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모님의 사랑은 위대합니다.”(대상 28:9-10,20-21)
  
오늘은 어버이 주일입니다. 어버이주일은 기원은 1908년 미국 버지니아주의한 마을에서 '안나 자이비스'라는 소녀가 흰 카네이션을 가슴에 꽂고 돌아가신 어머니를 추모할 것이 기념이 되어 오던 중 미국 정부가 정식으로 매년 5월 둘째 주일을 어머니주일로 정한 것이 점차 세계적인 연례행사가 되었습니다.
그래서 이 날이 되면 어머니의 거룩하신 은덕을 잊지 않기 위하여 어머니께 꽃과 선물을 드리는데 어머니가 돌아가시고 안 계신 사람은 흰 카네이션을 가슴에 달고 살아 계신 사람은 붉은 카네이션을 가슴에 달아 드리고 기념하는 날입니다.  

그런데 기억할 것은 어버이를 추모하는 마음은 귀하지만 부모님께서 돌아가신 이후에 하는 것은 소용이 없습니다. 죽은 자를 위해서 제사를 잘 지낸다고 해서 효도가 아닙니다. 죽은 자는 효도를 받을 수 없습니다. 그러므로 효도는 산 사람을 위한 것이 되어야 합니다. 그런데 기독교는 말하는 효도는 산 사람을 위한 효도입니다. 하나님은 철저하게 살아계신 부모님에게 효도하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부모님께서 살아계실 최선을 다하여 효도하시고 공경하시기를 바랍니다.“부모님에게 효도하라, 부모님을 공경하라”는 말을 강조하고 또 강조해도 지나침이 없을 것입니다. 자녀가 자기 부모에게 효도하는 일이야말로 동서고금(東西古今)를 막론하고 인간 세계에서 가장 고상한 미덕이요 윤리의 기본입니다. 

그런데 기억할 것은 효도의 윤리는 그 근원이 인간 윤리에 바탕을 둔 것이 아니라, 창조주 하나님의 계시에 근거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명령입니다. 부모님을 공경하라는 하나님의 명령은 십계명 중에는 다섯 번째 해당되는 명령이지만 사람과에 관계에서 행해야져야 할 명령 중에는 첫 번째 되는 명령인 것입니다. 그러므로 사람이 부모에게 효도하는 것이 하나님의 법을 순종하는 행위입니다. 나가가서 하나님을 경외하는 신앙행위입니다. 

그런데 참으로 안타까운 부모공경커녕 부모님을 방치하고 부모님을 학대하는 자녀들이 속출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오늘날 물질문명이 발달하고 생활수단은 향상되어가고 있으나 아름다운 가정의 윤리와 자식의 도리는 갈수록 무너져가고 있습니다. 이러한 현상은 심각한 위기가 아닐 수 없습니다.  왜냐하면 가정의 위기는 사회의 몰락을 가져오기 때문입니다. 가정의 붕괴는 곧 하나님의 심판을 자초하는 일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은 딤후 3:2에서 말세(末世)지말의 특징에 대해서 말하면서 자녀가 자기 부모를 거역하거나 불효하는 것을 패역한 시대에 일어나는 특징임을 말하고 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부모님을 공경하는 것은 축복받는 지름길입니다. 이 땅에서 잘 되고 장수하는 비결입니다.(엡 6:1-3)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부모님에게 불효하고 학대하는 자를 결코 방치하지 않습니다. 그래서 성경의 여러 곳에서 불효자에 대한 하나님의 무서운 징벌과 심판을 경고하고 있습니다. 잠언 30:17에서 “아비를 조롱하며 어미 순종하기를 싫어하는 자의 눈은 골짜기의 까마귀에게 쪼이고 독수리 새끼에게 먹히리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어떤 자녀들은 부모님을 공경할 만한 것이 없어서 공경할 수 없다고 말합니다. 이러한 생각은 아주 잘못된 생각입니다. 부모님을 공경할 만한 것이 있어서 공경한다면 그것은 더 이상 공경이 아닙니다. 물론 오늘날 세상에는 부모를 흡족하게 하는 자녀들도 많지 않은 것 같고 자녀들이 닮고 싶어 하는 멋있는 부모들도 많지 않은 것도 사실입니다. 

