 하나님을 경배하는 일은 출발부터가 다릅니다. 따라서, 자신을 위해 새긴 우상들은 하나님이 좋아하실 리 업습니다. 혐오합니다.
오늘 이스라엘 백성들이 성전에서 행한 일들을 보고 모두 가증한 일들이라고 했습니다. 하나님이 혐오하는 일들을 한다는 뜻입니다. 그렇습니다. 우상숭배는 하나님이 혐오하시는 일들이기에 버려야 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어떤 존재입니까? 하나님께 영광을 드려야 하고, 하나님을 기쁘시게 해야 할 존재입니다. 하나님을 찬양해야 할 존재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만드신 목적이 무엇입니까?
(사 43:21) 이 백성은 내가 나를 위하여 지었나니 나의 찬송을 부르게 하려 함이니라
인간은 하나님을 위해 지음을 받았습니다.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고, 하나님께 찬양을 드리기 위해 지음을 받은 것입니다. 그런데 우상은 하나님이 싫어합니다. 그러니까 제거해야 하는 것입니다.
여러분, 성경을 보면, 본래 이스라엘 백성은 하나님이 보실 때에 그리 사랑을 많이 받는 자들이 아니었습니다. 에스겔 16:3,4절을 보십시오.
(겔 16:3) 네 근본과 난 땅은 가나안이요 네 아비는 아모리 사람이요 네 어미는 헷 사람이라
(겔 16:4) 너의 난 것을 말하건대 네가 날 때에 네 배꼽줄을 자르지 아니하였고 너를 물로 씻어 정결케 하지 아니하였고 네게 소금을 뿌리지 아니하였고 너를 강보에 싸지도 아니하였나니.
이스라엘 백성의 근본은 가나안이라고 했습니다. 우상 숭배가 가득한 곳입니다. 출생자체가 부정합니다. 그리고 요즘으로 말한다면, 내어다 버린 아이와 똑같았습니다. 하나님은 이런 고아를 불쌍히 여기셔서 먹이시고, 입히시고, 재우십니다. 그러자 고아와 같은 이스라엘 백성은 자라서 어떻게 되었습니까? 16:13절에 보면 왕후의 지위와 같은 자가 되었다고 말합니다. 버려진 고아와 같은 존재를 왕후와 같은 높은 위치에 올려놓았으니, 일평생 하나님을 찬양해도 부족할 것입니다. 실제로 세계 민족의 역사상 홍해가 갈라지고, 여리고성이 무너지는 것과 같은 놀라운 기적을 체험한 백성은 어디에도 없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만큼 하나님의 놀라운 일을 체험한 백성은 어디에도 없습니다. 그런데 그런 놀라운 기적을 체험한 이스라엘 백성이 어떻게 행동을 했습니까?
이들이 왕후의 지위처럼 화려하게 되자, 그 명성을 믿고 화려함을 자랑하면서 지금까지 자신들을 길러준 하나님을 배역합니다. 그리고 지나가는 자로 함께 자면서 음란한 행동을 합니다. 한마디로 말해, 하나님은 이 세상에서 별 볼일 없는 민족을 자신의 자녀로 삼아 정성껏 길러주었더니, 후에 커서 타락한 짓을 행한 것입니다. 하나님의 백성은 하나님에게 영광을 돌릴 행동을 해야 합니다. 우상숭배는 하나님이 지극히 혐오하는 일이기에 버려야 하는 것입니다.
2) 하나님의 영광을 바라보지 못하게 하기 때문입니다.
에스겔이 환상을 보았을 때에 성전 안에 찬란한 하나님의 광채, 영광의 광채가 성전에 머무는 것을 보았습니다. 이처럼 찬란한 하나님의 영광을 바라보게 되면, 사람들은 그 영광 가운데 머무르려고 합니다. 그 영광에서 떠나지 않으려 합니다. 여러분, 예수님의 제자들이 변화산에 올라가서 놀랍게 변화된 예수님의 모습을 보고 어떻게 행동을 했습니까?
베드로가 이런 말을 했습니다. 주여, 여기 있는 것이 좋사오니, 제가 주를 위해, 모세를 위해, 엘리야를 위해 초막 셋을 짓겠습니다. 여기 있는 곳이 좋다고 말합니다. 영광을 보면, 머물고 싶어합니다. 영광을 보면, 오직 하나님만을 경배하고 싶어합니다.
