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 시대 새 여성

-정성진목사/ 일산 광성교회

사도행전 18:24∼28



교회 미래학자들은 21세기를 전망하면서 몇 가지 특징을 다음과 같이 말합니다.

“먼저 교단의 의미가 퇴색하게 될 것이며 성령 충만한 교회와 그렇지 않은 교회로 나뉘게 될 것이다. 그 다음 평신도 역할이 증대될 것이며 평신도의 사역을 극대화하는 교회가 성장하게 될 것이다. 그리고 여성의 역할이 확대될 것이며 여성들의 고위직, 전문직 진출이 눈에 띄게 늘어나게 될 것이고 교회에서도 여성을 적극 활용하는 교회가 성장하게 될 것이다.”

교회의 남녀 구성비를 보면 40:60 정도로 여자가 절대 다수를 차지하고 있습니다. 이것을 활동비율로 본다면 20:80 정도로 여성들의 헌신에 의해 교회가 운영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국의 교단 중에서 여성 목사와 장로를 세우는 교단은 몇 곳에 불과합니다.

다행히 우리 교단은 늦게나마 여성들을 목사와 장로로 세우는 법을 시행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아직도 전체에 비해 극소수에 그치고 그 역할도 아직은 두드러지게 나타나지 않고 있습니다. ‘한술 밥에 배부를 수는 없다’는 격언을 생각하면서도 남녀 모두 함께 노력해야 할 부분이 많이 있음을 생각해 봅니다.

우리 교회에서만 보아도 여성들은 대부분 봉사하는 직책을 주로 맡고 있습니다. 기획하거나 조정하거나 하는 직책은 거의 맡고 있지 못한 실정입니다. 지도자들의 편견과 선입견에도 문제가 있으나 여성들 자신들도 그런 일을 꺼리는 경우가 많이 있음을 볼 수가 있습니다. 장로선거를 할 때도 여자들이 여자를 뽑지 않은 것을 보았습니다.

새 시대는 남녀평등의 시대요, 평신도 시대입니다. 그렇다고 한다면 평신도의 대다수를 차지하는 여성의 역할을 극대화하는 것이 교회의 부흥과 성장, 그리고 여성들이 가지고 있는 사랑과 평화의 에너지를 극대화하는 것이 교회의 성숙과 발전에 크게 이바지하게 될 것은 자명한 이치라고 생각합니다.

오늘 본문에 나타난 한 여성을 통해 새 시대, 새 여성은 어떠해야 하는가를 상고할 때 성령의 조명하시는 은총이 함께하시기를 바랍니다.



1. 동역하는 일꾼(행 18:1­3)



AD 50년경 로마제국 내에 큰 흉년이 들었습니다. 폭군들은 이런 때 민심을 돌리기 위해서 희생제물을 찾게 마련입니다. 이때 황제였던 글라우디오는 유대인들을 희생제물로 삼고 이들 때문에 흉년이 들었다며 유대인들을 로마에서 추방하는 추방령을 내렸습니다.

이때 로마에서 살고 있던 아굴라와 브리스길라 부부도 추방당해 고린도에 오게 되었습니다. 유대인들은 어려서부터 자녀들에게 율법교육과 함께 한 가지 기술을 가르쳤습니다.

유대격언에 ‘사내아이에게 기술을 가르치지 않으면 바로 도둑질을 가르치는 것과 다름없다’는 말이 있을 정도입니다. 아굴라도 어려서부터 배운 기술이 있는데 바로 장막 만드는 기술이었습니다. 고린도 시장에 장막 재료를 사러 갔다가 그 곳에서 사도 바울을 만났습니다. 바울도 고린도에 복음 전하러 왔다가 선교비가 떨어지자 장막을 만들어 팔려고 재료 구입차 왔다가 만난 것입니다.

동족끼리 만나 인사를 나누다가 보니 아굴라가 이미 로마에서 복음을 받아들인 그리스도인이었음을 안 바울은 천군만마를 얻은 듯 기뻐했습니다. 그래서 이들과 복음의 동역자가 되었습니다.

“너희가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나의 동역자들인 브리스가와 아굴라에게 문안하라. 저희는 내 목숨을 위하여 자기의 목이라도 내어 놓았나니 나뿐 아니라 이방인의 모든 교회도 저희에게 감사하느니라(롬 16:3­4).”

이 구절에서 말하는 동역자란 헬라어 ‘쉬네르고스’인데 ‘함께 일 하는 자’라는 뜻입니다. 이들은 사도 바울이 고린도에서 18개월 동안 복음을 전할 때 함께 사역을 했습니다. 그리고 고린도 사역이 끝나고 에베소로 건너갈 때 이들을 데리고 가서 에베소 교회를 맡겨 놓고 자신은 안디옥으로 돌아갑니다.

