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는 하나님을 바라라 시 42:1-11 

  사향노루가 한 마리 있었습니다. 어느 때부터인가 자기 코끝에 아름다운 향기가 느껴졌습니다. ‘이 향기는 어디서부터 오는 것일까?’사향노루는 그 향기가 나는 곳을 찾아 나서기로 했습니다. 우아한 자태를 뽐내고 있는 사슴 한 마리를 만났지만, 그 사슴에게서 향기가 나는 것은 아니었습니다. 마침 캥거루 한 마리가 껑충껑충 달려갑니다.‘저 캥거루 가슴에 붙어 있는 주머니에 향기가 들어 있을지도 몰라’하는 마음으로 캥거루를 좇아갔지만, 캥거루에게서 향기가 나는 것은 아니었습니다. 사향노루는 들을 지나고 산을 넘어 사막을 건너갔습니다. 그러나 어디에서도 향기 나는 곳을 찾을 수 없었습니다. 마침내 세상의 경계선이라고 할 수 있는 높은 언덕에 올라갔습니다. “그래, 저 언덕 아래 어디엔가 향기 나는 곳이 있을 거야.” 그런데 내려 갈 수 없었습니다. 조심스럽게 내려가다가 그만 발이 미끄러져서 구르고 말았습니다. 그래서 네 다리를 쭉 뻗고 하늘을 향하여 벌렁 나자빠져 있는데 어디선가 진한 향기가 솔솔 불어오는 것이었습니다. 하늘을 향해 날고 있는 새 한 마리를 붙들고 물었습니다. “새야, 하늘 끝 어디엔가 향기 나는 곳이 있는 것 같은데 그게 어디에 있는지 내게 좀 가르쳐 주지 않겠니?” 하늘을 날고 있는 새가 이렇게 말했습니다. "그 향기는 당신의 코끝에서 불어오고 있습니다.”그렇습니다. 아름다운 향기는 멀리에 있지 아니하고 사향노루 코끝에 있었던 것입니다. 
  여러분의 문제 해결방법도 멀리 있지 않음을 아시기 바랍니다. 우리 코끝에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사람들은 문제가 있을 때마다 먼 곳에서 문제 해결책을 찾습니다. 들을 지나고 산을 지나고 언덕을 넘어봅니다. 이 사람, 저 사람을 찾아다닙니다. 여기 저기 기웃거립니다. 마치 어리석은 사향노루처럼 말입니다. 그러나 명심하십시오. 문제해결 방법은 저 멀리에 있지 아니하고 우리 가까이에 있는 것입니다. 세상에 있지 아니하고 바로 하나님의 말씀에 있는 줄로 믿습니다. 하나님께 있는 것입니다. 
  시편기자는 모든 것을 다 포기하고 싶은 낙망 상태에 빠졌습니다. 그러나 그는 낙망을 극복할 수 있는 방법을 찾게 됩니다. 그는 5절에서 고백하고 있습니다. “내 영혼아 네가 어찌하여 낙망하며 어찌하여 내 속에서 불안하여 하는고 너는 하나님을 바라라. 그 얼굴의 도우심을 인하여 내가 오히려 찬송하리로다.”여기에서 '하나님을 바라라'는 말은 '하나님께 소망을 두라'는 뜻입니다. 하나님은 하나님께 소망을 두는 자들에게 불안과 낙망을 극복하는 힘을 주시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불안한 영혼과 절망한 영혼이 위로를 받고 새 힘을 얻을 수 있는 비결은 하나님께 소망을 두고 하나님만 바랄 때 가능함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을 바랄 때 바라보게 될 줄로 믿습니다. 
  존 피터슨은 이렇게 고백했습니다.“괴로울 때 주님의 얼굴 보라. 평화의 주님 바라보아라. 세상에서 시달린 친구들아, 위로의 주님 바라보아라. 눈을 들어 주를 보라. 네 모든 염려 주께 맡겨라. 슬플 때에 주 예수 얼굴 보라. 사랑의 주님, 안식 주리라. 힘이 없고 네 마음 연약할 때 능력의 주님 바라보아라. 주의 이름 부르는 모든 자는 힘주시며 늘 지켜 주시리. 눈을 들어 주를 보라. 네 모든 염려 맡겨라. 슬플 때에 주 예수 얼굴 보라. 사랑의 주님 안식 주리라.” 하나님께 소망을 두고 언제나 어디서나 하나님만 바라는 자들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첫째로 생존하시는 하나님을 바라야 합니다 
  미국에서 한 무신론자가 자신의 주장을 선전하기 위해서 자기 집 지붕에다 이런 간판을 붙였다고 합니다.“God is nowhere”,“하나님은 아무데도 계시지 않습니다.” 그런데 세월이 지나면서 조금씩 글자색이 바래기 시작했습니다. 맨 끝에 있는 here라는 글자가 희미해지면서 그 앞의 단어 now와 구별이 되기 시작했습니다. 어느 날 지나가던 사람들이 보니 이렇게 보이더랍니다. “God is now here”, “하나님은 여기계십니다”로 말입니다. 
