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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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방에 대한 주님의 가르침”(마 10:5-15)
결실의 계절 가을철을 맞이하여 이제 새롭게 각성하고 무장하기 위해서 금주 화요일(7일)과 목요일(9일) 이틀 동안 추계 가을 대 심방을 갖습니다. 금번의 심방이 평생 잊지 못하는 심방이 되도록 영적으로나 정신적으로나 환경적으로나 충분히 준비해야 합니다. 준비된 심방은 아름답습니다. 심방의 필요성을 인식해야 합니다. “심방이 없이도 잘 살았는데, 무슨 심방이 필요 있습니까?”라고 생각해서는 안 됩니다. 심방은 필요합니다.
▶ 그런데 추계 대심방이라고 말하지 않고 ‘추계 축복 대심방’이라고 하는 이유는 무엇입니까? 그렇다면 다른 심방은 축복의 심방이 아니고 대 심방만 축복의 심방입니까? 아닙니다. 모든 심방은 축복의 심방이 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일년 봄, 가을로 하는 대 심방은 특별한 마음과 자세를 가지고 하는 측면으로 볼 때에 심방을 잘 받는다면 더욱 하나님의 축복과 은혜가 넘칠 것입니다.
▶ 그런데 우리가 여기에서 놓치지 말아야 할 것이 있습니다. 그것이 무엇입니까? 심방을 단순하게 “축복을 받는 심방”이라는 평면적인 이미지로 이해할 것이 아니라 심방을 통하여 하나님과의 관계가 회복되고 하나님께서 우리 가정에 주시는 의도하시고 목적하시는 것이 무엇인가를 발견할 수 있어야 합니다.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고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것이 무엇인지에 대해서 고민하는 몸부림이 있어야 합니다. 그리고 이러한 과정들을 통하여 믿음의 자리에 서서 은혜의 골짜기로 더 깊이 들어가는 전환점(轉換點)이 되어야 합니다. 이러한 요소가 충족한 심방이라면 그 심방은 축복의 심방이 될 수밖에 없을 것이고, 평생 잊지 못한 심방이 될 것입니다.
▶ 그렇다면 심방이란 무엇입니까?
심방이란 주의 종들이 주의 이름으로 각 가정을 방문하는 일을 말합니다. 그런데 ‘심방’이란 말을 헬라어로 표현하면 ‘에피스켚 토마이”라는 말입니다. 이 말은 ꡒ방문한다, 돌아본다, 권고한다ꡓ라는 뜻입니다. 심방은 심방 받는 성도님에게 하나님의 말씀과 기도로 격려하고 위로하고, 권고와 위로하여 하나님을 만나도록 하는데 목적이 있습니다. 단순한 방문만이 아닙니다. 하나님을 만나도록 권고하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예배는 하나님과의 만남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심방은 히브리서 기자가 우리에게 "서로 돌아보아 사랑과 선행을 격려하며 모이기를 폐하는 어떤 사람들의 습관과 같이 하지 말고 오직 권하여 그날이 가까움을 볼수록 더욱 그리하자"(히10:24-25)고 권면하고 있는 것처럼 서로 돌아보고 사랑과 선행을 격려하는 것입니다. 자기 자신의 정체성을 인식케 하여 하나님께 돌아가도록 해야 합니다.
▶ 그런데 성경을 보면, 심방은 원래 하나님께서 시작하신 일입니다. 죄를 범한 인생들을 하나님께서 찾아 주시고 권고하시고 구원하여 주셨습니다.
▶ 창 3:9에서 “여호와 하나님이 아담을 부르시며 그에게 이르시되 네가 어디 있느냐!”라고 말씀하고 있는 것처럼 하나님께서 범죄한 아담을 찾아 오셨습니다.
▶ 창16:8에서 “가로되 사래의 여종 하갈아 네가 어디서 왔으며 어디로 가느냐 그가 가로되 나는 나의 여 주인 사래를 피하여 도망하나이다. 여호와의 사자가 그에게 이르되 네 여주인에게로 돌아가서 그 수하에 복종하라”고 말씀하고 있는 것처럼 사라에게 내쫓김을 당한 하갈을 찾아오셨습니다. 그렇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범죄한 인생, 곤고한 인생들을 찾아오셔서 심방해 주셨습니다.
▶ 왕상 19:5-6에서 “스스로 광야로 들어가 하룻 길쯤 행하고 한 로뎀나무 아래 앉아서 죽기를 구하여 가로되 여호와여 넉넉하오니 지금 내 생명을 취하옵소서 나는 내 열조보다 낫지 못하니이다 하고 로뎀나무 아래 누워 자더니 천사가 어루만지며 이르되 일어나서 먹으라 하는지라"라고 말씀하고 있는 것처럼 하나님께서는 로뎀 나무 아래서 죽기를 작정했던 엘리야 선지자를 찾아오셔서 위로하시고 새 힘을 주셨습니다.(왕상 19:5) 하나님의 사역자들이 주님을 일을 하다가 힘들어 할 때에도 심방해 주셨습니다.
▶ 사 38:5 하반 절에서 “내가 네 기도를 들었고 네 눈물을 보았노라 내가 네 수한에 십오 년을 더하고”라고 말씀하고 있는 것처럼 하나님께서는 병들어 죽게 된 히스기야 왕에게 이사야 선지자를 보내셔서 그의 병을 치료하심과 생명을 연장시켜 주심에 대해서 말씀해 주셨습니다.(사 38:5) 하나님께서 병든 자를 찾아오시고 병을 고쳐주시고, 새 힘을 주셨습니다.
▶ 그런데 하나님의 심방 중에서 최고의 심방은 주님께서 성육신하여 우리와 함께 하여 주인이 되시고 복되신 심방입니다.
그래서 요한 사도는 요1:14에서 “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거하시매 우리가 그 영광을 보니 아버지의 독생자의 영광이요 은혜와 진리가 충만하더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마 4:23에서 “예수께서 온 갈릴리에 두루 다니사 저희 회당에서 가르치시며 천국 복음을 전파하시며 백성 중에 모든 병과 모든 약한 것을 고치시니”라고 말씀하고 있는 것처럼 주님께서 자기의 종들을 시키셔서 그 성도들을 돌아보며 권계하며 축복하셨습니다. 이러한 사명은 제자들에게만 있는 것이 아니라 바로 우리 모두에게 있습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이 살전 2:11,12과 5:14에서 “너희도 아는 바와 같이 우리가 너희 각 사람에게 아비가 자기 자녀에게 하듯 권면하고 위로하고 경계하노니 이는 너희를 부르사 자기 나라와 영광에 이르게 하시는 하나님께 합당히 행하게 하려 함이니라... 규모 없는 자들을 권계하며 마음이 약한 자들을 안위하고 힘이 없는 자들을 붙들어 주며 모든 사람을 대하여 오래 참으라”고 말씀하고 있는 것처럼 하나님께서는 모든 시대를 통하여, 교역자나 성도들이 하나님의 뜻에 따라, 서로를 찾아 위로와 권면과 친교를 하며 축복하며 그 이웃들을 전도하는 아름다운 관계를 이룰 수 있도록 축복의 시간을 주셨는데, 바로 그것이 심방입니다.
이러한 측면에서 볼 때에 우리는 본문을 통하여 심방에 대한 주님의 가르침을 함께 생각해 보면서 은혜를 나누고자 합니다. 본문은 2000년 전에 이미 예수께서 12제자를 주의 이름으로 파송 즉 심방 하게 하셨음을 알게 합니다. 물론 본문에 나오는 12제자의 파송은 순수한 복음전파를 목적으로 한 것으로 기성교인에 대한 심방과는 그 배경에 있어서 약간의 차이점이 있습니다. 그러나 그 내용에 있어서는 거의 차이가 없다고 볼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오늘 본문의 말씀은 심방하고 심방 받는 모든 분들에게 꼭 필요한 교훈의 말씀입니다.
1.우리는 먼저 심방을 주관하는 분이 누구인지를 알아야 합니다.
