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교회의 참모습(출6:1-8)


저는 요즈음 교회의 모습을 보며 과연 이것이 교회의 참 모습인가 하는 회의적인 생각을 할 때가 있습니다. 저는 어려서 시골 에서 지냈습니다.&nbsp120년이 되었다고 하는 초가집에서 살았습니다. 한번은 산에 가서 새알을&nbsp3개 주어 왔습니다. 때마침 제비가 처마에 집을 짓고 알을 품고 있었습니다. 제비가 자리를 비운사이 그 새알을 제비 둥지에 넣었습니다. 어 느 날 보니까 새알이 먼저 부화되어 새끼 새가 나왔습니다. 어미새가 품고있던 알이었던 모양입니다. 그런데 문제는 그 날부터 제비 는 알을 품지 않고 벌레를 잡아다가 새끼 새를 먹이는 것입니다. 더욱더 놀라운 것은 어느 날 제비가 알을 둥지에서 밖으로 밀어내 어 떨어트렸습니다. 그리고 부지런히 먹이를 물어다가 새 새끼를 먹여줍니다. 아마 제비는 그 새 새끼가 제 새끼인줄 아는 모양입니 다. 새 새끼가 점점 자라납니다. 어떻게 될 것인가를 생각하며 관찰하며 마냥 신나고 재미있었습니다. 그런데 어느 순간에 가서 제비 가 먹이를 물고 와 서로 달라고 입을 벌려 짹짹거리는 새에게 먹이를 주지 않고 고개를 갸우뚱갸우뚱하다가 먹여주고 가곤 합니다. 갈 수록 그러한 현상이 뚜렷하게 나타납니다. 새가 날갯짓을 할 무렵 어미제비는 돌아오지 아니했습니다. 그 이듬해도 제비는 돌아오지 아 니했습니다.
지금에 와서 생각하니 그 제비에게 너무나 미안하고 못된 짓을 했구나 하는 생각이 듭니다. 정말로 마음속에서 우러나는 마음으 로 제비야 정말 미안하다하며 사과를 하고싶은 심정입니다. 지금도 나의 뇌리에서 지울 수 없는 모습이 있습니다. 먹이를 물고 와 서 반짝반짝하는 새까만 눈동자를 깜빡깜빡 휘둥글 휘둥글 하면서 고개를 갸우뚱갸우뚱 하는 그 제비의 모습이 눈에 선합니다.
나는 지금 그 제비가 무엇 때문에 고개를 갸우뚱거렸나 알 수 있습니다. 그 제비의 고민의 소리를 들을 수 있습니 다. 아, 이상하다 이것이 아닌데, 이건 분명 내 모습이 아니야, 무엇이 잘못되었어. 다시 시작해야돼 더 늦기 전에 다시 시작해야 해 아니야 결단해야해. 하며 고민했던 것이 분명합니다.
나는 자금 교회 목회자의 한사람으로서 제비의 고민이 있습니다. 아무리 보아도 오늘날 교회가 원래의 교회의 모습이 아니라 는 것입니다. 이는 제 고민과 느낌만이 아닙니다. 대부분의 교회에 대해서 관심을 가지고 기도하고 생각하는 사람들이면 공통적으로 가 지는 고민과 느낌입니다.
아무리 봐도 오늘날 교회의 모습이 성경에 나타난 교회의 모습과 너무나 다른 것이 사실입니다. 오늘부터 저는 몇 주간 동안 성경에 나타난 교회의 참 모습을 찾아 그 모습을 배우고 닮아 가는 교회가 되고자 합니다. 
오늘날 교회의 개혁을 부르짖고, 교회의 변화를 부르짖고 있습니다만은 참된 교회개혁이 무엇이고, 올바른 교회의 변화가 무엇입 니까? 교회의 개혁과 변화는 성경으로 돌아가는 것입니다. 요시아의 개혁도, 루터의 개혁도, 성경으로 돌아가자는 것이었습니다. 
혁명과 개혁은 다릅니다. 혁명은 다른 사람을 쳐서 고치는 것이고, 개혁은 자기를 쳐서 고치는 것입니다. 종교개혁이니 교회개혁이니 하는 것은 자신을 쳐서 하나님의 뜻에 복종시켜 성경의 뜻을 따르는 것입니다.
변화와 변질은 다릅니다. 성경중심으로 변하는 것은 변화요 성화입니다. 그러나 성경을 떠난 변화는 변질이요 타락입니다. 따라서 교회의 참된 개혁과 변화는 성령의 교회모습을 찾고 그 모습을 회복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성경에 나타난 교회의 참된 모습이 무엇입니까? 

Ⅰ. 출애굽교회의 모습

우리가 교회 하면 사도행전교회를 생각하게 됩니다. 또한 사도행전에서만 교회의 모델과 모습을 찾으려고 하는 실수를 할 때가 있습니다. 그러나 교회의 참된 모델과 모습은 신구약성경에 광범위 숨겨져 있습니다.
오늘 본문말씀은 출애굽교회의 참 모습을 나타내주는 말씀이기도 합니다.

1. 출애굽교회는 억압에서 탈출하는 교회입니다.