어떤 청년이 자매를 좋아하게 되었습니다. 그러다가 깊이 사랑에 빠집니다. 그러면 어떤 일이 벌어집니까? 나는 당신 없이는 못살아! 당신만이 최고야! 이런 말을 합니다. 다른 사람이 그 자매를 어떻게 보든, 자신은 그 자매가 가장 아름답게 보입니다. 이게 사랑입니다. 남녀간의 사랑은 사람의 눈을 멀게 합니다. 그런데 하나님의 영광은 사람의 눈을 멀게 하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영광을 바라본 사람은 오히려 눈이 밝아집니다. 지금까지 이 세상에서 가장 아름답다고 생각한 것이 가치가 없어집니다. 지금까지 이 세상에서 가장 소중하다고 생각한 것이 별로 중요하지 않게 됩니다. 지금까지 이 세상에서 가장 두려운 존재라고 생각되었던 것이 별로 두렵지 않게 됩니다. 그러기에 하나님의 영광을 바라본 사람들은 눈이 밝아져서 이 세상을 바로 볼 수 있게 된 것입니다.
보세요. 아브라함이 갈대아 우르 땅에 있을 때에 영광의 하나님이 그에게 나타났습니다. 그리고 뭐라고 말했습니까? 네 본토 친척 아비 집을 떠나 내게 네게 지시할 땅으로 가라고 말합니다. 아브라함은 자신이 자란 곳이 가장 안전한 곳이요, 행복한 곳이요, 세상에서 출세할 기반이 있는 곳이라고 생각했는데, 영광의 하나님을 본 후에 그는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했습니다.
모세가 광야에 있을 때에 하나님의 영광이 떨기나무 가운데 나타났습니다. 떨기나무에 불이 붙었는데, 꺼지지 아니했습니다. 가까이 갈려고 하니, 하나님의 목소리가 들립니다. 모세야, 모세야, 가까이 하지 말라. 네가 선 곳은 거룩한 곳이네 네 신발을 벗어라. 이는 무엇을 뜻합니까?
지금까지 모세는 자신의 마음대로 행동해 왔습니다. 그런데 그게 모두 죄악된 행동입니다. 그리고 그 죄악된 행동을 벗어버려야 영광스런 하나님을 만날 수 있습니다. 어찌 보면, 모세는 광야에서 처음으로 영광스런 하나님을 경배했습니다. 처음으로 하나님을 만났습니다. 지금까지 애굽의 궁중에서는 그 하나님을 만나보지 못했습니다. 이제 참 신을 만난 것입니다. 그리고 모세는 자신이 보았던 참 영광을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보여줄 의무가 있습니다. 하나님은 이처럼 자신의 영광을 보여준 후에, 모세에게 사명을 줍니다. 바로에게 가서 하나님에게 제사를 드리려 광야로 사흘 길쯤 걸어가야 한다고 말해라.
모세는 그 말대로 바로에게 갑니다. 그러자 바로가 뭐라고 말합니까? 여호와가 누구냐? 여호와가 누구관대 이스라엘 백성을 마음대로 나가게 하느냐? 우리도 섬기는 신이 있다. 그러니 너희들이 섬기려면 나가지 말고 여기서 섬기라고 말합니다. 바로는 하나님의 영광이 얼마나 위대한지 모릅니다. 바로는 하나님의 영광도 자신들이 섬기는 각종 우상과 다를 바 없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광야에서 섬기겠다는 모세의 제의를 거절한 것입니다.
뿐만 아니라, 모세가 지팡이를 던져 뱀을 만들자 바로의 술객들 역시 뱀을 만듭니다. 그래서 바로의 마음은 모세가 섬기는 하나님이나, 바로의 술객이 섬기는 신이나 비슷하다고 생각하게 합니다. 우상은 이처럼 사람의 판단력을 흐리게 합니다. 하나님께서 판단력이 흐리게 하는 우상을 가만히 놔두겠습니까? 영광을 도적질하는 하는 그 우상을 멸망시킬 것입니다.