본문 5-6절에서 "예수께서 이 열둘을 내어 보내시며 명하여 가라사대 이방인의 길로도 가지 말고 사마리아인의 고을에도 들어가지 말고/ 차라리 이스라엘 집의 잃어버린 양에게로 가라"고 말씀하고 있는 것처럼 심방을 계획하시고 주관하시는 분은 바로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5-6절)
① <예수께서> ② <이 열둘을 내어 보내시며> ③ <이스라엘 집의 잃어버린 양에게로 가라>고 하셨습니다. 심방의 주체는 목회자도 아니며 성도들도 아닙니다. 바로 주님이십니다.
예를 들어 ① 신약성경 사도행전 10장에는 베드로가 고넬료의 집을 심방 하는 내용이 나오는데 그 때도 베드로나 고넬료가 주체가 아니라 하나님께서 주관하셨음을 봅니다. 하나님께서 고넬료를 사랑하셔서 베드로를 그 가정에 보내셨고 넘치는 은혜로 채워 주셨습니다.
② 구약성경 열왕기상 17장에 보면 엘리야가 사렙다 과부의 집을 심방 하는 내용이 나오는데 그 때도 하나님께서 엘리야를 그 과부의 집에 보내시었고 놀라운 은혜를 체험하게 됩니다.
③ 사 38장에서 말씀하고 있는 것처럼 하나님께서 병들어 죽어가는 히스기야 왕에게 이사야 선지자를 보내셔서 심방해 주셨습니다. 그리고 그에게 소망과 새 힘을 주셨습니다.
대 심방도 마찬가지입니다. 담임목사의 계획과 뜻에 따라 가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섭리와 뜻에 따라 하나님의 말씀을 가지고 하나님의 은혜를 전하기 위하여 하나님의 능력을 가지고 가는 것입니다.
목사의 방문은 하나님의 전권을 위임받아 나아가는 것입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은 고후 5:20에서 “이러므로 우리가 그리스도를 대신하여 사신이 되어 하나님이 우리로 너희를 권면하시는 것 같이 그리스도를 대신하여 간구하노니 너희는 하나님과 화목하라”고 권면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목사와 심방 대원을 파송하신 분은 하나님께서 심방대원들을 보내시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심방을 받는 가정은 하나님을 영접하듯 심방을 받을 수 있어야 합니다.
그러므로 심방을 받는 가정은 주님을 기다리는 심정으로 심방을 기다려야 합니다. 고넬료는 식구들은 물론 일가친척, 이웃들까지 다 초청하여 베드로를 기다렸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을 기다리듯 심방 자를 기다렸습니다. 우리의 심방이 낮에만 이루어져서 남편이나 자녀들은 심방에 참여하기가 매우 어려운 안타까운 문제가 있습니다. 그런데 어떤 가정을 보면 심방 시에 일부러 직장에서 틈을 내어 같이 심방에 참여하시는 분들도 계십니다. 그만큼 심방을 귀하게 여기시기 때문일 것입니다.
2. 심방의 목적이 무엇인지를 알아야 합니다.
①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는 일입니다.(7절)
본문 7절에서 "가면서 전파하여 말하되 천국이 가까왔다 하고"라고 말씀하고 있는 것처럼 심방의 첫 번째 목적은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는 일입니다. 그렇다면 하나님의 말씀의 내용이 무엇입니까? 그것은 마 4:17과 막 1:15에서 "이 때부터 예수께서 비로소 전파하여 가라사대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웠느니라 하시더라... 가라사대 때가 찼고 하나님 나라가 가까웠으니 회개하고 복음을 믿으라 하시더라"라고 말씀하고 있는 것처럼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웠다>,<때가 찼고 하나님 나라가 가까웠으니 회개하고 복음을 믿으라>는 것은 복음 내용의 핵심입니다.
그러므로 믿음 안에서, 사랑하면서, 소망 가운데 살아가라는 것입니다. 이 내용은 각 가정에 적절한 말씀으로 다양하게 전하여지게 될 것입니다. 이 복음을 전하는 것은 심방의 가장 중요한 목적입니다.
복음 속에는 영혼을 위한 만나가 있으며, 영원한 구원이 있으며, 위로와 책망과 새롭게 하는 말씀이 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은혜의 빛입니다. 그러므로 심방은 하나님의 말씀으로 권고하여 영적 잠에서 깨어나 하나님의 은혜를 갈망하게 하는 중대한 일입니다.
심방받는 심령으로 하여금 하나님의 말씀으로 새롭게 빚어지도록 도와주어야 합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을 통하여 인간의 실존과 현실 속에서 하나님의 뜻이 무엇인지를 알아야 합니다. 현실과 현실 초월의 두 축을 다 포함한 통합적인 삶이 무엇인지를 깨달도록 해 주어야 합니다. 현실을 초월해 살되 현실 속에서 어떻게 살아야 할 것인가에 대해서 고민하도록 해 주어야 합니다.
복음이란 죽어가는 영혼을 살리는 것입니다. 소망이 없는 심령에게 소망을 주고, 비전이 없는 심령에게 비전을 주고, 잘못된 심령에게 성령의 위로와 역사로 책망하고 권고하여 바로 서도록 해야 합니다. 심방을 통하여 각 심령 위에 죄에 대하여, 의에 대하여, 심판에 대하여 권고하시는 성령님의 역사를 체험하도록 도와주어야 합니다.
따라서 심방은 단순하게 복을 빌어주시는 것만이 아닙니다. 심방은 격려와 위로도 있어야 하지만, 때때로 책망과 치료로 있어야 합니다. 하나님은 사랑의 하나님이시지만, 동시에 하나님은 공의의 하나님이시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심방을 통하여 하나님과의 진정한 회복을 있도록 도와주어야 합니다.
목사는 하나님의 말씀을 가지고 심방 받는 가정이 하나님과 화목된 가정으로 나아가도록 도와주어야 합니다. 하나님을 신뢰하는 믿음을 찾고 하나님을 확신하도록 도와주어야 합니다. 목사는 하나님의 말씀을 통하여 심방 받는 가정이 하나님을 신뢰하는 믿음으로 나아가도록 도와주어야 합니다. 이것이 복음의 핵심이고 예수님의 삶의 핵심이었습니다. 그러므로 심방을 받는 가정은 하나님의 말씀을 받아 들어야 합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을 통하여 우리가 어떤 방향성을 가져야 할지, 어떤 자세와 태도, 어떤 마음과 생각을 가져야 할지를 깨달아야 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내게 맞추어 지는 것이 아니라 내가 하나님의 말씀에 맞추어져야 합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의 말씀이 삶의 기준이기 때문입니다.
목사는 이 복음의 말씀을 받아 소중하게 가지고 갑니다. 어떤 분은 그 날에 주신 말씀을 붙들고 일년을 살아 어려웠던 회사도 다시 살리고 믿음도 크게 성장한 가정이 있습니다. 그런데 어떤 가정은 그것을 잘 몰라서 말씀을 듣다가 밥물 보러 가기도 하고, 전화 받기도 하고, 아기 때문에 신경 쓰기도 합니다. 그럴 때 목사는 맥이 빠지게 됩니다. 미리 말씀을 들을 수 있는 모든 것을 준비하여야 합니다. 음식은 준비하지 않아도 말씀은 잘 들으셔야 합니다. 하나님의 은혜는 말씀을 통하여 내리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중요한 것은 영접하는 자 그 이름을 믿는 자들에게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신 것처럼(요 112) 하나님의 말씀을 받아들이지 아니하면 아무 소용이 없습니다. 신명기 30:19-20에서 말씀하고 있는 것처럼 하나님께서는 생명과 사망, 복과 저주를 우리 앞에 두셨는데,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을 순종함으로 생명과 복을 받아야 합니다. 생명과 복을 주시는 분은 분명히 하나님이시지만 그 하나님께서 쌓아두신 은혜 곧 생명과 복을 받으려면 사모함이 없이는 결코 풍성한 은혜를 받을 수 없습니다. 여호와를 앙망하는 자에게 새 힘을 공급해 주신다는 것을 결코 잊지 말아야 합니다.(사 40:31)
② 가정의 문제를 믿음 안에서 해결 받는 일입니다.(8절)
본문 8절에서 "병든 자를 고치며 죽은 자를 살리며 문둥이를 깨끗하게 하며 귀신을 쫓아내되 너희가 거저 받았으니 거저 주어라"고 말씀하고 있는 것처럼 가정의 문제를 믿음 안에서 해결받는 일입니다.