왜 우리 사회가 이렇게 되었습니까?
왜 우리 가정이 이렇게 되었습니까? 그 이유가 여러 가지이겠지만 언제부터인가 의무보다 권리를 주장하는 일방통행(一方通行)이 피차를 불행하게 하는 원인이 아닌가 생각해 봅니다. 흔히들 효(孝)라고 할 때 자식들이 부모님께 좋은 옷을 해드리고, 좋은 음식을 대접하고, 종종 찾아 뵙고, 부모님께서 불편하지 않도록 봉양해 드리는 것을 생각합니다. 또 자신이 입신양명(立身揚名)하여 부모님의 명예를 높여 주는 것으로 생각합니다. 그리고 최근에는 대학 들어가는 것이 하도 힘드니까 일류대학 들어가는 것이 효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이것으로 효도(孝道)를 다했다고 말할 수 있습니까? 아닙니다. 물론 이런 것도 효도(孝道)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리스도인은 성경적인 관점에서 효도를 해야 합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본문을 통하여 부모에 대한 자녀의 올바른 도리에 대해서 생각해 보아야 합니다. 좋은 부모가 되는 것도 힘든 일이지만, 더 더욱 힘든 일이 있다면 좋은 자녀가 되는 일입니다. 따라서 우리는 부모님의 은혜를 깨닫고, 부모님의 은혜에 깨닫고 순종하되 부모님의 심정을 잘 알아서 편하게 해드리고, 기쁘게 해 드려야 합니다.

그런데 기억할 것은 우리가 아무리 부모님에게 효도를 잘 한다고 할지라도 부모님의 사랑에 비하면 그것은 아무것도 아니라는 사실입니다. 본문의 말씀은 자녀에 대한 다윗의 사랑에 대해서 말씀하고 있습니다. 부모님은 하나님 다음에 가장 위대한 사랑을 하시는 분이십니다. 그래서 마틴 루터는 “우리는 부모님을 하나님 다음으로 높여야 한다.”고 말하고 있고, 섹스피어는 “부모님은 하나님의 대리자이다. 부모님의 음성은 하나님의 음성이다.”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측면에서 본문의 말씀은 우리에게 많은 도전과 각성을 주고 있습니다. 왜냐하면 부모에 대한 자녀에 대한 효도가 아무리 깊다고 한들 자녀를 향한 부모님의 사랑과는 도저히 비교할 수 없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사실 오늘날에는 자녀에 대한 사랑도 강조되어야 할 시대이지만 자녀에 대한 어버이의 심정을 새겨보는 것이 효심을 오히려 극대화시키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다윗 왕은 "예수 그리스도의 예표"라고 합니다. 그러나 가만히 살펴보면 다윗 왕은 예수 그리스도의 예표(豫表)일뿐 아니라 "믿음의 어버이들의 예표(豫表)"라고 생각합니다. 이 세상에 부모 없이 존재하는 사람은 한 사람도 없습니다. 모두가 "부정모혈"(父情母血)을 받아 태어나서 부모의 사랑의 젖을 먹고 자라났습니다.(삼하 32-5,514-16,특히 삼하 5:14-16에는 11명의 이름이 언급되고 있음) 

성경에 보면 다윗 왕에게는 여러 아들이 있었다고 했는데(대상 28:5) 그 중에서 성경에 특히 묘사된 다섯 아들과 관련해서 나타난 다웟 왕의 어버이 심정과 수고를 헤아려 보고자 합니다. 무엇보다도 다웟 왕은 많은 자식을 두었기 때문에 낳고 기르는 수고와 남모르는 고통이 많았던 것입니다. 