성전은 하나님이 계시는 곳입니다. 거룩한 분, 세상 모든 존재로부터 영광을 받는 분이 계십니다. 영광의 광채는 오직 하나님에게서만 나옵니다. 따라서 그곳에서 하나님의 영광을 바로 보지 못하게 하는 존재가 있습니다. 그게 무엇입니까? 우상입니다. 이 우상은 하나님의 영광을 바로 보아야 할 백성들의 눈을 흐리게 합니다. 바울은 이 사실을 깨닫고 로마서 1:23절에서 이렇게 말합니다.
"썩어지지 아니하는 하나님의 영광을 썩어질 사람과 금수와 버러지 형상의 우상으로 바꾸었다."
하나님의 영광은 썩어지지 아니합니다. 그런데 사람들이 만든 우상은 어떤 존재입니까? 썩어질 존재입니다. 썩어질 사람을 신으로 만듭니다. 때로는 짐승을 섬깁니다. 이 세상의 모든 종교의 창시자를 보십시오. 모두 다 인간입니다. 이들은 신이 아닙니다. 썩어질 존재입니다. 그런데 사람들이 그 썩어질 사람을 섬깁니다. 또한 피조물을 우상으로 만들어 섬깁니다.
한마디로 우상은 하나님의 영광을 보지 못하게 하는 존재입니다. 사람들의 판단을 흐리게 하여 가짜 영광을 보게 하고, 가짜 신을 참신처럼 섬기게 합니다. 그러기에 하나님은 우상을 싫어하고, 미워하는 것입니다.
3) 하나님에 대한 의식을 희미하게 합니다.
우리가 섬기는 하나님은 살아 계신 분입니다. 죽어있는 분이 아닙니다. 그런데 어떤 사람들은 하나님을 섬긴다 하면서도 이렇게 생각합니다. 귀가 있어도 듣지 못하고, 입이 있어도 말하지 못하며, 눈이 있어도 보지 못하며, 손이 있어도 만지지 못하며, 발이 있어도 걷지 못하는 분으로 생각합니다. 한마디로 우리에게 아무런 영향을 미칠 수 없는 분으로 생각합니다. 이것은 심히 잘못된 생각입니다. 하나님은 분명 살아 계십니다. 우리의 생각과 행동을 익히 아십니다. 그리고 오늘 이 순간에도 우리의 삶을 깊이 간섭합니다. 만일 우리가 하나님을 무용지물로 여긴다면, 그건 우상을 섬기는 사람들과 하나도 다를 게 없습니다. 보십시오. 시편 기자가 우상을 섬기는 자에 대해서 어떻게 말합니까?
(시 115:5) 입이 있어도 말하지 못하며 눈이 있어도 보지 못하며
(시 115:6) 귀가 있어도 듣지 못하며 코가 있어도 맡지 못하며
(시 115:7) 손이 있어도 만지지 못하며 발이 있어도 걷지 못하며 목구멍으로 소리도 못하느니라
(시 115:8) 우상을 만드는 자와 그것을 의지하는 자가 다 그와 같으리로다
우상은 이처럼 인간에게 아무런 능력을 행할 수 없습니다. 그런데 우상을 섬긴 이스라엘 장로들이 뭐라고 말을 합니까? 12절, 하반절을 보십시오.
여호와께서 우리를 보지 아니하시며, 이 땅을 버리셨다 하느니라.
참으로 어리석을 말을 하고 있습니다. 백성의 지도자라면, 어떻게 말을 해야 하겠습니까? 여러분, 느헤미야를 보십시오. 백성들에게 하나님에 대해서 말을 할 때에 어떻게 말을 했습니까?
(느 1:5) 가로되 하늘의 하나님 여호와 크고 두려우신 하나님이여 주를 사랑하고 주의 계명을 지키는 자에게 언약을 지키시며 긍휼을 베푸시는 주여 간구하나이다
느헤미야는 하나님을 가리켜 하늘의 하나님 여호와, 크고 두려우신 하나님이라고 말했습니다. 하나님이 이 세상을 다스리지 않는다면 우리는 하나님을 두려워할 필요가 없습니다. 하나님이 죽어 계신 분이라면 하나님을 경외할 필요가 없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죽은 분이 아니고, 하나님은 멀리 계신 분도 아니시며, 하나님은 이 세상 어디에나 다 계시며, 하나님은 악인을 멸하시고, 의인을 보호하시며, 하늘을 가르시고 강림하시는 분입니다.