그렇습니다. 가정마다 각 가정이 안고 있는 여러 어려운 문제들이 있습니다. 질병의 문제, 자녀들의 문제, 직장의 문제 사업의 문제, 가족 상호 간의 문제 등 여러 문제들이 있습니다. 심방은 이러한 모든 문제들을 믿음과 기도로 직접적으로 해결 받는 시간입니다.
야고보는 약 513-18에서 이렇게 말합니다. "너희 중에 고난 당하는 자가 있느냐 저는 기도할 것이요 즐거워하는 자가 있느냐 저는 찬송할지니라/ 너희 중에 병든 자가 있느냐 저는 교회의 장로들을 청할 것이요 그들은 주의 이름으로 기름을 바르며 위하여 기도할지니라/ 믿음의 기도는 병든 자를 구원하리니 주께서 저를 일으키시리라 혹시 죄를 범하였을지라도 사하심을 얻으리라/ 이러므로 너희 죄를 서로 고하며 병 낫기를 위하여 서로 기도하라 의인의 간구는 역사 하는 힘이 많으니라/ 엘리야는 우리와 성정이 같은 사람이로되 저가 비오지 않기를 간절히 기도한즉 삼 년 육 개월 동안 땅에 비가 아니 오고/ 다시 기도한즉 하늘이 비를 주고 땅이 열매를 내었느니라"
그렇습니다. 사렙다 과부는 아들과 함께 한끼 먹고 죽을 수밖에 없는 식량 밖에 없었지만 엘리야의 심방으로 인하여 기근이 끝날 때까지 수년 동안의 식생활을 해결 받을 수 있었습니다. 이번 대 심방으로 인하여 여러분의 가정의 문제가 해결되는 놀라운 역사가 일어나기를 원합니다.
③ 평안을 기원하는 일입니다.(12-13절)
본문 12-13절에서 "또 그 집에 들어가면서 평안하기를 빌라/ 그 집이 이에 합당하면 너희 빈 평안이 거기 임할 것이요 만일 합당치 아니하면 그 평안이 너희에게 돌아올 것이니라"고 말씀하고 있는 것처럼 평안을 기원하는 일이 심방의 목적입니다.
<그 집에 들어가면서 평안하기를 빌라!> 이 명령에 따라 담임목사가 그 가정에 심방을 가서 제일 먼저 하는 일은 그 가정의 평안을 위하여 기도하는 일입니다. "하나님! 이 가정에 거하는 모든 식구들에게 평안을 주옵소서!"
이 기도는 심방 하는 모든 분들의 동일한 기도이기도 합니다. 이 일은 얼마나 귀한 일입니까? 심방 대원 모든 분들이 자신과 모든 식구들을 위하여 간절하게 하나님의 평화가 임하기를 기도해야 합니다. 그리할 때에 그 가정에 하나님께서 샬롬의 역사가 나타나게 됩니다.
그리스도인들의 가장 최고의 행복(幸福)은 하나님의 은혜 안에서 평안을 얻는 일입니다. 참된 평안은 돈과 권력과 쾌락을 통하여 얻어지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로부터 얻어지는 것입니다. 하늘로부터 내려오는 것입니다. "평화 평화로다 하늘 위에서 내려오네 그 사랑의 물결이 영원토록 내 영혼을 덮으소서" (469장 후렴)
그런데 기억할 것은 목사와 심방대원들이 하나님의 이름으로 평안을 기원했는데, 그 집에 합당하지 아니하면 그 평안이 평안을 기원한 사람에게 다시 돌아간다는 사실을 명심해야 합니다. 그러므로 사모하는 심령으로 깨끗한 심령으로, 준비된 심령으로 하나님의 평안을 받을 준비를 해야 합니다. 그러나 기억할 것은 평안은 사람이 주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주시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 평안은 세상 것과는 비교도 되지 않는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요 14:27) 하나님의 평안함을 받으면 비록 세상에 살면서 환난을 당한다고 할지라도 결코 좌절하지 않고 넉넉히 이겨 승리하는 역사를 체험하게 될 것입니다.(요 16:33) 그러기에 우리에게는 하나님께서 주시는 평안함이 절대로 필요합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주시는 평안이 없으면 잠을 자도 잔 것같지 아니하고 늘 근심과 염려 가운데 생활할 수밖에 없습니다.(시 127:1-2) 바라기는 이번 심방의 결과 참 평화가 여러분의 마음과 가정에 임하기를 원합니다.
3.심방 받는 마음의 자세가 어떠해야 합니까?
① 준비하고 기다려야 합니다.
준비된 심방은 아름답습니다. 특히 기도로 준비하여야 합니다. 기도로 준비한 가정과 준비하지 아니한 가정은 들어갈 때부터 집안 공기 자체가 차이가 납니다. 말씀을 전하는 사람이 아주 기쁨으로 평안하게 말씀을 전하게 됩니다. 기도의 내용이 잘 연결이 되고 기도가 하나님께 상달되는 믿음을 갖게 됩니다.
② 심방 자를 겸손함으로 영접하여야 합니다.
세상의 나그네를 대접하는 것도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귀한 일입니다. 복음을 전하기 위하여 하나님의 보내신 자를 영접하는 것은 더욱 귀한 일입니다. 그것은 하나님을 경외하는 마음의 표현이기 때문입니다.
상당한 지위에 있는 백부장 고넬료가 처음 보는 베드로 그것도 어부 출신의 보잘것없는 서민을 준비하고 기다렸으며 그가 왔을 때 그 앞에 엎드리었던 것은 그가 얼마나 하나님을 경외하는 사람인가를 알게 합니다.
우리는 그것 하나만 보아도 하나님께서 왜 그를 특별히 생각하시어 베드로를 보내시고 놀라운 은혜를 물 붓듯이 부어 주셨는가를 알 수 있습니다.
③ 주시는 말씀에 감사함으로 순종하여야 합니다.
주시는 하나님의 말씀 가운데는 칭찬의 말씀도 있으나 때로는 책망의 말씀도 있고 들으면 서운할 수 있는 말씀도 있습니다. 때로는 내가 기대하지 않았던 말씀일 경우도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하나님께서 무슨 말씀을 주시든지 아멘으로 받아드리는 마음을 가져야 합니다.
본문 13절은 이렇게 말합니다. “그 집이 이에 합당하면 너희 빈 평안이 거기 임할 것이요”라는 말씀입니다.
여기서 <이에 합당하면>이라는 말이 무슨 뜻입니까? 계속하여 말씀하고 있는 14, 15절의 내용은 <합당하면>이 무슨 뜻인지를 간접적으로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그래서 마 10:14-15에서 "누구든지 너희를 영접도 아니하고 너희 말을 듣지도 아니하거든 그 집이나 성에서 나가 너희 발의 먼지를 떨어 버리라/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심판 날에 소돔과 고모라 땅이 그 성보다 견디기 쉬우리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이 말은 반대로 말씀을 가지고 간 제자들을 영접하고 말씀을 잘 받아 드리는 사람에게는 기도가 이루어질 뿐 아니라 그 가정에 하나님의 평안이 임하게 될 것임을 말씀합니다.
그렇다면 고넬료의 준비된 심방에 대해서 살펴보면서 축복된 심방이란 어떤 심방이 되어야 하는지 함께 생각해 보기를 원합니다.