애굽의 정치적 억압에서 해방되어 탈출하여 자유한 상태에서 약속의 땅으로 향하여 행진하는 것이 출애굽교회의 모습입니다.
오늘 본문에 보면 여호와 하나님께서 말씀하시기를, 나는 애굽사람의 무거운 짐 밑에서 너희를 빼어낸 너희 하나님 여호와인줄 을 너희가 알지니라(출6:7)고 합니다. 여기서 애굽사람의 무거운 짐이란 애굽의 정치적 억압을 의미합니다. 교회의 참 모습은 억압 에서 해방된 모습입니다.
교회가 해방해야 한다함은 무엇을 의미합니까?
율법주의에서 해방입니다. 율법주의란 공리주의입니다. 인간의 노력과 고행으로 구원을 얻을 수 있다는 것입니다. 루터가 로마 에 있는 스칼라쌍타에 가서 결단을 무릎으로 기어오르면서 기도를 합니다. "스칼라쌍타란" 거룩한 계단이라는 뜻인데 그 계단이 아 주 가파릅니다. 기도하며 무릎으로 기어올라갔다 내려올 때도 기도하며 무릎으로 뒷걸음질치며 내려옵니다.
그러한 고행을 통해 인간은 거룩해지고 거룩해져야 구원을 얻는다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그에게는 항상 갈등이 있었습니 다. 이것이 과연 구원의 방법인가? 루터는 이러한 고민 중에 고행기도를 하다가 문득 롬1:17이 생각났습니다. "오직 의인은 믿음 으로 말미암아 살리라" 그 즉시 일어나 계단을 내려왔습니다. 
구원은 나의 노력이나 율법을 지키므로 구원 얻는 것이 아니라 오직 믿음으로 구원을 얻는다고 외쳤습니다.
에베소서&nbsp2:8-9의 말씀과 같이 "쏠라그라치아" 오직 은혜로 "쏠라 휘데" 오직 믿음으로 구원을 얻게 되 는 것입니다. 그러나 아직까지도 교회들이 율법으로 얽어매고 공리주의 사상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것이 사실입니다. 율법과 공리주 의에서 벗어나 믿음과 은혜의 진리 안에서 자유하는 것이 교회의 참 모습입니다.

2. 이방문화에서의 탈출하는 교회입니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백성을 애굽에서 탈출시킨 것은 이스라엘 백성을 애굽의 문화에서 탈출시키기 위한 것입니다. 애굽의 우상문화 와 미신문화에서 탈출시키기 위한 것이며, 애굽의 인본주의문화와 이방사상과 가치관에서 탈출시키기 위한 것입니다. 참된 교회의 모습 은 이방문화 속에 살면서도 그 문화에 침식당하지 않고 그 문화에 물들지 않고 구별되게 살아가는 것입니다.
아브라함을 갈대아 우르에서 불러내어 그곳을 떠나게 하신 하나님의 뜻이 무엇입니까? 갈대아 우르의 인본주의 이방문화에서 탈출하여 새로운 신본주의 문화를 형성하여 살게 하기 위한 것이었습니다.
오늘날에는 교회와 사화와 다른 것이 무엇인가를 생각합니다. 행복의 가치판단이나, 성공의 기준이 교회에서 말하는 것이나 사회 에서 말하는 것이 꼭 같다는 말입니다. 가치판단 삶의 질과 기준이 무엇이 다릅니까? 돈으로 모든 것을 할 수 있다고 하는 황금만능 주의적 세속적 문화가 교회에 침투하여 교회의 참 모습을 퇴색시키고 있습니다. 그리하여 어떤 이들은 교회생활은 열심이면서도 자기 가 교회에 도움이 안 된다고 생각합니다. 왜 그러느냐고 물으면 헌금 못해서 그렇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황금만능주의 사상입니 다. 교회에서 헌금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다른 면으로 봉사하는 것도 가치 있고 중요한 것입니다. 여기서 교회는 탈출해야 합니다. 무 조건 권력을 추앙하고 추구하는 잘못된 사상이 교회의 감투싸움을 가져오게 했습니다. 오죽하면 제비 뽑아 총 회장을 세우자고 하겠습니 까? 
무조건 돈 많이 벌어 큰 집 짓고 큰 차 타고 다니면 호화롭게 살면 성공했다는 지극히 세속적이요 이방적인 정신적 문화가 교 회에 들어와 큰 교회 짓고 많이 모이고 예산 많으면 성공한 교회요 성공한 목사라고 판단하는 교회풍토와 문화를 만들었습니다.
대학 나오고 공부 많이 해 학박사가 돼야 성공한 사람이고 위대한 사람이라고 하는 잘못된 평가기준의 문화가 교회를 스며들어와 목사들이 가짜 박사의 주범으로 비판의 대상이 되기도 했습니다.
아직도 세상의 미신문화와 무당문화가 교회에 자리잡고 있어 예수 무당, 예수 점쟁이라는 신종 어가 나오기까지 했습니다. 우리가 신앙생활을 하면서 경계해야 할 세 가지 중요한 것이 있습니다.
첫째는 성경을 지식화 하는 바리세인이 되지 말아야 합니다. 두 번째는 신앙이 미신화에 빠지지 아니해야 합니다. 셋째는 믿음이 율법주의나 공리주의에 빠지지 않도록 해야 합니다.
근래에 교회개혁이니 갱신이니하며 교회 변화를 주장하는 자들이 세상의 쾌락주의 문화까지 무분별하게 교회에 끌어들여 자기도취 와 만족에 빠져 생명 없는 죽음의 예배를 드리는 것을 보게 됩니다. 이것은 교회의 참 모습이 아닙니다. 우리는 이러한 이방문화에 서 과감하게 탈출하여 보다 차원 높은 문화를 창출해야 합니다. 출애굽교회 참모습은 애굽의 이방문화를 탈출하는 탈출문화입니다. 인본 주의 문화를 탈출하는 것입니다.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세상사람의 생각을 초월해야 합니다. 믿지 않는 사람의 인생관, 가치관, 생활관을 초월하여야 합니다. 오 직 예수 그리스도의 마음과 생각과 인생관과 가치관과 생활관을 가져야 합니다. 눈에 보이고 귀에 들리고 손에 잡히는 것만 기뻐하 고 그것만 추구하는 세속문화에서 우리는 탈출해하여야 합니다. 참된 그리스도인은 만져지지 않고 보이지도 않고 들리지도 않는 영적 세 계를 추구하며 그 안에서 기쁨과 보람을 찾는 것입니다. 이것이 세속문화를 탈출하는 출애굽교회의 참 모습입니다.
우리나라 기독교인은 전체 인구중의&nbsp25%라고 합니다. 그런데 형무소에 복역하고 있는 자들을 조사해보니 그 중 에 기독교인이&nbsp25%로 나타났다는 것입니다. 이는 예수 믿는 자와 믿지 아니한 자의 다른 점이 없었음을 보여주는 증 거입니다. 왜 이러한 현상이 나타납니까? 기독교인들이 세속문화를 탈출하지 못하고 그들의 가치관, 그들의 사상, 그들의 생활관을 그 대로 답습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출애굽교회의 참된 모습은 정치적 억압에서 탈출하고 당시 애굽의 우상과 미신문화에서 탈출하는 것이었습니다. 오늘날 우리 교회 도 탈출하는 교회가 되어야 합니다. 율법과 공리주의에서 해방되어 오직 은혜, 오직 믿음 안에 거하고 세속적인 문화 즉 눈에 보이 고 귀에 들리고 손에 잡히는 것만을 추구하는 자들의 가치관과 인생관과 생활관에서 탈출하여 예수 그리스도의 인생관과 가치관과 생활관 을 가지고 살아야 합니다.