여러분은 다윗 왕의 아들이 몇 명이나 될 것 같습니까? 
그 아들의 이름을 말해 보십시오."솔로몬, 압살롬..." 등 솔로몬은 너무 훌륭해서 잘 알고, 압살롬은 너무 못돼서 잘 아는 같습니다. 다윗의 자녀는 19남(男) 1여(女)를 두고 있습니다.(1여는 다말) 다윗은 헤브론에서 7년 6개월을 통치하는 중에(대상 3:1-9) 헤브본에서 낳은 아들이 6명입니다(삼하 3:2-5, 대상3:1-4) ① 맏아들 암논 ② 길르압 ③ 압살롬 ④ 아도니야 ⑤ 스바댜 ⑥ 이드르암 등입니다. 또한 다윗이 예루살렘에서 33년을 통치하였는데, 예루살렘에서 낳은 아들이 모두 13명이나 됩니다(삼하 513-16,대상3:5-9.대상14:4-7) ① 시므아 ② 소밥 ③ 나단 ④ 솔로몬  ⑤ 입할 ⑥ 엘리사마 ⑦ 엘리벨렛 ⑧ 노가 ⑨ 네벡 ⑩ 야비야 ⑪ 엘리사마 ⑫ 엘랴다 ⑬ 엘리벨렛과 다말은 등이 있습니다. 그리고 첩들의 아들들이 있습니다. 그런데 노가와 엘리벨렛은 역대상에 나옵니다. 그러니 그들의 수고가 얼마나 컸겠습니까? 
 
옛날 요한 웨슬리의 어머니가 18명의 아들을 길러냈습니다. 우리 속담에는 "가지 많은 나무에 바람 잘 날이 없다"는 말이 있지만, 이는 다윗에게 적용되는 말입니다. 왜냐하면 다윗의 19명의 자녀들 가운데서는 별의별 자식들이 다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어버이들은 모든 자녀를 하나같이 귀하게 여기고 모든 수고를 감수하며 양육한 것처럼 다윗도 그러했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이렇게 자녀가 많음에도 불구하고 어느 때에는 부모님이 가 계실 곳이 없다는 것입니다. 물론 모든 자녀들이 다 그런 것은 아니지만 자식이 많다보면 서로 미루어서 갈 데가 없는 어버이들이 있음을 보게 됩니다. 그래서 자식이 다섯이나 있는 노인이 고독을 못 이겨 자살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독일 속담에 "한 부모가 열 자녀를 기르는데 어찌하여 열 자녀가 한 부모를 섬기지 못하는가?"라는 탄식조의 속담이 있습니다. 그러면 본문의 말씀을 통하여 다웟 왕을 통해 본 어버이의 심정에 대해서 "다웟 왕의 자녀 사랑 정신"라는 제목으로 함께 은혜를 나누고자 합니다.

1. 패륜아(悖倫兒) '암논'에 대한 다윗의 심정(삼하13:1-37)
삼상 13:1-37을 보면 다윗 왕이 헤브론에서 일찍이 낳은 아들 중에는 아주 못된 아들들이 많았는데, 그 중에 맏아들이 "암논"이라는 아들이 있었습니다. 이 "암몬"은 이스라엘뿐 아니라 세계에서도 있을 없는 패륜아였습니다. 

암논은 자기에게는 이복누이 동생이며, 압살롬에게 누이인 [다말]을 연모한 나머니, 급기야는 그를 범하여 욕되게 한 후에 곧 그를 심히 미워하여 자기 집에서 내쫓고 빗장을 잠가버림으로 "다말"이 압살롬의 집으로 가서 처량하게 2년간이나 지나게 되었습니다. 

그 후에 다윗이 "이 모든 말을 듣고 심히 노하니라"(21절)고 한 것을 보니 아버지 다윗이 왕으로서 자식들의 수치스러운 소식을 듣게 될 때 강한 수치심과 분노를 느낀 것으로 생각합니다. 다윗 왕가로서도 얼마나 창피하고 수치스럽고 부끄러웠겠으며 가슴이 찢어지는 것 같았을 것입니까? 

자신의 누이 다말이 암논에게 몹된 짓을 당한 후에 이 일로 말미암아 성격이 과격해 진 다윗의 셋째 아들 압살롬은 형 암논을 미워하여 시비간에 일체 말을 하지 않고 2년 간이나 지내게 되었습니다(22절) 다시 말해서 형제간에 불화하고 지내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형제간에 서로 미워한다는 것은 부모의 마음을 가장 아프게 하는 불효가 아니겠습니까? 부모의 가슴에 못을 박는 일인 것입니다. 형제간에 화목 하는 삶으로 효도해야 할 것입니다.