사도행전 10장에 보면 로마의 백부장이었던 고넬료가 나옵니다. 고넬료는 경건하여 온 집으로 더불어 하나님을 경외하며 백성을 구제하고 항상 기도하는 사람이었습니다. 그런데 우리가 주목할 것은 고넬료는 주의 이름으로 방문하는 베드로를 정성껏 맞이함으로 큰 축복을 받았습니다. 이것은 오늘날 심방의 좋은 모델입니다. 고넬료는 준비된 심방을 받았습니다.
① 고넬료는 먼저 심방을 요청했습니다.(행 10:22)
베드로가 고넬료의 집에 간 것은 말씀을 전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심방할 때에 말씀을 기쁨으로 듣는 것이 중요합니다.
② 고넬료의 가정은 준비된 마음으로 모여서 기다렸습니다.(행 10:24)
고넬료는 일가와 친구들을 모아 놓고 기다렸습니다. 심방은 준비하고 기다리는 자세가 필요합니다. 그런데 사람들은 어려움을 당할 때면 간절한 마음으로 심방을 기다리지만(요11장) 좀 편안하고 일이 잘되면 심방을 하찮게 생각합니다. 그렇지만 오늘 본문에 나오는 고넬료는 다급했기 때문에 베드로의 심방을 요청한 것이 아닙니다. 생활 속에서도 주의 이름으로 심방을 오시는 베드로 목사님을 기쁨으로 영접했습니다.
고넬료는 다른 사람을 명령하는 중대장의 직책이었지만, 하나님의 종을 귀중하게 생각하고 겸손하게 심방을 준비했던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들도 어려울 때만 아니라 형통할 떼에도 심방을 기쁨으로 받아드려야 합니다.
③ 고넬료는 겸손하게 심방을 받았습니다.(행 10:25)
행 10:25을 보면 "베드로가 들어 올 때에 고넬료가 맞아 발 앞에 엎드려 절하니"라고 했습니다. 심방대원들은 하나님께서 그 가정에 말씀을 전할 대사들입니다. 그렇습니다. 지극히 경건하고 간절한 믿음의 모습으로 베드로를 맞이했습니다. 당시의 로마 군대 중대장이라면 식민지의 유대 땅 베드로를 우습게 볼 수 있습니다. 이는 마치 우리가 일본의 식민지로 있을 때에 헌병 중대장을 생각하면 됩니다. 당시에는 한국인 "일본 순사"라는 소리만 들어도 벌벌 떨었습니다. 그렇지만 고넬료는 심방을 귀중히 여겼던 것입니다. 고넬료는 로마의 백부장이었지만 어부출신인 베드로에게 엎드려 절을 했으니 그의 은혜를 사모하는 마음과 인격이 어떠한지를 알 수 있습니다.
그렇습니다. 우리들도 고넬료 처럼 심방 예배를 정성껏 준비해야 합니다. 미리 청소를 깨끗하게 하고, 기도로 준비하는 것이 좋습니다. 음식은 간단히 준비하는 것이 좋습니다. 오히려 말씀 듣고 기도 받을 준비가 더 중요합니다.(눅 10:38-42) 그러므로 이제부터는 기쁨과 사모하는 마음으로 심방을 준비합시다.
④ 고넬료는 하나님의 말씀을 사모했습니다.(행 10:33)
행 10:33에서 “주께서 당신에게 명하신 모든 것을 듣고자 하여 하나님 앞에 있나이다”라고 고백하고 있는 것처럼 고넬료는 하나님의 말씀을 사모했습니다. 심방을 받을 때에는 청소? 다과준비? 점심준비? 헌금준비?도 중요합니다. 그러나 정말 중요한 것은 하나님의 말씀을 받을 준비를 하여야합니다.
점심을 준비하는데 마음이 분주하여 말씀을 받을 마음의 준비가 안되면 참으로 안타까운 일입니다. 주의 종들이 그 귀중한 시간에 먹으러 다니는 것이 아니라 오직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기 위하여 그 곳에 간 것이기 때문입니다. 점심은 구역식구들이 마음을 모아 식당에서 우동을 한 그릇 대접하시면 됩니다. 그 가정에 주시는 말씀을 기쁨으로 받을 수 있도록 준비하여야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사모하는 자들이 은혜를 받습니다. 시 34:12에서 "생명을 사모하고 장수하여 복 받기를 원하는 사람이 누구뇨“라고 말씀하고 있는 것처럼 하나님의 말씀을 사모하는 자는 복을 받습니다.
그런데 우리가 여기에서 주목할 것은 심방하는 사람도 잘 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사도 베드로의 심방하는 자세도 참으로 아름답습니다.(행 10:26-27)
① 베드로 사도는 겸손하게 심방했습니다.(행 10:26)
베드로 사도는 엎드려 자신을 영접하는 고넬료를 향하여 “나도 사람이라”고 했습니다. 이러한 자세는 심방하는 사람들에게 아주 중요합니다.
베드로도 사람입니다. 다만 하나님이 보냈을 뿐입니다. 베드로는 심방가서 하나님 대우를 받으려고 하지 않았습니다. 루스드라에서(행14:8- )바울은 나면서부터 앉은뱅이를 고쳤습니다. 그랬더니 그 곳 사람들은 바울을 신(神)이라고 생각하면서 제사를 지내려고 했던 것입니다. 이 때에 바울은 "나는 신(神)이 아니라 여러분과 같은 사람이라"고 했습니다. 오히려 이 헛된 일을 버리고 천지와 바다와 그 가운데 만유를 지으시고 살아계신 하나님께 돌아오라”고 말했습니다.
심방은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을 빌어주는 시간입니다. 그러므로 이제부터는 심방을 귀찮다고 생각하지 마세요. 축복의 기도를 기쁨으로 받으시기를 바랍니다. 주의 이름으로 영접하고 대접하면(마10:40-42 하늘의 상급이 반드시 있습니다.
② 베드로 사도 는 심방을 요청 받았을 때에 사양하지 않았습니다.(행 10:29)
고넬료는 이방인이었지만, "부름을 사양치 아니하고 왔노라"고 했습니다. 그러므로 오늘날도 목사는 특별한 경우가 아니면 성도의 가정에서 심방을 요청하면 기쁨을 달려갑니다. 그리고 축복을 빌어줍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어려울 때에 심방 요청을 주저하지 마세요. 그렇지만 좋은 일이 있어도 기쁨으로 심방을 요청하세요. 그러면 목사는 최선을 다해서 성도들의 신앙 성장을 돕겠습니다. 특별히 금주부터 시작되는 가을 심방을 기도하면서 준비해 주시기를 바랍니다. 준비하여서 드리는 심방은 참으로 아름답습니다. 은혜가 넘칩니다.
그렇다면 준비된 심방을 받는 성도들에게 주시는 축복이 무엇입니까?
행 10:44-26에서 ꡒ베드로가 이 말 할 때에 성령이 말씀 듣는 모든 사람에게 내려 오시니 베드로와 함께 온 할례 받은 신자들이 이방인들에게도 성령 부어주심을 인하여 놀라니 이는 방언을 말하며 하나님 높임을 들음이러라ꡓ고 말씀하고 있는 것처럼 준비된 심방을 통하여 모든 사람이 성령의 충만함을 받고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게 되었습니다. 성령 충만한 역사가 나타났습니다.
이제 말씀을 맺겠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심방을 일년에 한두 번 의례적으로 치려지는 행사가 되어서는 안 될 것입니다. 심방을 통하여 하나님과의 관계가 되고, 참된 신앙인으로서의 정체성이 회복되고, 하나님께서 우리 가정을 향하여 어떤 의도와 목적을 가지고 있는지, 어떻게 사는 것이 정말 하나님께 영광이 되고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삶인지를 함께 하나님의 말씀을 통하여 고민하고 기도하는 시간을 가짐으로 말미암아 정말 하나님께서 부어지는 충만한 은혜를 받으시기를 바랍니다. 이를 위해서는 심방을 받아 드리는 성도의 마음 자세에 따라 영적으로 큰 유익이 될 수도 있고 번잡한 일이 될 수도 있습니다. 이번 심방이 여러분 모두에게 복음으로 새로워지고 가정의 문제가 해결되며 하나님의 평화가 임하고, 성령의 충만함을 받는 귀한 날이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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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실의 계절 가을철을 맞이하여 이제 새롭게 각성하고 무장하기 위해서 금주 화요일(7일)과 목요일(9일) 이틀 동안 추계 가을 대 심방을 갖습니다. 금번의 심방이 평생 잊지 못하는 심방이 되도록 영적으로나 정신적으로나 환경적으로나 충분히 준비해야 합니다. 준비된 심방은 아름답습니다. 심방의 필요성을 인식해야 합니다. “심방이 없이도 잘 살았는데, 무슨 심방이 필요 있습니까?”라고 생각해서는 안 됩니다. 심방은 필요합니다.