3. 잘못된 의식과 제도에서 풀려나야 합니다.

우리는 지나친 형식과 의식과 제도에서 벗어나야 합니다. 카톨릭교회에서는 성만찬을 거행할 때 회체설을 주장합니다. 떡과 포도 주를 놓고 기도하면 그것이 예수님의 살과 피로 변한다는 것입니다. 그리하여 그들은 성찬식을 하고 남은 것을 버리지 못하고 창고 에 쌓아두었습니다. 쥐가 창고에 들어가 떡을 먹었습니다. 쥐가 떡을 먹었으니 구원 얻었느냐 못 얻었느냐 논쟁을 했고, 세례 줄 물 에 파리가 빠져 죽었는데 파리가 성화 되었느냐 아니냐를 놓고 장시간을 싸웠습니다.
우리 장로회 통합측 총회에서는 축도 끝 부분 "찌어다"와 "축원합니다"를 놓고 목사와 장로들간에 심각한 논쟁과 갈등을 벗기 도 했습니다. 중세기 카톨릭교회는 자기들이 만들어 놓은 제도와 의식에 꽁꽁 매여 그것에 시간을 허비하고 세월을 보내다가 교회는 부 패하여 몰락하게 된 것입니다. 교회학자들에 의하면 지금 북미와 남미의 문화적 차이는 남미는 성경을 가지고가 의식화하였고, 북미 는 성경을 가지고 그 말씀으로 삶의 지표를 삼아 생활화했다는 것입니다. 
성경을 우리에게 주신 것은 그 의식과 제도에 얽어매기 위한 것이 아니고 생활화하기 위한 것입니다. 이스라엘 백성의 출애굽사 건은 이방인들의 잘못된 의식과 제도에서 벗어나 삶의 중심으로서의 변화를 의미합니다. 의식중심의 신앙의 제도에서 벗어나 삶의 중심 의 신앙으로 전환해야 합니다. 교회의 참 모습은 생활하는 믿음입니다. 거룩하고 장엄한 예배는 있는데 생활하는 신앙의 모습이 없다 면 이는 교회의 참된 모습이라고 할 수 없습니다. 교회의 참 모습은 율법주의적 억압에서 벗어나 오직 믿음과 은혜 안에 살기 위하 여 이방문화에서 탈출하여 진리 안에서 참 자유를 누리는 것입니다. 
우리 방초교회가 이러한 출애굽교회의 참 모습을 회복하는 축복이 있기를 원합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