그로부터 2년 후에 압살롬이 기회를 엿보다가 양털 깍는 때를 기회로 해서 왕자인 형제들을 자기 집으로 초대해서 주연을 베풀고 술로 즐거움을 더할 때에 그의 용감한 사환들을 시켜서 형 암논을 죽이고 말았습니다(삼하13:27-36) 미움이 살인으로 바뀌게 된 것입니다. 그런데 이 소문이아버지 다윗에게 들릴 때 왕이 자리에서 일어나 옷을 찢고 땅에 엎드리어 대성통곡(大聲痛哭)을 했다고 했습니다(31,36절)
그러므로 우리는 형제간에 마음을 열고 대화를 나누며 살도록 해야 합니다. 이것이 더 큰 불행을 예방하고 효도하는 길인 것입니다. 여러분은 세상에 몹쓸 패륜아의 죽음을 듣고도 가슴을 찢고 땅에 엎드리어 대성통곡(大聲痛哭)하는 것이 어버이의 심정인 것을 알아야 합니다. 

또한 압살롬은 이 사건으로 말미암아 외가(外家)가 있는 그술 왕의 아들 [달매]에게로 도망가서 3년을 지나게 되었습니다. 그때에 다윗의 심정과 형편은 어떠했겠습니까? 삼하 13:37에 보니 "다윗은 날마다 그 아들(도망간 살인자)을 인하여 슬퍼하니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이는 살인을 하고 도망한 아들을 인해서도 날마다 슬퍼하는 것이 곧 어버이의 심정인 것을 보여줍니다. "너는 살인자이지 내 아들이 아니라"하면 모든 것이 깨끗이 청산될 것 같은데, 어버이 심정은 그것이 아닙니다. 죄를 자복하고 뉘우쳐 회개하는 것이 근본적인 효성의 길이지 아버지의 낯을 피하여 멀리 도망가 버리는 것은 오히려 어버이 마음을 더욱 날마다 괴롭게 하는 불효임을 알아야 합니다. 그러므로 진정한 부모는 어버이의 마음을 편하게 해 드리는 것이 큰 효도하는 방법 중에 하나임을 깨달아야 합니다.
 
2. 병든 자식 '나단'에 대한 다윗의 심정(삼하12:15-23)
삼하 12:15-23을 보면 병든 자식에 대한 다윗의 심정을 살펴볼 수 있습니다. 다윗 왕이 예루살렘에서 낳은 13명의 아들들은 "솔로몬" 하나만 뛰어나고 그 외에는 이름만 남긴 평범한 아들들이었습니다. 그러나 그들 중에도 어버이 마음을 아프고 슬프게 한 아들들이 있는데, 그들은 [나단]이라는 아들과 [노가]라는 아들이었습니다. 그들은 일찍이 병사함으로 부모의 마음에 슬픔과 고통을 주었습니다. 삼상 12:13-18에 보면 다윗이 우리아의 아내 [밧세바]를 번한 후에 [나단 선지자]의 책망을 받고 아무 변명 없이 솔직하게 "내가 여호와께 범죄하였나이다"(13절 상)라고 회개함으로 하나님께로부터 그 죄를 사함 받기는 했습니다.(13절 하) 그러나 다윗은 죄를 용서를 받았지만 죄의 대가를 받아야만 했습니다. 그러기에 나단 선지자는 다윗을 향하여 "당신이 낳은 아이가 정녕 죽으리라"(13-14절)고 했습니다. 그리고 난 후에 그 아이가 심히 앓게 되었다고 했습니다(15절) 그때 다윗 왕이 병든 아들을 위해서 한 것이 무엇이겠습니까? 