▶ 그런데 추계 대심방이라고 말하지 않고 ‘추계 축복 대심방’이라고 하는 이유는 무엇입니까? 그렇다면 다른 심방은 축복의 심방이 아니고 대 심방만 축복의 심방입니까? 아닙니다. 모든 심방은 축복의 심방이 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일년 봄, 가을로 하는 대 심방은 특별한 마음과 자세를 가지고 하는 측면으로 볼 때에 심방을 잘 받는다면 더욱 하나님의 축복과 은혜가 넘칠 것입니다.
▶ 그런데 우리가 여기에서 놓치지 말아야 할 것이 있습니다. 그것이 무엇입니까? 심방을 단순하게 “축복을 받는 심방”이라는 평면적인 이미지로 이해할 것이 아니라 심방을 통하여 하나님과의 관계가 회복되고 하나님께서 우리 가정에 주시는 의도하시고 목적하시는 것이 무엇인가를 발견할 수 있어야 합니다.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고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것이 무엇인지에 대해서 고민하는 몸부림이 있어야 합니다. 그리고 이러한 과정들을 통하여 믿음의 자리에 서서 은혜의 골짜기로 더 깊이 들어가는 전환점(轉換點)이 되어야 합니다. 이러한 요소가 충족한 심방이라면 그 심방은 축복의 심방이 될 수밖에 없을 것이고, 평생 잊지 못한 심방이 될 것입니다.
▶ 그렇다면 심방이란 무엇입니까?
심방이란 주의 종들이 주의 이름으로 각 가정을 방문하는 일을 말합니다. 그런데 ‘심방’이란 말을 헬라어로 표현하면 ‘에피스켚 토마이”라는 말입니다. 이 말은 ꡒ방문한다, 돌아본다, 권고한다ꡓ라는 뜻입니다. 심방은 심방 받는 성도님에게 하나님의 말씀과 기도로 격려하고 위로하고, 권고와 위로하여 하나님을 만나도록 하는데 목적이 있습니다. 단순한 방문만이 아닙니다. 하나님을 만나도록 권고하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예배는 하나님과의 만남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심방은 히브리서 기자가 우리에게 "서로 돌아보아 사랑과 선행을 격려하며 모이기를 폐하는 어떤 사람들의 습관과 같이 하지 말고 오직 권하여 그날이 가까움을 볼수록 더욱 그리하자"(히10:24-25)고 권면하고 있는 것처럼 서로 돌아보고 사랑과 선행을 격려하는 것입니다. 자기 자신의 정체성을 인식케 하여 하나님께 돌아가도록 해야 합니다.
▶ 그런데 성경을 보면, 심방은 원래 하나님께서 시작하신 일입니다. 죄를 범한 인생들을 하나님께서 찾아 주시고 권고하시고 구원하여 주셨습니다.
▶ 창 3:9에서 “여호와 하나님이 아담을 부르시며 그에게 이르시되 네가 어디 있느냐!”라고 말씀하고 있는 것처럼 하나님께서 범죄한 아담을 찾아 오셨습니다.
▶ 창16:8에서 “가로되 사래의 여종 하갈아 네가 어디서 왔으며 어디로 가느냐 그가 가로되 나는 나의 여 주인 사래를 피하여 도망하나이다. 여호와의 사자가 그에게 이르되 네 여주인에게로 돌아가서 그 수하에 복종하라”고 말씀하고 있는 것처럼 사라에게 내쫓김을 당한 하갈을 찾아오셨습니다. 그렇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범죄한 인생, 곤고한 인생들을 찾아오셔서 심방해 주셨습니다.
▶ 왕상 19:5-6에서 “스스로 광야로 들어가 하룻 길쯤 행하고 한 로뎀나무 아래 앉아서 죽기를 구하여 가로되 여호와여 넉넉하오니 지금 내 생명을 취하옵소서 나는 내 열조보다 낫지 못하니이다 하고 로뎀나무 아래 누워 자더니 천사가 어루만지며 이르되 일어나서 먹으라 하는지라"라고 말씀하고 있는 것처럼 하나님께서는 로뎀 나무 아래서 죽기를 작정했던 엘리야 선지자를 찾아오셔서 위로하시고 새 힘을 주셨습니다.(왕상 19:5) 하나님의 사역자들이 주님을 일을 하다가 힘들어 할 때에도 심방해 주셨습니다.
▶ 사 38:5 하반 절에서 “내가 네 기도를 들었고 네 눈물을 보았노라 내가 네 수한에 십오 년을 더하고”라고 말씀하고 있는 것처럼 하나님께서는 병들어 죽게 된 히스기야 왕에게 이사야 선지자를 보내셔서 그의 병을 치료하심과 생명을 연장시켜 주심에 대해서 말씀해 주셨습니다.(사 38:5) 하나님께서 병든 자를 찾아오시고 병을 고쳐주시고, 새 힘을 주셨습니다.
▶ 그런데 하나님의 심방 중에서 최고의 심방은 주님께서 성육신하여 우리와 함께 하여 주인이 되시고 복되신 심방입니다.
그래서 요한 사도는 요1:14에서 “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거하시매 우리가 그 영광을 보니 아버지의 독생자의 영광이요 은혜와 진리가 충만하더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마 4:23에서 “예수께서 온 갈릴리에 두루 다니사 저희 회당에서 가르치시며 천국 복음을 전파하시며 백성 중에 모든 병과 모든 약한 것을 고치시니”라고 말씀하고 있는 것처럼 주님께서 자기의 종들을 시키셔서 그 성도들을 돌아보며 권계하며 축복하셨습니다. 이러한 사명은 제자들에게만 있는 것이 아니라 바로 우리 모두에게 있습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이 살전 2:11,12과 5:14에서 “너희도 아는 바와 같이 우리가 너희 각 사람에게 아비가 자기 자녀에게 하듯 권면하고 위로하고 경계하노니 이는 너희를 부르사 자기 나라와 영광에 이르게 하시는 하나님께 합당히 행하게 하려 함이니라... 규모 없는 자들을 권계하며 마음이 약한 자들을 안위하고 힘이 없는 자들을 붙들어 주며 모든 사람을 대하여 오래 참으라”고 말씀하고 있는 것처럼 하나님께서는 모든 시대를 통하여, 교역자나 성도들이 하나님의 뜻에 따라, 서로를 찾아 위로와 권면과 친교를 하며 축복하며 그 이웃들을 전도하는 아름다운 관계를 이룰 수 있도록 축복의 시간을 주셨는데, 바로 그것이 심방입니다.
이러한 측면에서 볼 때에 우리는 본문을 통하여 심방에 대한 주님의 가르침을 함께 생각해 보면서 은혜를 나누고자 합니다. 본문은 2000년 전에 이미 예수께서 12제자를 주의 이름으로 파송 즉 심방 하게 하셨음을 알게 합니다. 물론 본문에 나오는 12제자의 파송은 순수한 복음전파를 목적으로 한 것으로 기성교인에 대한 심방과는 그 배경에 있어서 약간의 차이점이 있습니다. 그러나 그 내용에 있어서는 거의 차이가 없다고 볼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오늘 본문의 말씀은 심방하고 심방 받는 모든 분들에게 꼭 필요한 교훈의 말씀입니다.
1.우리는 먼저 심방을 주관하는 분이 누구인지를 알아야 합니다.