  본문의 시편 기자는‘하나님께서는 스스로 생존하시는 분이시다.’는 사실을 깨달았습니다. 죽은 하나님이 아니라 살아서 역사 하시는 하나님을 믿는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하나님을 신뢰하는 믿음으로, 어떠한 환경 가운데에서도 하나님을 찬송하겠다고 고백하고 있습니다. 
  여러분은 하나님을 어떠한 분으로 믿고 있습니까? 시편 기자처럼 생존하시는 하나님을 믿고 있습니까? 아니면 죽은 하나님을 믿고 있습니까? 지금도 살아 계셔서 역사 하시는 분으로 믿고 있습니까? 아니면 과거 2,000년 전에만 계셨고 지금은 계시지 않는 분으로 믿고 있습니까? 
  주님이 살아서 지금 나와 동행하신다는 믿음을 가지고 신앙 생활하는 사람과, 주님은 특별한 사람들에게만 동행하고 나와는 동행하지 않는다고 생각하는 사람의 삶은 많은 차이가 있습니다. 또 주님을 과거 2,000년 전 유대 땅에서 기적과 이적을 행하신 분으로만 믿는 사람과, 지금 우리의 삶의 현장에서도 동일하게 역사 하신다고 믿는 사람의 삶은 많은 차이가 있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주님은 저 멀리에 계신 분이 아니라, 지금 우리와 함께 하시는 분이심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주님은 2,000년 전 유대 땅에서만 역사 하셨을 뿐 아니라, 지금도 살아서 이 곳에서도 동일하게 역사하고 계시는 분이심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누가 뭐라고 해도 하나님은 나의 하나님이시며, 생존하시며, 지금도 저와 여러분들과 동행하시는 분이심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둘째로 반석이신 하나님을 바라야 합니다 
  세계에서 고층 빌딩들이 가장 많이 모여 있는 대표적인 곳은 미국 뉴욕의 맨해턴을 들 수 있습니다. 라디오 시티 빌딩을 위시해서 크라이슬러 빌딩이라든지, 엠파이어 스테이트 빌딩이라든지, 지난 2001년 9월11일 테러에 의해 무너지기는 했지만, 월드 트레이드 센터 같은 초고층 건물들이 이곳에 운집해 있습니다. 일종의 섬이라고 할 수 있는 작은 지역에 이러한 초고층 건물들이 세워져 있는 가장 중요한 이유가 그 지반이 거대한 암석으로 이루어진 지층이기 때문이라는 것은 널리 잘 알려진 사실입니다. 이처럼 기초가 중요합니다. 
  시편 기자는 하나님을 자기 인생의 기초로 삼았습니다. 9절을 보면“내 반석이신 하나님께 말하기를 어찌하여 나를 잊으셨나이까, 내가 어찌하여 원수의 압제로 인하여 슬프게 다니나이까 하리로다.” 그는 세상의 것을 기초로 삼지 아니하고, 하나님을 자기 삶의 기초를 삼았습니다. 바로 이것이 중요합니다. 반석이신 하나님을 삶의 기초로 삼으면 낙망할 수밖에 없는 상황 속에서도 하나님을 찬양할 수 있습니다. 세상의 권력이, 인기가, 학식이, 물질이 우리의 삶의 기초가 될 수 없습니다. 평소에는 잘 모릅니다. 그러나 이러한 것들의 연약함은 결정적인 순간에 드러납니다. 