삼하 12:16-17절에 보니 "다윗이 그 아들을 위하여 하나님께 간구하고 금식하고 안에 들어가 밤새도록 땅에 엎드리어 그 집의 늙은 자들(노(老) 신하들)이 다웟을 일으키려 하되 왕이 듣지 아니하고 저희로 더불어 먹지도 아니하니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이것이 병든 자식을 위한 부성이요, 어버이 심정인 것입니다.
① 죽은 아들을 붙들고 죽지 않았다고 절규함이 어버이 심정임과 같이 하나님께서 나단 선지자를 통해서 "정녕 죽으리라"고 한 아들일지라도 그 아들을 위하여 하나님의 긍휼을 간절히 구하는 것이 어버이의 심정인 것입니다. 
② 하나님이 죽는다고 했어도 포기할 수 없는 것이 어버이 심정입니다. 
③ 하나님이 "정녕 죽으리라"고 하신 아들일지라도 7일간이나 금식하며 간구 하는 것이 어버이 심정인 것입니다. 
④ 하나님이 죽으리라고 한 아들일지라도 밤새도록 땅에 엎드려 철야 기도하는 것이 어버이의 심정인 것입니다. 
⑤ 7일간이나 금식한 것을 보면 죽어가는 아들을 위해서 대신 죽고 싶은 것이 어버이의 심정인 것입니다. 

우리 자녀들은 믿음의 어버이들의 이런 심정을 알아야 합니다.
그러나 이 아이는 나단의 예언대로 이레 만에 죽고 말았습니다(18절) 이 아이의 이름은 사무엘하 5:14에 의하면 "나단"(삼하 12:24)이었습니다. 이 이름은 다윗이 자기의 죄를 책망하고 아들이 죽을 것을 예고해 준 나단 선지자를 존경해서 그 나단 선지자의 이름을 따서 [나단]이라고 불렀다고 합니다. 우리는 여기에서 다윗의 훌륭한 신앙을 볼 수 있습니다. 

그리고 다윗은 아들이 죽자 땅에서 일어나 몸을 씻고 기름을 바르고 의복을 갈아입고 여호와의 전에 들어가서 경배했습니다(20절) 이는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는 믿음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그 직후에 주신 아들이 바로 [솔로몬]이라는 사실을 명심해야 합니다(24절) 그러므로 우리가 부모님에게 효도하는 길은 건강한 것인데, 육체적으로 건강할 뿐만 아니라 영적인 면에서도 건강해야 합니다. 

3. 반역자 '압살롬'에 대한 다윗의 심정(삼하18:1-33,왕상1:5-25)
반역자 압살롬에 대한 다윗의 심정은 삼하 18:1-33, 왕상 1:5-25에서 살펴볼 수 있는데, 다윗 왕의 아들 중에 부왕을 모반하고 반역한 아들은 압살롬 하나만이 아니라 또 한명이 있었는데, 그 아들이 [압살롬]의 바로 밑의 동생인 "아도니야"이었습니다.
 
압살롬은 다윗 왕의 3남으로서 발바닥부터 정수리까지 흠이 없는 온 이스라엘 중의 미남자(美男子)라고 했습니다(삼하 1425) 하지만 압살롬의 성격은 과격하고 활달하고 포악성이 있고 정치적 야심이 있는 자였습니다. 
그가 형 암논을 죽이고 외가가 있는 [그술]로 도망해서 3년을 지내다가 요압의 주선으로 예루살렘으로 돌아오기는 했지만 2년간 부왕(父王)을 대면치 못하고 있었습니다(삼하 1421-28) 그러다가 추종자를 모아 반란을 일으켜 스스로 왕이라고 하여 부왕을 궁궐에서 추방하고 정부군과 싸우다가 상수리나무에 머리체가 걸린 것을 요압 장군이 창으로 그를 쳐 죽이므로 죽고 말았습니다. 

그런데 우리가 여기에서 주목해야 할 것은 압살롬을 향한 다윗의 심정입니다.
압살롬에 의해서 맨발로 다윗 성에서 도망치던 빠져나왔던 다윗이었지만 그의 부하들에게 "나를 위하여 압살롬을 너그러이 대접하라"(삼하 18:5)고 부탁을 하였고, 또 다윗은 "압살롬이 잘 있느냐"(18:28 하)라고 하면서 반역자 압살롬의 안부를 묻기도 했습니다. 그렇습니다. 바로 이와 같은 마음을 가진 것이 부모의 심정입니다.