본문 5-6절에서 "예수께서 이 열둘을 내어 보내시며 명하여 가라사대 이방인의 길로도 가지 말고 사마리아인의 고을에도 들어가지 말고/ 차라리 이스라엘 집의 잃어버린 양에게로 가라"고 말씀하고 있는 것처럼 심방을 계획하시고 주관하시는 분은 바로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5-6절)
① <예수께서> ② <이 열둘을 내어 보내시며> ③ <이스라엘 집의 잃어버린 양에게로 가라>고 하셨습니다. 심방의 주체는 목회자도 아니며 성도들도 아닙니다. 바로 주님이십니다.
예를 들어 ① 신약성경 사도행전 10장에는 베드로가 고넬료의 집을 심방 하는 내용이 나오는데 그 때도 베드로나 고넬료가 주체가 아니라 하나님께서 주관하셨음을 봅니다. 하나님께서 고넬료를 사랑하셔서 베드로를 그 가정에 보내셨고 넘치는 은혜로 채워 주셨습니다.
② 구약성경 열왕기상 17장에 보면 엘리야가 사렙다 과부의 집을 심방 하는 내용이 나오는데 그 때도 하나님께서 엘리야를 그 과부의 집에 보내시었고 놀라운 은혜를 체험하게 됩니다.
③ 사 38장에서 말씀하고 있는 것처럼 하나님께서 병들어 죽어가는 히스기야 왕에게 이사야 선지자를 보내셔서 심방해 주셨습니다. 그리고 그에게 소망과 새 힘을 주셨습니다.
대 심방도 마찬가지입니다. 담임목사의 계획과 뜻에 따라 가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섭리와 뜻에 따라 하나님의 말씀을 가지고 하나님의 은혜를 전하기 위하여 하나님의 능력을 가지고 가는 것입니다.
목사의 방문은 하나님의 전권을 위임받아 나아가는 것입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은 고후 5:20에서 “이러므로 우리가 그리스도를 대신하여 사신이 되어 하나님이 우리로 너희를 권면하시는 것 같이 그리스도를 대신하여 간구하노니 너희는 하나님과 화목하라”고 권면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목사와 심방 대원을 파송하신 분은 하나님께서 심방대원들을 보내시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심방을 받는 가정은 하나님을 영접하듯 심방을 받을 수 있어야 합니다.
그러므로 심방을 받는 가정은 주님을 기다리는 심정으로 심방을 기다려야 합니다. 고넬료는 식구들은 물론 일가친척, 이웃들까지 다 초청하여 베드로를 기다렸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을 기다리듯 심방 자를 기다렸습니다. 우리의 심방이 낮에만 이루어져서 남편이나 자녀들은 심방에 참여하기가 매우 어려운 안타까운 문제가 있습니다. 그런데 어떤 가정을 보면 심방 시에 일부러 직장에서 틈을 내어 같이 심방에 참여하시는 분들도 계십니다. 그만큼 심방을 귀하게 여기시기 때문일 것입니다.
2. 심방의 목적이 무엇인지를 알아야 합니다.
①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는 일입니다.(7절)
본문 7절에서 "가면서 전파하여 말하되 천국이 가까왔다 하고"라고 말씀하고 있는 것처럼 심방의 첫 번째 목적은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는 일입니다. 그렇다면 하나님의 말씀의 내용이 무엇입니까? 그것은 마 4:17과 막 1:15에서 "이 때부터 예수께서 비로소 전파하여 가라사대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웠느니라 하시더라... 가라사대 때가 찼고 하나님 나라가 가까웠으니 회개하고 복음을 믿으라 하시더라"라고 말씀하고 있는 것처럼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웠다>,<때가 찼고 하나님 나라가 가까웠으니 회개하고 복음을 믿으라>는 것은 복음 내용의 핵심입니다.
그러므로 믿음 안에서, 사랑하면서, 소망 가운데 살아가라는 것입니다. 이 내용은 각 가정에 적절한 말씀으로 다양하게 전하여지게 될 것입니다. 이 복음을 전하는 것은 심방의 가장 중요한 목적입니다.
복음 속에는 영혼을 위한 만나가 있으며, 영원한 구원이 있으며, 위로와 책망과 새롭게 하는 말씀이 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은혜의 빛입니다. 그러므로 심방은 하나님의 말씀으로 권고하여 영적 잠에서 깨어나 하나님의 은혜를 갈망하게 하는 중대한 일입니다.
심방받는 심령으로 하여금 하나님의 말씀으로 새롭게 빚어지도록 도와주어야 합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을 통하여 인간의 실존과 현실 속에서 하나님의 뜻이 무엇인지를 알아야 합니다. 현실과 현실 초월의 두 축을 다 포함한 통합적인 삶이 무엇인지를 깨달도록 해 주어야 합니다. 현실을 초월해 살되 현실 속에서 어떻게 살아야 할 것인가에 대해서 고민하도록 해 주어야 합니다.
복음이란 죽어가는 영혼을 살리는 것입니다. 소망이 없는 심령에게 소망을 주고, 비전이 없는 심령에게 비전을 주고, 잘못된 심령에게 성령의 위로와 역사로 책망하고 권고하여 바로 서도록 해야 합니다. 심방을 통하여 각 심령 위에 죄에 대하여, 의에 대하여, 심판에 대하여 권고하시는 성령님의 역사를 체험하도록 도와주어야 합니다.
따라서 심방은 단순하게 복을 빌어주시는 것만이 아닙니다. 심방은 격려와 위로도 있어야 하지만, 때때로 책망과 치료로 있어야 합니다. 하나님은 사랑의 하나님이시지만, 동시에 하나님은 공의의 하나님이시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심방을 통하여 하나님과의 진정한 회복을 있도록 도와주어야 합니다.
목사는 하나님의 말씀을 가지고 심방 받는 가정이 하나님과 화목된 가정으로 나아가도록 도와주어야 합니다. 하나님을 신뢰하는 믿음을 찾고 하나님을 확신하도록 도와주어야 합니다. 목사는 하나님의 말씀을 통하여 심방 받는 가정이 하나님을 신뢰하는 믿음으로 나아가도록 도와주어야 합니다. 이것이 복음의 핵심이고 예수님의 삶의 핵심이었습니다. 그러므로 심방을 받는 가정은 하나님의 말씀을 받아 들어야 합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을 통하여 우리가 어떤 방향성을 가져야 할지, 어떤 자세와 태도, 어떤 마음과 생각을 가져야 할지를 깨달아야 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내게 맞추어 지는 것이 아니라 내가 하나님의 말씀에 맞추어져야 합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의 말씀이 삶의 기준이기 때문입니다.
목사는 이 복음의 말씀을 받아 소중하게 가지고 갑니다. 어떤 분은 그 날에 주신 말씀을 붙들고 일년을 살아 어려웠던 회사도 다시 살리고 믿음도 크게 성장한 가정이 있습니다. 그런데 어떤 가정은 그것을 잘 몰라서 말씀을 듣다가 밥물 보러 가기도 하고, 전화 받기도 하고, 아기 때문에 신경 쓰기도 합니다. 그럴 때 목사는 맥이 빠지게 됩니다. 미리 말씀을 들을 수 있는 모든 것을 준비하여야 합니다. 음식은 준비하지 않아도 말씀은 잘 들으셔야 합니다. 하나님의 은혜는 말씀을 통하여 내리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중요한 것은 영접하는 자 그 이름을 믿는 자들에게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신 것처럼(요 112) 하나님의 말씀을 받아들이지 아니하면 아무 소용이 없습니다. 신명기 30:19-20에서 말씀하고 있는 것처럼 하나님께서는 생명과 사망, 복과 저주를 우리 앞에 두셨는데,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을 순종함으로 생명과 복을 받아야 합니다. 생명과 복을 주시는 분은 분명히 하나님이시지만 그 하나님께서 쌓아두신 은혜 곧 생명과 복을 받으려면 사모함이 없이는 결코 풍성한 은혜를 받을 수 없습니다. 여호와를 앙망하는 자에게 새 힘을 공급해 주신다는 것을 결코 잊지 말아야 합니다.(사 40:31)
② 가정의 문제를 믿음 안에서 해결 받는 일입니다.(8절)
본문 8절에서 "병든 자를 고치며 죽은 자를 살리며 문둥이를 깨끗하게 하며 귀신을 쫓아내되 너희가 거저 받았으니 거저 주어라"고 말씀하고 있는 것처럼 가정의 문제를 믿음 안에서 해결받는 일입니다.