이들을 얼마나 신뢰했는가 하는 것을 “저희는 내 목숨을 위하여 자기 목이라도 내어 놓았나니” 라는 말씀을 보면 알 수가 있습니다. 목회자에게 이런 동역자를 만난다는 것은 큰 복이 아닐 수 없습니다.

브리스가와 아굴라 같은 목회의 동역자 되시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2. 앞장선 여인(24­26절)



성경에서 사람의 이름이 나올 때 대부분의 경우가 서열순으로 나옵니다. 교회에서도 주보를 보면 서열순인지 가나다순인지 가늠할 수가 있습니다. 

기독교 사상 최초로 선교사를 파송하는 역사적 사건이 사도행전 13장에 있는 안디옥 교회에서입니다. 이때 명단을 보면 바나바와 사울이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선교단장은 바나바, 단원은 사울임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런데 비시디아 안디옥에 이른 다음부터 바울과 바나바로 순서로 바뀌게 됩니다(행 13:43). 이방 땅에 선교하러 가 보니 외국어 실력이 뛰어나고, 말 잘하고, 문화에 익숙한 바울의 역할이 증대되면서 서열이 바뀌게 된 것입니다. 

그런데 이와 같은 일이 오늘 말씀의 주인공인 아굴라, 브리스길라 부부 사이에서도 일어나고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사도행전 18:2에 아굴라와 브리스길라로 등장한 이름이 18절에 보니 브리스길라와 아굴라로, 26절에도 브리스길라와 아굴라로 기록된 것을 보아 부인되는 브리스길라가 교회에서 봉사를 더 많이 하면서 그 이름이 앞장서게 된 것을 짐작할 수 있습니다.

사실 초대교회와 한국교회 역사 속에서도 헌신적인 여인들의 이름을 많이 발견할 수 있습니다. 고난의 때 어려움을 무릎쓰고 신앙을 지키고 교회를 지킨 여인들의 기도와 눈물 덕분에 교회가 유지되었던 것입니다. 예수님이 십자가에 달리셨을 때에도 여인들이 끝까지 자리를 지켰고, 예수님의 무덤에도 제일 먼저 찾은 것이 막달라 마리아와 다른 마리아였습니다. 서양 최초의 교회인 빌립보 교회도 자주장사 루디아가 세웠고, 처음 교회 마가 다락방도 마가의 어머니의 헌신으로 이루어진 것입니다. 

남자들이 배경이 되고, 여인들이 앞장 선 교회, 든든한 교회가 아닐 수 없습니다. 브리스길라와 같이 앞장서는 믿음 갖게 되시기를 바랍니다.



3. 실력 있는 여인(24­28절)



목회의 동역자가 되고 앞장서는 믿음을 갖기 위해서는 실력이 있어야 합니다. 브리스길라는 실력 있는 여인이었습니다. 그가 어느 학교를 나왔는지 무엇을 전공했는지 알 수 없습니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영적인 능력이 뛰어났다는 사실입니다.

성경에 나오는 인물 중 사도 바울을 빼놓고 성경에 능한 자를 꼽으라 하면 아볼로를 꼽습니다. 그런데 그 아볼로가 브리스길라에게 한수 배웠다는 사실이 본문에 기록되어 있습니다.

아볼로는 철학, 웅변, 수사학에 능한 사람이었기에 잘 가르쳤습니다. 그런데 25~26절을 보십시오. 그의 가르침을 듣고 있던 브리스길라와 아굴라가 그를 데려다가 하나님의 도를 더 자세히 풀어 주었습니다. 아볼로의 가르침 속에 복음의 핵심인 십자가와 부활이 빠져 있었던 것입니다. 이에 오히려 복음의 진수인 십자가와 부활을 가르친 것입니다.

복음은 윤리가 아니라 구원의 길이요, 생명에 이르는 말씀입니다. 십자가 없이는 부활이 없고, 부활이 없는 것은 기독교가 아닙니다. 이렇게 이들에게 배운 아볼로가 고린도 교회에 가서 감독이 되었던 것입니다. 브리스길라와 같이 영적인 실력을 갖추는 여인이 된다면 교회를 내적으로 성숙시키고 외적으로 부흥케 하는 밑거름이 될 것입니다.

21세기 교회는 이런 여성지도자가 일어나야 합니다. 많이 일어나야 합니다. 잠자는 여성인력이 최대한 은사를 발휘하여 은사 중심적 사역을 하는 교회를 만들 때 교회에 부흥의 불길이 일어나게 될 것입니다. 

목회자와 함께 동역하는 일꾼이 되시기 바랍니다. 앞장서 일하는 일꾼이 되시기 바랍니다. 기도와 말씀으로 무장하여 능력 있는 복음의 일꾼들이 되시기를 간절히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