그런데 다윗은 반역자인 압살롬이 죽었다는 소식을 듣고 마음은 심히 아파했습니다. 그리고 얼굴을 가리 우고  "내 아들 압살롬과 압살롬아 내 아들 압살롬아"하며 큰소리로 부르면서 문루로 올라가서 울었다고 합니다(18:33,19:4) 여기에서 우리는 어버이의 심정을 볼 수 있습니다. ① 다윗은 압살롬이 비록 자기를 반역하였지만 아들의 죄를 용서하였습니다. 이것이 어버이의 심정입니다. ② 우리는 사랑할 가치가 조금도 없는 자식인데도 끝없이 사랑하는 어버이 심정을 읽을 수 있습니다. ③ 자기의 체면과 왕가의 체면을 완전히 짓밟아 버린 반역자 아들일지라도 대신 죽고 싶어 하는 어버이 심정을 볼 수 있습니다. 바로 이와 같은 모습이야말로 "하나님의 사랑","아가페 사랑"으로 우리를 대신 죽으신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의 모습인 것입니다. 
삼하 13:37에서 "다윗은 날마다 그 아들을 인하여 슬퍼하니라"고 말씀하고 있는 것처럼 다윗은 압살롬이 그의 이복형인 암논을 죽이고 그술 왕의 아들에게로 도망하여 있을 때 압살롬을 위하여 슬퍼하였습니다. 바로 이러한 사랑의 마음이 어버이의 사랑입니다. 그러기에 숭고한 어버이의 사랑은 아무도 흉내를 낼 수가 없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만약 여러분이 반역자 압살롬의 말로(末路)가 어떠한지를 분명하게 알고 있다면 우리는 결코 어버이들을 반역하는 일이 없어야 하겠습니다. 부모님에 대한 말조심 곧 언사(言事)도 조심해야 하겠지만 부모님에 대해서 반역하지 말아야 합니다. 

그런데 압살롬이 죽자 그 동생 "아도니야"가 왕위를 계승하려고(왕상16)하여 반란을 일으켰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이것을 허락하지 아니하셨습니다. 그리하여 하나님께서는 여호야다의 아들 브나야에 의해서 죽임을 당하였습니다.(왕상 2:35) 
그렇습니다. 우리는 어버이에게 불의한 생각을 결코 가져서는 안 됩니다. 하나님께서는 부모에게 불효하는 자는 죽임을 당하도록 하였습니다. 그래서 (잠 30:17) "아비를 조롱하며 어미 순종하기를 싫어하는 자의 눈은 골짜기의 까마귀에게 쪼이고 독수리 새끼에게 먹히리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4. 대권을 맡은 솔로몬에 대한 다윗의 심정.(왕상2:1-3, 대상28:9-10, 20,21)
왕상 21-3과 대상 28:9-10과 20-21절에 보면 대권을 맡은 솔로몬에 대한 다윗의 심정을 살펴볼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다윗에게 암논과 같은 패륜아의 아들을 주시고, 반역자 압살롬과 아드니아와 같은 자식을 주셨지만, "솔로몬"과 같은 믿음의 좋은 아들을 주셨습니다. 이는 다윗 개인으로나, 그의 가정으로나 국가적으로나 큰 축복이 아닐 수 없습니다. 솔로몬은 다윗이 밧세밧와 부정한 관계에서 낳았던 첫 번째 아들이 하나님의 징계로 받음으로 죽고 난 다음에 하나님께서 다윗을 위로로 주신 아들이었습니다.(삼상 12:24,25) 하나님께서는 나단 선지자를 보내셔서 솔로몬을 “여디디야”로 불러주셨는데, 그 이름의 뜻은 “하나님께서 사랑하심이라.”는 뜻입니다. 이처럼 솔로몬은 하나님께서 다윗을 위로하심으로 주신 아들이었고, 하나님의 사랑을 받은 아들이었습니다.
  