우리가 섬기는 하나님은 놀라운 하나님입니다. 우리는 이런 하나님을 섬깁니다. 그런데 지금 이스라엘 장로들은 하나님은 우리를 보지 아니하시며 이 땅을 버리셨다고 말합니다. 이런 신앙은 정말로 무서운 것입니다. 하나님에 대한 의식이 희박하게 하여 불신앙을 가져옵니다.
20년 전, 우리 나라의 정치가 유신 독재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을 때에, 일부 사람들은 하나님을 이렇게 묘사했습니다. 혀 짤린 하나님, 귀 먹은 하나님, 이들은 당시 사회의 암울한 상황, 인권이 유린되고, 노동자가 탄압당하고, 신문이나 방송 등 언론매체들이 제 역할을 못하자, 하나님은 귀가 먹고, 혀가 짤려서 말을 못하신 분이라고 묘사합니다. 역사의 어둠이 깊었을 때에 사람들은 하나님에 대해서 이렇게 말합니다. 오늘 본문에 나온 예루살렘 장로들도 포로로 끌려간 이스라엘 백성을 그대로 놔두고 보신 하나님을 원망하면서, 우리를 보지 아니하고, 이 땅을 버리셨다고 한탄합니다.
그러나 이 땅의 현실이 암울하다고 해서, 개인의 현실이 암울하다고 해서 하나님은 살아 계시지 않는 분이고, 하나님이 귀머거리가 아니며, 하나님의 혀가 짤린 것은 아닙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이 고통을 받는 그 가운데 계시며 함께 탄식하시는 분입니다. 결과적으로 유다 장로들이 우상을 섬기다 보니 하나님에 대한 의식마저 희미해져 살아 계신 하나님을 무용지물의 하나님으로 생각한 것입니다.
특히 하나님의 백성들이 우상을 섬기면 손해 보는 일이 많습니다. 18절을 보십시오.
하나님은 우상을 숭배하는 자들이 받을 고통에 대해 이렇게 말합니다. 긍휼을 맛보지 못하며, 부르짖을 지라도 내가 듣지 아니하리라. 기도해도 응답이 없습니다. 하나님께서 불쌍히 여기셔야 문제가 해결될 것 아닙니까? 신약시대에 수많은 질병에 걸린 사람들이 예수님에게 나아오면서 부르짖는 말이 무엇인지 아십니까?
다윗의 자손 예수여, 나를 불쌍히 여기소서.
예수님께서 나를 불쌍히 여기시고, 긍휼히 여겨야 나의 문제가 해결됩니다. 나의 문제는 내 힘으로는 해결할 수 없으니 불쌍히 여기셔서 내 문제를 해결해 주소서. 내 질병을 고쳐 주소서. 이렇게 부르짖었습니다. 그런데 우상을 섬기는 일로 인해 하나님은 더 이상 불쌍히 여기거나 긍휼을 베풀지 않겠다고 합니다. 부르짖어도 응답을 받을 수 없을 것이라고 말합니다.
결국 우상숭배는 긍휼이 풍성한 하나님을 맛볼 수 없게 합니다. 기도해도 응답을 맛볼 수 없게 합니다. 그 결과 사람들은 하나님이 보지 않으시며, 불쌍히 여기지 않으신다고 투덜거리게 되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이스라엘 백성들이 우상만을 전적으로 섬긴 것은 아닙니다. 오늘 보니 성전에서 우상을 숭배했고, 성전에서 각종 가증한 일을 행했습니다. 이것은 무엇을 말합니까? 이들이 하나님도 섬기며, 우상도 섬겼다는 것을 말합니다. 마찬가지로 오늘 이 세상에 살고 있는 그리스도인들도 이 같은 잘못을 범할 수 있습니다. 세상을 섬기며, 하나님도 섬기고, 명예를 섬기면서 하나님을 섬기고, 재물을 섬기면서 하나님을 섬깁니다. 그래서 우리가 하나님의 혐오의 대상이 되고, 하나님의 영광을 보지 못하며, 하나님에 대한 의식이 희미해진다면 참으로 불행한 신자가 되는 것입니다. 우리 자신을 다시 한번 점검합시다. 그래서 순수하고 깨끗한 신앙을 갖도록 합시다. 우리 속에 있는 더러운 오물들을 떨쳐버리고 오직 진실한 마음으로 하나님을 섬기는 자가 되길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