그렇습니다. 가정마다 각 가정이 안고 있는 여러 어려운 문제들이 있습니다. 질병의 문제, 자녀들의 문제, 직장의 문제 사업의 문제, 가족 상호 간의 문제 등 여러 문제들이 있습니다. 심방은 이러한 모든 문제들을 믿음과 기도로 직접적으로 해결 받는 시간입니다.
야고보는 약 513-18에서 이렇게 말합니다. "너희 중에 고난 당하는 자가 있느냐 저는 기도할 것이요 즐거워하는 자가 있느냐 저는 찬송할지니라/ 너희 중에 병든 자가 있느냐 저는 교회의 장로들을 청할 것이요 그들은 주의 이름으로 기름을 바르며 위하여 기도할지니라/ 믿음의 기도는 병든 자를 구원하리니 주께서 저를 일으키시리라 혹시 죄를 범하였을지라도 사하심을 얻으리라/ 이러므로 너희 죄를 서로 고하며 병 낫기를 위하여 서로 기도하라 의인의 간구는 역사 하는 힘이 많으니라/ 엘리야는 우리와 성정이 같은 사람이로되 저가 비오지 않기를 간절히 기도한즉 삼 년 육 개월 동안 땅에 비가 아니 오고/ 다시 기도한즉 하늘이 비를 주고 땅이 열매를 내었느니라"
그렇습니다. 사렙다 과부는 아들과 함께 한끼 먹고 죽을 수밖에 없는 식량 밖에 없었지만 엘리야의 심방으로 인하여 기근이 끝날 때까지 수년 동안의 식생활을 해결 받을 수 있었습니다. 이번 대 심방으로 인하여 여러분의 가정의 문제가 해결되는 놀라운 역사가 일어나기를 원합니다.
③ 평안을 기원하는 일입니다.(12-13절)
본문 12-13절에서 "또 그 집에 들어가면서 평안하기를 빌라/ 그 집이 이에 합당하면 너희 빈 평안이 거기 임할 것이요 만일 합당치 아니하면 그 평안이 너희에게 돌아올 것이니라"고 말씀하고 있는 것처럼 평안을 기원하는 일이 심방의 목적입니다.
<그 집에 들어가면서 평안하기를 빌라!> 이 명령에 따라 담임목사가 그 가정에 심방을 가서 제일 먼저 하는 일은 그 가정의 평안을 위하여 기도하는 일입니다. "하나님! 이 가정에 거하는 모든 식구들에게 평안을 주옵소서!"
이 기도는 심방 하는 모든 분들의 동일한 기도이기도 합니다. 이 일은 얼마나 귀한 일입니까? 심방 대원 모든 분들이 자신과 모든 식구들을 위하여 간절하게 하나님의 평화가 임하기를 기도해야 합니다. 그리할 때에 그 가정에 하나님께서 샬롬의 역사가 나타나게 됩니다.
그리스도인들의 가장 최고의 행복(幸福)은 하나님의 은혜 안에서 평안을 얻는 일입니다. 참된 평안은 돈과 권력과 쾌락을 통하여 얻어지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로부터 얻어지는 것입니다. 하늘로부터 내려오는 것입니다. "평화 평화로다 하늘 위에서 내려오네 그 사랑의 물결이 영원토록 내 영혼을 덮으소서" (469장 후렴)
그런데 기억할 것은 목사와 심방대원들이 하나님의 이름으로 평안을 기원했는데, 그 집에 합당하지 아니하면 그 평안이 평안을 기원한 사람에게 다시 돌아간다는 사실을 명심해야 합니다. 그러므로 사모하는 심령으로 깨끗한 심령으로, 준비된 심령으로 하나님의 평안을 받을 준비를 해야 합니다. 그러나 기억할 것은 평안은 사람이 주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주시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 평안은 세상 것과는 비교도 되지 않는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요 14:27) 하나님의 평안함을 받으면 비록 세상에 살면서 환난을 당한다고 할지라도 결코 좌절하지 않고 넉넉히 이겨 승리하는 역사를 체험하게 될 것입니다.(요 16:33) 그러기에 우리에게는 하나님께서 주시는 평안함이 절대로 필요합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주시는 평안이 없으면 잠을 자도 잔 것같지 아니하고 늘 근심과 염려 가운데 생활할 수밖에 없습니다.(시 127:1-2) 바라기는 이번 심방의 결과 참 평화가 여러분의 마음과 가정에 임하기를 원합니다.
3.심방 받는 마음의 자세가 어떠해야 합니까?
① 준비하고 기다려야 합니다.
준비된 심방은 아름답습니다. 특히 기도로 준비하여야 합니다. 기도로 준비한 가정과 준비하지 아니한 가정은 들어갈 때부터 집안 공기 자체가 차이가 납니다. 말씀을 전하는 사람이 아주 기쁨으로 평안하게 말씀을 전하게 됩니다. 기도의 내용이 잘 연결이 되고 기도가 하나님께 상달되는 믿음을 갖게 됩니다.
② 심방 자를 겸손함으로 영접하여야 합니다.
세상의 나그네를 대접하는 것도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귀한 일입니다. 복음을 전하기 위하여 하나님의 보내신 자를 영접하는 것은 더욱 귀한 일입니다. 그것은 하나님을 경외하는 마음의 표현이기 때문입니다.
상당한 지위에 있는 백부장 고넬료가 처음 보는 베드로 그것도 어부 출신의 보잘것없는 서민을 준비하고 기다렸으며 그가 왔을 때 그 앞에 엎드리었던 것은 그가 얼마나 하나님을 경외하는 사람인가를 알게 합니다.
우리는 그것 하나만 보아도 하나님께서 왜 그를 특별히 생각하시어 베드로를 보내시고 놀라운 은혜를 물 붓듯이 부어 주셨는가를 알 수 있습니다.
③ 주시는 말씀에 감사함으로 순종하여야 합니다.
주시는 하나님의 말씀 가운데는 칭찬의 말씀도 있으나 때로는 책망의 말씀도 있고 들으면 서운할 수 있는 말씀도 있습니다. 때로는 내가 기대하지 않았던 말씀일 경우도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하나님께서 무슨 말씀을 주시든지 아멘으로 받아드리는 마음을 가져야 합니다.
본문 13절은 이렇게 말합니다. “그 집이 이에 합당하면 너희 빈 평안이 거기 임할 것이요”라는 말씀입니다.
여기서 <이에 합당하면>이라는 말이 무슨 뜻입니까? 계속하여 말씀하고 있는 14, 15절의 내용은 <합당하면>이 무슨 뜻인지를 간접적으로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그래서 마 10:14-15에서 "누구든지 너희를 영접도 아니하고 너희 말을 듣지도 아니하거든 그 집이나 성에서 나가 너희 발의 먼지를 떨어 버리라/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심판 날에 소돔과 고모라 땅이 그 성보다 견디기 쉬우리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이 말은 반대로 말씀을 가지고 간 제자들을 영접하고 말씀을 잘 받아 드리는 사람에게는 기도가 이루어질 뿐 아니라 그 가정에 하나님의 평안이 임하게 될 것임을 말씀합니다.
그렇다면 고넬료의 준비된 심방에 대해서 살펴보면서 축복된 심방이란 어떤 심방이 되어야 하는지 함께 생각해 보기를 원합니다.
사도행전 10장에 보면 로마의 백부장이었던 고넬료가 나옵니다. 고넬료는 경건하여 온 집으로 더불어 하나님을 경외하며 백성을 구제하고 항상 기도하는 사람이었습니다. 그런데 우리가 주목할 것은 고넬료는 주의 이름으로 방문하는 베드로를 정성껏 맞이함으로 큰 축복을 받았습니다. 이것은 오늘날 심방의 좋은 모델입니다. 고넬료는 준비된 심방을 받았습니다.