그래서 왕상 2:1-3에 "다윗이 죽을 날이 임박하매 그 아들 솔로몬에게 명하여 가로되 내가 이제 세상 모든 사람의 가는 길로 가게 되었노니 너는 힘써 대장부가 되고 네 하나님 여호와의 명을 지켜 그 길로 행하여 그 법률과 계명과 율례와 증거를 모세의 율법에 기록된대로 지키라 그리하면 네가 무릇 무엇을 하든지 어디로 가든지 형통할지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다윗은 자기의 최후가 가까이 옴을 느끼게 될 때 솔로몬에게 형통의 비결을 가르쳐 주었는데 그것은 "하나님의 성경말씀대로 다 지켜 행하라"는 것이었습니다. 이는 신앙생활을 잘하라는 것입니다. 이것은 부탁이 아니라 명령이라고 했습니다. 이것은 곧 믿음의 어버이들의 심정입니다. 또 마땅히 믿음의 어버이들은 그래야 합니다. 우리 자녀들이 말씀대로 사는 것이 가장 큰 효성임을 알고 더욱 신앙생활을 잘 해야 합니다. 

뿐만 아니라 다윗은 그의 아들에게 성전 건축을 힘써 행할 것을 명령했습니다. 이는 하나님을 위해 뜻 깊은 하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어떤 일이 하나님을 위한 뜻깊은 일이겠습니까?  그것은 여러 가지가 있을 수 있으나 가장 뜻 깊은 일이 있다면 아마도 그것은 "성전을 건축하는 일"일 것입니다. 역대상 28:9-10에 "내 아들솔로몬아 너는 네 아비의 하나님을 알고 온전한 마음과 깊은 뜻으로 삼갈지어다... 여호와께서 너를 택하여 성소를 건축하게 하였으니 힘써 행할지니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역대상 28:20에 "그 아들 솔로몬에게 이르되 너는 강하고 담대하게 이 일을 마칠 동안에 여호와 나의 아하나님이 너와 함께 하사 네게서 떠나지 아니하시고 너를 버리지 아니하시리라"고 말하면서 "이 전은 사람을 위한 것이 아니요 여호와 하나님을 위한 것이라"(대상 29:10는 말도 잊지 않고 해주었습니다.

우리는 여기에서 훌륭한 믿음의 어버이들의 모습을 읽을 수 있습니다.
참으로 자식들을 위하고 사랑하며 그 자식들이 훌륭하게 사는 길이 무엇인가를 가르쳐 준 어버이의 모습입니다. 우리가 복되게 사는 길과 값되게 하는 길이 무엇인가를 바르게 지도하는 모습은 우리 어버이들이 본받아야 할 모습입니다. 그러므로 우리 자녀들이 효성하는 길은 선한 사업에 부요하고 하나님의 나라 사업에 힘을 쓰며 주님의 몸된 교회를 위해 앞장서서 충성하는 것임을 알고 더욱 헌신해야 합니다. 보이지 않는 하나님을 섬긴다고 경외한다고 하면서 보이는 부모님을 공경하지 아니하는 것은 어불성설(語不成說)입니다. 그러므로 보이지 않는 하나님을 잘 섬기는 성도답게 보이는 부모님들을 공경하는 일에 최선을 다하는 여러분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이제 말씀을 맺겠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들은 다윗 왕을 통해서 어버이의 심정이 얼마나 숭고하고 고귀한가를 알았습니다. 또한 자녀들로서 축복과 저주의 길이 무엇인가를 배웠습니다. 무엇보다도 부모님을 공경하면 잘되고 거역하면 잘못된다는 것에 대해서 분명히 알았습니다. 이제 우리들은 다윗의 아들들 곧 패륜아 암논, 반역아 압살롬, 아도니야가 될 것인가? 아니면 순종하여 믿음과 사명의 대를 잇는 솔로몬이 될 것인가를 한번 깊이 생각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어버이 주일의 창시자라고 할 수 있는 "안나 자비스"는 "이 세상에서 가장 훌륭한 부모를 공경하라 그것은 바로 당신의 부모라"고 했습니다. 우리들은 오늘 "네 부모를 공경하라 그리하면 네가 잘 되리라"(엡62)의 말씀대로 부모를 잘 공경하여 축복 받은 자녀들이 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아울러 솔로몬과 같이 믿음과 사명에 대를 잇는 자녀들을 두는 축복 받은 믿음의 부모님들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아멘)