  여러분! 다이아몬드를 어떻게 구별하는 줄 아십니까? 가장 간편한 한 가지 방법을 소개하겠습니다. 잘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그것은 물 속에 넣는 방법입니다. 보석 감별사들이 다이아몬드를 육안으로 보아서 얼른 구분이 되지 않을 때 물 속에 집어넣는다고 합니다. 물 속에 넣으면 넣는 순간, 가짜 다이아몬드는 빛을 잃는다고 합니다. 그러나 진짜 다이아몬드는 물 속에서도 찬란한 빛을 발한다고 합니다. 이처럼 진짜와 가짜는 결정적인 순간에 드러나게 되어있습니다. 가짜는 역경 속에서 환란 속에서 흔들리게 되어 있습니다. 세상 것이 우리의 반석이 될 수 없습니다. 하나님만이 진정한 반석이 되신 줄로 믿습니다. 
  다윗은 시편 18편 2절에서 “여호와는 나의 반석이시요 나의 요새시요 나를 건지시는 자시요 나의 하나님이시요 나의 피할 바위시요 나의 방패시요 나의 구원의 뿔이시요 나의 산성이시로다.”라고 고백했습니다. 비록 그가 왕으로 엄청난 권력과 수많은 신하들과 굉장한 재산을 가지고 있었지만, 그러한 것들이 진정한 반석이 아니라, 여호와 하나님만이 진정한 반석임을 깨달았습니다. 세상의 그 어떠한 것들도 우리 인생에 반석이 되지 못한다는 사실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주님 같은 반석은 세상 어디에도 없는 줄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오직 하나님만이 우리 인생에 영원한 반석이 되심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셋째로 도우시는 하나님을 바라야 합니다 
  1800년대 초 미국의 메사추세츠주 세관에서 공무원으로 일하던 30대의 한 사람이 무능하다는 이유로 직장에서 해고되었습니다. 집에 돌아온 그는 실직 사실을 아내에게 알리면서 자신은 인생의 실패자라고 말하며 낙심을 하게 되었습니다. 그 때 지혜로운 아내는 낙심하고 있는 남편에게,“낙심하지 마세요. 지금이야말로 당신이 원하셨던 글 쓰는 일을 시작하셔야 할 때랍니다.”라고 말했습니다. 그러자 낙심하고 있는 남편이 아내에게 “여보, 그러면 우리는 무얼 먹고 산단 말이오?”라고 말하자, 아내는 남편에게 “제가 일년 정도의 생활비는 그 동안 푼푼이 저축해 두었어요. 적어도 일년은 걱정할 필요가 없습니다.”라고 용기를 주자, 이 말을 들은 남편이 “내가 일년 내에 훌륭한 작품을 쓸 수 있을까?”라고 주저하자, 아내는“여보, 당신이 하나님을 신뢰하면 하나님이 도우실 것입니다.”라고 격려했습니다. 그리고 남편과 아내 두 사람은 함께 무릎을 꿇어 기도를 했습니다. 그 해 얼마 있지 않아 그는‘두 번 들려준 이야기(Twice-Told Tales)’라는 작품을 발표했습니다. 그리고 이어서 그는 10년간 열심히 작품을 쓴 결과, 미국이 낳은 가장 위대한 작품이라고 평가되는, 청교도 정신이 스며들어 있는 걸작, ‘주홍글씨’를 발표하게 되었습니다. 이 사람은 바로 나다나엘 호손이었습니다. 그는 낙심할 수밖에 없는 상황을 하나님을 신뢰하며 믿음으로 멋지게 극복하여 당대의 명작을 낳는 새로운 계기로 만들었습니다. 
  시편 기자도 절박한 상황 가운데에서도 하나님을 바랄 수 있었던 것은 백절불굴의 용기 때문이 아니었습니다. 또 수많은 전쟁에서 쌓았던 경험 때문도 아니었습니다. 그것은 오직 고난 가운데에서도 건지시는 하나님을 신뢰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환난에서 우리를 도우시는 하나님이십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도와주시면 환난의 홍수가 범람할지라도, 역경의 파도가 괴롭힌다 할지라도 미치지 못합니다. 아니 환난의 홍수 속에서도, 역경의 파도 속에서도 하나님이 우리를 도와주시면 우리는 다시 일어설 수 있습니다. 
  어제나 오늘이나 영원토록 동일하시며, 스스로 생존하시는 하나님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그 하나님이 우리의 반석이 되시어 우리 인생을 붙잡아 주시고 계심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또한 우리를 사랑하시어 우리 생애에 놀라운 계획을 갖고 지금도 돕고 계심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괴로우십니까? 힘드십니까? 어려우십니까? 지금 하나님께만 소망을 두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언제나 하나님만 바라는 복된 성도가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