① 고넬료는 먼저 심방을 요청했습니다.(행 10:22)
베드로가 고넬료의 집에 간 것은 말씀을 전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심방할 때에 말씀을 기쁨으로 듣는 것이 중요합니다.
② 고넬료의 가정은 준비된 마음으로 모여서 기다렸습니다.(행 10:24)
고넬료는 일가와 친구들을 모아 놓고 기다렸습니다. 심방은 준비하고 기다리는 자세가 필요합니다. 그런데 사람들은 어려움을 당할 때면 간절한 마음으로 심방을 기다리지만(요11장) 좀 편안하고 일이 잘되면 심방을 하찮게 생각합니다. 그렇지만 오늘 본문에 나오는 고넬료는 다급했기 때문에 베드로의 심방을 요청한 것이 아닙니다. 생활 속에서도 주의 이름으로 심방을 오시는 베드로 목사님을 기쁨으로 영접했습니다.
고넬료는 다른 사람을 명령하는 중대장의 직책이었지만, 하나님의 종을 귀중하게 생각하고 겸손하게 심방을 준비했던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들도 어려울 때만 아니라 형통할 떼에도 심방을 기쁨으로 받아드려야 합니다.
③ 고넬료는 겸손하게 심방을 받았습니다.(행 10:25)
행 10:25을 보면 "베드로가 들어 올 때에 고넬료가 맞아 발 앞에 엎드려 절하니"라고 했습니다. 심방대원들은 하나님께서 그 가정에 말씀을 전할 대사들입니다. 그렇습니다. 지극히 경건하고 간절한 믿음의 모습으로 베드로를 맞이했습니다. 당시의 로마 군대 중대장이라면 식민지의 유대 땅 베드로를 우습게 볼 수 있습니다. 이는 마치 우리가 일본의 식민지로 있을 때에 헌병 중대장을 생각하면 됩니다. 당시에는 한국인 "일본 순사"라는 소리만 들어도 벌벌 떨었습니다. 그렇지만 고넬료는 심방을 귀중히 여겼던 것입니다. 고넬료는 로마의 백부장이었지만 어부출신인 베드로에게 엎드려 절을 했으니 그의 은혜를 사모하는 마음과 인격이 어떠한지를 알 수 있습니다.
그렇습니다. 우리들도 고넬료 처럼 심방 예배를 정성껏 준비해야 합니다. 미리 청소를 깨끗하게 하고, 기도로 준비하는 것이 좋습니다. 음식은 간단히 준비하는 것이 좋습니다. 오히려 말씀 듣고 기도 받을 준비가 더 중요합니다.(눅 10:38-42) 그러므로 이제부터는 기쁨과 사모하는 마음으로 심방을 준비합시다.
④ 고넬료는 하나님의 말씀을 사모했습니다.(행 10:33)
행 10:33에서 “주께서 당신에게 명하신 모든 것을 듣고자 하여 하나님 앞에 있나이다”라고 고백하고 있는 것처럼 고넬료는 하나님의 말씀을 사모했습니다. 심방을 받을 때에는 청소? 다과준비? 점심준비? 헌금준비?도 중요합니다. 그러나 정말 중요한 것은 하나님의 말씀을 받을 준비를 하여야합니다.
점심을 준비하는데 마음이 분주하여 말씀을 받을 마음의 준비가 안되면 참으로 안타까운 일입니다. 주의 종들이 그 귀중한 시간에 먹으러 다니는 것이 아니라 오직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기 위하여 그 곳에 간 것이기 때문입니다. 점심은 구역식구들이 마음을 모아 식당에서 우동을 한 그릇 대접하시면 됩니다. 그 가정에 주시는 말씀을 기쁨으로 받을 수 있도록 준비하여야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사모하는 자들이 은혜를 받습니다. 시 34:12에서 "생명을 사모하고 장수하여 복 받기를 원하는 사람이 누구뇨“라고 말씀하고 있는 것처럼 하나님의 말씀을 사모하는 자는 복을 받습니다.
그런데 우리가 여기에서 주목할 것은 심방하는 사람도 잘 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사도 베드로의 심방하는 자세도 참으로 아름답습니다.(행 10:26-27)
① 베드로 사도는 겸손하게 심방했습니다.(행 10:26)
베드로 사도는 엎드려 자신을 영접하는 고넬료를 향하여 “나도 사람이라”고 했습니다. 이러한 자세는 심방하는 사람들에게 아주 중요합니다.
베드로도 사람입니다. 다만 하나님이 보냈을 뿐입니다. 베드로는 심방가서 하나님 대우를 받으려고 하지 않았습니다. 루스드라에서(행14:8- )바울은 나면서부터 앉은뱅이를 고쳤습니다. 그랬더니 그 곳 사람들은 바울을 신(神)이라고 생각하면서 제사를 지내려고 했던 것입니다. 이 때에 바울은 "나는 신(神)이 아니라 여러분과 같은 사람이라"고 했습니다. 오히려 이 헛된 일을 버리고 천지와 바다와 그 가운데 만유를 지으시고 살아계신 하나님께 돌아오라”고 말했습니다.
심방은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을 빌어주는 시간입니다. 그러므로 이제부터는 심방을 귀찮다고 생각하지 마세요. 축복의 기도를 기쁨으로 받으시기를 바랍니다. 주의 이름으로 영접하고 대접하면(마10:40-42 하늘의 상급이 반드시 있습니다.
② 베드로 사도 는 심방을 요청 받았을 때에 사양하지 않았습니다.(행 10:29)
고넬료는 이방인이었지만, "부름을 사양치 아니하고 왔노라"고 했습니다. 그러므로 오늘날도 목사는 특별한 경우가 아니면 성도의 가정에서 심방을 요청하면 기쁨을 달려갑니다. 그리고 축복을 빌어줍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어려울 때에 심방 요청을 주저하지 마세요. 그렇지만 좋은 일이 있어도 기쁨으로 심방을 요청하세요. 그러면 목사는 최선을 다해서 성도들의 신앙 성장을 돕겠습니다. 특별히 금주부터 시작되는 가을 심방을 기도하면서 준비해 주시기를 바랍니다. 준비하여서 드리는 심방은 참으로 아름답습니다. 은혜가 넘칩니다.
그렇다면 준비된 심방을 받는 성도들에게 주시는 축복이 무엇입니까?
행 10:44-26에서 ꡒ베드로가 이 말 할 때에 성령이 말씀 듣는 모든 사람에게 내려 오시니 베드로와 함께 온 할례 받은 신자들이 이방인들에게도 성령 부어주심을 인하여 놀라니 이는 방언을 말하며 하나님 높임을 들음이러라ꡓ고 말씀하고 있는 것처럼 준비된 심방을 통하여 모든 사람이 성령의 충만함을 받고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게 되었습니다. 성령 충만한 역사가 나타났습니다.
이제 말씀을 맺겠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심방을 일년에 한두 번 의례적으로 치려지는 행사가 되어서는 안 될 것입니다. 심방을 통하여 하나님과의 관계가 되고, 참된 신앙인으로서의 정체성이 회복되고, 하나님께서 우리 가정을 향하여 어떤 의도와 목적을 가지고 있는지, 어떻게 사는 것이 정말 하나님께 영광이 되고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삶인지를 함께 하나님의 말씀을 통하여 고민하고 기도하는 시간을 가짐으로 말미암아 정말 하나님께서 부어지는 충만한 은혜를 받으시기를 바랍니다. 이를 위해서는 심방을 받아 드리는 성도의 마음 자세에 따라 영적으로 큰 유익이 될 수도 있고 번잡한 일이 될 수도 있습니다. 이번 심방이 여러분 모두에게 복음으로 새로워지고 가정의 문제가 해결되며 하나님의 평화가 임하고, 성령의 충만함을 받는 귀한 날이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